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믿음인가 내 믿음인가?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80 views
Notes
Transcript
제목 : 예수님의 믿음인가 내 믿음인가?
본문 : 롬 3:1-4
2020-07-19
(롬3:1)그러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냐? 혹은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롬3:2)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다는 것이라.
(롬3:3)그런데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효로 만들겠느냐?
(롬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
참조구절 하나 찾아 보겠습니다.
(시147:19) 그분께서 자신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자신의 법규들과 판단들을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시147:20) 그분께서 어느 민족도 이렇게 대우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분의 판단들로 말하건대 그들이 그것들을 알지 못하였도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책도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민족을 통해서 자신의 말씀과 판단을 기록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서 3장 전반부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제시한 구원의 방법과 그들의 삶에 복을 주시고자하는 것에 대해서 저항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과 논쟁을 하고 계십니다.
누군가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어쩌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효로 만들겠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해서는 많이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분이 말씀하신 것에 관한 사랑과 믿음에 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믿음이 없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담은 열매를 먹으면 그 결과로 죽게 된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열매를 먹고 죽었습니다.
노아시대의 악인들은 이 땅이 홍수로 덮힐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파라오는 자신의 장자가 죽임을 당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장자가 죽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예언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70년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게 됩니다.
롯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불을 비처럼 내릴 것이라고 한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했지만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렇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불에 타 멸망했습니다.
불신자들의 이야기
종종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자신있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지옥같은 것도 안믿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받는 다는 것도 안믿습니다.
불신자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을 변경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된 기쁨과 즐거움을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저주를 그들이 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내용은 그 내용대로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심
성경을 보면 그들이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미래의 약속을 보장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
땅을 주시겠다고 했고 평강을 약속했고 풍성한 수확을 약속했고,
질병으로부터 안전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갖고 싶은 것이 다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이 약속을 자신들의 것으로 받기 위해서는 주님이 주신 법을 지키고
순종하면 이 모든 것들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세대를 거듭할 수록 불신자가
더 많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불신자들은 광야에서 죽기도 했습니다.
이런 불신은 사사기를 통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400년간의 하나님의 침묵이 있었고
유대인들은 자신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인해서
이천년 동안 나라없는 민족으로 전 세계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껏 세상에서 보지못한 대환난이 7년간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스라엘 민족을 그들이 땅에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그들에게 도시를 주고 그들의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희생물을 드리고
평강과 번영을 그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사람들의 믿음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와 관련된 구절들을 잠시뒤에 찾아 볼 것입니다.
디도서 1장으로 먼저 가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구원을 받고 하늘에 가기 위해서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라고 이야기 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하늘나라에 갈 만큼의 충분한 행위를 했냐고 묻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는 이유를 전혀 다른 다른 방향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는 것은 나의 선한 행위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행위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딛1:2)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
아브라함의 후손이 약속의 땅을 상속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요?
하나님은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그 말씀을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삭이 안믿었다면, 야곱이 믿지 않았다면, 요셉이 믿지 않았다면,
모세, 아론이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을 받은 후에 우리의 확신이 흔들리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확신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면…
좋은 날이 되면 구원받는 것 같다가,
고난과 어려움이 오면 구원받지 못한 것 같아진다면 어떻게 될가요?
하나님은 거짓말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은
우리의 선한 행위나 우리의 믿음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구절을 잠시후에 볼 것입니다.
저는 인간을 가치있게 보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못믿겠다고 하면 하나님의 약속이
여론에 밀려서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기만 합니다.
굉장히 자기 중심적인 사고입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아시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옥에 갈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은 나는 지옥같은거 안믿는다고 말하곤 합니다.
도대체 자신이 어떤 존재길래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의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하고 있는 걸까요?
"예수님 만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닙니다. 다른 종교를 무시하지 마세요, 절에 다니는 사람도 착하게 살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만 길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도체제 뭔데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당신이 뭘 할 수 있는 사람이길래 자기 마음대로 결론을 내는 겁니까?"
여러분의 육체적 상태가 최고조에 달해 있다고 해도 그 상태도 몇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연약한 존재가 당신입니다.
여러분의 지성, 지혜, 영적인 상태가 최상의 상태라해도 여러분 자신은 믿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최고의 지성인들이 다 모여서 논리를 개발해 낸다고 해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그저 헛된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최상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우리의 나머지 인생에 대해서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사후 세계와 하늘과 지옥을 부인하는 사람의 주장은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없다고 상상하고 지옥은 없다고 상상하다가 죽은 뒤에 눈을 떠보면,
그는 엄청난 후회의 눈물을 흘려야 할 것입니다.
선택된 자신의 백성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부인하고
그 댓가로 이 천년간을 떠돌아다니고 박해받으며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부인했던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았던 메시아가 다시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대학의 학자들은 성경을 자신들의 상상으로 그 의미를 풀어내곤 합니다.
자신들이 성경의 내용보다 더 우월한 입장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서 잘못을 빌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거만해져서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자신의 기호에 맞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을 잊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맘에 안드는 것들을 찾아서 반대합니다.
그들은 좀처럼 하나님의 완전 무결함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만이 진실하십니다.
(신11:26) ¶ 보라, 내가 이 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신11:27) 너희가 만일 내가 이 날 너희에게 명령하는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에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요,
(신11:28) 너희가 만일 내가 이 날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에서 돌이켜 떠나 주 너희 하나님의 명령들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라가면 저주를 받으리라.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선언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저주를 내리실 것입니다.
방금 읽은 구절에서 우리를 읽었던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이 두가지 약속을 바꿀 수 없습니다.
여기에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복을 받을 것인지 저주를 받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저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신30:19) 내가 이 날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로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또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나니 그러므로 너와 네 씨가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신30:20) 그리하면 네가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며 또 그분을 굳게 붙들 수 있으리라. 그분은 네 생명이시요, 또 네 날들을 길게 하는 분이시니 이로써 네가 주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거하리라.
여러분의 삶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의해서 결과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축복된 삶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견에 동의 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에게 저주가 있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의견에 동의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축복하실지는 여러분의 선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기준에따라 일을 진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는 일은 우리의 선택과 아무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이 축복된 삶이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괴로운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저주받은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삶을 사시면 됩니다.
주님은 아주 간단한 방법을 제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결코 주님께 불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했는데 저는 아직 삶이 형편없습니다"
설마요.!
자신을 다시 잘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여러분의 삶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고난을 택할지 축복을 택할지 결정하셔야 합니다.
저는 낮은마음침례교회 성도들이 어려움과 갈등과 분노로 가득한 모습을 보고싶지 않습니다.
(렘20:7) ¶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속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날마다 조롱을 받고 사람마다 나를 비웃나이다.
예레미야는 지금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말씀대로 옳을일을 했는데 붙잡혀가고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진실을 이야기 할때 그 말에 의심하고 비판을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정말 거짓말을 하면 사람들은 거짓말 했다고 또 비판을 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속이셨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예레미야는 지금 하나님이 자신을 거짓말로 속였다고 고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일이란 정말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리를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지키기 어렵다고 불만합니다.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면 하나님이 나를 속였다고 불만하고 하나님이 나보다 강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나를 속이고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을 괴롭게 했다고 불평합니다.
(출5:22) 모세가 주께 돌아와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이같이 악하게 다루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모세는 이제 자신이 민족의 영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내 백성을 떠나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힘들게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등을 돌리고 항의를 합니다.
그랬더니 모세는 하나님께 가서 왜 이 백성들을 괴롭게 해서 저를 힘들하시냐고 항의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도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실을 이야기하시고 그 진실을 전했을때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진실을 이야기 해주지 않으면 이야기 안했다고 싫어합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복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어렵게 만드는 일을 줄이시기 바랍니다.
주어진 상황에 하나님 안에서 행복해 하시기 바랍니다.
불필요하게 하나님이 이래서 불만이고 저래서 불만이고 내가 이렇게 된것이 하나님이 부당하게 나를 대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그 근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마땅이 치러야 할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비가오면 비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맑은 날 햇볕을 주시면 그것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지옥에 가지 않게 된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딤후2:11) 그것은 신실한 말이로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리라.
저는 제가 그분과 함께 죽었다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살아있고 앞으로 영원히 살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로 저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 말의 결론은 살았다는데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우리를 살려놨다는 것입니다.
(딤후2:12) 우리가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라.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도 우리를 부인하시리라.
우리 모두 지금 고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과 함께 통지하는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틀리다고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틀리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딤후2:13)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아마 아직 이문제에 관해서 심각하게 직면하지 않으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을 떠나기전 우리 모두 이런 문제를 직면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재정적인 문제가 닥치고,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고, 죽음을 앞두게 되고, 또는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으시고, 의사의 진단서를 눈앞에 두고,
여러분이 구원받은 이후 이 땅에서 떠날때까지 무슨 일이든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멈추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믿지 아니하여도"
"저는 주님이 저를 항상 사랑하시는 것을 압니다."
이런 고백은 좋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정말 참기 힘든 육신적 어려움이 닥친다면,
여러분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감정적 고통이 닥친다면,
여러분이 정말 견디기 힘든 다툼과 소송에 직면하게 된다면,
여기 계신 어느 누구도 자신이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질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 생각처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신실하게 유지되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불평도 할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육신적 방식으로 시간을 즐기며 살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믿음이라고 볼 수 없는 것들로 채워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아시겠습니니까?
"너희들이 내 약속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뒷걸음 칠지라도 나는 내가 한 약속에서 단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지켜 나갈 것이다.”
내가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내 믿음이 그 만큼 강하고 굳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믿음이 강하고 굳건하기 때문이고 그것에 근거한 것입니다.
(롬3:3) 그런데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효로 만들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믿음/하나님의 믿음(faith of God)"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faith in God)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나는 은혜로우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도 은혜롭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 하고는 있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실행되는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안전하게 보장되게 하는 믿음이 이것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에 의해서 실행되고 이행되기 때문에 우리와 그분의 관계가 안전하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 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의 믿음은 아주 연약해 질때도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기도를 저에게 기도를 부탁한다면,
저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을 거 같은 생각은 들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의 모든 내용을 주님께 맡기는 기도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기도의 응답에대한 답을 정해서 주님께 강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통을 덜어줄 줄 믿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믿는다고 주님이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어떻게 응답하실지는 저의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그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받게 해 줄것을 주님께 강제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 지체들을위해서 기도합니다.
기적처럼 그들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기를 기도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니님께 그렇게 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 몇명 안되는 이 교회를 떠난다고 하면 저는 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지는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기도를 제가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떠나는 성도가 남아있고,
술을 끊지 못하는 성도가 술을 끊게 될까요?
저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술을 끊지 못하는 형제가 일상속으로 돌아가서 다시 술을 마신다고해도
저에게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진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기록된 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믿슙니다. 주님께서 나를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줄것을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을 보시고 이 일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나의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믿음으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오늘 밤에 자기 집에 무사히 들어가는 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믿음은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 한 알의 믿음을 예수님 안에 넣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믿음이 그 한 알의 믿음을 그분 안으로 가져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제 너의 나머지 삶은 네 믿음이 아니라 내 믿음로 살게 될 것이다.
솔직히 너의 믿음은 사실 너무 작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술은 쳐다보지도 마라"
우리는
"주님 제가 주님이 생각하는 것 보다 아주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술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늘 조금 술좀 마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악함을 알고 쳐다보지도 말하고 하는데,
자신을 과신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밤 네가 다 나를 부인할 것이다.
"저는 절대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저는 여러사람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저는 간증을 많이 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드디어 올바른 교회를 찾았습니다.
이제 주님을 위해서 헌실할 것이고 이 교회를 열심히 다시겠습니다."
"저는 절대로 이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성경공부 시간에 절대로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간증하는 사람들 치고 그 말대로 지키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높은 신앙수준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교회로 판단하고
자신을 알아줄 교회를 찾아서 떠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드디어 킹제임스 성경을 알게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간증한 사람들이 얼마 안있으면 그냥 일반교회로 돌아가서
성경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죄를 덮는 방식으로 살면서 고치지를 못합니다.
이 교회에 뼈를 묻을것처럼 말하고 떠났던 사람들
드디어 올바른 성경을 찾았다고 간증하고 성경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구원받은 건 맞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신실한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입으로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약속한 일들을 신실하게 지키지 못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목사에게도 신뢰를 잃고 성도들에게도 신뢰를 잃고 하나님에게도 신실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진실함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의 믿지 않음이 하나님의 믿음을 무효로 만들까요?"
내가 신실하지 못하다고 하나님도 신실하지 못할까요?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고 하나님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시는 분일까요?
(갈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느니라.
여러분!
아직도 여러분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도덕적 행위가 의로움을 유지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다시 태어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내 믿음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태어난 것은 내가 하나님께 한 내 다짐이나 내 약속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진심으로 다짐하고 믿겠다고 약속한 것이겠지만 그 진심어린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약속을 하셨고
아버지께서도 자신의 아들과 틀림없는 약속을 하셨고
하나님의 아들께서 아버지와 아들 두 분이
그 약속을 우리에게 틀림없이 이행 해 주겠다고 해주신 것입니다.
이 약속이 여러분을 자동으로 죄를 짓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 준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상태와 상관없이 그분들이 보장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아무렇게 살아도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그렇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넣어 주셨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명령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지옥으로 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는 구원의 안전한 보장을 해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안전한 보장을 믿고 거룩함을 위한 조롱과 핍박을 감내하며 낮아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적 본성은 교회에서 조차도 죄를 멈추지 못합니다.
우리는 결코 죄를 멈추지 못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은 내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하심이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신실하심이 크기 때문입니다.
(엡3:11) 이것은 곧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
(엡3:12)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믿음을 통해 담대함을 가지며 또 확신 있게 나아감을 얻느니라.
우리가 담대함을 갖게 된것은 내 믿음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담대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내 믿음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믿음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좋았다가 나빴다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때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합니다.
그런 내 믿음으로는 결코 확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담대할 수 있고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구원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루어진 사실이고 이 일은 이미 나에게 이루어진 것을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말하고 외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오늘 휴거가 일어난다면,
나는 공중으로 들려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서 그분과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지금의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하게 될 것이고
내 몸은 그분의 몸과 같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그분을 볼때 내가 그분과 같이 되어 있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매일을 그리스도인으로 성도로의 삶에서 형편없는 실패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일들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것이 내가 내 능력으로 내 실력으로 내 믿음으로 내 약속으로 보장해 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형제가 저에게 약속해 준것도 아닙니다.
그런 약속에대한 믿음은 확신해서는 안됩니다.
이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겠다고 약속해 주신 약속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나의 믿음이 아니고 그분의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으로 예수님을 얻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믿음이 여러분을 하늘나라로 들어가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천년왕국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 국가가 되는 것은 그들의 상태가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그들의 상태는 형편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그들의 상태가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상태에 따라 하나님의 일이 변경되거나 돌아서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제사장 국가로 세우시겠다고 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된 말씀을 존귀하게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축복과 저주는 기록된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계약을 계약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은행에 가서 "지금 가입하신 상품은 원금손실도 있습니다."에 동의하고 싸인을 하고도
원금손실이 되면 소리치고 아우성치고 국가는 어떻게든 보존해 주겠지.. 하는 정서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대하는 자세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스스로 아주 관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계약은 무서운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힘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미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올라가시면서 두 천사를 시켜 너희가 보는대로 내가 다시 돌아 올것이라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행1:11)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는 올리브 산 위에 설 것이고 그 산이 동과 서로 둘로 나뉘어 질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냥 주님의 말씀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시겠다고 하는 말씀은 담대히 믿고 말하면 됩니다.
사람의 주장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별볼일 없는 존재입니다.
이기심과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찬 죄만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죄많은 삶을 주님께 나와서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래 내가 너를 구원해 주겠다, 나의 의를 너에게 주겠다, 내가 십자가에서 치른 죄값으로 너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 나의 부활과 나의 생명으로 너에게 죽음과 지옥이 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내가 약속하고 보장하마"
그래서 여러분의 구원은 지금도 안전하게 보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구원에 항상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구원이 잃어 버릴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이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주님이 결정한 사항입니다.
그분이 제시한 방법대로 우리가 믿기만 하면 우리의 구원은 안전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된다고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다 이루신 일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르친 내용으로도 이것을 믿지 못한다면 더이상 잘 설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믿지 않기로 의지를 갖고 거부하는 것일 뿐입니다.
억지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면 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저나 다른 형제님들을 통해서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구원의 보장은 여러분의 믿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빌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빌3:8)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빌3:9)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신약교회에 편지하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즉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해주는데 필요한 믿음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에게 없다고 인정할 정도면, 여러분과 저에게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not faith in Chrits)
"하나님에게서 난 의"가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서(through the faith), 하나님에게서 난 의에 의해서(by faith)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 갑니다.
그리고 그분의 믿음을 통해서 구원의 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가서 얼굴도장 찍고 나혼자 구원의 문을 통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에게 온 다음에 너 혼자 아버지께로 가면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by me"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예수님하고 같이가서 예수님이 내가 데려온 사람이라고 해야 통과 되는 것입니다.
나 혼자 통과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얼굴보고 통과 시켜 주는 것입니다.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 같이 나를 통해서는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내 믿음만으로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께 가서 그분이 받아주시고 그 순간부터 영원히 그것을 아버지께서 의로 여겨주셔서 우리가 아버지께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우리가 아버지로부터 기쁨을 누리는 것은 예수님의 믿음으로 인해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내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알면 그분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협박이나 목사의 협박으로 지옥에대한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올바른 과정이 아닙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에게 더욱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시116:11) 황급히 이르기를,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
로마서에서도 언급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잠언을 보게 되면 조금 모순이 되는 구절이 보입니다.
(잠14:5)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나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하리로다.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나"
우리의 전제가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했다면 모든 사람이 거짓말 쟁이어야 하는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신실한 증인이 있다는 것은 위의 전제가 거짓이 되는 상황이 됩니다.
계시록으로 가보겠습니다. 놀라운 성경의 진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계1:5)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에서 우리를 씻으시고
"신실한 증인이시요" 이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경은 참으로 놀라운 책입니다.
우리가 그 놀라움을 알기에 너무 성경에 무지한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 하시 않으십니다.
신실한 증인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은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저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속고 삽니다. .. .
사람들은 여러분을 속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이 담대하고 싶으신가요? 확신에 찬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사람을 신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신뢰할 만한 사람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믿을 수 없는 사람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분의 말씀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그래도 그분의 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절대로 거짓말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주님 주님께서 성경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어둠 속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향하신 예수님을 보내주시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 어둠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돌봐주시고
육신적 고난과 영적인 전쟁에서 우리가 지치지 말게하시고
성경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