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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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하나님을 ‘농부’로 묘사하신다(1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대표적인 자기 계시 표현인 에고 에이미가 본문에 등장한다(참고. 6:35; 8:12; 10:7, 11; 11:25; 14:6).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계시하시며 자신과 신자들의 정체성을 설명하신다. ‘포도나무’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특히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심판받는 이스라엘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된다(사 5:1–7; 렘 2:21; 5:10; 12:10; 겔 15:1–8; 17:1–24; 호 10:1). 그러나 카슨이 잘 지적하였듯이, 시편 80:8–15은 포도나무로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원하는데,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의 가장 유력한 구약 배경이 될 수 있다. 특히 시편 80:15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주의 오른 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아들(가지)’이라 한다. 개역개정에서 ‘가지’로 번역한 히브리어 원어는 아들을 뜻하는 בן(벤)으로 되어 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아들인 이스라엘이 회복되도록, 하나님께서 왕을 힘 있게 하여 달라고 기원한다(시 80:17). 이때 ‘인자’(son of man)라는 표현이 나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자인 왕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요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달라고 기원하는 것이다. 만약, 시편 80편이 요한복음의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의 주요한 배경이라면, 시편 기자의 기원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예수님은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제시하신다. 즉, 참 이스라엘이신 자신에게 연결될 때, 이스라엘은 온전히 회복될 수 있다고 선언하신다. 인자이신 예수님은 하늘의 진리를 계시하시고, 십자가를 통해 세상 죄를 제거하신다. 계시와 속죄를 통해 회복의 길을 열어 놓으신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할 때, 사람들은 진정한 이스라엘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을 통해 새 이스라엘 공동체가 세워진다. 교회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새 이스라엘 공동체이다. 농부로서의 하나님의 역할은 다음 구절에 구체적으로 나온다(2절).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2절)는 직역하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내 안의 가지’가 된다. 예수님 안에 있는데, 과연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여기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자세한 논의는 특주를 참조하라)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는 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없는 형식적인 믿음의 소유자를 암시한다. 겉으로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면의 변화도 없고, 그래서 삶의 열매도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은 열매가 없을 뿐 아니라, 결국 아버지에 의해 제거된다. 열매 없는 가지에 대한 아버지의 처분은 6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아버지께로부터 끔찍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이다.
그러나 열매를 맺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깨끗하게 하여 열매를 더 맺을 수 있게 하신다. ‘깨끗하게 하다’(2절)(καθαίρω, 카따이로)는 무엇을 말할까? 이는 포도 열매를 맺는 가지에 더 영양분이 공급되도록, 나머지 잔가지를 잘라내는 가지치기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더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깨끗하게 하시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카슨(Carson)은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훈련으로 해석한다. 그리스도인이 성화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고통스런 훈련이라 한다(참고. 히 12:4–11).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윤리적으로 좀 더 성숙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이를 도덕적 깨끗함(정결)이라 할 수 있겠다. 다른 한편, ‘깨끗하게 하다’(2절)는 이어지는 구절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될 수도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미 깨끗한(καθαρός, 카따로스) 상태가 되었다(3절). 이는 세족식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과 같다(13:10). 제자들은 예수님의 계시의 말씀을 통해, 그 말씀을 믿어 영생을 얻고, 깨끗하게 되었다. 따라서 2절에 나오는, 아버지께서 이미 깨끗하게 된 자를 다시 깨끗하게 하시는 것은 세족의 의미와 관련이 있다. 일종의 제의적 정결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십자가 보혈을 통해 깨끗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 보혈을 통한 정결은 그리스도인의 최초의 믿음에도 필요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성화에 지속적으로 필요하다(요일 1:7, 9). 따라서 3절이 말하는 ‘깨끗함’이란 계시의 말씀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정결이고, 2절은 하나님의 훈련을 통한 도덕적 정결, 혹은 십자가를 통한 제의적 정결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권해생, 요한복음, ed. 변종길,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설립 60주년 기념 성경주석 (서울특별시 서초구 고무래로 10-5(반포동):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출판국, 2016), 413–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