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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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
본문: 잠 1:7, 잠 9:10
2020-02-09
(잠1:7) ¶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시작이거늘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9:10)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요, 거룩한 것들을 아는 것이 명철이니
잠언은 광범위하게 지혜, 지식, 명철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는 책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지혜롭고 싶다면,
명철을 얻고 싶다면, 지식을 얻고 싶다면,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일관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뿐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도 주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개념은 점점 무시당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렇게 인기 있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을 모으기 위해서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표현만이 만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자주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삼상12:24)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얼마나 큰일들을 행하셨는지 깊이 생각하여 오직 그분을 두려워하며 너희 마음을 다해 진리 안에서 그분을 섬기라.
“오직” 주님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주님도 두려워하고 사람도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수24:14) ¶ 그러므로 이제 주를 두려워하며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그분을 섬기라. 너희 조상들이 강 저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다른 신들을 제거하고 너희는 주를 섬기라.
이집트 땅에서는 이집트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을 경외해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잠3:7) ¶ 네 눈에 지혜롭게 되지 말지어다. 주를 두려워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전12:13) ¶ 우리가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온전한 의무이니라.
이 구절은 구원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의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를 두려워하라는 명령에 귀기울이고 따르면 얻게 되는 많은 유익이 있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을 두려워하면 여러분의 삶에 좋은 열매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112:1)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주를 두려워하며 그분의 명령들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를 두려워하면 여러분의 삶이 축복으로 가득채워진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을 더욱 복된 방향으로 이끌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런 말씀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오히려 조롱한다면
주님이 우리에게 넘치게 주고 싶은 복의 원천에서 자신의 삶이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올바로 바라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전8:12) ¶ 비록 죄인이 백 번 악을 행하고 그의 날들이 길게 된다 할지라도 내가 확실히 아노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 곧 그분 앞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은 잘되리라.
죄인들이 죄를 짓고도 빨리 죽지않고 오래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가 진짜 잘되는 길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34:9) 오 주의 성도들아, 너희는 그분을 두려워하라.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우리가 주님을 두려워만 한다면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더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잠1:7 지식을 얻는 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잠9:10 지혜를 얻는 길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잠14:26 강한 확신을 얻는 길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잠14:26) 주의 두려움 속에 강한 확신이 있나니 그분의 자녀들에게는 피난처가 있으리라.
(잠14:27) 주를 두려워하는 것은 생명 샘이라 사망의 올무들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생명의 샘
사망의 올무에 걸려들지 않는 방법은 주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죽는 길인지 모르고 걸려드는 것입니다.
(잠10:27)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사람의 날들을 길게 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햇수는 짧아지리로다.
사람의 날들을 길게 합니다. 오래 살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본 생명이 육신적인 생명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19:23) 주를 두려워함이 생명에 이르게 하나니 그것을 지닌 자는 흡족히 지내고 재앙으로 징벌을 받지 아니하리라.
주님을 두려워하면 만족함을 줍니다. 만족한 사람들은 뭔가 더 필요할것 같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에게 육신적 부족함이 느껴지면 탐심이 발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족하면 누가 뭐 더 준다고 꼬셔도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잠22:4) 겸손함과 주를 두려워함으로 말미암아 재물과 명예와 생명이 있느니라.
재물 명예 생명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주를 두려워함과 겸소함이라고 하십니다.
지금 열거된 이 모든 것이 주를 두려워한 결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재물 명예 생명 모든 사람이 이것을 갖기 위해서 힘들게 공부도 하고 일도하는 것일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이 모든 것이 우리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갖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축복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그 모든 축복의 길을 막는 것은 우리 자신이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서 이렇게 많은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 대해서 도대체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알고 싶은 것은 당연한 궁금증 일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쉽게 이해될 듯한 표현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 건가?
어떤 마음이 드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그 개념을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스스로에게 애매해 지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정의를 찾아가 보겠습니다.
(시33:8) 온 땅은 주를 두려워하고 세상의 모든 거주민은 그분을 두려워하며 설지어다.
(시89:7) 하나님은 성도들의 집회에서 크게 두려워할 분이시며 그분 주위에 있는 모든 자가 존경할 분이시니이다.
(엡5:2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복종하라.
누군가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그분에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엡5:22)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하나님은 아내들이 자신의 남편에게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엡5: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 각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듯 개별적으로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주의하여 자기 남편을 존경할지니라.
Nevertheless let every one of you in particular so love his wife even as himself; and the wife see that she reverence her husband.
두려워 한다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서로 배척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존경하는 마음과 같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혼한 부부의 관계는 서로 사랑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5장에서 아내에게 남편에대한 마음을 동일한 영어 단어인 “reverence”존경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존경이라는 것은 사랑과 더블어 가져야 하는 마음 중에 하나 이고,
복종의 의미이고, 남편이 가져야 하는 권위를 인정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존경(reverence)은 사랑이 제거된 상태가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존경은 결혼관계에서 함께 가져야할 마음입니다.
지금 언급한 내용은 주님을 향한 적절한 관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을 두려워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이런 존경의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설명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는 가장 깊은 사랑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이 자녀의 마음과 밀접하게 교감하면서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자녀가 자신의 부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사랑이 밀접하다고 해서 격식을 무너뜨리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부모를 올바로 존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존경의 마음이 존재해야하는 것 입니다.
그것이 자녀들이 부모에게 갖어야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런것이 우리가 주님께 가져야하는 두려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신앙이 좋은 부모밑에서 좋은 양육을 빋아서 어른이 되었다면 두려움이 가져오는 유익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성경대로 믿는 부모님을 두고 성장한 분이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믿음으로 가지고 가정에서 실전적인 훈련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부모님에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에대한 두려움때문에
악한 일에 끼어들기 힘든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모님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에대한 두려움은 자녀들의 성장에 아주 건강한 생각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 자녀는 그런 두려움으로부터 많은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을 가진 자녀들이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런 부모와 자녀의 관계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더 크게 확장해 보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두고 있고
교회에 속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두고 있는 관계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그리고 창조주 아버지를 이런 두려움으로 존경하고 섬긴다면 얼마나 더 큰 유익이 우리에게 있을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주님이 우리의 친구로 가까이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형제로 가까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에대해서 존경하는 마음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께 접근하는 방법에 존경하는 마음을 함께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 자세를 가져야 여러분이 교회에 올때
가능한 좋은 옷을 입고 오려고 노력하게 되고 가능한 정숙한 옷차림을 하고 오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바로 그분에대한 존경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가 멋진 옷을 입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비싼 정장을 꼭 입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멋진 옷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교회라는 곳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교제하는 장소라는 것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요한 것이고 그분은 그렇게 존중받을 자격이 있으신 분입니다.
여러분이 야구경기장이나 축구경기장에 오신것이 아니라면
교회에 올때는 그런 곳과는 다른 마음자세로 오셔야 하는 곳입니다.
교회에 오는 우리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거룩하고 경건한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그분께 더 존경의 자세를 보여드려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중요한 분이시고 그런 존중을 보여드려야 마땅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대하셔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면에서 주님을 너무 가볍게 쉽게 접근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조차 그분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대하는데
소홀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분을 두려운 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인식이 많이 부족한 분들도 많습니다.
하나님께 거짓말하고 범죄하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목사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분은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시111:9)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구속함을 보내시며 자신의 언약을 영원히 명령하셨으니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지존하시도다(reverend)
이 표현은 하나님께만 사용 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선교사나 목사와 같은 사람들에게 사용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경홀히 여기고 아무렇게나 입에서 내 뱉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여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렘5:22)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영원한 법령으로 모래를 배치하여 바다의 경계로 삼아 바다가 그것을 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바다의 물결이 일어도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큰소리를 질러도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렘5:23) 그러나 이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렘5:24) 또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제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주 우리 하나님을 이제 우리가 두려워하자. 그분께서 정해진 수확 주간을 우리를 위하여 남기시는도다, 하지도 아니하느니라.
(렘5:25) ¶ 너희 불법들이 이런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들이 좋은 것들을 막아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지금 읽은 네 구절은 하나님이 현존하는 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은 창조에서 드러났던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결과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때에따라 수확할 수 있도록 비를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선하심을 안다면,
우리의 반응은 그분 앞에서 떨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그분 앞에서 떨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TV를 본다고 알 수 없습니다.
사회생활 속에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상상력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은 온전하게 알 수 있는 곳은 바로 성경이 유일한 장소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열어서 창세기 1장부터 읽기 시작하면 6장을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암을 보시고 지구상의 인간을 홍수로 멸망시키는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그분이 여러분이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이십니다.
19장을 넘어가면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심판받는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 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그분 앞에서 두렵고 떨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분은 그런 하나님은 그저 구약의 하나님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은 자신은 변하지 않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죄에 대해서 얼마나 심각하게 대하는 분이신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두려워하길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확실히 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주님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분 앞에서 떨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위대하신 분이시고 그분은 권능이 있는 분이시고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그분은 의로우신 분이시고 그분은 죄를 심판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벧후3:9)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갈6:7)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또한 그것을 거두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조롱당하는 하나님을 섬시기겠습니까?
하나님은 심지않았는데 거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이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분을 존중하셔야 합니다.
(레19:14) ¶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고 눈먼 자 앞에 걸림돌을 놓지 말며 오직 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나는 주니라.
귀먹은 사람에게 저주하면 그는 들을 수 없습니다.
눈먼자 앞에 걸림돌을 놓으면 그는 누가 그렇게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삶은 그분이 지금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다 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히4:13)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시44:21) 하나님께서 이 일을 찾아내지 못하시리요? 그분은 마음의 은밀한 일들을 아시는도다.
여러분에게도 여러분 자신만 아는 비밀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비밀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눅12: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너희가 어둠 속에서 말한 것이 빛 가운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공포되리라.
(전12:14) 하나님께서 모든 은밀한 일과 더불어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모든 일을 심판하시리라.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면 우리가 가졌던 모든 비밀은 그분 앞에 다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악한 말을 함부로 내 뱉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하나님이 그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보같은 생각을 왜 하는지 아시나요?
하나님이 우리 생각을 다 들여다 보고 계신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더 거룩하게 만들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더 선하고 의롭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두려움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자리에 같이 계셨다면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바로 그자리에 같이 계신 것을 인지 했다면
그런 생각과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바로 옆에 계신 것을 알고 계셨다면 그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겠습니까?
그분 앞에서 술마시고 추태를 부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분이 지금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계시고 지켜보신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실패하신다면
여러분의 삶은 거룩하게 구별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모님의 눈을 피해 잠깐 못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휴대폰의 모든 기록을 삭제하더라도 하나님은 여러분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무시하고 사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주님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분이 함께하심에 떠는 것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려면 주님이 바로 이곳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잠언 29장
(잠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려니와 누구든지 주를 신뢰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두려워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곤란하다고 생각해서 하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누군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것때문에 누군가 나에대한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런 두려움으로 올바른 증인이 되지 못하는 것을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하는 행동과 말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두려운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보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떻게 느끼시는지 그분이 기뻐하실 일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생각때문에 옳은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해서 거짓을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골3:22) 종들아, 육체에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 반대되는 말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분을 기쁘게하는 것이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기쁘게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서 11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내용입니다.
한 아이가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자라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막대기가 나며 그의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자랄 것이요,
(사11:2) 주의 영 곧 지혜와 명철의 영이요, 계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주의 두려움의 영께서 그 위에 머무시며
(사11:3) 그로 하여금 주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속히 깨닫게 하시리니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책망하지 아니하며
(사11:4) 오직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의로 재판하고 땅의 온유한 자를 위해 공평으로 꾸짖으며 자기 입의 막대기로 땅을 치고 자기 입술의 숨으로 사악한 자를 죽이며
(사11:5) 의로 자기 허리의 띠를 삼고 신실함으로 자기 콩팥 주위의 띠를 삼으리라.
만약 두려워한다는 것을 단지 죄때문에 심판을 받고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면에서만 부각시킨다면 왜 예수님께서 자신의 잘못때문에 두려워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죄를 지으신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그 삶의 목적이 있는 분이십니다.
(요4: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끝마치는 것이니라. Jesus saith unto them, My meat is to do the will of him that sent me, and to finish his work.
예수님은 모든 일을 하실때 마다 그분의 뜻을 살피는 방면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일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지?
(시19:14) 오 나의 힘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주여, 내 입의 말들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의 눈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떠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분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나는 것은 그분을 즐겁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제를 시작하면서 잠언 말씀을 봤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식을 얻고 지혜를 얻고 명철을 얻는 첫 번째 관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를 더 더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구원을 향한 첫 단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10:28)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다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지옥에 던져 넣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그분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중에 뱀을 무서워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뱀은 지옥보다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무서운게 없으신 분이 계시나요?
그런 분을 불속에 30초만 있게 만든다면 무서운게 반드시 생길 겁니다.
지옥은 그런 것 보다 더 무서운 곳입니다.
여러분의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했는지는 아무 상관이없게 됩니다.
수많은 종교가 무엇이라고 말하던 그런 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교회 강단에서 목사님이 하신 말씀은 심판의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여려분이 하나님의 심판석에 서게 되면 유일한 기준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입니다.
여러분이 내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 만이 기준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 간다면,
그분이 내가 죄인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분이 내가 지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고,
그분께서 이미 나는 유죄를 선고 받았다고 말씀하셨다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생활하기 시작하게 된다면
여러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지옥갈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면 그날이 바로 여러분이 구원받게 되는 날이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구원을 향한 첫 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구원이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도 믿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무슨 선한 행위를 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한번만 받게 되면 영원히 주어지는 보장된 구원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야기 한다면
그들은 여러분에게 너 자신을 보고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뭘보고 그런 오만한 이야기를 하는지 반문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것이 맞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나의 생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만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겸손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내어드리고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신 그분의 부르심을 받은것이고 그분만이 내 죄에 합당한 값을 지불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내가 믿은 것으로 하늘에 가는 것입니다.
나도 내가 하늘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오만한 자세라는 것을 압니다.
내가 하늘에 가는 것은 그분의 공로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그것은 나의 행위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그 어떤 것으로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건강한 삶인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하셨다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언젠가 죽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석에서 여러분의 죄가 용서받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지옥에 갈 것이고 그리고 불못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여러분이 아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올바른 자세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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