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를 받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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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침례를 받은 이유
본문말씀: 마 3:14-16
2020-02-23
(마3:14) 요한이 그분을 말리며 이르되,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주께서 내게로 오시나이까? 하매
(마3:15)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이르시되, 지금은 이렇게 되도록 허락하라.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그분을 허락하더라.
(마3:16)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바로 물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렸으며 또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내려앉는 것을 그분께서 보시더라.
(마3:17)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성경에 등장하는 침례는 일곱가지 침례가 있습니다.
물침례를 중심으로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잘못된 의견
교회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 물침례를 받아야 한다.
침례든 세례든 뭔가 물로 종교적인 행사를 해야만 교회안에 들어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과 다른 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 물침례가 구원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성경은 물침례에 대해서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물침례는 여러분을 구원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 만이 구원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 유아세례가 구원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가톨릭에서는 유아에게 세례를 주면 그 아기가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가톨릭에서 나온 장로교나 유사 교단들은 유아세례를 구원의 한 방편으로 사용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와 조금도 유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는데
이들은 어린 아이에게 침례나 세례를 줌으로써 그 아이가 교회의 지체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잘못된 교리를 받아들여서 새로운 출생을 물속에서 침례를 받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성경적인 교회가 취해야 할 구원은 회개와 믿음과 자백 그리고 물침례를 받는 것이 순서입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물침례가 구원의 요소라고 믿고 계신 분이 계신다면
여러분은 지옥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계신 것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만약 물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1%만이라도 믿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원자로 100%로 믿고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만약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분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 한 분 만을 온전히 믿고 계시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 구원을 받았는지를 물어보면 이들은 자신들이 언제 물침례를 받았는지를 말합니다.
구원간증을 하라고 하면 자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느 교회에서 물침례를 받았다고 간증을 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런 간증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의 구원에 아주 심각한 의심을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목사가 여러분은 언제 물속에 집어 넣었는지를 구원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왜 물침례를 받아야 하고 어떻게 물침례를 받아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장 13절 오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마3:13) ¶ 그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르단으로 요한에게 오사 그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시거늘
이 말씀을 통해서 명쾌하게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침례는 결코 영생을 얻기위한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침례는 우리의 죄를 제거하는 조건도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침례는 결코 새로운 출생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물침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3:14) 요한이 그분을 말리며 이르되, 내가 주께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주께서 내게로 오시나이까? 하매
침례인 요한의 반응은 아주 상식적인 반응입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 크시고 위대하신 분이신데 보잘것 없는 자신이 침례를 준다는 것에 뒷걸음질 쳤을 겁니다.
(마3:15)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이르시되, 지금은 이렇게 되도록 허락하라. 이렇게 하여 모든 의를 성취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그분을 허락하더라.
예수님의 대답은 네가 나에게 침례를 주는 것은 옳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온 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옳은 일이라고 하면 옳은 일 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면 순종하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침례인 요한은 아주 훌륭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마3:16)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바로 물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렸으며 또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내려앉는 것을 그분께서 보시더라.
16절은 물침례의 올바른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침례는 물 속에 완전히 들어갔다가 물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머리에 물을 뿌리는 방식이 아닙니다.
머리에 바가지로 물을 붓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는 방법은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것입니다.
물이 들어있는 조그만 돌그룻에서 사람이 들어갔다가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강물에 들어가면 들어갔다가 위로 나올 수 있습니다.
(마3:17)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 몇구절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을 다시 정리하면 네 가지 입니다.
1. 물침례는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예수님은 구원받을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2. 물침례는 물속에 잠기는 방식으로 하는 것(예수님은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3. 예수님께서 물침례를 받은 이유는 이것이 합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의 침례로 아버지께서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럼 왜 우리가 물침례를 받아야 하는지를 정리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은 후에 물에 잠기는 방식으로 침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따라야 할 본보기를 보여 주셨기 때문이고
물침례를 받는 것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본보기를 따르는 것은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침례를 받아야 하는 문제는 우리가 이미 받은 영원한 생명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쁘게하는 일을 할 것인지 말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침례를 받는다면
그 방식이 물을 뿌리는 방식인지 아닌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저 종교적인 의미로 한다면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최종권위로 취한다면 성경적인 방법으로 올바른 방식을 취해서 침례를 받는 것은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 같은 방식으로 침례를 행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침례인 요한에게 제일 처음 침례를 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이미 요한은 많은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3장 1절로 가보겠습니다.
(마3:1) 그 무렵에 침례자 요한이 와서 유대의 광야에서 선포하여
(마3:2) 이르되, 너희는 회개하라.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3:3) 이 사람은 곧 주께서 대언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신 자니라. 이르시되,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기를,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분의 행로들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3장 3절은
성령님께서 침례인 요한을 이사야 40장의 예언의 성취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누군가 먼저 왔어야 합니다.
메시야보다 앞선자로써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침례인 요한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침례인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메시아가 나타나실 것이니 회개하라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것이니 회개하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아주 명확하게 그들 자신을 준비하라고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3:4) 바로 그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으며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 꿀이더라.
(마3: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르단 사방의 온 지역이 그에게 나가
(마3:6) 자기 죄들을 자백하며 요르단 속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더라.
침례인 요한이 하고 있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약에 예언된 그리고 약속되어진 메시아가 지금 이곳에 와 계신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언급된 이 땅에 태어날 독생자 아들이 이제 등장하려고 한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분을 맞이 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 자신을 정결케 해야하고 올바른 삶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여기 이 땅에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침례를 받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에 와 계신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1:19) ¶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그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하고 물을 때에 그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1:20) 그가 시인하고 부인하지 아니하며 시인하여,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매
(요1:21) 그들이 또 그에게 묻되, 그러면 무엇이냐? 네가 엘리야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매 또 묻되, 그러면 네가 그 대언자냐? 하니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하거늘
(요1:22) 이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우리가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 자신을 가리켜 누구라고 하느냐? 하니
(요1:23) 그가 이르되, 나는 대언자 이사야가 말한 것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 하니라.
(요1: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이더라.
(요1:25) 그들이 또 그에게 물으며 그에게 이르되, 그러면 네가 그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대언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침례를 주느냐? 하매
(요1:26)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분이 너희 가운데 서 계시니
(요1:27) 곧 내 뒤에 오시지만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라.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노라, 하더라.
(요1:28) 이 일들은 요한이 침례를 주던 곳인 요르단 건너편 베다바라에서 일어났더라.
(요1:29) ¶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침례인 요한은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요르단 강을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물을 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어린양을 위해서 앞서 보내진 사람이 침례인 요한이었습니다.
(요1:30) 내가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께서 나보다 앞서신 것은 그분께서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라, 하며 언급한 분이 곧 이분이라.
침례인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럼 어떻게 요한보다 뒤에 태어난 예수님이 자신보다 앞설 수 있다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이 땅에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던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셨지만 그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계셨던 분이십니다.
(요1:31)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하였으나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드러나야 하므로 내가 와서 물로 침례를 주노라, 하니라.
31절의 내용이 25절에서 네가 왜 침례를 주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것입니다.
메시아가 이스라엘에게 드러나야 하므로 침례를 준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침례인 요한이 침례를 준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여기에 오셨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고 그것이 그의 사역의 일부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이 침례를 받는 것도 같은 이유인 것입니다.
침례인 요한이 침례를 주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여기에 계신다는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침례를 통해 세상에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 즉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 후
예수님께서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명령을 주시는 장면으로 가보겠습니다.
(마28:16) ¶ 그 뒤에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정해 주신 산에 들어가
(마28:17) 그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였으나 의심하는 자들도 있더라.
(마28: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오셔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이 내게 주어졌느니라.
(마28:19)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마28:20)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침례의 목적이 무엇인지 답을 한다면 그것은 긍극적으로 순종을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침례를 주는 것일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그것을 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해답은 예수님께서 침례를 주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침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올바른 자세는 항상 주님이 하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은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뭐하고 말씀하셨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더라고 예수님의 말씀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할때 이름이 영어로도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 다른 이름을 단수로 받고 있다는 것은 이 세 가지 이름이 한 분을 가르키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행2:38)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Then Peter said unto them,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remission of sins, and ye sha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Ghost.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침례는 오늘 날 우리가 받는 침례와는 진행 순서가 조금 다르긴 합니다.
베드로가 지금 유대인들을 향해서 베푼 침례는 침례인 요한의 침례와도 다르고 오늘날 우리가 받는 물침례와도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면 물침례를 받기 전에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행2:38의 죄사함은 침례를 조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침례는 죄사함을 받은 것에대한 침례를 받으라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행2:41) ¶ 그때에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 자들이 침례를 받으매 바로 그 날에 삼천 혼 가량이 그들에게 더해지니라.
여기서 침례를 받고 더해진 혼들은 영유아가 아닙니다.
삼천 혼이 가량이 더해졌다는 말씀이 있는데, 구약에 같은 숫자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흥미로워서 한 번 확인만 해보겠습니다.
(출32:28)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그 날 백성 중에서 삼천 명가량이 죽으니라.
다음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안에 복음을 선포한 내용입니다.
(행10:34) ¶ 이에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진실로 하나님은 사람들의 외모를 중시하지 아니하시고
(행10:35) 모든 민족 중에서 자신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아 주시는 줄을 깨달았도다.
34절부터 43절까지 베드로가 전한 복음의 메세지 입니다. 빠르게 읽어 보겠습니다.
(행10:43) 그분에 대하여 모든 대언자들도 증언하되,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들의 사면을 받으리라, 하느니라.
(행10:44) ¶ 베드로가 아직 이 말들을 할 때에 성령님께서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 위에 임하시매
(행10:45)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로서 믿은 자들 곧 베드로와 함께 온 자들이 이방인들 위에도 성령님을 선물로 부어 주시는 것으로 인해 다 놀라니
(행10:46) 이는 이방인들이 타언어들로 말하며 하나님을 크게 높이는 것을 그들이 들었기 때문이더라. 이에 베드로가 응답하되,
(행10:47) 이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님을 받았으니 누가 물을 금하여 이들이 침례를 받지 못하게 하겠느냐? 하고
(행10:48) 그들에게 명령하여 주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게 하니라. 그때에 그들이 그에게 며칠 동안 머물 것을 청하니라.
복음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그 뒤에는 침례를 받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빌립과 이디오피아 내시
(행8:26)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 남쪽으로 가서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 하였는데 그곳은 사막이니라.
(행8:27) 그가 일어나 가는데, 보라, 에티오피아 사람 곧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여왕 간다게 밑에서 그녀의 모든 국고를 맡아 큰 권세를 가진 내시가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행8:28) 돌아가면서 자기 병거에 앉아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행8:29) 그때에 성령께서 빌립에게 이르시되, 가까이 가서 이 병거에 합류하라, 하시거늘
지금의 신약성도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성령님의 계시가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기록된 성경을 주셨기 때문에 성령님이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음성이 있기 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특별한 경우에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여서 뭔가 더 특별한 방법으로 인도해 주시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도 이디오피아 내시가 이야사서 53장의 글을 읽고 있는 상황에서 빌립에게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행8:30) 빌립이 거기로 내시에게로 달려가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이르되, 그대가 읽는 것을 깨닫느냐? 하매
(행8:31) 내시가 이르되, 누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으면 어찌 내가 깨달을 수 있으리요? 하고 빌립이 올라와 자기와 같이 앉을 것을 청하니라.
(행8:32) 그가 읽은 성경 기록은 이 부분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장으로 가는 양같이 끌려갔으며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양같이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행8:33) 그가 굴욕을 당하며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밝히 드러내리요? 이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을 당하였기 때문이로다, 하였더라.
(행8:34) 내시가 빌립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원하노니 대언자는 누구를 가리키며 이것을 말하느냐? 자기를 가리키느냐, 아니면 어떤 다른 사람을 가리키느냐? 하매
(행8:35) 이에 빌립이 입을 열어 바로 그 성경 기록에서부터(구약성경)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님을 선포하니라.
(행8:36) 그들이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어떤 물에 이르매 내시가 이르되, 보라, 여기에 물이 있으니 무엇이 내가 침례 받는 것을 방해하리요? 하매
(행8:37)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니라.
여러분이 킹제임스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지금 읽은 37절의 말씀은 읽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없음)
37절의 말씀은 결코 빠질 수 없는 구절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온마음을 다해서 믿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만 믿는 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마음을 다해서 100%의 믿음을 가질때 구원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온전히 예수그리스도를 향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믿고 침례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도 믿고 침례도 믿는 다면 그것은 구원의 방법이 아닙니다.
언제 구원받으셨는지를 묻는 질문에 언제 물침례를 받는지를 말한다면
그것은 구원받은 증거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물침례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행하신 십자가의 길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행8:38) 그가 명령하여 병거를 멈추게 한 뒤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속으로 내려가니 그가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
(행8:39) 그들이 물속에서 나와 올라올 때에 주의 영께서 빌립을 채어 가시므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더라. 내시는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가되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방식으로 침례를 주고 있습니다.
세수대야 같은 작은 크기의 물그릇에서 침례를 주는 것은 힘든일입니다.
충분한 양의 물이 있어야 물속으로 내려갔다가 올라 올 수 있는 것입니다.
(행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는 동안 바울이 위 지방들을 두루 다니고 에베소에 이르러 어떤 제자들을 만나
(행19:2)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믿은 이래로 성령님을 받은 적이 있느냐? 하니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성령님이 계신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노라, 하거늘
(행19:3)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요한의 침례라, 하매
요한의 침례를 예수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메시아로 오시는 것을 준비하는 침례입니다.
(행19:4) 이에 바울이 이르되, 참으로 요한이 회개의 침례로 침례를 주며 백성에게 말하여 그들이 자기 뒤에 오실 분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느니라, 하거늘
(행19:5)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라.
바울이 에베소 지역에 왔을때 요한의 침례는 받았지만 아직 이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알았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 성령님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이 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그들에게 침례를 다시 베풀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나는 이미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다시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면 그것을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왜 침례교회라는 말이 등장했는지 아시나요?
성경의 내용이 침례가 중요한 명령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침례교회는 침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침례라는 것은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규정하게 만드는 절차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기 전에 침례를 받았다면..
군대에서 빵먹으러 침례교회에가서 강제로 침례를 받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침례를 받았다면,
구원받은 이후에는 다시 침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에 순종하는 절차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받은 침례는 무효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유효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원받기 전에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은 성경의 침례가 아닙니다.
(롬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우리가 죄 가운데 거하겠느냐?
(롬6:2)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더 살리요?
(롬6:3)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가 다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3절은 물과는 관계없는 침례입니다.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할때 여러분이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주신 것입니다.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 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Therefore we are buried with him by baptism into death:
(롬6:5)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
For if we have been planted together in the likeness of his death,
(롬6:6) 우리가 이것을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이제부터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롬6:7) 죽은 자는 죄로부터 해방되었느니라.
우리기 침례의 목적에 대해 말하기 전에
침례가 어떤 것과 비교되고 있는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4절에 우리가 그분과 함께 침례로 묻혔다고 합니다.
5절에서는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다고 합니다.
누군가 묻으려 한다면 깊은 구덩이를 파고 흙으로 두텁게 묻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를 묻을때 관 위에 흙가루를 흩으듯이 뿌리고 묻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침례를 받을때는 온전히 물로 덮여야 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때 땅위에 그냥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구멍을 파서 일정깊이로 씨를 묻어줘야 합니다.
우리가 침례를 가르치거나 침례에대한 형식을 가르칠때 우리가 중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침례는 우리가 묻혀서 죽는 것과 다시 사는 것에 상징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물속에 깊숙히 잠겨야 하고 다시 물밖으로 나와야 하는지를 올바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무덤속으로 묻히셨다가 무덤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침례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여주는 본보기 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복음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그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옛 삶을 죽이고 묻으신 후에
우리가 물속에서 다시 나올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시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침례를 받을때 과거의 내가 죽고 죄에 대해서 자유로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간증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침례를 받은 후에 여러분의 삶이 달라지셨나요?
여러분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여러사람 앞에서 선언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성령님에 의해서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을 가르치는 교회지도자의 도움으로 물속으로 가서 물침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순종해야 하고 그분이 보여주는 본을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물침례를 다시 생각해 보면 여러분이 물침례를 받을때 여러분은 물속으로 집어 넣게 됩니다.
성령침례는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집어 넣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예수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넣을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여러분 안에 넣으신 것입니다. 그것에 여러분이 마시게 된 성령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갔을때 여러분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