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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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
본문 : 요 14:13-14
2020-07-05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And whatsoever ye shall ask in my name, that will I do, that the Father may be glorified in the Son.
(요14: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구하라."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오늘날 기독교 성도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문하고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주문을 걸면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줘야만하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방금 읽은 요한복음 14장 13절과 14절을 여러분이 흠정역 한글 성경이 기록한 대로 읽어 보고, 다음으로는 영어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대로 읽어 보겠습니다.
<흠정역>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요14: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영어킹제임스>
(요14:13) 그리고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요14: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그리고 / And” 가 번역에 빠져있네요.
NIV 버전에도 “And”가 있습니다.
13절은 사실 영어로 보면 "그리고"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접속사입니다.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단어입니다.
13절의 “그리고” 앞에 붙어서 같이 움직이는 문장을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그리고”의 역할을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앞 절의 내용을 고려하지 않고 13절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결론 부분으로 미루고 욥기로 먼저 가보겠습니다.
욥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엄청 오래 전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 욥이 아주 간절하게 소망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욥의 소망
(욥9:32)그분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시므로 내가 그분께 대답할 수도 없으며 우리가 함께 재판을 받으러 갈 수도 없고
“그분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시므로”
욥은 사람인 자신과 하나님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도 사람과 소통하는데 실질적인 어려움을 갖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욥9:33)우리 사이에는 우리 둘 위에 손을 얹을 중재인도 없도다.
욥은 지금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대화가 통할 수 있게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중재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대화할때도 필요하고
사람이 하나님과 대화 할 때도 필요한 것입니다.
누군가 이 둘 사이에 서서
한 손은 하나님 위에 놓고 하나님과 소통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다른 한 손은 사람에게 놓고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서
그분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9:35)그리하시면 내가 말을 하고 그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나 일이 내게 그렇지 아니하도다.
욥는 내가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도 사람이 아니시기에
나는 하나님과 두려움 없이 대화하기 힘들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비의 문제
(딤전3:16)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기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이 말씀을 다시 풀어 말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지금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아주 매우 신비로운 이야기라서
여러분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듣게 되면 여러분이 믿든 안믿은
이 이야기를 거부나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신비로운 이야기 입니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현대역본의 문제
현대 역본들은 "그가 육체안에 나타나셨다"라고 번역된 성경이 많습니다.
이런 표현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씀이 됩니다.
(비교 개역성경)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우리 인간이 육체 안에 나타난 것은 전혀 신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실 것이 신비인 것입니다.
비밀도 아닙니다. 신비입니다. (NIV)
Beyond all question, the mystery of godliness is great: He appeared in a body, was vindicated by the Spirit, was seen by angels, was preached among the nations, was believed on in the world, was taken up in glory.
이 신비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언급하고 계시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이 부분을 감추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욥이 바라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욥이 뭐라고 이야기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실 수 있다면 내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
내가 하나님과 이야기 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지금 어떤 일이 있어났나요
욥이 바라던 그 일이 지금 벌어진 것입니다.
욥이 희망했던 그 일이 그 후 몇천년이 지나서
실제로 이 일이 우리 인간에게 벌어진 것입니다.
그분은 인간으로 오셔서 죄가 없는 완전한 삶을 사셨던 분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로 인해 죽으셨고,
묻히셨다가
죽음에서 일으켜 지셨습니다.
중재자가 계심
(딤전2:5)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딤전2:6)그분께서 정하신 때에 증언을 받기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느니라.
하늘에서도 계속 인간이심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자신이 성취해야할 하나님의 일들을 마치시고
인간이심을 멈추지 않으시고 하늘로 돌아가셔서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인 상태로 계속 계시면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한 손은 하나님에게 얹어 놓으시고 다른 한 손은 인간에게 놓고
한 분 중재자가 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길이고 그분을 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오지 못하느니라”
(요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성령님을 보내서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녀들에게
내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성령님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이다.
(요14:26)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욥의 소망이 지금 우리에겐 성취된 것입니다.
욥이 내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간구가 필요없습니다.
욥이 원했던 그 중재가가 우리에게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성령님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언제들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살아계신 예수님
(히7:23)그들이 참으로 다수의 제사장이었던 것은 죽음으로 인해 그들이 항상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로되
구약에 있던 제사장들은 지금 모두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있던 모든 구약의 제사장들 중에 훌륭한 사람이도 있었지만
그들도 다 죽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두 제사장 직을 맡았다가 죽음의 문제로 이 땅을 떠나고 없습니다.
(히7:24)이 사람은 항상 계시므로 변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소유하시느니라.
그러나 주님은 항상 계시고 변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다시 일으켜 지셨고 영원무궁토록 살아계십니다.(계1:18)
(계1:18)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가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행3:6)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당시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신 후 대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셨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기도하면
그 기도는 하늘에 계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전달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기도는 하나님께로 전달하게 됩니다.
이 천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한 대제사장께서 하늘에서 일 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주님에 의해서 하나님께 전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은 이 천년 동안 변함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천년의 경험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천년 동안 인간의 기도를 들어오셨고
그들이 어떤 기도를 하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경험이 풍부하십니다.
(히7:25)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의 지금 역할은 중재자 입니다.
여러분이 정확히 이해하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일을 이미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인해 드려질 희생물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일을 마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통치자가 되셔서 통치하실 분이십니다.
주님은 주 중에 주 이시고 왕 중에 왕이십니다.
하지만 이일은 아직 때가 안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일정이 있으십니다.
오늘 주님의 일정상 우리에게 하고 계시는 일은
우리와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일하게 하시고자 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을 대신해서 중보해 주는 일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 왕국을 세우고 계시지 않습니다.
지금은 주님께서 그 어떤 것도 창조하는 일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의 죄로 인해 죄값을 치르고 계시지도 않으십니다.
주님이 살아계시다고 말씀하고 계시고 실제로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셔서 그의 모든 시간을 채우고 있는 일은
여러분을 중보하고 저를 중보하는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을 누구가와 이야기 하고 싶다면
예수님과 이야기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예수님이 전념하고 계시는 일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는 일 입니다.
아무 댓가 없이 여러분의 이야기를 하루 종일이라도
들어 줄 수 있는 분은 예수님 외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이야기 하기 위해서
번호표를 뽑을 필요도 없고 줄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한 밤중에도 새벽에 자다가 일어나서도
주님께 말씀하시면
주님은 긍휼과 은혜와 사랑으로 여러분을 대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궁금한 것이 있다면 녹색창에다 먼저 하지 마시고
주님께 먼저 말씀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으로 수 많은 사람과 소통을 하고 있지만
여러분에게 가장 유익한 응답을 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친구나 지인 중에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주세요!
아무때고 전화 주시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정말 아무 때나 연락하면 도와 줄까요?
예수님은 정말 도와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하늘에서 대제사장이 되시고
한 중재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이야기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보다 더한 축복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유익한 방법을 제공해 주고 계시는 겁니다.
24시간 언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언제나 나와 이야기 나누어주시는 주님 이십니다.
알아서 중보해 주시는 주님
(롬8:26)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이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영적 상태가 좋을때든 나쁠때든
사실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올바른 것을 구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지금 로마서 8장 26절의 말씀은
우리가 그런 걱정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태를 너무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만큼 멀리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뭘 구해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너희들이 내가 알고 있는 것 만큼 알고 있었다면
그것을 구하지 않고 이것을 구했을 것이다.
너희들이 내가 볼수 있는 만큼 멀리 볼 줄 알았다면
그것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도 모릅니다.
너희들이 구하는 것 중에 몇가지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면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진심으로 나의 필요를 잘 알고 계신다면,
주님께서 내가 구하는 것을 알아서
뺄거 빼고 전달해 주시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것이 아닐까요?
응답받지 못한 것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구한 것 중에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은 것이 있어서
섭섭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그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보다 지혜롭고 현명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분을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멀리 보시기 때문에
지금 바로 응답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기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그대로 주시면
우리의 삶이 그것때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중재자 이십니다.
성령님께서도 우리의 중재자 이십니다.
이 두 분은 하나님의 도움을 원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함께 일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어떤 것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하나씩을 들어 줄테니 구하라고 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일주일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수 없고
한달 뒤, 일년 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필요하다고 구한 모든 것은 정말 여러분에게 유익한 것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생길지 몰랐습니다.
코로나가 생길지 몰라서 여행 계획을 하고 돈을 결재했습니다.
코로나 전에 사업계획을 하고 사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원망했던 분들 중에 그때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게 막아주신
주님께 지금 오히려 감사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결과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인지 잘 모릅니다.
여러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우리 모두
그런 연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알아서 잘 선별해 주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상태에 상관없이 우리의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시면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올린 기도들을 잘 선별해서 하나님께 전달해 주실 것입니다.
(벧전5:7)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어떤 간구가 아버지 하나님께 전달할 가치가 있는지
어떤 것이 필요없는 기도인지 주님께서 구별해 주십니다.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선별해 주신다는 겁니다.
우리는 주님께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모든 답을 알 고 있는 것처럼 기도하고
내가 올린 기도는 하나님이 다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마치 하나님께
"당신이 나를 위해서 해야할 목록입니다"라고
자기 생각을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경멸하는 행위나 마찬가지 입니다.
마치 산타할아버지에게 자신이 갖고싶은 목록을 제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받지 못하면
산타 할아버지에게 화를 내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완전하고 의로운 목록을 제대로 만들었다고
자신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 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무엇을 구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잘못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4:3) 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그것을 너희의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우리가 잘못 구한 것은 주님께서 목록에서 빼고 응답해 주지 않으십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다 주시기 않는 이유가 명확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대부분의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대부분의 것은 나의 관심사일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의 소망일 뿐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중재자로 나의 기도를 걸러주심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7장 주님의 기도를 보겠습니다.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가 아니고 주님 본인이 하신 기도입니다.
(요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니이다.
(요17:15) 나는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기도하지 아니하오며 다만 그들을 악에서 지켜 주시라고 기도하나이다.
(요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나이다.
(요17:17)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
(요17:19) 또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내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오니 이것은 그들도 진리를 통해 거룩히 구별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주님은 자신의 공생애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과
자신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17:20) 내가 이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로 인하여 나를 믿을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오니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고 계십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계속해서 더 나아가 앞으로 나를 믿고 따르게 될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저는) 육신적 한계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누군가 저에게 기도를 부탁한다면
저는 가능한 빨리 그 기도제목을 받자 마자 눈을 감고 기도를 합니다.
왜냐하면 나도 제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 들로 시간을 보내다 그 기도를 잊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기도를 부탁할때는
그 문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저에게 오면
저에게는 여러분 입장에서 만큼 중요한 문제로 여겨지지 못합니다.
여겨 질 수도 없습니다.
하루 일과를 보내고 여러분의 기도제목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되면
여러분이 부탁한 기도 제목과 내용이 알쏭 달쏭해 집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제 기억력이 좋아서 여러분의 기도요청 내용을 다 기억하고
기도한다고 해도 아마 제가 기도하는 내용이
여러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도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의 한계로
여러분의 깊은 사정을 서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 육신적 한계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만큼 기도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간적으로도 충분하지 못하고
중요성이나 간절함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저도 하루종일 기도만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아내나 자녀나 부모님이라도
그들이 여러분을 위해서 아무리 많이 기도한다고해도
여러분이 자신의 문제를 대하는것 만큼
충분히 기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지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나의 문제에 대해서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기도해주실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한번에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할 충분한 시간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한 시간짜리 기도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나를위해 한 시간을 기도해 주실 것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시간을 내어 주실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도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듯이 우리도 서로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형편을 살피고 서로의 필요를 위해서
시간을 내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낮은마음 침례교회 성도가 100명이 넘으면
100명의 이름을 다 부르며 기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설교준비도 해야하고
집안일도 해야하고 돌봐야 할 가족이 있고 사업이 있고,
여러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분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자매들아 그래서 내가 있단다..”
“그 일을 모두 나에게 가져오거라!”
“내가 지금 할 일은 너희들의 간구를 중재하는 일이 전부란다…"
“내가 기꺼이 너희를 위해서 기도해 주겠다…”
“내가 기도할 수 있게 나에게 다 가져 오거라..”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우리교회 목사님이 기도해주신다고 했어요.. 다음에 부탁할께요.. ^^"
"교회 게시판에 긴급기도요청이라고 글 올렸어요..
다음에 부탁드릴께요.."
예수님이 지금 무엇을 해 주실 수 있는지 잘 모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기도제목을 나누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도요청할 것이 있다면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기대하는 만큼은 아닐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끔 잊어버리기도 할 것도 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님은 저와 같지 않기때문에 주님께 기도를 올려 놓으셨다면,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갖고 계시고
우리보다 더 많은 지혜를 갖고 계시는 분이
여러분보다 더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실 것입니다.
제가 함께 하는 기도는 지체를 향한 섬김으로 받아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로 여러분을 섬기고
여러분도 저와 다른 지체들을 기도로 섬기셔야 하는 것입니다.
갖고 싶은 것을 기도하는 우리
우리는 대부분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님 저는 저 자동차가 갖고 싶습니다. 저 컴퓨터가 갖고 싶습니다.
주님이 하고자 하시면 주님은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심을 압니다.
주님이 저 자동차를 갖게 해주시면 저 차를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이런 여러분의 기도를
주님께 전달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저 사람은 지금가지고 있는 차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번에도 이런 저런 요구를 하면서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겠다고 요청한 적이 있는데
기도를 들어 줬더니 주님을 위해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번에 월급을 더 받을 수 있게 해줬더니,
주로 술마시거나 게임하는데 다 사용했습니다.
라고 보고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이 기도한 것보다 더 멋지게 전달하십니다.
여러분이 이런저런 간구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그 기도를 전부 취합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과거 기도로 요청했던 것들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조사를 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리해서 주님께 전달할때는
여러분이 기도했을때와는
엄청 다른 내용으로 정리되서 전달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걱정하지 말고 간구하십시오.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고 간구하시면 됩니다.
성령님과 주님을 믿고 진심을 담아 여러분의 필요를 간구하십시오.
주님께서 기록된 주님의 말씀의 원칙에 합당하게
뺄것 빼고 고칠것 고쳐서 여러분이 간구했던 것 보다
더 여러분에게 유익하게 만들어서 전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알지 못하지만
읽어 봤더라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너무도 잘 알고계시는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과 원칙에 합당하게
여러분을 위해서 간구해 주실 것입니다.
남은 생을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주님 지금 이 고난을 넘길 수 있게 해 주시면
제 남은 생애는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이 고난을 넘어가도
주님을 위해서 살지 않을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그런기도를 너무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시해서
진심을 담아서 마음을 담아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공중 화장실에 휴대폰이나
다이아 반지를 놓고 깜박잊고 나왔을때
다시 찾으러 가면서 기도할 것입니다.
"주님 제발 제 반지가 화장실에 그대로 잊게 해주세요.
제 기도를 들어주시면 이제부터 주님을 위해서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놓고 간 반지가 그대로 놓여 있다면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10분만 지나도 자신이 뭘 기도했는지도
모르고 다 잊어 버릴 것입니다.
(요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요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며 또 보았느니라, 하시니라.
(요14:8) 빌립이 그분께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그리하면 우리에게 족하겠나이다, 하니
(요14: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14: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내가 스스로 하지 아니하느니라. 오직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 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하시느니라.
(요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내 말을 믿으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바로 그 일들로 인하여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내가 하나님 이라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일을 보면 믿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한 일이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14:12)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또 이것들보다 더 큰일들도 하리니 이는 내가 내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
"나를 믿는 자는 또한 내가 하는 그 일들을 할 것이요,"
내가 한 그 일들이 무엇일까요?
그 일은 믿지 않는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길 원하고 계시는 걸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자들에게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더 큰일들도 하리니"
우리가 더 큰 일을 하게 된다고 하면서 그 이유가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이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그분은 육체안에 계셔서
그분이 하신 일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 번에 한 곳에만 계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때는 한 지점의 시점에
한 마을의 한 장소에서만 말씀을 선포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동시에 전 세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은 역사가 더 많은 지역에서 더 큰 규모로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내가 예수님보다 더 크고 위대한 일을 하게 되었다고
이해하시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일으켜 지셨습니다.
어떻게 어려분이 이 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믿는 성도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이
더 넓고 큰 규모에서 주님의 일이 일어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오직 한 가지 입니다.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통해서 이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문제를 이야기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로 나타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주 구체적으로
이 문제에 제한되어서 기록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요14: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
만일 여러분이 14절 만 뽑아서 주님의 말씀을 왜곡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될 것입니다.
제가 예를 들어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해보죠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제가 오늘 멋진 설교를 할 수 있게 해 주시기 원합니다.
그 누구도 들어본적이 없는,
다른데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설교를 할 수 있게 해 주시기 원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한 민국에서 최고의 설교자가 되게 해주시길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이 기도가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기도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이 이런 기도가 주님의 말씀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들어주시기 않는다는 것은
이미 오늘 충분히 이야기 했습니다.
이해가 안가신다면 다시 동영상으로 들으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기도한다면 어떨까요?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드립니다.
오늘 설교가 잘 전달 될 수 있게 도와주시길 원합니다.
제가 오늘 준비한 설교가 부족하더라도, 주님께서 도와주셔서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심을 알게 해 주시기 원합니다.”
이 기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에 따라 기도한 것입니다.
주님이 알려준 방향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설교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너무 길지도 모르고 너무 짧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일주일이면 무슨 설교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다 잊은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가슴에 무언가 새겨 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그분을 가지는 것이
세상에 그 어떤 것 보다 좋은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의 마음에 남겨 놓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갖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영광과 존귀함이 드러나길 기도한다면
반드시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지나고 나면 여러분들은
다시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내가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세상 사람들에게 내 능력을 보일 것을 각오하고 이렇게 다짐한다면,
"다른 사람은 부끄러워 할지 모르지만 나는 담대하게 나가서
복음을 전해서 내가 신실한 성도임을 드러나게 해주시길 원합니다.”
라고 기도한다면
이런 기도는 대기권도 뚫지 못하고 떨어질 것입니다.
"주님 다음 한 주를 살아가는 동안 주님이 주신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원합니다.
그들에게 주님이 창조주이시고
주님이 구원자 이심을 알려줄 수만 있다면
조롱과 멸시도 참아내개 해 주시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주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과 14절을 아주 구체적인 사안에 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나는 세상이 내가 육체로 나타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기를 원한다.
너희들이 세상에 나가서 이 사실을 알려주기를 원하고 노력한다며,
나에게 요청하거라 그러면 내가 그 일을 도와서 함께 하겠다.
그 밖에 하나님께 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분께 아뢰십시오.
그 밖에 하나님으로부터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분께 아룁십시오.
그리고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것만 주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올바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주님이 응답해 주시 않으시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응답해 주시 않으셨다고 화낼 일도 없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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