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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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게으름에대한 경고
본문 : 잠 18:9
2020-05-31
(잠18:9)자기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또한 크게 탕진하는 자와 형제니라.
가지고 있는 것을 탕진하는 것이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게을러서 이핑계 저핑계로 차버리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잠12:24)부지런한 자의 손은 다스릴 것이나 게으른 자는 공세를 바치리라.
다스릴 위치에 가는 것은 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만 대장이 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지런하게 손을 움직여야 다스릴 위치에 갈 수 있습니다.
(잠21:25)게으른 자의 손은 수고하기를 거부하므로 그의 욕망이 그를 죽이느니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는 자는 게으른 자입니다.
게으른 자는 일 할 수 없는 수 많은 이유를 댑니다.
다른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벌어 놓으면 배가 아파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일하기를 거부한 것은 인정하지 않고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합니다.
나에게는 부자 부모가 없어서 그렇다든지,
나도 장사꾼 부모가 아니라 교수 부모가 있었다면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었겠다든지,
게으른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불평합니다.
나도 저 사람처럼 좋은 환경에 있었다면 좋을텐데 하면서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합니다.
저 사람은 부자 부모를 만나서 그렇다고 이야기 하거나
저 사람은 아버지가 고위 공직자라서 그렇다거나,
수 많은 이유를 댑니다.
평생 억울해 하다가 죽습니다.
손과 발을 움직여서 수고하고 노력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만을 불태우며
한평생 원망만 하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나도 너처럼 먹고사는 걱정 없으면 교회에 열심히 다녔을거야!!
정말 그런가요?
이런 사람들은 평생 불평만 하고 삽니다.
다른 사람의 조건이 내가 게을러도 된다는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조건이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부지런하다고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지런하면 다른사람에게 신세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아 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부지런히 일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불평할 시간이 있으면 가서 열심히 일하는게 유익합니다.
(잠22: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거리에서 죽임을 당하리라, 하느니라.
주님을 위해서 일하십시오…
- 바깥 거리에 사자가 있습니다.
- 사자가 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주유소에게 알바라도 하십시오.
- 주유소에서 기름냄새 맡으면 건강에 안좋대요!
부지런하게 일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일할 수 있는 기회만 주어져도
열심히 일하는데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와도
일할 수 없는 상황들만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부지런하게 일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집에서 빈둥거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황사가 있어도 나가서 일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나가서 일하고
코로나의 위험이 있어도 나가서 일하는데
그리스도인이
아무 합당한 이유없이 집에서 빈둥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무더위때문에 못나갑니다.
나가서 일하는 사람은 뭔가요?
(잠26:14)문짝이 자기의 돌쩌귀 위에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도 자기 침상 위에서 도느니라.
문짝은 열렸다 닫혔다 하면서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움직입니다.
게으른 사람도 이쪽으로 누워서 티비보고
조금 있다 반대로 누워서 티비를 봅니다.
게으름 이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게 될 것입니다.
게으름이란 교회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게으름이란 국가는 망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게으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쉴 틈없이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땅의 모든 사람의 머리카락 수를 세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땅의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때에 맞춰 계절이 다가오게 하고 있습니다.
때에 따라 비를 내려주시고
땅이 기름지게 하시고 햇볕으로 열매를 무르익게하십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혼을 찾아 구원받게하시고
그들을 먹이시고 필요를 채우시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게 된다면
결코 게으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결코 나태한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동트기 한참 전에 일어나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가 모자를 정도로 바쁘셨기 때문입니다.
군중들이 쫓아 다녀서 쉴 틈이 없었고 제자들을 먼저 배로 보내고
자신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마자 폭풍우를 만나 제자들을 구하러 바다로 향하십니다.
사복음서에서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나태한 모습이나
게으른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주님이 그냥 집에 계셨다고 기록할 수도 있었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이 목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결코 게으르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목수로 성장하셨습니다.
(막6:3)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세와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니냐? 그의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그분으로 인해 실족하니라.
주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게으름의 주제는 여러분이 가족을 부양하기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쪽도 중요하지만 영적으로 주님을 위해서 게으르면 안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합니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도 주님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는 일주일 법정 근로시간이 40시간입니다.
과거 어느 때 보다도 일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전후 복구 시대는 말할 나위 없었겠지만
조선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일하며 살았을 것은 분명합니다.
(전10:18)¶ 심한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건물이 썩으며 손이 놀므로 집이 뚫려 새느니라.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집에서 살고 있을 겁니다.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건물이 있을 겁니다.
성도 여러분에게는 교제할 수 있고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당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들은 스스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건물은 스스로 청결을 유지하지 않습니다.
건물이 스스로 자신을 보수하지 않습니다.
건물은 스스로 좋은 인테리어로 탈바꿈하지 않습니다.
이 건물은 누군가 수고해야지 유지될 수 있습니다.
고장나면 누군가 고쳐야 합니다.
누군가는 고장나지 않도록 미리 관리를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언젠가는 건물은 무너져 내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영적 생활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것도,
여러분의 경력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같은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에게 관리해야할 무엇인가가 주어졌다면,
그 일을 여러분에게 맡기신 분이 하나님이든 사람이든
여러분은 책임있는 관리자로 그것을 관리 보수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생기고 결국 무너지고 부서져서
그 기능을 복구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처음부터 거짓말로 지어진 집입니다.
혼돈에서 갑자기 질서를 말하기 시작하고
무질서한 생태계가 어느 순간 종류별로 관계도를 만듭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처음부터 만드시고 좋았다고 하셨고
또 만드시고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처음부터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 목적에 맞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만드신 것은 점점 낡아지게 만드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회를 관리 유지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점점 붕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기도생활은 망가질 것입니다.
교회재정도 여러분이 관리하지 않으면
계획있게 건전하게 재정을 운영하기 어렵게 될 것이고
재정은 언젠가 부도가 날 것입니다.
교회가 스스로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지금 읽은 잠언에서는 건물 즉 견고하고 딱딱한 건물이
그 건물의 주인이나 관리자가 게을러서 관리하지 않으면
그 건물에 구멍이 나고 망가지고
나중에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건물은 누군가 폭탄을 투하하지 않아도
시간이 가면 점점 낡아지고 무너집니다.
그것은 지극히 자여스러운 자연의 법칙입니다.
(잠24:30)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명철이 없는 자의 포도원 곁을 지나갔는데
여기 등장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밭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포도를 키워서 포도열매를 얻을 수 있는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잠24:31)보라, 그것이 다 가시덤불로 덮여 있었고 그것의 표면이 쐐기풀로 뒤덮여 있었으며 그것의 돌담이 무너져 있었으므로
지금 상황은
계시록에 등장할 법한 전염병이 덮쳤거나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져서
하루밤 사이에 아름답고 열매와 과일이 가득했던 농장이 사라지고
가시덤불로 덮힌 것이 아닙니다.
아니면 아름다웠던 농장이 어느날 갑자기 늑대가 밤사이에 담을 넘어오고
멧돼지가 담을 무너뜨리고 밭을 쓸고가서
밭이 망가지고 남아 있는게 하나도 없게 된 것이 아닙니다.
아니면 밤사에게 커다란 코끼리 때가 들어와서
짓밟고 가서 밭과 농장이 엉망이 된 것도 아닙니다.
다음 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잠24:32)그때에 내가 보고 그것을 매우 깊이 생각해 보았으며 그것을 바라보고 훈계를 받았느니라.
(잠24:33)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자자, 하면
(잠24:34)네 빈궁이 여행자같이, 네 궁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로다.
성경은 밭이 이렇게 엉망이 된것은 그 밭의 주인이나 관리자가
좀더 자고 좀더 졸고 하는 것만으로
여러분의 안식처가 원수들이나 짐승들이 짓밟고 간 것 이상으로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나태함과 게으름 때문에 군사가 쳐들어 온 것 이상으로
벽이 무너지고 밭이 망가지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좀/little”이라고 표현되었는지 아시나요?
집이 망가지는 것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망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문고리의 손잡이가 덜그덕 거립니다.
그러면 그때 빨리 손잡이의 조이는 부분을 조여주면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지 뭐! 하고 그대로 놔두면
손잡이가 덜그럭 거리면서 손잡이 부분의 구멍은 점점 망가지고
나중에는 문짝을 갈아야 할 정도로 망가지게 됩니다.
한 번에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조금 있다가… 하자…
내일부터 .. 하자…
그렇게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성취해 가는 것도
조금씩 조금씩 성취해 나가야 합니다.
한 번에 큰 돈을 벌려고 꿈꾸는 사람은 큰 돈을 벌기 어렵습니다.
작은 돈을 아껴서 모으는 사람이
그 작은 돈이 조금씩 조금씩 모이고 모여서 큰 돈이 되는 것입니다.
운동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팔굽혀 펴기는 10개도 못하는 사람이
한 번에 100개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10개부터 한 개씩 두 개씩 개수를 늘려 갈 때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근육통증이 생길 것입니다.
근육통이 생겼다고 포기하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 통증을 이기고 운동양을 늘려갈 때 목표에 도달하게 됩니다.
도달한 목표를 유지하려면 방심하지말고 지속적으로
일정량의 운동을 계속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방심하고 이제 쉬었다가 내일부터 다시 운동해야지 하면서
하루 미루고 이틀 미루면
다시 체중이 불고 근육 손실이 누적되면 다시 복구하기 힘들어 집니다.
거짓과 타협하는 것도 조금씩 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도 한 번에 모든 일에서 손을 놓고 게을러지지는 않습니다.
그저 지난번보다 조금 게을러 지고 싶어질 때가 올 수 있습니다.
“내가 교회생활을 완전히 멈추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오후 예배만 빠졌으면 합니다.”
교회 생활은 점점 느슨해지고 성도간의 교제는 점점 줄어들고
결국 자신은 교회에서 존재감이 사라지고,
신앙생활은 엉망이 되게 됩니다.
어느덧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 인지
교회를 위해서 신앙생활을 해주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상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준을 조금씩 낮추고 느슨해지기 시작하면
그 조금의 차이는 결국 많은 차이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조금의 연속이 결국 많은 차이를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little)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지금 이자리에 있는 성도들도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서
낮은마음침례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 생활의 변동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
이사를 가야해서 떠날 수 있고,
멀리있던 가족과 합치기 위해서 다른 곳의 교회로 떠날 수도 있고
우리의 수명이 다해서 주님이 부르면 이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만약 여기 있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고
잃어버린 혼들을 이겨오지 않는다면
언젠가 이 교회는 텅비어있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언급한 무너진 돌담은 지진때문에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폭탄이 터져서 무너진 것도 아닙니다.
트럭이 달려와서 부딪힌 것도 아닙니다.
무너진 부분의 첫 번째 돌이 흔들거리기 시작했을 것이고,
그때 그저 무심히 작은문제로 여기고 방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완전하게 고쳐놓을 생각을 안하고 그저 흙이나 조금 매꿔서
임시로 고정을 시켰을 것입니다.
그렇게 세 개 네 개 돌이 흔들리다가 어는 임계점이 넘어가면
전체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롬12:9)사랑에 꾸밈이 없게 하라. 악한 것을 몹시 싫어하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
(롬12:10)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친절하게 애정을 가지고 서로 먼저 존중하며
(롬12:11)일을 게을리 하지 말고 영이 뜨거운 가운데 [주]를 섬기며
(롬12:12)소망 중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늘 절박하게 기도하고
(롬12:13)성도들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
사랑하고, 친절하고, 존중하고, 소망하고, 인내하고, 기도하고, 나누어주고,
성경에서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게으르다면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을 게을리 하지 말고”
여러분이 어느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던 어떤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하던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너무 하찮아서 열심을 다해 일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크게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히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주어진 작은 일들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목사가 되겠다고 생각하거나 선교사가 되겠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고 주님께 하듯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큰 일을 맡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자신의 사업을 하고 싶다면
그 일에서 직원으로 열심히 일해봐야 합니다.
그런 경험이 없이 회사를 스스로 경영한다면
실패 할 확율이 높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꽃을 좋아 한다고 꽃을 파는 가게를 한다면 도움은 되겠지만
꽃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꽃을 파는 장사를 하면 망하기 십상입니다.
꽃가게에가서 궂은 일부터 하나 하나 배워나가면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되어 보고 나서 꽃가게 사장을 해야
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궂은 일은 싫고 부모 돈으로 장사를 시작하면 망합니다.
여러분이 직장을 다니는 것은 여러분으로 인해서
그 회사가 돈을 벌수 있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다니는 것입니다.
직장을 여러분을 돕는 곳으로 인식해서는 안됩니다.
직장에서 게으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누군가 교회에서 아무일도 하지 않고 설교하는 목사의 단점만 찾아내고
내가 설교하면 더 잘하겠다고 불평만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목사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목사가 되고 싶다면 목사가 마땅히 해야할 작은 일들을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실 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교회에서 그저 손님으로만 앉아서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아무 유익도 만들어내지 못할 사람을
중요한 위치에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눅19:17) 그가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선한 종아, 네가 매우 작은 일에 신실하였은즉 열 도시를 다스릴 권세를 차지하라, 하니라.
“매우 작은 일”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아주 작은 일에 신실하길 원하십니다.
나에게 일억이 있으면 내가 금방 부자 될텐데.. 하는 생각은
게으른 자의 변명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 하는 세상 사람들도 그들의 일터에서
누구보다 더 성경적으로 일하고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을 고용해준 회사와 경영주를 위해서 주말을 포기하고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회사를 위해서 사용하고
자신에게 일자리를 준 회사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희생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놀것 다 놀고 자신이 먹을거 다 챙겨먹고 하면서
주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물로 드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시고 모든 풍요로움으로
상속권자가 되게 해주신 분을 위해서 희생을 보여주지 않고
그저 관찰자로만 참여한다면
하나님이 그런사람을 중하게 사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큰 꿈을 꾸며 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자신을 크게 사용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쓰레기통 하나 비우는 일에도 수고하지 않으면서
그저 큰 꿈만 키우고 있다면
하나님도 세상 사람도 그런 사람을 중하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보는 눈이 있습니다.
예배시간에도 매일 늦는 사람에게
오후 설교시간을 맡겨달라고 하면 맡길 수 있을까요?
(히6:11)우리는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열심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충만한 확신에 이르기를 바라노니
(히6:12)이것은 너희가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인내를 통해 약속들을 상속받는 자들을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
성경 속 사도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이끄심에 따라 그분의 명령대로 몸을 움직여서
주님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 속 사도들은 우리에게 이리와 앉아서 무엇이 주님을 위한 일인지
한번 생각해보자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주님을 위해서 그분의 명령대로 일하러 나가려고 합니다.
저와 같이 그 일에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할 사람은 저를 따르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주님을 위해서 무언가 할 일이 있을 겁니다. 우리 여기 같이 앉아서 그 때를 기다립니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는 “나는 지금 주님의 일을 할 것입니다. 함께 하시겠습니까? 그럼 같이 갑시다. 원하지 않습니까? 그럼 나중에 봅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붙잡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신앙생활이 그저 교회에서 손님으로 관중으로 관찰자로만 남아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각자가 작은 일이라도 찾아서 무언가 맡아서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습니다.
뒤쳐진 사람들이 다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앞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일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하는 것입니다. 게으르지 말라
열심을 내어 상속받는 자들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안따르면 안따른 사람이 손해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할 땅시에 바울은 지난번 무슨 일인지 언급은 없지만
마가로 인해서 일이 지체되었던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가와 같이 가지 않기로 합니다.
바울은 전도여행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일초의 지체도 허락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일로 인해서 해야할 일을 멈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성도는 교제가 풍성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한 사람은 정작 일주일에 한 번있는 예배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예배도 잘 나오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풍성한 교제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해볼 수 있을까요?
사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교제는
세상 이야기로 수다떠는 것을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들은 성경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교회에서 정치이야기나 드라마 이야기로 밤늦게 까지 떠들면서
자신들은 교제 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게으름으로 교회가 망가진다!
(삿18:9)그들이 이르되, 일어나 우리가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보았는데, 보라, 그것이 매우 좋으니라. 너희가 가만히 있느냐? 가서 그 땅을 소유하러 들어가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왜 약속된 땅을 전부 차지하지 못했는지 아시나요?
그들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왜 약속된 땅에서 적들을 모두 내쫓지 못했는지 아시나요?
그들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왜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을 위한 전쟁을 하면서
1년이면 끝날 전쟁을 수세기에 거쳐서 해야 했는지 아시나요?
그것은 그들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왜 여러분의 죄를 여러분의 삶에서 하루 빨리 제거하고
회개하지 못하는지 아시나요? 너무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싸우다가 조금 쉬고 잠시 멈췄다가 다음으로 미루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다시 육신적인 삶으로 복귀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것을 미루기만 합니다.
에스겔 16:48로 가보겠습니다.
여러분 소돔 사람들이 동성애자가 된 원인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이들이 동성애라는 성적 범죄를 일으키기 전에
이들 문화속에 이미 죄로 이어지는 잘못된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잘못된 것의 결과가 동성애라는 범죄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겔16:48)[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자매 소돔 곧 그녀와 그녀의 딸들은 너 곧 너와 네 딸들이 행한 것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겔16:49)보라, 네 자매 소돔의 불법은 이것이니 곧 그녀와 그녀의 딸들 안에 있는 교만과 빵의 풍족함과 게으름이 많은 것이라. 그녀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손을 강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성경은 소돔의 범법은 남자가 남자와 눕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소돔의 범법은 여자가 여자와 눕는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들의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너무 풍족해서 먹을 것도 많고 돈도 많고
그래서 남는 시간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남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용납할 수 없는 것들로
채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은 시간이 너무 남아서 지루해지기 시작하자
그 시간에 점점 추악하고 변태적인 것들로 점점 채워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의 죄는 동성애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죄는 게으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바쁜 사람은 죄를 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볼 시간도 없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다른 사람의 죄를 판단하고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안하면서 다른 사람이 뭘 안하는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사람들은 모여서
다른 사람을 험담하면서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킵니다.
시간이 남으면 사람들은 모여서 음담패설을 합니다.
자신의 음행을 자랑하고 이들은 더욱 더러운 것들에 욕정을 불태우게 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됩니다.
대한 민국을 망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일하지 않고 여가를 보낼 시간을 점점 늘려주면 됩니다.
그리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여가를 즐길 돈을 주는 것입니다.
돈을 주는데 저축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는 자들에게 음식과 돈을 주고
그들이 일하러 갈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하지 않고도 클럽에 갈 수 있는 복지를 누리는 세상에 살게 됩니다.
나라의 담은 무너지고 일할 터전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경제를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점점 게을러 질 것이고 그로인해
부패하는 길을 가속화 시킬 것은 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되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소돔이 동성애의 죄를 범하기 전에 이들은 풍요속에서
게을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죄는 동성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의 죄는 남는 시간과 게으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게으름은 사람을 부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겔16:50)또 그들이 거만하여 내 앞에서 가증한 짓을 행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선하게 여긴 대로 그들을 제거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놀랍고 두렵지 않으신가요?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 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인권을 이야기하고 성 소수자들의 취향을
존중해야한다고 말하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31: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겠느냐? 그녀의 값은 루비보다 훨씬 더 나가느니라.
(잠31:11)그녀의 남편의 마음이 그녀를 편안히 신뢰하므로 그가 노략물을 필요로 하지 아니하리라.
(잠31:12)그녀는 자기 평생 동안 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리라.
(잠31:26)그녀는 지혜를 가지고 자기 입을 열며 자기 혀 속에 친절의 법을 두고
(잠31:27)자기 집안의 길들을 잘 살피며 게을리 얻은 빵을 먹지 아니하나니
잠언 속의 이 현숙한 여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여인은 게으르지 않습니다.
그 결과로 이 여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남편에게 복이되고 있는 것이고
그녀의 자녀들에게 복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그 마을에 복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은 게으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딤전5:11)그러나 젊은 과부들은 거절하라.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방탕하기 시작할 때에 결혼하리라.
(딤전5:12)그들은 자기들의 처음 믿음을 내버렸으므로 정죄를 받느니라.
(딤전5:13)또한 그들은 게으르게 지내는 것을 배워 집에서 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수다쟁이와 참견하기 좋아하는 자가 되어 자기들이 마땅히 말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말하나니
젊은 과부들이 왜 수다떠는 시간이 있는지 아시나요?
이들은 전혀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전혀 누군가를 섬기고 열매맺는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이들이 참견할 시간이 있는지 아시나요?
이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가르치는데 게으르고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전하는 일에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잠언 31장의 여인이 현숙한 여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현숙한 여인일수 있는 것은 그 여인이 게으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5장의 여인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방탕한 이유는
그녀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나는 주님을 부지런하게 섬기고 싶은데
나는 그렇게 부지런하게 주님을 섬기기 힘들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부지런하게 섬기고 싶다는 그 마음이 진실이라면
그냥 주저 앉아서 못할 이유를 찾지 말고 한번 해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여러분이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면
“나는 팔굽혀 펴기를 백 개는 못 할것 같아”라고 하면서 주저앉지 말고
한 개부터라도 시작해 본다면 처음에는 근육통이 오겠지만
언젠가 목표를 성취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처음에 못할것 같다고 말한것이 미안해 질것입니다.
게으름에 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명령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순종하면 부지런함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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