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꿈, 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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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꿈, 나의 꿈
본문 : 행 9:6
2020-06-07
(행9:6) 그가 떨며 놀라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도시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사도바울이 다마스쿠스에 상에서 주님을 만났을때
일어난 장면입니다.
바울의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삶의 방향에 커다른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주님을 만나게 되자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는지를 알고자 합니다.
주님은 바울이 주님의 일을 이루어 줄 준비가 된 것을 아시고
주님이 그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일을 알려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났다면 우리의 삶은 내 꿈이 아니라
주님의 꿈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주요 인물을 몇 사람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다루시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의 삶
다윗은 성경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왕좌와 관련된 중요한 인물입니다.
다윗의 삶을 먼저 들여다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세 번의 기름부음을 받게 하십니다.
1. 베들레헴에서 : 양을 치다가 와서 받음
2. 헤브론에서 유다지파 장로들에게 받음 : 사울이 죽은 뒤
3. 이스라엘 왕의 기름 부음을 받음 : 아브넬에 의해 넘겨짐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이 땅에 이루고자하는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 계획, 즉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다윗을 통해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런 일에서 하나님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십니다.
이 과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사용되는데
첫 번째는 다윗이 계획한 왕의 자리에 합당하도록
다윗을 훈련시키고 다듬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두 번째는 다윗이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백성들에게 보이고
그들이 왕으로 그를 인정하고 따르게 만들기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해 만들어지는 왕국은
다윗이 주체적으로 만든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1 번째
다윗이 처음 기름 부음을 받을 때
(삼상16: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이들이 다 여기 있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보소서, 그가 양들을 지키나이다, 하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에 오기 전까지 우리가 앉지 아니하리라, 하니
(삼상16:12) 그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는데 이제 그는 혈색이 좋으며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고 보기에 잘생겼더라. 주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이 그니 일어나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 하시니라.
(삼상16:13) 이에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니 그 날 이후로 주의 영께서 다윗에게 임하시니라. 이에 사무엘이 일어나서 라마로 가니라.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을때 다윗은 자신이 나중에 자신을 통해서
한 왕국을 세우실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기름 부음을 받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사무엘이 아들들을 불러내라고 했을때에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지
다윗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되기위해서 노력하며 살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은 매번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합당하게 풀어나갔던 사람입니다.
다윗을 왕으로 만들고자하는 그림은 하나님이 그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어린 아이가 어린양을 먹이는 목자의 삶이 나중에 한 왕국이 세워질때
하나님의 백성을 먹이고 돌보는 기초가 될지
다윗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양들을 지키고 먹이면서 양을 돌보는 목자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양들을 지키기 위해서 야생 동물들을 물리칠때
골리앗을 이기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런 경험이 한 나라의 왕이 되는 기초가 될지 다윗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내가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사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2 번째
두 번째 기름 부음을 받게 된 것은 사울이 죽은 뒤 헤브론으로 가서
유다지파 사람들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
(삼하2:1) 이 일 뒤에 다윗이 주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유다의 도시들 중의 하나로 올라가리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올라가라, 하시니 다윗이 이르되, 내가 어디로 가리이까? 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하시니라.
(삼하2: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의 집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으며 또 그들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이 사울을 묻었나이다, 하였더라.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자산의 꿈이 무엇인지
점점 뚜렸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은 통합된 이스라엘의 왕이 아닙니다.
유다의 왕입니다.
하나님은 과정없이 결과를 만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다윗을 한 단계 한 단계 모든 과정을 밟아가며
왕으로 세워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으로서의 위치가 뚜렷히 드러날때 마다 기름을 부으며
그를 왕으로서의 면모가 모든 백성위에 드러나게 하고 계십니다.
3 번째
세 번째 기름 부음을 받게 된 때는 사무엘하 5장에서 드디어
이스라엘 지파들의 통합 왕으로써 왕위를 받을때 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다윗이 있는 헤브론으로 와서
다윗을 자신들의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삼하5:1) 그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삼하5:2) 또한 지나간 때 곧 사울이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나가게 하고 들어오게 하신 이는 왕이었고 주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며 이스라엘을 다스릴 대장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먹이며” “대장이 되리라”
베들레헴에서 첫 번째 기름 부음을 받을때
양을 치던 목동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선택에는
이미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을 먹이며
이스라엘의 대장이 되게 하실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이 어린 목동에게 장차 이스라엘의 목자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지나온 시간은 왕이 되기 위한 필요한 과정을 겪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늘 경험하게 하시는 모든 일이 각자의 삶의 집을 짓는
한 장 한 장의 벽돌이 되어서 집이 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양을 칠때는 지금의 모습을 기대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위한 비전을 가지고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그림은 하나님이 그리시고 계십니다. 다윗은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나님 앞에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은 다윗의 꿈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꿈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꿈을 이루어나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지게 만들어 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삼하5:3)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주} 앞에서 그들과 동맹을 맺으니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니라.
(삼하5:4)¶ 다윗이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삼십 세였으며 그가 사십 년 동안 통치하되
(삼하5:5)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통치하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치하였더라.
신앙생활은 내가 꿈꾸고
내가 이루고자하는 목표를 만들어가는 삶이 아닙니다.
이런 삶은 인본주의 삶입니다.
신앙 생활은 내 인생 속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꿈에
우리의 눈이 뜨는 것입니다.
요셉의 꿈
“꿈” 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이루어가는 것을 목격한 목격자의 삶을 산 것입니다.
(창37: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자기 아버지가 나그네로 지내던 땅에 거하였더라.
(창37:2) 야곱의 세대들은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가 되어 자기 형들과 함께 양 떼를 먹이더라. 이 소년이 자기 아버지의 아내인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함께 있을 때에 그들의 나쁜 행실을 자기 아버지에게 보고하니라.
“양 떼를 먹이더라”
다윗도 양을 지키는자 였습니다.
요셉도 양을 돌보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생명을 돌보는 자로 살게 하신 것은 그의 인생의 밑그림에
생명들을 돌보는 일과 관련된 그림을 그려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나쁜 행실을 자기 아버지에게 보고하니라.”
의로운 길을 가는 것은 반드시 적과 원수가 생기는 일 입니다.
(창37:3) 이제 이스라엘이 자기의 모든 자식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였으니 이는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이더라. 그가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라.
요셉이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요셉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가 채색 옷을 입게 된 것도 요셉의 요구가 아닙니다.
(창37:4) 그의 형제들은 자기들의 아버지가 그의 모든 형제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평안하게 말도 할 수 없었더라.
우리의 싸움에는 마귀와 세상과의 싸움이 있고
형제간의 싸움이 있습니다.
같은 아버지 밑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는 아들과 덜 받는 아들간의
싸움이 있습니다.
(창37:5) ¶ 요셉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더라.
요셉이 꾼 꿈은 요셉의 의지와 상관없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성취하고자 하는 꿈을 요셉이 보게 된 것입니다.
이 꿈을 이야기 했더니 형제들이 요셉을 더 미워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전하라고 한 말씀을 전했더니
한 조상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더욱 미워하게 되는 모습과 일치합니다.
(창37:6)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이 꿈을 들으소서.
(창37:7) 보소서, 우리가 들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는데, 보소서, 내 단은 일어나 똑바로 서고, 보소서, 형들의 단은 둘러서서 내 단에게 경의를 표하였나이다, 하매
(창37: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를 통치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지배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라.
(창37:9) ¶ 그가 또 다른 꿈을 꾸고 그 꿈을 자기 형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가 또 꿈을 꾼즉, 보소서,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경의를 표하더이다, 하니라.
(창37:10) 그가 그 꿈을 자기 아버지와 형들에게 고하매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이 꿈이 도대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하니라.
(창37:11)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하였더라.
요셉이 꿈을 꾼 것은 요셉이 원하는 꿈을 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꿈을
요셉에게 암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꿈의 내용이 이상해서 형과 아버지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이 꿈을 통해 자신이 나중에
일국의 총리가 될 것을 알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꿈의 내용과는 달리 형들에 의해서 이집트로 팔려가는 신세가됩니다.
권위에 승복
하나님이 세운 권위에 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감독이 세워지고
그가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것을 인정했다면 그의 권위에 승복해야 합니다.
교회도 그렇고 세상의 조직도 그렇고
하늘로부터 허락된 권위에 승복하지 않고 질서에 합당하지 않게
저항하거나 권위에 손상을 주는 것은 잘못입니다.
교회에서 감독에게 문제가 있다면 결코 자매들이 나서서는 안됩니다.
필요하다면 형제들이 이야기 해야 하고
두 세 명의 증인과 같이 참석한 가운데 감독의 잘못을 지적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다른 형제 자매의 잘못을 지적하고 징계하는 것 보다
더욱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만일 감독의 권위가 손상되면 그 교회는 올바로 감독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질서있게 잘못을 지적했다면 그 판결은 감독 본인과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감독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감독이 말씀의 권위에 손상을 주는 일을 했다면 지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지적을 신중하게 질서에 맞게
두 세 명의 증인과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것은
자매가 혼자 목사님 방에 뛰어들어가서
이런 저런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결코해서는 안됩니다.
모세의 권위에 대항 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을 보게 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감독을 세울때 신중해야 하고
한 번 세워진 감독은 함부로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방법으로 질서있게 지적하고
그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감독에대한 심판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다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감독이 올바로 변하지 않는다면
성도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서 싸우는것이 아니라 분리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에 의해 상인에게 팔려서 이집트로 팔려감
보디발 대장 집에 노예로 팔림
음행을 피하고 감옥에 감
(딤후3:12)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터이나
요셉의 인생은 자신의 욕망과는 상관없이 흘러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높게 세우기 위해서 요셉을 노예와 종으로
그리고 감옥으로 내몰게 됩니다.
하나님은 높이시기 위해서 낮추십니다.
요셉은 자신의 잘못으로
노예가 되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 아닙니다.
감옥에 간 것도 아닙니다.
그가 스스로 선택한 길도 아닙니다.
그가 노예 신분이 된 것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헌신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높은 사람에게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높은 신분의 사람이나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나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꿈을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살전5:18)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는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좋은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이 항상 우리에게 나쁜 일만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서 나를 강하게 만들고 계시는 겁니다.
요셉의 모든 경험은 총리를 향한 밑걸음이 됩니다.
요셉은 알 수 없었지만 요셉의 하루 하루의 경험은
나중에 요셉이 얻게 될 총리직의 자리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조각조각의 경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낮은 곳에서 삶을 다지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의 꿈을 이루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순간만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큰 그림을 그리고 나를 이끄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나를 사용하도록 선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꿈
모세가 태어날때 왕의 명령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목숨이었지만
모세는 갈대 바구니에 눕혀져 이집트 왕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출2:1) 레위의 집의 한 남자가 가서 레위의 딸을 취해 아내로 삼으니라.
(출2:2) 그 여인이 수태하여 아들을 낳아 그가 준수한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출2: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로 만든 궤를 가져다가 진흙과 역청으로 바르고 아이를 그 안에 담아 강가의 부들 사이에 두니
(출2:4) 그의 누이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려고 멀리 서 있었더라.
(출2:5) ¶ 파라오의 딸이 강에서 목욕하러 내려오고 그녀의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었는데 그녀가 부들 사이에서 그 궤를 보고 자기 시녀를 보내어 그것을 가져오게 하니라.
이집트 왕실에게 자람
모세가 이집트의 왕자로 살게 된 것은
모세의 꿈과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 계신 것입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왕좌로 살면서 왕국의 지식을 배우고
왕으로써 조직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차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야 할 모세가 배워야 할 것을
이집트 왕궁에서 배우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무균실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자녀들의 교육을 세상과 분리해서
홈 스쿨이나 기독교 대안학교 같은 곳에서 교육을 받아야
잘 하는 것이라는 기준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신앙은 가정에서 특히 어머니
성경에서의 신앙 교육의 기본은 가정입니다.
모세가 왕궁에서 자라면서도 자신의 어머니를 통해 양육된 것이
모세에게 신앙으로 이어진 배경이 된 것입니다.
왕실의 교육은 모세 오경의 기록에 밑걸음
모세가 왕궁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이 배운 학문이 나중에 율법을 기록하는데 밑걸을이 될 것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사용할때 광야로 보내심
모세가 자신의 히브리민족 형제가 어떤 이집트 사람에게 맞는 것을 보고
이집트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저지릅니다.
다음날 히브리 민족 사람이 싸우는 것을 말리자
자신의 살인죄가 드러납니다.
그 일로 광야로 쫓겨나게 됩니다.
자신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를 더이상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하자 하나님은
그를 다시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광야로 내쫓으셨고
이집트 왕국에서 누렸던 모든 신분을 버리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되었을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함
(출3:7) ¶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고난을 분명히 보았고 또 그들이 그들의 작업 감독들로 인하여 부르짖는 것을 들었나니 내가 그들의 고통을 아노라.
(출3:8) 내가 그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데리고 올라와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처소로 이끌려고 내려왔노라.
(출3:9) 그러므로 이제, 보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이르렀고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며 학대하는 것도 내가 보았나니
(출3:10) 그런즉 이제 오라. 내가 너를 파라오에게 보내리니 이로써 네가 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가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이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모세에게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꿈을 모세가 이루어줄 것을 요청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고 싶은 그 꿈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어드립니다.
히브리 민족의 지도자로 인정받게 만드심
지도자가 되어 출애굽시킴
모세가 히브리민족의 지도자가 된 것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 파라오와 만나서 담판을 짓고
10가지 재앙을 일으킨 후에 히브리 민족을 데려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자신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내는데
성공하십니다.
광야에서 40년간 백성을 인도함
그리고 모세는 40년 간 이집트 민족을 이끌고 광야를 돌아야 했습니다.
그가 이집트 민족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집트에서 장로제도들을 통해서 조직 관리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로제도는 이집트에서 나온 것입니다. (창50:7)
이렇게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하셔서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하셨고 모세는 그 뜻을 알고 그분의 꿈을 이루어 드리는데 자신을 내어드린 것입니다.
사도바울
(행8:3) 사울로 말하건대 그가 교회를 크게 파괴하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와 여자를 끌어다가 감옥에 넘겨주더라.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에도 동의를 했고
교회를 파괴하는데 앞장 섰던 사람입니다.
사울은 주님께서 자신을 통해 어떤 일을 하실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사울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자신이 이룰 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십니다.
주님이 사울을 사용하시고자 한 것은
사울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이어서가 아닙니다.
사울은 자신이 하는 일에 사적인 이익을 우선에 두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은 사울의 공익을 향한 마음과 신실함을 보았습니다.
바울의 신실함
하나님 앞에 그가 신실한자로 인정받았던 사람입니다.
(딤전1:12)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림은 그분께서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기 때문이라.
다마스쿠스에서 주님을 만남
(행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치려고 여전히 위협과 살기를 내뿜으며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9:2) 다마스쿠스의 회당들에 가져갈 편지를 그에게 요청하니 이것은 그가 이 길에 속한 사람을 만나면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더라.
(행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나와 그를 둘러 비추더라.
(행9:4) 그가 땅에 쓰러져 들으매 한 음성이 있어 그에게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9:5) 그가 이르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하시거늘
(행9:6) 그가 떨며 놀라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도시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하시니라.
사울은 자신이 “주”로 믿고 있던 분을 위해서 열심을 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울은 내가 핍박한 예수가 바로
자신이 “주”로 섬겼던 그분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게 되자 곧바로 그분이 원하는 것을 하려는 자세를 취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서 살던 사람이 아닙니다.
사울에게는 이제 주님의 꿈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고
사울을 그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
베드로는 어떻게 주님의 꿈을 이루어드리게 되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물로 고기를 잡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가 주님의 제자가 된 것은 그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어부의 삶을 버리고 주님을 따름: 첫 만남
어느날 주님이 베드로의 인생에 개입을 하셨고
베드로는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아 본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일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을 통해서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
베드로는 처음부터 알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도 그저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고기를 많이 잡아서 부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꿈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난 후 베드로는
더이상 자신의 꿈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던지고 주님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 이신 것을 보았습니다.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매
(마16:1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것을 네게 계시한 이는 살과 피가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볼 수 있는 영적 눈이 뜨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더욱 주님께 자신을 내어 드릴 의지가 충분히 있었던 사람입니다.
어쩌면 너무 넘쳐서 실수도 많이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막음
베드로는 주님이 십자가로 향하는 길을 막기도 했습니다.
(마16:21) ¶ 그때부터 예수님께서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다시 일으켜질 것을 자기 제자들에게 보이기 시작하시니
(마16:22) 그때에 베드로가 그분을 붙잡고 그분을 꾸짖기 시작하여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 일이 결코 주께 임하지 아니하리이다, 하거늘
(마16:23) 그분께서 돌이키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내게 실족거리니라. 네가 하나님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서 난 일들을 좋아하는도다, 하시니라.
주님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향해 하는 실수는 베드로만의 실수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꾸 주님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주님을 우리가 경배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잊고 지냅니다.
예배는 주님을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절대 주권자인 주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시간입니다.
예배에서 내가 그저 관찰자의 위치에 놓이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발씻김을 거부함
베드로는 자신의 발을 씻겨 주시는 주님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요13:8)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절대로 주께서 내 발을 씻지 못하시리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나와 함께할 몫이 네게 없느니라, 하시니라.
(요13:9)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하매
(요13:10)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미 씻긴 자는 모든 곳이 깨끗하므로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대제사장 종의 귀를 자름
베드로는 주님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의 귀를 자르기도 했습니다.
(요18:10)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으므로 그것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의 오른쪽 귀를 벴는데 그 종의 이름은 말고더라.
(요18:11)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네 칼을 칼집에 꽂으라.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을 베드로에게 칼을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마26:52)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잡는 자들은 다 칼로 망하리라.
주님을 세 번 부인함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26:33) 베드로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로 인하여 실족할지라도 나는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마26:34)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이 밤에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시거늘
(마26:35)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모든 제자들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는 자신은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을 하지만
그것 또한 주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이라는 것을 베드로는 몰랐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수탉이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을 합니다.
첫 번째 관저 밖에서 어느 한 소녀가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 아니냐고 묻자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두 번째 다른 하녀가 이자도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하자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세 번째로 어떤 자들이 베드로에게 너도 확실이 그들 중에 하나라고 말하자
그때 저주까지 하며 아니라고 맹세를 합니다.
그때 수탉의 울음 소리가 들립니다.
(마26:75) 베드로가,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 곧 그분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나가서 비통하게 우니라.
베드로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주님을 배신한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며 비통하게 웁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남
베드로는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가진체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뒤에 베드로는 다시 어부 생활도 돌아와 있었습니다.
지금의 베드로 모습에서 신약교회를 태동시키고 신약성도들을 먹일 사도의 면모는 전혀 볼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자신이 버렸던 그물을 다시 붙잡고 고기를 낚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 오셨고 베드로는 너무 기뻐서 바다로 뛰어들어 주님께로 갑니다.
주님은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게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보고 너무 기뻐 다가오긴 했지만
식사를 하면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베드로는 자신의 부끄러움이 기억나서
주님을 쳐다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주님이 주시는 빵을 먹으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났을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시던 말씀
주님께 덤벙대고 실수하던 생각
주님이 변화산에 데려갔을때
주님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 하던 당시
자신은 깊은 잠에 빠져 버렸던 모습
주님이 십자가로 향하실때
주님을 부인했던 일들…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
주님께서 이런 베드로를 부르십니다.
(요21:15) ¶ 이처럼 그들이 먹은 뒤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이처럼 그들이 먹은 뒤에”
베드로와 제자들이 먹는 것을 마치는 동안 주님은 베드로에게
아무 말씀도 안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 주님 앞에 있는 베드로는 십자가 사건 이전에
혈기 왕성했던 베드로가 아닙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답변을 드립니다. 주님이 아시지 않냐고!
아마도 눈도 마주치지 못한체 땅만 바라보고 답변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이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이제 자신의 의지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게된 베드로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 양들을 먹이라고!
(요21:16) 다시 두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두 번째 베드로를 부르시고 그에게 내 양들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21:17) 세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분께서 자기에게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말씀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며 그분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주님이 세 번째로 묻자 베드로가 “근심”을 합니다.
이전에 보여준 베드로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베드로는 호기롭게 주님을 막아섰고
주님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귀를 단번에 베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주님의 질문에 근심을 합니다.
주님의 꿈을 자신에게 세 번째 부탁을 하자
근심하는 것입니다.
이전의 내 모습으로는 주님의 꿈을 이루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혹시 내가 주님의 꿈을 이루어 드릴 수 없는 걸까?
베드로는 주님이 자신이 만들게 될 교회 성도들을 베드로를 통해서
먹이게 하는 것이 주님의 꿈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고 계십니다.
드디어 베드로는 주님의 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꿈을 향해서 달리기 시작합니다.
맺음말
여러분은 이제 주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 무엇인지
발견하셨나요?
저는 주님께서 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꿈이 무엇인지
1년 전에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인생에 개입하신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계시나요?
신앙생활은 우리의 꿈을 이루어가는 생활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주님의 꿈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낮은마음침례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우리를 내어드리는 신앙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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