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그림자 대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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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의 그림자 대제사장
본문 : 히 10:1-2
2020-08-02
말씀을 통해 현재에 안주하지 않게
죄가 드러나게
부족한 것이 드러나게 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자기 자신을 찌르게
오늘은 레위기16장 대제사장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레위기로 가기전에 히브리서 잠깐 보겠습니다.
(히10:1)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린 그런 희생물들로는 거기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10:2) 그랬더라면 경배하는 자들이 한 번에 깨끗하게 되어 더 이상 죄들을 의식하지 아니하였을 터이므로 그것들을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good things)들의 그림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좋은 일 그 자체가 아닙니다.
좋은 일들의 형상이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들의 그림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의 그림자를 보면
저에 대한 자세한 모습은 알 수 없습니다.
아주 작은 정보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의 몸매가 어떤지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
팔 다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주 기초적인 정보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모습을 밝은 곳에서 직접 본다면
이제 세세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눈동자 색갈이 검정색이라는 것도 알 수 있고
안경을 쓴 사람이란 것도 알 수 있고,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주님이 어떤 분인지 대략적인 것은 알 수 있지만
신약의 조명이 들어오기 전 까지는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조명이 켜지면 예수님에 대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세세하게 알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다루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의 유대인들을 다루시는 모습도 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엘리야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눅4:24) 또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어떤 대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느니라.
(눅4:25)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두루 큰 기근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눅4:26) 엘리야가 그들 중 아무에게도 보내어지지 아니하고 오직 시돈의 도시 사렙다에 사는 한 과부 여인에게만 보내어졌으며
(눅4: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말들을 듣고 진노가 가득하여
(눅4:29) 일어나서 그분을 도시 밖으로 밀어낸 뒤 자기들의 도시가 세워진 산의 낭떠러지까지 그분을 끌고 가서 그분을 거꾸로 떨어뜨리려 하되
(눅4:30) 그분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 길로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대언자가 이방인 과부에게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내고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요셉도 이방인 아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41:45) 또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며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아내로 주니라. 요셉이 나가서 이집트 온 땅을 돌아보니라.
모세도 이방인 아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2:16) 이제 미디안의 제사장에게 딸 일곱이 있더라. 그들이 와서 물을 긷고 구유에 채워 자기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출2: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아내니라. 그러나 모세가 일어나서 그들을 도와 그들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니라.
(출2:21) 모세가 그 사람과 함께 거하는 것을 만족스럽게 여기매 그가 자기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니라.
보아스도 이방인 룻이라는 여인을 아내로 가졌습니다.
(룻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녀의 두 아들이 남았더라.
(룻1:4) 그들이 모압 여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다른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서 십 년쯤 거하였을 때에
(룻4:13) ¶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자기 아내로 삼고 그녀에게로 들어가니 주께서 그녀를 수태하게 하시므로 그녀가 아들을 낳으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을 이루는 모습
당시의 유대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한 몸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겠냐고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성전건축도 유대인과 이방인이 힘을 합침
두로의 히람왕이 자신의 종들을 보내 하나님의 성전을 함께 짓게 한 것도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왕상5:18) 솔로몬의 건축자들과 히람의 건축자들과 돌을 네모나게 만드는 자들이 그 돌들을 다듬었고 이처럼 그들이 그 집을 건축하기 위해 재목과 돌들을 예비하였더라.
우리는 신약성경을 통해서 이런 내용을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율법은 다가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출30:10) 아론은 한 해에 한 번 분향 제단의 뿔들 위에서 속죄의 죄 헌물의 피로 속죄할지니 곧 그는 너희 대대로 한 해에 한 번 그 제단 위에서 속죄할지니라. 그것은 주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분향 제단의 위치
(출30:6) 그 제단을 증언 위에 있는 긍휼의 자리 앞에 곧 증언 궤 옆에 있는 휘장 앞에 둘지니 이 긍휼의 자리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니라.
분향 제단의 위치를 서술하면서 그 기준이 긍휼의 자리로 부터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 그분이 계시는 곳에서 그 기준을 삼고 있는 것은 우리가 교훈으로 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 지신의 신앙의 위치도 다른 것을 기준 삼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그분 앞에 있는지 잘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보다 몇 발자국 앞에 있거나 옆에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기준으로 내 신앙의 위치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레위기 10장에서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이상한 불을 드렸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레위기 16장 1절로 가보겠습니다.
(레16:1) 아론의 두 아들이 주 앞에 헌물을 드리다가 죽은 뒤에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레16:2)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말하여 그가 아무 때나 성소 안으로 휘장 안쪽의 궤 위에 있는 긍휼의 자리 앞에 들어오지 말게 하라. 그리하여야 그가 죽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서 긍휼의 자리 위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니라.
“아론의 두 아들이 주 앞에 헌물을 드리다가 죽은 뒤에”
하나님께서 경고의 말씀으로 주의를 환기시키고 이야기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성소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고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 죽은 사건
(레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각 자기의 향로를 가져다가 그 안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놓되 주께서 그들에게 드리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이상한 불을 그분 앞에 드렸더니
(레10:2) 불이 주로부터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주 앞에서 죽으니라.
아론의 두 아들이 헌물을 드리다가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죽은 이유는 이들이 이상한 불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지시한 방법대로 불을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은 번제단에서 불을 취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레16:12) 주 앞의 제단에서 불타는 숯이 가득한 향로를 취하며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가득 담아 휘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레위기 16장 1절에서 이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질서와 규범을 지켜야 함
하나님은 질서와 규범을 가지고 일하게 하십니다.
이 질서에 참여하는지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만
자율적으로 규범을 만들어서 자기 멋대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교회 운영도
성경은 교회에서 직분을 선출할때 선출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독이 그런 방법을 지키지 않고 회중의 동의 없이 감독과 집사를 선출하는 것은 자율에 속하지 않습니다.
기준은 우리기 권한이 아닙니다.
그 기준에 순종하느냐 마느냐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집사와 감독의 조건이 있지만 이런거 다 만족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고 하면서
조건의 일부만 충족하면 된다는 식으로 하나님의 규범을 자율적으로 위반하면
이상한 불로 교회를 세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다 지켜야 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했으면 여자는 집사나 감독이 될 수 없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은 자기 마음대로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은 이렇게 저렇게 해라.
너희는 마땅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다.
하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두 아들은 꼭 그렇게 안 해도 되는거 아냐?
하면서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 헌물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두 아들은 죽게 됩니다.
아론에게 하신 말씀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겁니다.
"아론 너는 아무때나 지성소에 들어오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심각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중요한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과 우리가 교제하는것, 우리가 그분과 대화하는것, 우리가 그분을 만나는 것에 관한 명령입니다.
아론에게는 아무때나 오지말라고 하십니다.
나는 너와 아무때나 격이 없이 관계를 갖고 싶지 않다고 하십니다.
신약 성도인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친한 친구관계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1년에 한 번씩만 보자고 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거룩하지 않은 우리 인간은 쉽게 섞일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가 좋은 곳인 이유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위로의 말을 합니다.
그분은 좋은 곳에 가셨을겁니다.
지금 하늘에서 편히 쉬고 있을 겁니다.
하늘이 좋은 곳이라고 말하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요?
좋다는 의미가 무슨 의미 일까요?
그곳은 죄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러분이 명동한 복판에서 금은 보석상을 하다가 살해를 당했다면,
차라리 살인자가 없는 시골길에서 구멍가게를 하면서
만족하는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값비판 아파트에서 도둑을 맞고 사는니
차라리 도둑없는 조그만 농막집에서 사는게 나을 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죄가 없는 곳에서 안식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없다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지성소에서는 죄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를 죄가 더럽히게 놔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어떻게 하라는 것을 명령으로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레16:3) 그런즉 아론은 어린 수소를 죄 헌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 헌물로 삼아 성소에 들어올 것이요,
(레16:4) 또 그는 거룩한 아마 속옷을 입고 살 위에 아마 반바지를 입으며 아마 허리띠를 띠고 아마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의복들이니라. 그러므로 그는 물로 자기 살을 씻고 그것들을 입을 것이며
당시에는 제사장들은 특별한 의복을 입도록 했습니다.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수놓은 속옷과 방울을 달기도 하고 어깨에는 두 개의 보석을 달고 있습니다.
(출28:4) 그들이 만들 의복들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수놓은 속옷과 관과 허리띠니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의복들을 만들어 그가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게 할지니라.
(출28:12)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에 붙여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위한 기념 보석이 되게 하되 아론이 주 앞에서 자기의 두 어깨에 그들의 이름들을 메어 기념이 되게 할지니라.
대제사장의 의복은 아름다움과 거룩함의 위엄이 있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권위와 아름다움과 위엄을 잠시 옆에 놔두고 인간의 몸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
(빌2:6)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빌2:7)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들의 모습이 되셨으며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임하셨습니다.
모든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왕중에 왕이시고 주중에 주이신 그분께서
이 모든 권위와 위엄을 잠시 자신에게서 치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죄로 저주받은 땅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을 위해 속죄함을 이루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육신 안에서 피곤함을 느끼셨습니다.
주님은 인간이 느끼는 배고픔을 느끼셨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입장에서 연약함을 느끼셨습니다.
(히2:16) 진실로 그분께서는 자기 위에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 위에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셨도다.
(히2:17)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그분께서 자기 형제들과 같게 될 필요가 있었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하나님께 속한 일들에서 긍휼 많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이 되사 백성의 죄들로 인해 화해를 이루려 하심이라.
(히2:18) 그분께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구조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씨를 취하셔서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고난을 알게 되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주무시지 않으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피곤함을 알지 못합니다.
배고품도, 두려움도, 인간만이 겪을 수 있는 것들을 알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몸소 친히 경험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신실하신 대 제사장이 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게 해 주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구조/succour"
구조의 의미는 필요할때 달려가서 도와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와 함께 우리와 같이 친히 고난을 받으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할때 와서 우리의 입장을 아시고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께서 부요하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자신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 놓고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머리를 둘 곳도 없으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화해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레16:5)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죄 헌물로 숫염소 새끼 두 마리와 번제 헌물로 숫양 한 마리를 취할지니라.
(레16:6) 아론은 자기를 위한 죄 헌물로 자기의 수소를 드려서 자기와 자기 집을 위하여 속죄하고
아론은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그림자입니다.
아론이 비록 대제사장이었지만 여전기 그는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처소에
아론을 희생물없이 들어오게 할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히7:26) 이러한 대제사장께서는 우리에게 합당한 분이셨으니 곧 그분은 거룩하시고 해가 없으시고 더러움이 없으시고 죄인들로부터 분리되시고 하늘들보다 더 높이 되셨느니라.
(히7:27) 그분께서는 저 대제사장들과 같이 먼저 자기의 죄들로 인하여 날마다 희생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들로 인하여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친히 자신을 드리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행하셨기 때문이라.
예수님은 아론처럼 자신을 위해서 어떤 희생물도 드릴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일3:5)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을 제거하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
"그분 안에는 죄가 없느니라"
(벧전2:22)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고후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죄를 알지 못한 그분”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시험 받은셨지만 죄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주님이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었다면
우리는 아무 소망도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려고 한다면
점이 없어야 하고 흠도 없어야 합니다.
저는 점이 있고 흠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여러분이나 제 자녀나 아내를 위한 희생물로 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점과 흠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물이 될 수 없습니다.
바울도 자신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기꺼이 저주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기꺼이 희생물이 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은 죄인이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롬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노라. 내 양심도 성령님 안에서 나에 대해 증언하거니와
(롬9:2) 내게는 마음속에 큰 근심이 있고 계속해서 슬픔이 있노라.
(롬9:3) 육체에 따른 내 형제들, 내 친족들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자신이 그리스도로부터 저주받기를 바랄 수도 있으리니
바울은 자신을 흠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죄인중에 우두머리라고까지 했습니다.
(딤전1:15) 이것은 신실한 말이요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말이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이로다.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니라.
레위기 16장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레16:7) 또 그 두 마리 염소를 취하여 회중의 성막 문에서 주 앞에 그것들을 보일지니라.
(레16:8) 또 아론은 그 두 마리 염소를 두고 제비를 뽑되 한 제비는 주를 위하여 다른 제비는 속죄 염소를 위하여 할 것이며
(레16:9) 아론은 주를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를 가져다가 죄 헌물로 드리려니와
(레16:10) 제비뽑아 속죄 염소가 된 염소는 산 채로 주 앞에 보였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기 위하여 그것을 속죄 염소로 광야로 보낼지니라.
본문에 두 마리의 염소가 있습니다.
이 두 마리를 두고 제비를 뽑습니다.
한 마리는 주를 위해서 드려지고 다른 한마리를 속죄 염소가 됩니다.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 마리는 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인데 죽어야 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주님은 죽어야하는 염소입니다.
그래야 다른 염소가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증언들입니다.
(요5:39) ¶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구약의 모든 것이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요5:40) 그러나 너희는 생명을 얻기 위해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요5: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존귀를 받지 아니하노라.
(요5:42) 다만 내가 너희를 알거니와 너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너희 속에 없느니라.
(요5:43)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는데 너희가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자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가 그를 받아들이리라.
(요5:44) 너희가 서로 존귀를 받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존귀는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요5: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자가 있으니 곧 너희가 신뢰하는 자 모세니라.
(요5: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으리니 그는 나에 대하여 기록하였느니라.
(요5:47) 그러나 너희가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들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은 특별히 모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예수님에 관해서 기록해 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한 제사장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 기록된 대제사장과 태우는 희생물과 속죄함에 관한 것들이
모두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그림자가 신약에서는 선명하게 조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레16:11) 아론은 자기를 위한 죄 헌물의 수소를 가져다가 자기와 자기 집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죄 헌물의 수소를 잡고
(레16:12) 주 앞의 제단에서 불타는 숯이 가득한 향로를 취하며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가득 담아 휘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레16:13) 주 앞에서 불 위에 그 향을 두어 향의 연기가 증언 위에 있는 긍휼의 자리를 덮게 할지니 그리하여야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향의 연기가 긍휼의 자리를 덮게 할지니 그리하여야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향과 향의 연기”는 기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시편을 보겠습니다.
(시141:1) (다윗의 시) 주여, 내가 주께 부르짖사오니 속히 내게로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141:2) 나의 기도가 주 앞에 향같이 놓이게 하시며 나의 손을 들어 올림이 저녁 희생물같이 놓이게 하소서.
"나의 기도가 주 앞에 향같이 높이게 하시며”
계시록에서도 “향”이 기도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8:3) 또 다른 천사가 금향로를 가진 채 와서 제단 앞에 서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것은 그가 그 향을 모든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그 왕좌 앞에 있던 금 제단 위에 드리려 함이더라.
지금 십자가 사역을 마치신 이후 예수님은 하늘에서
우리를위한 중보를 해 주시고 계십니다.
지금 레위기의 대제사장은 성소에서 하고 있는 것은
바로 향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16장
(레16:14) 그는 또 수소의 피를 취하여 자기 손가락으로 긍휼의 자리 위에 동쪽으로 뿌리고 또 자기 손가락으로 그 피를 긍휼의 자리 앞에 일곱 번 뿌릴지니라.
(레16:15) ¶ 그 뒤에 그는 또 백성을 위한 죄 헌물의 염소를 잡아 그것의 피를 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그 수소의 피로 행한 것 같이 그 피로 행하여 긍휼의 자리 위와 긍휼의 자리 앞에 그것을 뿌릴지니
(레16:16) 곧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함과 그들의 모든 죄로 말미암은 범법들로 인해 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부정함 속에 거하는 자들 가운데 머무는 회중의 성막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할지니라.
대제사장은 사람들을 위한 속죄함을 위해서 지성소 한으로 희생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단 한 번드려짐으로 우리를 위해 영원한 구속을 얻게해 주신 것입니다.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해 주신 것입니다.
염소와 소의 피가 아니가 죄없으신 예수님의 피로 단 한 번 드려짐으로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염소와 소의 피는 우리의 죄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께서 점도없고 흠도없는 어린양으로 드려졌을때 우리의 죄가 제거된 것입니다.
이전의 희생물을 매년 반복되어야 했습니다.
만약 이전 방식의 희생물이 우리의 죄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다면 왜 매년 반복해야 했을까요?
이전 방식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제거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다시 죽지 않으셔도 되는 것입니다.
(계1:18)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주님은 지금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번 죽으심으로 우리 모두의 죄를 구속하신 분이시고 모든 일을 끝내시고 이 일을 위해서 더 하실 일이 없도록 모든 일을 끝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다시 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레16:17) 그가 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자기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해 속죄하고 나올 때까지는 아무도 회중의 성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왜 성막에 아무도 없어야 할까요?
죄인의 도움이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것은 속죄함을 위해서는 대제사장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관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그곳에 있지 않게 한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그자리에 있으면 서로 나서서 뭔가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문이라도 잡아 주려고 할 것이고 뭐라도 거들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죄함을 위해서 그분이 거룩하게 드려지는 과정에 어떤 죄인의 도움도 개입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단 일초의 과정도 거룩하지 않은 죄인의 도움이 끼어들지 않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도록 구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죄를 제거하는데 우리의 도움이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여러분과 저는 우리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막에서 조차 어느 누구도 대제사장이 속죄의 헌물을 드리는 과정에 개입되기를 원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관해서 혼란을 가져서는 안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제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홀로 감당하셔야 합니다.
오지 주 예수그리스도만이 그 일을 감당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 명확한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더해져도 빠져도 안됩니다.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에 그 어떤 것도 더해져서도 안되고 빠져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많은 유사 종교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합니다.
과연 그들이 믿는 예수그리스도는 성경에 기록된 모습 그대로의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는걸까요?
결코 기록된 성경말씀 이외의 모습을 만들면 안되는 것입니다.
성경기록에 없는 것은 반 성경적인 것이고
자신의 신념과 믿음과 행위가 더해진 구원은 가짜인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방법
성경에 행위구원을 언급한 곳이 있습니다.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곳이 있습니다.
(욥40:9)네가 [하나님]같이 팔을 가지고 있느냐? 혹은 네가 그와 같이 음성으로 천둥소리를 낼 수 있느냐?
(욥40:10)이제 네 자신을 위엄과 뛰어남으로 꾸미고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단장할지니라.
(욥40:11)너의 격한 분노를 내버리고 교만한 모든 자를 눈여겨보며 그를 낮추되
(욥40:12)교만한 모든 자를 살펴보고 그를 낮게 만들며 사악한 자들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을지니라.
(욥40:13)그들을 다 같이 흙 속에 감추고 은밀한 가운데 그들의 얼굴을 싸맬지니라.
(욥40:14)그리하면 나도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네게 시인하리라.
하나님이 제시한 방법대로 하실 수 있으신가요?
자신의 교만도 처리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모든 인간의 교만을 낮추고 싸매겠습니까?
17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의 의미
(레16:17) 그가 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자기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해 속죄하고 나올 때까지는 아무도 회중의 성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And there shall be no man in the tabernacle of the congregation when he goeth in to make an atonement in the holy place, until he come out, and have made an atonement for himself, and for his household, and for all the congregation of Israel.
"아무도 회중의 성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언제 까지 인가요?
"그가 나올때까지" 입니다.
"그가 나올때까지" 앞에 ","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들어갔다가 나오신 뒤에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함을 이루신 후에,
주님께서 우리가 그곳에 들어갈 길을 만들어 놓고 나오신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참으로 놀라운 책입니다.
(히10:18) 이제 이것들의 사면이 있는 곳에서는 다시는 죄로 인한 헌물이 없느니라.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히10:20)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아무나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은 그분이 나오시기 전까지만 그렇습니다.
그 후에는 다른 사람도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이 나오신 뒤에는 저와 여러분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요?
예수님께서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참으로 놀라운 책이고 하나님께서도 놀아우신 분이십니다.
(레16:18) 그는 주 앞의 제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소의 피와 염소의 피를 취하여 제단의 뿔들에 돌아가며 바르고
(레16:19) 또 자기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서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함으로부터 제단을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할지니라.
(레16:20) ¶ 또 그는 성소와 회중의 성막과 제단을 위하여 화해하기를 마친 뒤에 살아 있는 염소를 가져갈지니라.
(레16:21) 아론은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두 손으로 안수하고 그 염소를 향해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법과 그들의 모든 죄로 말미암은 그들의 모든 범법들을 자백하며 그것들을 염소의 머리에 두고 적합한 사람의 손에 맡겨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낼지니
"적합한 사람”
이분은 요한복음 5장에서 언급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적합한 사람이십니다.
두 가지 면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적합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육체를 가지고 오셨기때문에 우리의 죄를 짊어지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나의 죄, 여러분의 죄,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그일을 감당할 자격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타락한 죄인이라 그럴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고 죄를 짓지도 않으신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이 일에 적합한 분이십니다.
이분만이 우리의 죄를 제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레16: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법을 자기 위에 짊어지고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서 놓아줄지니라.
적합한 사람은 염소를 어디로 데리고 갔나요?
아무도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으로 갔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염소를 다시는 볼수 없는 곳으로 간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모든 죄를 가지고 우리가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에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죄를 다시는 볼 일이 없어진 것입니다.
(레16:23) 아론은 회중의 성막에 들어가서 성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아마 의복들을 벗어 거기에 두고
"의복들을 벗어 거기에 두고"
이것은 무엇의 그림자 일까요?
요한복음으로 가보겠습니다.
(요20:1) 주의 첫날 일찍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돌무덤에 와서 돌이 돌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요20:2) 이에 달려가서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그들이 주를 돌무덤에서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요20:3) 그러므로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아가 돌무덤으로 가니라.
(요20:4) 이처럼 그들 둘이 같이 달려갔는데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를 앞질러 달려가서 먼저 돌무덤에 이르렀더라.
(요20:5) 그가 몸을 구부려 안을 들여다보고 아마포가 놓인 것을 보았으나 아직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라.
(요20:6) 그 뒤 시몬 베드로가 그를 따라와서 돌무덤에 들어가 보매 아마포가 놓여 있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장면에 무덤에 그분의 아마포가 놓여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죽은 몸을 감쌌던 아마포를 그곳에 놓고 떠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의복은 옆으로 치워놓고 깨끗한 아마 옷을 입고 성소에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사람들을 위해서 속죄하게 하라.
그 일이 끝나면 네가 입던 아마옷을 그곳데 그대로 놔두고 나와라.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원한 구속을 위해서 성소에 한 번 들어가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일을 모두 마치시고 떠나실때 자신의 아마 옷을 그곳에 두고 나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무덤에서 자신의 몸은 두고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희생물로 드리신 후에 자신이 입었던 아마 옷만을 두고 무덤에서 나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고 다시 영광스러운 부활을 하시고 하늘에서 우리의 대 제사장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시대 성도들이 갖지못한 것들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이 은혜의 시대는 계속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넘치게 주신 주님의 은혜를 마음껏 즐기시고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