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s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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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고난

베드로전서 2:21–25 NKRV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우리 자녀들은 이민 사회에서 생각보다 어려운 시간들을 보낸다. 그들은 죄의 온상에서 투쟁하며 부모님 몰래 눈물을 흘린다. 인종과 언어적인 불편함에서 오는 차별의식은 이이들의 성격에 따라 더욱 고통스럽기도 하다. 다름에서 출발하는 공격을 받을 때 이들이 겪는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다.
- 채워지지 않은 기대감 (비즈니스의 성장)
- 예상치못한 이별(직장, 배우자, 자식, 부모, 전쟁)
- 정당하지 않은 비판들 (가족, 사회, 직장, 친구)
- 해결점이 보이지 않는 갈등들(가정, 교회, 직장,국가)
- 비현실적인 비교들(unrealistic comparisons such as comparison with past event)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나니”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은 고난이 우리가 감당해야 을 부르심 중에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가 이 고난을 잘 혜쳐나가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롤 모델로 제시되어졌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당할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모욕을 당할 때, 용서하신 주님의 발자취를 모본으로 삼아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성품이 주님 닮아가며 성숙하기를 원하신다. 그렇게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한 의에 길(2절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기를 원하신다)로 걷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 값을 대속하시고 구원하기 위해 주어졌을 뿐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감내해야 할지 보여주는 표본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고난을 받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시려고, 본보기가 되었다.
고난과 역경은 그리스도화 된 성격과 성향을 드러낸다. 역경은 성품의 덕을 드러내고, 또한 이것의 결핍을 알린다. 시련, 고난, 압박, 스트레스, 협박, 조롱을 당할 때를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을 알게된다.
그리스도의 가장 순수하고 진실된 인격은 가장 혹독한 고난에서 드러났다. 그 순간은 그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그 분의 생애는 그의 순전한 성품을 드러내지만, 그의 죽음은 그의 가장 고상하며 완전하신 인격이 두드러졌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그 분다움이 비추어졌다.
성경이 밝히고 있는 7가지 남기신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순전하시고 진실하신 성품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또한 그 분이 어떻게 고난을 감당하셨는지 보고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 할 수 있다.
1. 고난 가운데서 용서하신 그리스도
누가복음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첫째 예수님이 남기신 성품은 용서하는 마음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자들을 용서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이 마음을 본받으며 살아야 한다.
이사야53:2–4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죄로 인하여 눈이 가려진 인생은 예수님을 우습게 보았고, 외모나 품위나,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계시지 않았으므로 멸시하고 학대하고, 조롱하고, 그 분의 말과 행동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습게 여기고 비방하고 이간질하며 왕이라 조롱하며 죽이는데 힘썼다. 이런 사람들을 예수님은 용서해달라고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성품을 두고 본문 22절“예수님은 죄를 지으신 일이 없고 그 입에는 거짓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사람에게 버림을 받을 때, 아픔을 겪었을 때 우리 주님은 그 사람을 거짓이 없이 용서하심으로 죽음의 길로 걸어 들어가셨다.
‌그 분은 자기를 멸시하고 버려버린 나를 위해 영원한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영원한 죄로부터 살리기 위해 내가 당하는 비참함과 쓰라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하실때도 가장 고상하며 순수함으로 용서해달라고 반응하셨던 분이다.
자기를 적대시하며 인정하지 않는 자들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가장 예수님다운 본보기의 삶이다. 또한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우리의 용서를 통해 다른 죄인들을 구원해 나가기 원하신다. 스데반은 용서하는 삶을 주님으로부터 배웠고, 그가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할 때 용서를 실천함으로써 주님의 고난의 참여하였다.
혹시 아직까지 갈등관계에 있거나 용서 할 수 없는 대상이 있으신가요? 용서하시는 주님의 본보기를 따라 고난에 참여하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2. 고난 가운데서도 죄에 저항하신 그리스도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심)
마태복음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말씀 속에는 머리와 몸이 찢어지는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하는 육신의 고난과 당신의 메시야 되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조롱과 멸시로부터 오는 정신적인 고통이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끊어져야 하는 고난이 그토록 아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죄의 심각성과 그 결과에 대하여 분개해 하시는 것이다. 죄가 가진 속성에 대하여 거부하며 저항하며 죽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
아들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이 말은 가장 비극적이며 가장 고통스러운 단어 중 하나이다. 버림받았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단어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과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던 분임을 암시한다. 즉, 나의 하나님 이라는 표현은 영원한 친밀함을 유지하던 관계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영원하고 변함 없는 관계에 있던 분에게 버림을 받은 고통을 어떻게 설명하라 수 있겠는가? 죄는 이 관계를 분리하고 깨뜨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심정에서 하는 말씀이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표현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온 우주에서 아무도 하나님과 아들을 떼어 놓을 수 없다. 어떤 사람도 분리할 수 없고 사탄과 마귀라 할지라도 두 분을 끊어 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죄는 이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죄는 온 우주에서 가장 치명적인 파멸을 가져다오는 실제라는 것을 배운다. 아버지와 삼위가 하나이시면 영원히 교통하시며, 아버지 안에 계신 그 분이 버림을 받았다. 왜 그런가? 죄는 두 분을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무서운 죄로 인하여 진노를 받아 영원히 단절 되어야 하는 나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예수님 자신이 가졌던 영원하고 변함없는 관계로 맺어 주시기 위해 자신이 끊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님은 내 죄를 위해 죄의 파멸적인 무서움과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난을 기꺼이 겪으셨다. ‌
세상의 어떤 우여곡절, 투쟁, 시련을 통해 겪어야 할 고난이 내가 지은 죄가 가져올 하나님과의 단절과 같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하나님과의 교통을 단절시키는 죄의 영향만큼 심각한 문제는 없다. 예수님은 죄로인해 하나님과 분리되는 깊은 고통을 직접 경험하셨다. 우리 죄가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식이다. 예수님은 죄가 가져오는 분리, 소외, 외로움, 버림, 공허함, 멸망, 황폐함을 경험하시고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죄의 심각한 의미를 이해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죽음 가운데서도 신뢰하신 그리스도 (24절 심판하시는 분에게 자신을 맡기심)
누가복음 23: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 이 말씀은 모든것을 하나님을 믿고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긴다는 의미이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벌레와 같은 피조물에게 우습게 여김과 없이 여김을 받으셨다. 심지어 원수된 죄인들에 의해서 처형을 당해 죽임을 당하는 순간까지 몰리게 되었다. 이런 순간에도 주님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리실 하나님을 믿고 맡겼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셨다. 시편과 구약에 말씀하는 것처럼,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겠지만 곧 다시 살아 날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했다. 우리의 고난도 동일하다.
우리는 우리 생명을 쥐고 계시고, 고난과 죽음과 우리 인생을 그 분의 섭리 안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우리의 롤모델은 고난과 죽음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신 그리스도이다. 이 땅에서 자존심을 챙기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 돈과 눈에 보이는 것들로 울타리로 삼아 어려움을 피해가지만, 성도는 오히려 그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부활과 영원한 삶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고난의 터널을 유유히 걸어간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 맡겨져 있다. 우리는 이 신뢰를 붙잡고 고난과 죽음을 통과 하는 사람들이다. 거룩한 산 제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은 그 분을 믿는 것이다.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의 고난과 죽음 이후의 나타날 일에 대해서 그 분이 알아서 하실 것을 완전히 의존한다는 것이다. 2:23절에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셨고 심판하시는 분에게 자신을 맡기셨다”고 한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셨다. 아버지의 약속을 신뢰하고 자신을 맡기셨다. 내가 받는 억울함이 무엇이든지, 어려움의 크기가 어떠하든지 그 분의 의로운 약속과 심판에 맡기신 그리스도와 같이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자신을 아버지께 맡기심으로 고난을 죄에 저항없이 견디셨고, 무덤으로 걸어가셨으며, 죽음의 지옥을 향하여 돌진하셨다.
너는 나와 낙원에 있을 것이다.
누가복음 23:43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죽음의 문턱에서 까지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우리의 처지를 동정하심 (24절 우리의 죄를 짊어지심)
이제 다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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