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
Notes
Transcript
제목 : 부활하신 예수님
본문 : 요 19:30
2020-05-24
(요19:30)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식초를 받으신 뒤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숨을 거두시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로인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 형태임을 믿습니다. 어떤 종교는 십자가가 아니라 그냥 통막대에 매달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성경은 갈보리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아서 “갈보리”라는 단어를 제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이혔다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매우 바쁘게 움직이신 것을 보게됩니다.
어떤 사람은 죽고나면 모든 것이 끝나고 존재자체가 사라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는 모두는 구원받은 사람이든 구원을 받지 않은 사람이든 죽고난 뒤에서 어디선가 활동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 이루었다,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사신 모든 과정을 다 마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30절의 순간부터 부활하시기까지는 우리의 죄값을 치르는 부분이 아닙니다.
부활은 우리의 죄값을 치르는 것과는 상관없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다 치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희생물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죄값은 십자가에서 치루셨고 부활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것으로 받으셨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사53:4) ¶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 Surely he hath borne our griefs, and carried our sorrows: yet we did esteem him stricken, smitten of God, and afflicted.
(사53:5)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죄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But he [was] wound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bruised for our iniquities: the chastisement of our peace [was] upon him; and with his stripes we are healed.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on him) 담당시키셨도다.
All we like sheep have gone astray; we have turned every one to his own way; and the LORD hath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
(사53:10) ¶ 그러나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사 그에게 고통을 두셨은즉 주께서 그의 혼을 죄로 인한 헌물로 삼으실 때에 그가 자기 씨를 보고 자기 날들을 길게 하며 또 주의 기뻐하시는 일이 그의 손에서 번영하리이다.
¶ Yet it pleased the LORD to bruise him; he hath put [him] to grief: when thou shalt make his soul an offering for sin, he shall see [his] seed, he shall prolong [his] days, and the pleasure of the LORD shall prosper in his hand.
“On him”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불법을 그분 위에 담당시시키셨다는 것입니다.
“In him” 그분 안에 담당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죄가 없는 상태로 계셔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분의 혼은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그분 위(on him)에 올려졌고
그분 안(in him)에는 “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의 죄 값을 지불하는 동시에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물로써 흠없이 받으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나 여러분의 죄를 가져가지 않으셨다면 죽을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이 땅에서 살아계셨을 겁니다.
그분에게는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죽으실 필요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사망은 그분을 고소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그분이 자신에게 올려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in his own body)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Who his own self bare our sins in his own body on the tree, that we, being dead to sins, should live unto righteousness: by whose stripes ye were healed.
이사야서에 이어 베드로전서에서도 우리의 죄가 그분에게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어디에 죄가 있는 걸까요?
그분의 영 혼 몸 중에 몸 안에 우리의 죄를 가져가셨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영 혼 몸 중에 어떤 것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할까요?
그분의 몸입니다.
그분의 혼이 죄를 지었다면 그분의 혼이 죽어야 했겠지만
그분의 혼은 죄를 짓지 않았고 지은 적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도 그분의 혼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몸에만 짊어지신 것입니다.
주님의 죄의 모양으로 들어오실때 입고 있던 몸에만 영향이 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이 십자가에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막15:42) ¶ 그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이제 저녁이 되었을 때에
¶ And now when the even was come, because it was the preparation, that is, the day before the sabbath,
(막15:43) 아리마대의 요셉이 와서 담대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님의 몸을 간절히 구하니라. 그는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역시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리는 자더라.
Joseph of Arimathaea, an honourable counsellor, which also waited for the kingdom of God, came, and went in boldly unto Pilate, and craved the body of Jesus.
(막15:44) 빌라도는 그분께서 벌써 죽으셨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그분께서 죽은 지 오래되었느냐고 묻고
And Pilate marvelled if he were already dead: and calling [unto him] the centurion, he asked him whether he had been any while dead.
(막15:45) 백부장에게 그것을 알아본 뒤에 몸을 요셉에게 주매
And when he knew [it] of the centurion, he gave the body to Joseph.
위에서 예수님의 몸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를 찾아가 구한 것은 무엇인가요?
주님의 영도 아니고 주님의 혼도 아니고 주님의 몸을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는 제가 죽으면 제 몸이 땅에 묻히게 될 것입니다.
내 혼이나 영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묻혀 있는 무덤에 가서 고인을 찾는 것은 성경적으로 볼때 의미없는 것입니다.
무덤을 가족이 찾가감으로해서 가족의 화합을 이루는데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죽은사람의 혼은 지옥에 있거나 하늘나라에 있거나 둘 중에 하나이지 지금 묻혀있는 땅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19:38) ¶ 아리마대의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은밀히 따르더라. 이 일 후에 그가 빌라도에게 간청하여 자기가 예수님의 몸을 가져갈 것을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니라. 그러므로 그가 가서 예수님의 몸을 가져가니라. ¶ And after this Joseph of Arimathaea, being a disciple of Jesus, but secretly for fear of the Jews, besought Pilate that he might take away the body of Jesus: and Pilate gave [him] leave. He came therefore, and took the body of Jesus.
(요19:39) 또 처음에 예수님께 밤에 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알로에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오니라. And there came also Nicodemus, which at the first came to Jesus by night, and brought a mixture of myrrh and aloes, about an hundred pound [weight].
(요19:40) 그때에 그들이 예수님의 몸을 가져다가 유대인들이 장사지내는 방식대로 그 향품들과 함께 아마포에 쌌더라. Then took they the body of Jesus, and wound it in linen clothes with the spices, as the manner of the Jews is to bury.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몸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몰약과 알로에 처리를 하고
몸에 수의를 싸고, 몸을 장사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죽었나요?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 몸에는 여러분과 저의 죄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눅23:46) ¶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시고는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숨을 거두시니라.
¶ And when Jesus had cried with a loud voice, he said, Father, into thy hands I commend my spirit: and having said thus, he gave up the ghost.
(전3:21) 누가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아느냐?
Who knoweth the spirit of man that goeth upward, and the spirit of the beast that goeth downward to the earth?
짐승의 영이 내려갑니다.
예수님은 짐승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짐승들에게는 영생을 할 수 있는 혼이나 영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짐승은 죽으면 몸은 땅으로가고 영도 땅으로 갑니다.
짐승의 혼이 어떻게 되는지 언급은 없어서
짐승은 혼이 없거나 짐승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서 그 영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영을 아버지께 맡긴다고 했다면 그분의 영은 아버지께로 갔지만
예수님은 또한 계속해서 십자가에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몸은 죽었고 그분은 여전히 십자가에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으로 생기를 불어 넣어 살아 있는 혼이 되었고 몸 안에서 살아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의 건강을 위해서 멋진 몸을 갖기위한 설교는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몸은 자라고 늙어서 결국 죽게 되기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혼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설교를 합니다.
죄를 지은 혼은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몸이 죽는 것을 경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몸은 결국 죽게 됩니다.
여러분의 혼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혼”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그분은 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을 아버지에게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분의 몸의 십자가에서 머리를 떨구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 자체는 바로 혼입니다.
그 혼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고 여러분의 혼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던 안받았던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의 혼은 어디로 갔을까요?
(시16: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이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니
Therefore my heart is glad, and my glory rejoiceth: my flesh also shall rest in hope.
(시16:10)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Holy One)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For thou wilt not leave my soul in hell; neither wilt thou suffer thine Holy One to see corruption.
“Holy One” 대문자로 시작하는 이분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누구나 사람이 죽고난 후 무덤에 들어가면
사흘이 지나면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몸의 해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도 무덤에 놓이게 되었고
그곳에서 부패가 일어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썩음을 보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되어 있는 겁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사흘 뒤에 부활하신 것으로 입증될 수 있습니다.
부패된 몸으로 부활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그분의 혼은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그분의 혼이 지옥에 갔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논쟁이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은 구원받지 않는 사람이 죽으면 지옥에 가서 징계의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된 가정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때문에 징계를 받기 위해서 지옥에 가셨다는 가정과
예수님은 죄가 없으셔서 지옥에 갈 수 없다고 보는 가정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보겠습니다.
(행2:25) 다윗이 그분에 관하여 말하되, 내가 항상 내 얼굴 앞에 계신 주를 미리 보았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행2: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더욱이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니
(행2:27)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행2:28) 주께서 생명의 길들을 내게 알려 주셨으니 주의 얼굴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이다, 하느니라.
(행2:29) 사람들아 형제들아, 내가 족장 다윗에 대하여 거리낌 없이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의 돌무덤은 이 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도다.
(행2:30) 그런즉 그는 대언자이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자기에게 서약으로 맹세하사 육체를 따라 자기 허리의 열매에서 그리스도를 일으켜서 자기 왕좌에 앉히실 것을 알았고
(행2:31) 또 이것을 미리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하였고 그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느니라.
시편16편에서 지옥에 남겨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을 사도행전 2장에서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다음 문제는
그분이 지옥에 가신 이유가 징계를 받기 위해서 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 입니다.
왜 예수님이 지옥에 가서 고통을 받아야 할까요?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일까요?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요19:30)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식초를 받으신 뒤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숨을 거두시니라.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다 종결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몸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자신의 영을 아버지께 맡기겠다고 하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 입니다.
예수님은 더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는 잘 되가고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한 고비를 넘겼고
이제 진짜 힘든 일이 남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죄값을 치르는 것은 십자가에서 다 지불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의 만찬을 하실때 장면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눅22:19) ¶ 또 그분께서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준 내 몸이라.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눅22:20) 저녁 식사 뒤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린 나의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이라.
주님은 빵과 잔을 돌리면서 자신의 찢겨진 몸과 흘린 피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지 빵과 잔과 지옥 불을 언급하며 기억하라고 말씀하시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지옥에 가신것은 우리의 죄값을 치르는 일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139: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리이까? 혹은 내가 주의 앞을 떠나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139:8) 내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주께서 거기 계시오며 내가 지옥에 내 침상을 펼지라도, 보소서, 주께서 거기 계시나이다.
(시139:9) 내가 아침의 날개들을 취하여 바다 맨 끝 지역들에 가서 거할지라도
(시139: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주님께 속한 사람이 된 이후에는 우리가 어디를 가던지 그곳에도 주님의 관심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 지옥까지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범죄로 물든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하늘까지도 올라가셨습니다.
(계1:17) 내가 그분을 볼 때에 죽은 자같이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지니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시며 내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계1:18)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신 것은 그곳의 열쇠를 갖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올라오셔서 지옥과 사망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히2:14)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히2:15)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 내려 하심이라.
마귀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바로 죽음과 지옥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죽음의 권능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미 죽음이 지나갔다면 주님이 이미 그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죽음이 더이상 여러분을 잡아둘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지옥이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주장한다면 주님이 이미 그 문도 열어 놓으셨기때문에 더이상 여러분을 잡아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지옥에 가던지 하늘나라에 가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누군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하늘나라에 가지 못할 것이고 결국 불못에 들어가게 될것입니다. 죽음이 그 사람을 소유하게 될 것이고, 마귀가 그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죽음 뒤에 곧바로 하늘로 직행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했다면 지옥에 갔다가 크고 흰 왕좌의 심판석에서 심판후 곧바로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죽음과 지옥의 통제 권하는 주님께 속해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더이상 통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음과 지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로 직행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신도 마귀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기 위해서는 성경을 간결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지옥에 문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집에는 문이 있습니다.
문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성경은 복잡하게 해서 여러분에게 혼란을 주려고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진리를 여러분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옥에는 문이 있다.
건물에 갇힌 사람이 탈출하려면 어떤 사람이 탈출할 수 있을까요?
열쇠를 가진 사람입니다.
열쇠를 가진 사람에게 가야 그 문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욘2:2) 이르되, 내가 내 고난으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니 그분께서 내 말을 들으셨고 내가 지옥의 배 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나이다.
(욘2:6) 내가 산들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으며 땅이 자기 빗장들과 함께 영원히 내 곁에 있었사오나, 오 주 내 하나님이여, 주께서 내 생명을 썩음에서 끌어올리셨나이다.
“지옥의 배 속에서”
2절은 요나는 지금 지옥에 있는 상태입니다.
6절은 요나가 산들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있다고 합니다.
“빗장들”
그리고 요나 앞에는 빗장들이 있는 겁니다.
빗장들 뒤에는 지옥의 문들이 있을겁니다.
지옥을 지키는 자는 마귀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내려가서 열쇠를 가져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으로부터 탈출하려면 지옥의 열쇠가 있어야 합니다.
(눅16:19) ¶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지내더라.
(눅16:20) 또 나사로라 하는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헌데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에 누워
(눅16: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하더라. 또한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더라.
(눅16:22)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지고 그 부자도 죽어 묻히게 되었더라.
(눅16:23)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16:24)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도록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나이다, 하거늘
나사렛도 죽은 뒤에 살아있고 부자도 죽은 뒤에 살아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나사렛은 안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행복한 모습입니다.
이들 둘은 만족스러운 모습입니다.
부자는 불꽃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있는 지옥과 낙원은 서로 대화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습니다.
(눅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아들아, 너는 너의 평생에 너의 좋은 것들을 받았고 그와 같이 나사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
부자는 고통받고 있고
아브라함과 나사렛은 지금 위로받고 있습니다.
(눅16:26)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하는 자들이 갈 수 없고 거기서 오려 하는 자들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느니라, 하니
가운데 구렁텅이로 인해서 서로 건너갈 수 없습니다.
지옥에서 낙원으로 낙원에서 지옥으로 건너 갈 수 없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은 죽으신 뒤에 그분의 몸은 무덤에 놓였고
그분의 혼이 첫 번째 들른 곳은 지옥이었습니다.
그분이 그곳에 간 것은 징계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열쇠를 갖기위해서 였습니다.
빗장과 문을 열기 위해서 입니다.
지옥은 반대편에는 낙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같이 달렸던 한 사람에게 낙원에 같이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지옥과 낙원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나사로도 건너갈 수 없는 구덩이이었습니다.
부자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제거할 것이라고 했고,
심판석에서 그를 결코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요6:19) 이에 그들이 노를 저어 이십오 내지 삼십 스타디온쯤 가다가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우리에게는 구덩이가 장벽이 되고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조주 이신 예수님께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벧전3:18)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put to death in the flesh”
우리의 죄들이 십자가에서 값을 치렀다는 것을 기억하시나요?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in the flesh) 죽임을 당하셨으되”
우리의 죄값은 육체로 계신 상태에서 지불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로인한 고난은 십자가에서 끝난 것입니다.
지옥에서 치러야 할 몫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벧전3:19)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18절과 19절만 보면 예수님께서 지옥을 가서 그곳에 있는 감옥에 있는 모든 대상에게 선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20절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벧전3:20) 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방주 안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가 몇 안 되니 곧 여덟 혼이라.
20절을 보면 선포를 한 대상은 한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날들과 관계있는 그룹에 한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대에 걸쳐 있었던 불순종하던 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아서 더이상 알 수 없습니다.
20절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노아의 방주때에 감옥게 간 자들에게 특별히 가서 그들에게 선포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선포하셨는지는 기록되지 않아서 알 수 없습니다.
이 일들이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고 부활하신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눅23:42)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하매
(눅23:4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너와 함께 낙원에 있겠다
낙원에 같이 있게 될 범죄자는 율법을 지킨 사람이 아닙니다.
삼일 낮 삼일 밤 땅 아래에 계시는 중에 오늘, 즉 돌아가신 날 도둑이었던 사람과 함께 낙원에 계시겠다고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범죄자가 낙원에 갈 수 있으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날 모든 죄값이 지불 되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날 범죄자가 낙원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후에 사흘간의 시간을 지옥에만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신 날 지옥에 가서 특정 그룹에게 선포를 하고 열쇠를 가지고 구덩이를 건너서 낙원으로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신 같은 날 낙원에 가서 범죄자 였던 사람을 만났을 것이고
믿음 안에서 죽은 다른 사람들과 나머지 이틀을 같이 보내게 됩니다.
낙원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린 것이 예수님이 사흘간의 죽음을 통해서 죄값을 다 치를때 까지 기다리기 위해서 나머지 기간을 보낸 것일까요?
(요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순간부터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시기 전에 아버지께로 올라갈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값을 지불하고 난 뒤에 아버지께로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이고 주님께서는 낙원에 있는 사람을 데리고 아버지께로 올라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마27:50) ¶ 예수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라.
(마27:51) 이에,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들이 터지고
(마27:52) 무덤들이 열리니 잠든 성도들의 많은 몸이 일어나
(마27:53) 그분의 부활 후에 무덤 밖으로 나와서 거룩한 도시로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52절에 몸이 일어났는데 53절에서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떤 상황일지 상상은 가지 않습니다.
이미 몸이 일어나 있고 주님이 부활할때까지 몸이 기다렸다가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20:16)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마리아야, 하시거늘 그녀가 돌이켜 그분께, 랍보니여, 하니 이 말은, 선생님이여, 라는 뜻이라.
(요20:17)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첫날 아침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아직 아버지께 올라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28:9) ¶ 그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러 갈 때에, 보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다 잘 있느냐, 하시거늘 그들이 나아와 그분의 발을 붙잡고 그분께 경배하니
(마28:10)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하라. 거기서 그들이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예수님께서 부활 첫날 아침 자신에게 손을 못대게 하셨는데
같은 날 잠시 뒤에 제자들이 주님의 말을 붙잡게 허락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이십니다.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 이시고 그분은 시작과 끝이십니다.
예수님은 시간을 만드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잠시 시간 밖으로 나가서 아버지께 다녀오신 뒤에
다시 시간 안으로 들어오셔서 제자들을 만나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붙잡도록 허락하십니다.
이런 진행은 모순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시68:17) 하나님의 병거들은 이만이니 곧 수천의 천사들이로다. 주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나니 시내 산 곧 거룩한 곳에 계시는 것과 같도다.
(시68: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시며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 사람들을 위하여 선물들을 받으시되 참으로 거역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받으셨사오니 이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려 하심이니이다.
(엡4:7) 그러나 주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엡4:8)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시편의 내용이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을 신약으로 알 수 있습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분은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이끄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분도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엡4:9) (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으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예수님은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으로 내려 가셨습니다. 그곳은 지옥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낙원이 있던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낙원에 있겠다고 하셨다면 예수님은 땅의 더 낮은 부분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지옥이 있고 낙원이 있고 그 사이에 구덩이가 있습니다.
(엡4:10) 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4:11) 그분께서 더러는 사도로 더러는 대언자로 더러는 복음 전도자로 더러는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And he gave some, apostles; and some, prophets; and some, evangelists; and some, pastors and teachers;
(엡4:12) 이것은 성도들을 완전하게 하고 섬기는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시편에서 68편에서 주시겠다고 하는 선물이 위에 열거된 것들입니다.
(엡4:13) 마침내 우리가 다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에서 하나가 되어 완전한 사람에 이르고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리니 Till we all come in the unity of the faith, and of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unto a perfect man, unto the measure of the stature of the fulness of Christ:
(엡4:14) 그 목적은 우리가 이제부터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들의 속임수와 몰래 숨어서 속이려 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간교한 술수로 말미암아 온갖 교리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 밀려다니지 아니하고 That we [henceforth] be no more children, tossed to and fro, and carried about with every wind of doctrine, by the sleight of men, [and] cunning craftiness, whereby they lie in wait to deceive;
교리에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리의 교리에 대적하는 불의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속지 않기 않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이땅에 오셔서 속이는 사람을 다루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고 그 은사를 가지고 속이는 자들을 물리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머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으되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And these all, having obtained a good report through faith, received not the promise:
(히11:40)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마련하사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God having provided some better thing for us, that they without us should not be made perfect.
구약 성도들은 믿음 안에서 죽었서도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들은 지옥에서 불타지 않지만 몸을 떠나 주와 함께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성도들의 죄값이 아직 처리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지는 않지만 아브라함과 같이 낙원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안식을 취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되에 구약성도들을 이끌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5:8) 내가 말하노니 우리가 확신에 차서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We are confident, [I say], and willing rather to be absent from the body, and to be present with the Lord.
그들의 죄는 가려졌지만 값을 치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성도들은 누가복음 16장 부자처럼 불타지는 않지만 거지 나사로처럼 아브라함의 품인 낙원에 가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죄값을 지불할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때 포로로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 더 나은 곳으로 데려 가시는 겁니다. (시68:18)
강도는 그날에 낙원에 갔습니다. 예수님도 거기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이끌로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고후12:1) 자랑하는 것이 물론 내게 유익하지 아니하나 내가 주의 환상들과 계시들로 나아가리라.
(고후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십사여 년 전에 셋째 하늘로 채여 올라갔느니라. (몸 안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며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12:3) 내가 이러한 사람을 알았노니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내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바울은 자신이 몸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그것이 어떤 상태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고후12:4) 그가 낙원으로 채여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는데 사람이 그것들을 말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채여 올라가서”
바울은 하늘에 있는 낙원으로 채여 올라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땅 아래 있던 낙원을 하늘로 옮겨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이제 우리가 죽으면 우리는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 가서 모든 성인들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들이 그곳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곳에 계십니다.
-끝-
(계3:12)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다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도시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고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Him that overcometh will I make a pillar in the temple of my God, and he shall go no more out: and I will write upon him the name of my God, and the name of the city of my God, which is new Jerusalem, which cometh down out of heaven from my God: and I will write upon him my new name.
(계21:2) 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더라. And I John saw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oming down from God out of heaven, prepared as a bride adorned for her husband.
구약성도들은 땅 아래 낙원에서 하늘로 올라가서 어디에 거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새 예루살렘에 가는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