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에 담긴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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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막에 담긴 예수님
본문 : (출25:8)(요1:14)
2020-04-26
(출25:8) 또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그들이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백성들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성소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면 될거 같은데 내가 거할 성소를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만 만나시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 어떻게 하십니까?
어딜 가야 되나요?
그분을 만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장소가 있나요?
우리는 그냥 주님을 부르면 아무곳에서나 주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곳에서나 주님을 부르면 그분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 주십니다.
출애굽할 당시에는 그렇게 할 수 없으셨을까요?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면 못할게 없었을 거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특별히 성소를 만들게 하신데에는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아무 이유없이 그렇게 하실이유는 없으실 겁니다.
요한복음에서 읽었던 또 다른 본문을 읽어 보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성막과 예수님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출25:1)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출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이 내게 헌물을 가져오게 하라. 또 너희는 마음에서 즐거이 그것을 내는 모든 자로부터 나의 헌물을 취할지니라.
(출25:3)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헌물은 이러하니 곧 금과 은과 놋과
(출25:4)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과 고운 아마와 염소 털과
(출25:5)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과 오소리 가죽과 시팀나무와
(출25:6) 등잔 기름과 기름 부음에 쓸 기름에 넣는 향료와 향기로운 향에 쓸 향료와
(출25:7) 줄마노와 또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이들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생활을 했는데 이런 귀한 것들이 어디에서 생겨서 가져올 수 있었을까요?
출애굽당시 이집트 사람들에게 빌려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일 입니다.
(출11:1)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전히 한 가지 재앙을 파라오와 이집트 위에 더 내리리니 그 뒤에 그가 너희를 여기에서 가게 하리라. 그가 너희를 가게 할 때에는 반드시 여기에서 너희를 다 쫓아내리니
(출11:2) 이제 백성의 귀에 고하여 각 남자가 자기 이웃에게 또 각 여자가 자기 이웃에게 은 보석과 금 보석을 빌리게 하라, 하시니라.
두번째 질문은 하나님은 왜 이런 것을 필요로 하실까요?
이 답은 8절에 있습니다.
(출25:8) 또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그들이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라.
(출25:9) 또 너희는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모든 것에 따라 성막의 양식과 성막의 모든 기구의 양식대로 그것을 만들지니라.
성경의 두 번째 책인 출애굽기에서 25에서 40장까지 16장에 거쳐서 성막에 관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세한 설명이 필요할 정도로 중요함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기 위한 장소라고 8절에서 말하고 있고 이 곳의 명칭이 성막이라고 9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25장에서 3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성막의 양식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시고 35장부터 40장까지는 성막의 구조물에 대해서 다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지창조를 위해서는 2개의 장을 할애한 반면 성막에 관해서는 16개의 장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은 이 부분이 하나님께 얼마나 진지하게 알려주고자 하는 부분인지를 짐작케 합니다.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 어디에 도착했는지는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신 반면 성막의 구조물과 각 기물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주 세세하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관점에서 시작해야
하나님께서 성막의 세세한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내가 가진 관심사를 중심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관심이 있어 하는 부분에 나도 관심을 가지는 방식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분의 관심에서 출발하는 관점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우리 목사님이 좋아하는 형제에게만 사랑을 표시하는 방식은 관점이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이 형제라고 말한 사람을 사랑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미워하는 형제는 목사님이 좋아해도 미워해야 할 것입니다.
“내게 헌물을 가져오게 하라”
성막을 위해서 헌물을 가져오게하는 방식에 있어서 다른 장면과 한 번 비교해 보고싶습니다.
비교해 보고 싶은 장면은 금송아지를 만들때 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때
(출32: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들과 너희 아들딸들의 귀에 있는 금귀고리를 빼서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두 장면에서 헌물을 드리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희는 마음에서 즐거이 그것을 내는 모든 자로부터”라는 방식 입니다.
(고후9:7)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마음에서 즐거이 내지 않는 자에게는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즐거운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독특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즐거울 수 있고,
고난가운데 기쁨을 누리고
죽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여기고
가나안 전쟁을 통해서 더 큰 순종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민족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분께서 받고자 하는 것과 받고자 하는 방식에 따라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지금은 이런 내용을 우리가 기록된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기록은 우리가 알 필요가 있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주신 것입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모든 성경 기록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이 기록들은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것입니다.
성막의 기구들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성막 어디에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옮길때는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아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런 세세한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이 말씀대로 성막을 지어서 만들어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기록으로 우리에게 전달해 주신 것은 이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인가 그 의미를 꺼집어 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롬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되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성경 기록들이 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지금은 실물을 찾아 보기도 어려운 구약의 볼품없는 성막에대한 기록을 우리가 읽어야하는 것은 이것을 통해 우리가 배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찾아 보겠습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tabernacle) 집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고후5:2)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고후5:3) 우리가 옷 입고 있으면 벌거벗은 채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고후5: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성막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성막은 장막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tebernacle, tent)
실제로 성막은 텐트 였습니다. 광야생활동한 이동해야 했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나중에는 이 성막은 성전(temple)로 대체되었습니다.
성막은 임시 거처를 위한 구조물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은 우리의 몸을 성막에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막은 영구히 사용할 수 있는 건축물로 설계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도 마찬 가지로 나중에 흙으로 만들어진 임시 장막인 몸을 벗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성전(temple)로 이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장막은 임시거처이고 성전은 영구적인 거처입니다.
지금 입고 있는 이 몸은 임시거처 이고 하늘에 있는 집은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받아서 거하게 될 것입니다.
(눅24:25) 이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오 어리석고 대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24:26) 그리스도가 이런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함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시고
(눅24:27)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의 구약성경 전부를 이야기 합니다.
구약성경 기록은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깊이 살펴보게 되면 성경은 예수님이 누구이며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히브리서 8장에서 율법, 성소, 성막,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등은 모두 그림자 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는 것.
(히8:5) 이 제사장들은 모세가 성막을 만들려 할 때에 하나님께 권고 받은 바와 같이 하늘에 있는 것들의 본보기와 그림자를 섬기나니 그분께서 이르시되, 너는 조심하여 산에서 네게 보여 준 양식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라, 하시느니라.
우리가 지금 읽은 구절들에서 두 가지 실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1. 성막이 몸에 비유되고 있다는 것이고
2. 구약에 기록된 모든 것은 결국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5장부터 기록된 성막의 세세한 설명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합당한 접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5장 8절에 성막을 만드신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머물기 위해서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첫번째 목적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머물기 위해서 입니다.
(출25:8) 또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도록 그들이 나를 위해 성소를 만들게 하라.
그리고 22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긍휼의 자리 위 곧 증언 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너와 대화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네게 명령으로 줄 모든 것에 관하여 대화하리라.
“내가 너와 만나고”
주님이 성막을 통해서 우리와 만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출29:42) 이것은 너희 대대로 주 앞에서 회중의 성막 문에서 항상 드릴 번제 헌물이니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거기서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시서 너희와 만나고”
(출29:43)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인하여 성막이 거룩히 구별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잔손들을 만나리니”
(출29:45) ¶ 내가 또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내가 또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거하여”
(출29:46)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려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주 그들의 하나님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나는 주 그들의 하나님이니라.
“그들 가운데 거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든 이유에 대해서
내가 택한 백성과 함께 거하기 위해서 라고 말씀하고 계시고
그리기 위해서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불러내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여러분을 세상에서 불러내셔서 성령침례로 거룩하게 구별하고 여러분 가운데 거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은 것이 본질입니다.
(요1:1)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요1:2) 바로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데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1:18)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와서 아이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God with us)
(마1:23)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그렇다면 성막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는 그 모습을 모형으로 보여주는 장소인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하나님이 오셔서 거하셨던 모형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목적은 인간이 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출33:7) 모세가 성막을 취하여 진영 밖에 쳐서 진영과 멀리 떨어지게 하고 그것을 회중의 성막이라 부르니라. 주를 찾는 자는 다 진영 밖에 있던 회중의 성막으로 나갔으며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찾고자 한다면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찾아가야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성막입니다. 이곳은 희생물을 드리는 진영 내의 성막과는 다르게 회중들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곳에 가서 찾아야만 합니다.
(요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구약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할 곳이 바로 성막인 것입니다.
성막은 구약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장소로 성막을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공간은 오직 성막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딤전2:5)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예수님이 하신 중재자의 역할은 바로 구약의 성막이 하는 기능을 우리에게 해 주신 것입니다.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성막인것 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림자였던 성막의 역할을 실제로 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대속물로 주신 것입니다.
(딤전2:6) 그분께서 정하신 때에 증언을 받기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느니라.
성막에는 일곱가지 기구가 있습니다.
뜰문, 번제단, 전설병 상, 촛대,
번제단 먼저 도착하게 되고
다음은 놋으로된 물두멍,
성막 안으로 들어가면
한 쪽에는 보여주는 빵(진설병) shewbread
다른 한 쪽에는 촛대
그리고 더 들어가면 금 제단이 있고
지성소인 가림막 안으로 들어가면 법궤가 있고 그 위에 긍휼의 자리가 있습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통과해 들어가는 방식으로 진열되어 있어서 마지막에 법궤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북으로는 보이는 빵과 촛대가 놓여 있어서
기구의 배치가 십자가 형태를 이루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운데 거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가기 위해서 준비된 성막이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을 십자가의 모형에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의 중재자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인과 하나님을 화해 시키는 예수님이 성막의 모형으로 그려져 있던 것입니다.
세 번째: 성막은 율법을 보관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만들어지 장소입니다.
(민1:50) 오직 레위 사람들을 임명하여 증언의 성막과 그것의 모든 기구와 그것에 속한 모든 것을 관리하게 할지니라. ...
tabernacle of testimony
(출25:16) 너는 내가 네게 줄 증언을 그 궤 속에 넣을지니라.
(히9:4) 거기에는 금향로와 돌아가며 금으로 입힌 언약궤가 있었고 이 궤 속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막대기와 언약의 돌 판들이 있었으며
(행7: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성막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분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며 정하여 주사 그가 직접 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the tabernacle of witness”
증거라는 표현은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성소 안에 있는 증언 궤 안에는 바로 십계명이 적힌 두 개의 돌판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성막의 가장 심장부에 율법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언 궤(the ark of the testimonkey) 또는 언약 궤(the ark of the covernent)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증언 궤 안에 언약이 들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이 맺은 언약이 들어 있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성막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 안에 증언 궤가 놓여 있고,
가장 중요한 이 증언 궤 안에 하나님의 법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시편40편 예수님에 관한 구절입니다.
(시40:7)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오나이다.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이 있나이다.
(시40:8)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기뻐하오니 참으로 주의 법이 내 마음속에(within my heart)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예수님 안에 법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에 주의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
(마5:17) ¶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의 글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폐하러 오지 아니하고 성취하러 왔노라.
(마5:18)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에서 일 점 일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마침내 다 성취되리라.
성막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성취하실 율법을 보관하고 보존하는 장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성취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요19:28) ¶ 이 일 뒤에 예수님께서 이제 모든 일이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 기록을 성취하시려고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성경기록을 성취하려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The scripture might be fulfilled)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행하신 모든 일은 기록을 성취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어느 것도 자신의 뜻으로 하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할일의 목록을 가지고 하나 하나 표시해가면서 해야 할 일을 다 마치신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그렇게 해야 할 주님의 법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여러분은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 어느것에 따라 행하고 계시나요?
네 번째 : 성막은 희생물이 드려지기 위해서 만들어진 장소입니다.
(레17:1)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17:2)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께서 명령하신 것이 이러하니라, 하고 이르되,
(레17:3) 이스라엘의 집에 속한 자 중에서 누구든지 소나 어린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거나 혹은 진영 밖에서 잡아서
(레17:4) 회중의 성막 문으로 그것을 가져다가 주의 성막 앞에서 주께 헌물로 드리지 아니하면 그 사람에게 피를 돌릴지니 그가 피를 흘렸은즉 그 사람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리라.
(레17:5)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빈 들판에서 드리는 자기들의 희생물들을 가져다가 즉 그들이 그것들을 회중의 성막 문으로 주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주께 화평 헌물로 드리게 하려 함이니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희생물을 드려라.
그리고 희생물을 드릴때는 아무데서나 드려서는 안된다.
반드시 성막에 와서 희생물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지정한 장소와 내가 정한 방법대로 드려지지 않는 희생물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예수님은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는지 아시나요?
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셨는지 아시나요?
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성막이 되였는지 아시나요?
예수님께서 잠시 머물 장소가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이 죽으심으로 희생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희생물이 되시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아무데서나 희생물을 드리려고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데로 아무 것이나 희생물로 드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드리는 희생물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오직 성막에서 드려져야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찢겨졌고 그분의 피가 흘려졌습니다.
(히2:9) 다만 예수님을 보노라. 그분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려고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되셨다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서 천사들보다 조그 낮게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죽음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히2:14)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신 이유가 인간의 죄때문에
누군가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피를 흘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희생물을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외에는 점도 흠도없이 드려질 희생물이 없기때문에 예수님이 직접 우리 인간의 몸을 입고 희생물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 희생물이 되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성막 만이 오직 희생물이 드려질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만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희생물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천지창조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부분은 바로 여러분을 자녀로 얻는 일 입니다.
하나님은 종말론에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종말이 온다는 사실을 통해서 여러분을 구원하는데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과학적으로 이 세상을 만들었는지 여러분이 아는데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신처럼 여기는 과학보다 더 뛰어나신 분임을 알고 그분의 생명 안에 들어오길 원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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