240329 새벽기도회: 마가복음 15: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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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특별새벽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번 주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한 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왜 고통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지를 기억하며 저희의 구원을 위해 일하신 삼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한 주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 알아가고자 합니다 .이 시간도 함께 해주셔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밝히 알게 되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마가복음 15:21-32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 (번역하면 해골의 곳) 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없음)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특별새벽기도회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어느덧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마지막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이 특별새벽기도회 자리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한 나오신다고 고생많으셨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큰 유익을 얻으셨길 소원합니다.
잠깐 기도하기 전에 말씀으로 기도제목을 삼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본문입니다. 유대인들에 의해 잡혀온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유대인들이 원하는 십자가형을 받게 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고통에 유독 집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오늘 본문을 기록한 마가는 초점이 다릅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말씀의 성취임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죽으신 십자가가 어떤 말씀의 성취인지, 또 우리에게 오늘 본문이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21절부터 보시면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께 십자가를 지우고 가다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우게 합니다. 우리는 큰 십자가 그 자체를 지고 가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당시에 십자가형은 조금 달랐습니다. 우선 처형이 이루어지는 곳에 세로로 된 세로대를 먼저 설치해놓고, 가로 부분에 해당하는 가로대를 죄수에게 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로대를 예수님께 지게 하였고, 어쩌다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로마군인이 억지로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같이 가게 하였습니다.
이것을 기록한 마가는 왜 시몬이 십자가를 지게 만들었는지 기록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몬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불필요할 정도로 시몬이 구레네 사람이라고 알려줄 뿐만 아니라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시몬이라는 것을 마가는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시몬이 기독교인이 되어 신자들의 동료가 되지 않았다면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지 못했을 것이며, 따라서 마가복음을 읽는 독자들이 시몬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몬은 시골에 와서 어쩌다가 십자가를 지게 되었지만, 이 사건을 통해 기독교인이 되는 큰 은혜를 누리게 된 겁니다.
어찌됐든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는 22절에서 골고다라 하는 곳에 도착하게 되십니다. 그리고 마가는 예수님을 십자가의 못 박는 장면을 빠르게 전개합니다. 2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거절하십니다. 몰약을 탄 포도주는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께 주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거절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거절하신 것은 고통을 좋아하시기 때문일까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것은 아닙니다. 과연 그랬다면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거절하신 것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그 “고통의 잔”을 다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고통을 몰약을 탄 포도주로 회피하시지 않고 온전히 다 받으시기 위해 이것을 거절하셨습니다. 또한 이것은 14장 25절에서 포도주를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성취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고통의 잔을 온전히 받아마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기 전까지 다시 마시지 않겠다는 말씀의 성취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평생 동안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길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과 의지는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길 바라는 예수님의 의지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24절에서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옷을 나누어 누가 그 옷을 가질지 제비를 뽑습니다. 이것은 시편 22편 18절의 성취입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하나의 전리품으로 생각하여 서로 가지려고 제비를 뽑으려고 했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이 얼마나 지금 비참하고 조롱 당하고 계신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더라도 이것은 시편 말씀의 성취입니다. 심지어 로마 군인들이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채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25절에서 제삼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됩니다. 제삼시는 오늘날 시간으로 오전 9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26절에서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을 씁니다. 이것은 사실 예수님을 진짜 유대인의 왕으로 생각하고 모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고 십자가형을 받게 만든 것이 바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예수님의 주장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로마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당시 죄패에는 사형 선고 받은 사람의 죄를 상세히 기록한 문구를 때로 사람의 목에 묶거나 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그들 앞에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어찌됐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이유는 자신을 “유대인의 왕”으로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을 고발한 이유이며, 로마 군인들에게는 조롱거리입니다. 또한 자신을 왕으로 주장하는 것은 “반역자” 취급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가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황제와 황제가 임명한 왕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하게 된다면 반역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말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음을 말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1장에서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말함으로 그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유대인의 왕이심을 밝혔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말씀의 성취자이셨습니다.
말씀의 성취로 오신 참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도 말씀을 여전히 성취하고 계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29-30절에서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사람들의 조롱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분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 계셨습니다. 특히 이 구절에서 “머리를 흔들며”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아까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가지기 위해 제비 뽑는 것이 시편 22편의 성취라고 했었고, 이번에도 이 22편의 성취입니다. 22편 7절에서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라고 말합니다. 바로 시편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또한 22편 8절에서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라고 말씀하는데, 마가가 이 구절을 직접적으로 인용하진 않지만 마가복음을 읽는 독자들은 22편 7절을 상기시키면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는 예수님께서는 22편 8절처럼 고통당하는 자가 하나님께 구출될 것이라는 전망으로도 조롱당했음을 기억했을 겁니다.
이런 예수님을 향한 조롱과 모욕은 계속 이어집니다. 31절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며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병과 귀신 들린 것을 고쳐주시고 그것들로부터 구원하심으로써 생명을 지키셨지만, 지금 자신의 생명은 지키실 수 없는 모습인 것을 조롱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더 중요한 것은 마가는 예수님이 치유하신 분이시라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 즉 그리스도이심을 32절에서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약속된 구원자, 즉 말씀의 성취자로서 오신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2절에서 “그리스도”는 조롱의 말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조롱의 말이지만, 실상은 예수님께서는 정말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 자체가 그것의 증거임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뿐만 아니라 마가의 중점처럼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보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연구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상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고, 유대인의 왕이시며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님을 반대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대조적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수치를 당하시는 순간 속에서도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심지어 같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조차 예수님을 조롱하는 수치의 극치 속에서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에만 관심있으셨는데,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까? 우리는 사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뜻, 나의 소원이 이루어지길만을 바라는 존재입니다. 하늘의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존재가 아니라 땅의 뜻이 이루어진 것 같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존재입니다. 현대는 “자아 실현”의 시대입니다. 자신의 가치와 자아가 실현되길 바라는 시대입니다. 나를 뽐내고, 내가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시대입니다. 여러분은 ‘카푸어’라는 말을 알고 계십니까? 바로 자동차를 뜻하는 영어 ‘카’와, 가난을 뜻하는 ‘푸어’의 합성어입니다. 카푸어라는 것은 자신의 소득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고급 자동차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고급 자동차를 사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은 높은 소득을 벌어 잘 사는 사람임을 뽐내어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현대는 나의 자아가 실현되길 바라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 말씀은 우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모습과는 정반대로 수치와 모욕이 가득한 모습으로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자 하는 예수님을 통해 나의 자아가 실현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에서 수치와 조롱을 당하신 그리스도 덕분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십자가에서 조차 성취하신 그리스도 덕분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자아가 실현되길 바라는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어떻게보면 우리는 내 주장과 나의 뜻을 꺾지 않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유대인들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수치와 조롱을 당하시고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직분자를 세워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가 어떻게 성취할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분만이 우리를 하나님 말씀의 성취라는 놀라운 역사로 이끄실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세상 속에서 자아실현이 아닌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우리 새순교회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시고, 말씀을 듣게 하심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늘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온통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나의 뜻, 나의 가치가 실현되길 바라는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이런 저희의 모습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위해 대신 수치와 조롱,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기억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에 전심전력하게 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이 온통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차게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유대인의 왕이요, 그리스도가 고백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입니다. 한 주를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주일 예배의 순간까지 함께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을 두고 기도하시고, 각자가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으로 기도하신 후에 자유롭게 돌아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