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으로 기도하는 교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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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교회(1)
본문 : 행 1:13-14
2020-01-26
(행1:13) 그들이 들어가서 다락방으로 올라가니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와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 시몬과 야고보의 형제 유다가 다 거기 머물더라.
(행1:14) 이들이 다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
지금 읽으신 부분은 초대교회 당시 교회가 처음으로 시작될때 성도들의 모습을 기록한 구절입니다.
이들이 교회를 준비하며 시작한 것이 바로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자세인지 사도행전의 기도장면들을 통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절부터 한번 읽어 나가 보겠습니다.
(행1:1) 오 데오빌로여,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기 시작하신 모든 일에 관하여 내가 작성한 이전 보고서는
(행1:2) 그분께서 친히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님을 통해 명령들을 주신 뒤에 들려 올라가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한 것이라.
(행1:3) 그분께서 수난을 받으신 뒤에 또한 자신이 살아 계심을 절대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그들에게 보여 주시고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을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후 부활하셨고 이땅에서 40일간 우리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시 사신 것을 절대 확실한 많은 증거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절대적으로 확실할 뿐 아니라 증거가 많다는 것입니다.
증인의 숫자도 한 두명이 아닙니다.
(행1:4) 또 그들과 함께 모이사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느니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그 약속하신 것에 대해서는 너희가 내게서 들었나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다시 확인시켜주시는 것입니다.
(행1:5) 참으로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으되 너희는 이제부터 많은 날이 지나지 아니하여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시느니라.
(행1:6) 그러므로 그들이 함께 왔을 때에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 하매
(행1:7)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 때나 그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알 필요가 없는 것을 자꾸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기를 묻는 질문에는 좀까질하신 면이 있으십니다.
너희가 알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지금 너희가 해야 할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면한 명령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에서 마지막 명령이기도하고 중요한 명령을 다시 반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행1:8)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먼저 성령이 임할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복음으로 전하고자하는 열망과 열심이 있는 사람들 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주님께서 기다리라고 하면 자신의 열정이 넘치더라도 자제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행1:9) 이것들을 말씀하신 뒤에 그분께서 그들이 보는 동안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더라.
예수님의 승천은 여러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신 것입니다.
학자들의 주장에 500여명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몇명이라고 특정하기는 어려운것 같습니다.
어쨌든 많은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행1:10) 그분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똑바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보라, 흰옷 입은 두 남자가 그들 곁에 서며
(행1:11)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행1:12) 그때에 그들이 올리벳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도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더라.
(행1:13) 그들이 들어가서 다락방으로 올라가니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와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 시몬과 야고보의 형제 유다가 다 거기 머물더라.
(행1:14) 이들이 다 여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신약교회의 첫 시작이 기도모임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기약없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드려졌을 겁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에는 절차와 순서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열정을 가지고 순서없이 마구 하면 안됩니다.
이들이 지금 하고 있는 모습은 그일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는 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순수한 형태는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형제 자매들과 서로 교감하면서 기도로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세상으로 나가서 혼을 구하기 위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기도로 준비하면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1:15) ¶ (함께한 사람들의 이름의 수가 약 백이십이더라.) 그 무렵에 베드로가 제자들의 한가운데서 일어나 이르되,
(행1:16) 사람들아 형제들아, 예수님을 잡아간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에 대하여 성령님께서 다윗의 입을 통해 미리 말씀하신 이 성경 기록이 반드시 성취될 필요가 있었나니
(행1:17) 이는 그가 우리와 함께 계수되어 이 사역의 한 몫을 맡았기 때문이라.
(행1:18) 이제 이 사람이 불법의 대가로 밭을 산 뒤 거꾸로 떨어져 한가운데가 터졌고 그의 모든 창자가 흘러나왔으므로
(행1:19) 그 일을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어 그 밭을 자기들 고유의 말로 아겔다마라 하니라. 그것은 곧 피 밭이라는 말이라.
(행1:20) 시편 책에 기록된바, 그의 처소를 황폐하게 하시며 아무도 그 안에 거하지 못하게 하소서, 하였고 또, 그의 감독직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나니
(행1:21) 그러므로 주 예수님께서 요한의 침례로부터 시작하여 우리를 떠나 들려 올라가신 바로 그 날까지 우리 가운데서 드나드시던 모든 때에
(행1:22) 우리와 함께 다니던 이 사람들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임명하여 우리와 함께 그분의 부활을 증언할 증인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를 선택하셨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사탄이었습니다.
마태복음27장에서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넘긴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유다를 대신할 한 명의 사도를 선출하자고 제안합니다.
(행1:23) 그들이 둘을 지명하니 곧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 하는 요셉과 맛디아더라.
초대교회 모임에서 그 시작지점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가룟유다의 자리를 누가 대신할 것인지를 결정하려고 하는데
두 사람이 후보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다 동일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뽑는 일은 옳고 그른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과 악을 선택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 두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선택 되더라도 그 선택은 훌륭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이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할까요?
24절에서 이들은 기도를 합니다.
(행1:24) 그들이 기도하며 이르되,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주께서 이 두 사람 중에 누구를 택하셨는지 보여 주사
(행1:25) 그가 이 사역과 사도직을 맡게 하옵소서. 유다는 자기 자신의 처소로 가려고 범법함으로 그 직분에서 떨어져 나갔나이다, 하고
(행1:26)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맛디아 위에 떨어지니라.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계수되니라.
지금 초대교회 당시에 지도자격인 사도를 선택하는데 그들이 취한 방법은 기도를 하고 난 뒤에 제비를 뽑은 것입니다.
누가 되더라도 좋은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에 사도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은 사람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주사위를 던져서 객관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 방법을 교리로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들이 취한 방법에 너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너무 소홀히 대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두 가지 옳바른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택해야 하는 두 개가 다 좋은 것이고 다 유익한 것이고 그 어느 것도 버리기 아까운 상황이라면 그 두 개중에 하나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그것은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이면 걱정만 한 가득하면서 머리에 쥐가 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공부하고 선교에 관심을 갖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보죠.
선교를 하러 캄보디아로 가야할 지 라오스로 가야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캄보디아로 가야할까요?
이렇게 여러 선택지가 있을때 어디를 가야할지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아마 중요한 선택일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아시나요?
(막16:1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여러분이 캄보디아로 가면 틀린 것이고 아프리카로가면 옳은 것이라는 식의 결정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옳은 일 입니다.
여러가지 옳은 일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데 불필요한 시간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주님을 신뢰하고 어디를 가라고 할지라도 주님이 주신 결정에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선택은 맛디아를 가르쳤고 이제 12명의 사도를 채우는 일은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 결과에 승복하고 이제 다음 일을 하는 것입니다.
14절에 “…함께 한마음이 되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더라.”
2장 1절에 “…그들이 다 한마음이 되어 한 곳에 있더라.”
이들은 충분히 자격있는 한 사람이 선택에서 제외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한마음이 되어 그들의 공동체를 해치지 않고 하나가 되어 기도하고 주님의 약속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혹시 교회에서 나를 뽑아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하거나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선택되지 않았다고 상처받고 분열하는 마음을 갖는 경우는 없으신가요?
이들이 기도하고 주님께 결정을 맡기고 그 결정에 따르는 것은 우리가 교훈적인 가르침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오순절날 성령님이 강림하고 베드로가 일어나 복음을 전하자 삼첨명의 혼이 더해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던 중 태어날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서 고쳐주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 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4장에 가면
(행4:1) 그들(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의 대장과 사두개인들이 그들에게 이르러서는
(행4:2) 그들이 백성을 가르친 것과 또 예수님을 통해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을 선포한 것으로 인해 근심하여
(행4:3) 그들에게 손을 대었으나 이제 날이 저물었으므로 그들을 다음 날까지 가두었더라.
당시 제사장들과 성전의 대장과 사두개인들이 이들이 복음 선포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게 된 것에 사람들이 놀라고 따르는 것에 못마땅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붙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15절에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모여서 논의를 합니다.
(행4:15) 저들이 그들에게 공회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명령하고 자기들끼리 의논하여
그리고 17절에서 그들의 논의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말합니다.
(행4:17) 다만 그 일이 백성 가운데 더 널리 퍼지지 못하도록 우리가 그들을 엄히 위협하여 그들이 이제부터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자, 하고
18절에서는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이상 말하지 말라고 협박을 한 것입니다.
(행4:18) 그들을 불러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결코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명령하니라.
그런데 21절을 보면 이들은 더욱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더 크게 협박을 하고 이들을 놓아 줍니다.
(행4:21)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이루어진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므로 그들이 백성으로 인해 그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한 채 그들을 더 위협하고 가게 하니
사도행전에서 이들에게 가해지는 협박과 위협이 어떠했을까요?
바리새인들과 지도자들의 증오와 미움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8장에서는 스테반을 죽이는 살인을 저지릅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는 야고보가 머리가 잘립니다.
바리새인들의 질투는 점점 커져서 교회 성도들을 마구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위협은 점점 심각해 지고 있는 것입니다.
23절부터 보겠습니다.
(행4:23) ¶ 그들이 풀려나매 자기 동료들에게 가서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자기들에게 말한 모든 것을 전하니
(행4:24) 그들이 그것을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주여, 주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요,
이들은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위협이 다가오자 이들이 처음 취한 행동은 이 문제를 주님께 가져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 방법을 취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까요?
어려움 중에서도 우리의 삶이 멋지게 이어지지 않을까요?
지금 사도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와 똑같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종류의 문제이던,
우리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지체하지 말고 그 문제를 하나님의 왕좌에 가져가서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첫번째 단계를 바로 잡을 수 있다면,
다음 단계는 더 쉬워질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기도로 주님을 찾아가는 것이 첫번째 순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전문가를 찾는 일을 먼저하곤 합니다.
주님께 조언을 구하는 것을 먼저하면 어떨까요?
여러분이 문제가 생겨서 교회에 문제를 올려 놓고 기도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 목사님이 기도 제목을 가지고 같이 기도하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필요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여러분 자신이 직접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직접 들어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중요한 것을 잃어 버렸을때
찾은 곳을 또 찾고 찾은 곳을 또찾아도 도대체 찾을 수 없을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잃어 버린 것을 찾아야 한다는 긴장감에 압박감에 사로 잡히면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뱅뱅 돌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긴장의 고리가 풀릴 쯤 생각지 못한 곳이 생각이 나고
그러다 지난 번에 너무도 잘 보관해 놓은 곳이 생각이 납니다.
기도도 마찬 가지 입니다.
자신이 당면한 문제만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의 생각이 닫혀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찾으면 우리는 저 높은 곳에서 모든 문제를 뛰어넘는 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머리에 쥐가 날 일이 없어집니다.
더 이상 등골이 싸늘해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이 답을 주실 것을 믿고 가면 그 답이 하늘에 있다해도 그 답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해결방법이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적용하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24절부터 기도내용을 보겠습니다.
(행4:24) 그들이 그것을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주여, 주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요,
(행4:25) 또 주의 종 다윗의 입을 통해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이교도들이 격노하며 백성이 헛된 일들을 꾀하는가?
(행4:26) 땅의 왕들이 일어서며 치리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도다, 하신 분이로소이다.
(행4:27) 진실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함께 모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님을 대적하며
(행4:28) 무엇이든지 주의 손과 주의 계획이 미리 작정하사 이루고자 하신 것을 다 행하려 하였나이다.
이들이 지금 모여서 주님을 믿는 자들을 협박하고 괴롭히는 일은 이미 주님의 계획안에 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4:29) 주여, 이제 그들의 위협을 보시고 또 주의 종들이 전적으로 담대히 주의 말씀을 말하게 하시며
(행4:30) 주의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고 또 표적들과 이적들이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허락하옵소서, 하더라.
교회 성도들은 지금 예수님과 자신들을 대적하고 있는 사람들을 불로 벌을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지금 이들은 자신들을 지지할 수 있는 정부를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핍박하는 지금의 로마 정부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믿는 정부를 세워주시기 원한다고 기도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로 정부를 구성하면 핍박이 없을까요?
종교적인 핍박은 정치적인 핍박보다 더 잔인하다는 것을 우리 역사를 통해서 보지 않으셨나요?
자살 폭탄테러처럼 종교를 가장한 폭력은 자비가 없습니다.
참수형을 가하고 ….
참 기독교인이 다스리면… 괜찮을까요?
그걸 누가 알 수 있나요?
이들의 기도는
위협이 있는 것을 보시고 우리를 더욱 담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땅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행1:8)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유대땅에 그리고 사마리아 땅으로 갑니다.
빌립은 유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제 그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더이상 유대인도 이방인도 아닌 교회안에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첫번째 출생으로 얻은 사회적 지위는 다 버리게 된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복음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인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사람들 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행8:5) 그때에 빌립이 사마리아 시로 내려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매
(행8:6) 빌립이 행한 기적들을 사람들이 듣고 보며 한마음으로 그가 말한 그것들에 주의를 기울였으니
(행8:7) 이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부정한 영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그들에게서 나갔고 또 마비 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과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더라.
(행8:8) 그 도시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8:9) 그러나 시몬이라 하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전부터 바로 그 도시에서 마법을 이용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홀리며 자기를 어떤 대단한 자로 내세우매
(행8:10)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다 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하나님의 큰 권능이라, 하더라.
(행8:11) 그가 오랫동안 마법으로 그들을 홀렸으므로 그들이 그를 존중히 여기더라.
(행8:12) 그러나 빌립이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을 그들이 믿고 남자들과 여자들이 다 침례를 받으매
(행8:13) 그때에 시몬 자신도 믿고 침례를 받은 뒤 빌립과 함께 머물며 그 이루어진 기적들과 표적들을 보고 놀라니라.
(행8:14) 이제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내매
(행8:15)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여 그들이 성령님을 받게 하니
(행8:16) (이는 아직 그분께서 그들 중의 아무에게도 내려오지 아니하셨고 그들이 다만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기 때문이더라.)
(행8:17) 그때에 그들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그들이 성령님을 받으니라.
(행8:18)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님이 주어지는 것을 시몬이 보고 그들에게 돈을 주며
(행8: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내가 누구에게든지 안수하면 그가 성령님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거늘
(행8:20) 베드로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줄로 생각하였은즉 네 돈과 함께 망할지어다.
(행8:21) 하나님의 눈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므로 이 일에는 네가 차지할 몫도 없고 나눌 것도 없느니라.
(행8:22) 그러므로 너의 이 사악함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네 마음의 생각이 혹시 용서될 수도 있으리라.
(행8:23) 내가 보니 네가 쓴맛의 쓸개 속에 있으며 불법에 매여 있도다, 하매
(행8:24) 그때에 시몬이 응답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나를 위해 주께 기도하여 당신들이 말한 이것들 중의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시몬에 대해서 그가 마법사로서 제대로 구원받지 못했다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그의 마음 안에 쓴맛의 쓸개 속에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구원받은 후에 마음 속에 쓴 뿌리를 가져본 적이 없으신가요?
마음 속에 쓴뿌리를 가지고 있는 성도를 만난적이 없으신가요?
여러분들은 구원받은 후에 불법에 가담한 적이 없으신가요?
시몬이 불법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그를 구원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13절을 보니 그는 믿었고 침례를 받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외에 다른 설명이 없는 것으로 봐서 시몬은 개인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물론 시몬은 잘못된 생객을 했습니다.
시몬은 범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동안 정말 잘못된 생각을 해본적이 없으신가요?
일주일 동안 생각해 내기 어렵다면 한달을 거슬러 올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베드로가 얼마나 예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과거 과오를 생각해 보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을 심정 이었을 겁니다.
자신의 과오가 다른 사람의 과오를 용납해도 된다는 기준이 될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시몬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해라 그리고 회개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수 있지 않겠느냐!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우리가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악한 생각이나 다른 형제자매들에 대한 나쁜 감정이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용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여러분의 마음에는 불법이 자리하고 있을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마음을 주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롭지 못한 것을 구하고 거친 말로 다른 지체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첫번째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이후에 여러분의 구원이 보장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법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일상의 죄를 주님께 용서를 구하면 여러분은 주님의 눈 앞에서 깨끗해 지는 것이고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주님께 그 죄가 나에게 계수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를 주님께 구하는 것이 그렇게 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은 그렇게 해야 교회 안에서 주님과의 교제가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범한 죄가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올바른 관계와 교제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