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믿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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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
본문: 롬 10:10
2020-08-23
(롬10:10) 사람이 마음(heart)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heart)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는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우리가 마음으로 믿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쉬운 점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이 무엇인지를 한 곳에 정확히 설명해 주고 있는 구절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사용할 방법은 “마음”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흩어져 있는 구절들을 찾아서 의미를 찾아 보려고 합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먼저 한가지 상황을 떠올려 보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몇 분은 자신이 구원을 받을때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 듣고 영접 기도라는 것을 따라해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때 만약 여러분이 스스로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주로 받아들이고 영접 기도를 했다면 여러분의 구원은 크게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다른 사람이 하는 기도를 앵무새처럼 기도문을 따라 했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에 여러분의 마음을 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믿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 => Heart 의 경우만
오늘 “마음”이라는 살펴보려고 하는데
오늘 살펴보려는 “마음”은 영어 “heart”에서 번역된 부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영어 “mind”에서 번역된 것도 마음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마음이 사용된 구절들
(렘29:12) 그때에는 너희가 나를 부르고 가서 내게 기도하리니 내가 너희 말에 귀를 기울이리라.
(렘29:13) 또 너희가 너희 마음을 다하여 나를 찾으면 나를 찾고 나를 만나리라.
“너희 마음을 다하여”
우리가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다가가는 방법
어설픈 방법으로 / 성의없이 / 마음의 일부만 사용해서 /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주시는 그분의 사랑과 관심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려도 갚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 우리의 온 마음을 드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과 / 은혜와 / 그분의 긍휼과 / 그분의 축복을
우리가 더 알수만 있다면
우리가 우리의 온 마음을 드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눅1:51) 그분께서 자신의 팔로 힘을 보이사 자기 마음의 상상(imagination of their hearts) 속에서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마음의 상상 속에서” / 상상하는 능력이 마음으로 행해집니다.
(눅1:66) 그 말들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것들을 마음속에 두며(laid them up in their hearts) 이르되, 앞으로 이 아이가 어떤 아이가 될까! 하더라. 주의 손이 그와 함께하더라.
“그것들을 마음속에 두며”
/정보들을 모아서 마음에 저장합니다. 그리고 추론합니다.
(눅2:35) (참으로 칼이 네 혼도 찔러 꿰뚫으리라.) 이것은 많은 사람의 마음의 생각(the thoughts of many hearts)이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 하더라.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드러나게”
생각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눅5:22)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응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따져 보느냐?(What reason ye in your hearts?)
“마음속으로 무엇을 따져 보느냐”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네 마음 속에 무엇을 따져보고 있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지금 읽은 4개의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마음(heart)을 성경에서 말씀하실때
여러가지 용례로 사용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때 인간에게 마음이라는 것을 주셨고/
그것으로 상상하게 하고,/ 정보를 처리해서 추론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따져보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여러분의 마음을 얼마나 사용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이런 능력으로 우리는 무엇을 찾는데
이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걸까요?
이 능력을 가지고 창조자 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찾는데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 걸까요?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다양한 정신 능력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각자 능력의 정도는 서로 다르지만
추론하는 능력과 이해하는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다 주셨습니다.
서로 가진 능력은 다르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 정신적 능력을
하나님을 찾는데 사용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 여러 방면에 우리의 마음을 쓰면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는데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고 구하는 능력을 주셨는데
로마서 3장에서 하나님을 찾는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롬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성경이 진술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우리의 능력을 주님께 전혀 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혼의 상태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heart)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아무 생각없이 믿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부터 믿으라는 것은
여러분이 지적으로 모든 일의 사실들을 살펴보고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을 헛된 것에 두지 말고
가치있는 진리에 두라는 것입니다.
아무 의미없는 말장난같은 논리가 아니라
성경이 주장하는 것이 진리라 믿을 수 있는
논리적 주장인지 그리고 합당한 사실에 근거를 둔 주장인지를
듣고 분석하고 따져보고 판단해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 되었을때
그 가치있는 것에 믿음을 두라는 것입니다.
진화론 창조론
진화론과 성경적 창조론 중에 어떤 것이 더 가치있는 것인지
합리적 추론과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진화론을 믿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물질에서 와서
그냥 물질로 돌아간다는 주장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도 믿음이지만 헛된 믿음입니다.
우리가 그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믿어서
여러분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개도 진화의 산물이고 여러분도 진화의 산물이라면
개를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66권의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진리를 이야기 해줍니다.
우리가 왜 창조가 되었는지
살인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
왜 우리의 삶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리고 성경은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은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알려주고
자녀는 낳고 기르는 것은 부모의 수고와 희생이 따른다는 것
이런 수고와 희생은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
자녀는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
자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부모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
살아있는 부모도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를 공경할 수 없다는 것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거나 여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결코 생명이 나올 수 없다는 것
여자는 남편과 가정을 위해서 수고하고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
결혼한 여자나 남자가 다른 여자나 남자에게 마음을 품는 것은
음행이라는 것
그외에 창조와 우주 만물에대한 많은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그 내용들은 수 천년간 공격을 받아 왔지만 그 어는 것도 틀린 것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싫어하기도 하고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 어느 누구고 성경이 틀리다고 입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시작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노력한 수 많은 과학자들과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공룡이 어떻고, 시조새가 어떻고, 그들이 어떤 것을 먹었고
그들의 연대기가 어떻고 이야기 하지만 모두 동화같은 이야기 입니다.
코로나19가 여름이 되면 온도가 올라가 질병이 사라진다고 주장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전혀 다를바가 없는 것입니다.
입증할 수 없을때는 마구 떠들다가 자신들의 실수가 입증되면 그때서야
다른 사람이 기존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며
서로 잘난체를하며 세상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과학자들이고 철학자들입니다.
성경은 창조시대부터 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는 기록된 이후 단 한 번도 바뀐적이 없습니다.
왜 우리가 헛된 것들에 믿음을 두고
순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법(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할 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머리와 뇌를 그냥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마음을 다해서 믿으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무슨 주술을 하듯이 자신이 바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뇌를 쇄뇌 시켜서 무엇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마음을 다해서 믿으라는 것은
복권을 사놓고 당첨되는 행운을 빌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자신의 지적능력을 사용해서
성경을 열어보고 성경의 주장이 맞는지 시험해보고 검증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지적 능력으로 하나님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은 그냥 무기력하게 무비판적으로
아무 생각없이 목사가 이야기해주는 말만 믿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자녀를 불에 태우라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왕하16:3)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걸으며 또 참으로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교도들의 가증한 일들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고
우리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우리를 그들을 양육하고 가르치고 훈육해서
생명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께로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조정해서 태풍이 우리 나라를 피해가도록
물질을 드리고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바다와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그런 하나님께 마음으로 영광과 존귀를 드려야 합니다.
(출28:2) 너는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의복들을 만들어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삼을지니라.
(출28:3) 너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 곧 내가 지혜의 영으로 충만하게 한 모든 자에게 말하여 그들이 아론의 의복들을 만들어 그를 거룩히 구분하게 할지니 그리하여야 그가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리라.
마음으로 의복을 만듭니다. 기술이 좋은 자를 사용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출31:6) 또, 보라, 내가 그와 함께 단 지파에 속한 아히사막의 아들 아홀리압을 주었고 지혜로운 마음을 지닌 모든 사람의 마음에 지혜를 주어 그들이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만들게 하였으니
(출31:7) 곧 회중의 성막과 증언 궤와 그 위에 있는 긍휼의 자리와 성막의 모든 비품과
(출31:8) 상과 그것의 비품과 ...
지혜로운 마음으로 성막과 등등을 만듭니다.
(출35:35) 마음의 지혜로 그들을 충만하게 하사 온갖 종류의 일을 하게 하시되 곧 조각하는 일과 정교한 일과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과 고운 아마 실로 수놓는 일과 옷을 짜는 일과 그 어떤 일이라도 하게 하시고 또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마음의 지혜로 온갖 종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출36:1) 그때에 브살레엘과 아홀리압과 마음이 지혜로운 자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누군가를 시켜서 아론의 옷을 만들게해라
그 사람은 옷을 만들 기술도 있어야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해서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성전을 장식할 도구를 만들사람을 선택하기를 원한다.
나는 그냥 의자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에 온 마음을 쏟아부을 사람을 사용하길 원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주가 많은 사람이라도 그 마음이 온전히 주를 향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사용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그것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진리를 찾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 조차
마음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했다면
구원받은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그 마음을 사용하길 원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자신의 경력을 관리하기 위해서
취업준비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 처럼
여러분의 지적능력을 하나님을 향해서 사용한다면
얼마나 많은 진리를 발견하겠습니까?
다른 것을 생각하는데 여러분의 마음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그분의 말씀이 주신 내용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분에 관해서 우리의 생각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주님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저는 성경에 많은 오류와 실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그러 분에게는 자신이 직접 읽고 찾은 것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직접 자기 마음이 움직여서 시간을 들여서 관심을 갖고 찾는 것
하나님은 그런 관심을 마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성 도는 지적능력 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일들을 처리합니다.
우리의 정신적 노력은 많은 일들에 분산되고 있습니다.
회사 일, 자녀들 생각, 뭘 먹을지, 어디로 놀러갈지, 등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얼마나 사용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좀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그분이 주신 성경을 읽기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눅24:30)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음식 앞에 앉으셨을 때에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매
(눅24:31) 그들의 눈이 열려 그들이 그분을 알아보았으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더라.
(눅24:32) 그들이 서로 이르되, 그분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 기록들을 열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들에게 진리가 열리고
말씀의 빛이 들어오자 그들의 마음(heart)가 뜨거워졌습니다.
말씀이 열리게 되자 이들의 삶에 뭔가 뜨거운 열정이 일어났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감정이 일어나는 장소가 마음(heart)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두려움, 뜨거움, 호기심 등이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고후2:1) 그러나 내가 이것 즉 내가 무거운 마음으로 너희에게 다시 가지 아니할 것을 스스로 결심하였나니
"무거운 마음"
(고후2:2) 내가 너희를 근심(sorry)하게 하면 내가 근심(sorry)하게 한 바로 그 사람 외에 나를 즐겁게 할 사람이 누구이겠느냐?
(고후2:3) 내가 바로 이것을 너희에게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기쁨을 얻어야 할 사람들로부터 근심(sorrow)을 얻지 아니하려 함이었노라. 나는 너희 모두에 대하여 확신하되 나의 기쁨(rejoice)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로 확신하였노라.
(고후2:4) 내가 마음이 몹시 괴롭고 아파서(much affliction and anguish of heart)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나니 이것은 너희가 근심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에게 더욱 넘치게 베푸는 사랑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무거운 마음”, “근심”, “기쁨”, “마음이 몹시 괴롭고 아파서"
이 모든 것이 감정적 표현입니다.
우리는 지금 과학적 현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하면 우리는
마음이 아프다고하고 가슴이 찢어진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런 것은 의료 장비로 찍어서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닙니다.
감정이 나타나는 자리 : 마음 심장
이런 표현은 감정에 대한 표현이고 이런 감정이 나타나는 자리가
우리말로는 마음이라고 하고 성경은 영어로 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할때 심장이 있는 가슴을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는 이 마음의 위치를 손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심장이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마음이 아프다고 배꼽을 가리키는 사람은없습니다.
(롬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이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졌고 그 사랑에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 사랑은 우리 마음(heart)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롬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노라. 내 양심도 성령님 안에서 나에 대해 증언하거니와
(롬9:2) 내게는 마음속에 큰 근심이 있고 계속해서 슬픔이 있노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바울은 여전히 마음속에 큰 근심이 있고 계속해서 슬픔도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있고 우리도 이런 감정을 가지고 교회에 있다는 것은
바울의 고백과 다르지 않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왜 우리가 교회에서 여전히 근심과 슬픔이 있는 걸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심장)은
우리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복음을
논리적이고 지적으로 검토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기독교 교리를 지적(知的) 으로 이해해서
진리로 받아들였는데,
이런 사실들을 받아들인 여러분의 마음에
아무런 감정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냥 또 한명의 성경의 지식인이 된 것일 뿐입니다.
지식으로 알고 가르칠 수도 있지만
자신의 마음에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한 것입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마음에 아무런 감동과 변화가 없다면
그런 지식의 획득은 여러분의 삶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학원 강사처럼 진리를 가르치고 온갖 지식을 뿜어내지만
그 지식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어쩌면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오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감정없이 지성만가지고 찾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네가 너의 지성을 가지고
나를 찾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지성을 가자고 나를 찾으라는 의미가
아무런 감정없이, 사랑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기쁨도 없이,
소망도 없이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공지능 학습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갖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친구를 대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이
남편과 아내를 대하듯이 / 여러분의 부모님과 자녀들을 대하듯이
마음과 애정을 가지고 여러분과 교제하고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발견의 기쁨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100원짜리 동전하나를 주원도 기뻐하지 않나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무언가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고
주님의 더 큰 은혜를 발견한다면 흥분되고 기쁘지 않나요?
하나님의 말씀이 동의가 되고 기쁨이 생기면
"아멘"이라고 외치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사랑을 표현하고 기쁨과 슬픔이 표현되어야
서로가 공감을 하는지 못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지식만을 찾고 지식만을 나누기 위해서
교제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기쁨과 무거움의 감정을 가지고 교제하는 것이
바로 인격적인 교제인 것입니다.
생명과 진리 안에서 주님과 함께할 지체를 만나서 행복하다면
그 기쁨을 표현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와의 이별로 눈물을 흘린적이 있다면
지옥을 향하는 혼을 위해서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올바른 판단과 분별과 지성으로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서 감정을 가진 인격으로 주님을 찾으십시오.
여러분의 뜨거움과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어린 자녀들은 감정으로 그 크기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를 주기도문을 외우듯이 성경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내 죄때문에 죽으신 모습을
감정을 가지고 마음이 움직이듯이 받아들이게 하는데는
지식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을 이해 할때까지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복음이 지식으로 전해졌다고 해도
그 사랑과 희생의 크기를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지식으로 전해도 그 때를
인내로 기다려야 할 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 인물을 감정을 이입해서 배우지 않습니다.
우리가 역사 공부를 통해서 이순신 장군도 알고 세종대왕도 알지만 우리가 이들을 알기 위해서 우리의 감정적 노력을 개입시키고 그들에게 사랑과 애정과 인격적인 교감을 하면서 그들을 배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죽은 역사적 인물의 업적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그분의 생명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기쁨과 행복과 위로와 안전을 느끼는 것입니다.
(행4:32) 믿은 자들의 무리가 한 마음 한 혼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그들 중에 아무도 자기가 소유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하더라.
“한 마음 한 혼이 되어”
이 구절은 주님이 명령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교리로 말하면 안됩니다.
이 구절은 초대 교회 당시에 이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해진 내용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함께 모아서
같이 음식을 먹고, 매일 같이 모여서 기도 하자고 제안 한 것입니다.
그 의견에 당시 성도들이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같이 그렇게 행한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명령으로 주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그 어떤 규약이나 상황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한 마음이 되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계획하고 동의하고 매일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한 단어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들이 "한 마음"이 되었구나.
마음의 의지적 문제
(행11:22) ¶ 그때에 이 일들에 관한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던 교회의 귀에 들어가매 그들이 바나바를 보내며 그가 멀리 안디옥까지 가게 하니라.
(행11: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즐거워하며 그들 모두에게 권면하여 그들이 마음에 작정을 하고 주께 붙어 있으라고 하니라.
이 삼십명의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교회"에서 공부를 했다고 해보죠.
이들은 교회에서 지체들과 기쁜 마음으로 교제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함께 했던 지체 중에 누군가
한동안 같이 공부를 하다가 한 두 명씩 모임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까요?
이들은 공부를 해야한다는 당위성에
지적으로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는 것이
기쁜일임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의 지성과 감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이들의 의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이 의지의 문제도
마음의 문제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작정하고 붙어있어야 하는 문제는
이들이 의지를 가지고 선택하고 붙들어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포기할지 모르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거야.
하고 싶은 일이 많겠지만 무엇을 지속적으로 붙들어야 하는지는
바로 마음의 의지문제라는 것입니다.
(롬6:16)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종으로 내주어 순종하게 하면 너희가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6:17)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달된 교리의 그 틀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고
80년대와 90년대의 대한 민국은 술을 권하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술을 안마시는 것이 옳다는 것을
교회에서 배워서 압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주님을 실망시키는 것 같아서 고민도 되지만
직장 상사들이 권하는 술을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시게 됩니다.
술을 마시면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술을 마시면 죄책감에 아파합니다.
교회에 오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우리의 지성의 문제도 감성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때 우리의 문제는 뭘까요? 순종의 문제입니다.
우리 자신을 의에 내어주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에 직면한 사람이 성경을 몰라서
자신을 죄에 내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롬10:1) 형제들아, 이스라엘을 위한 내 마음의 소원(my heart's desir)과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곧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니라.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응급구조대가 와서 하는 일이 뭘까요?
심장의 상태를 보는 것입니다.
심장이 뛰고 있다면 아직 살아 있다고, 아직 희망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마음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마음의 소원”(내 심장의 소망)이라는 표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엡6:6)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doing the will of God from the heart)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제가 한 여성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해보죠.
이 여인은 복음을 득고 저도 믿고 구원을 받고 싶습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눈물도 흘립니다.
그런데 뭔가 주저합니다.
“이 복음을 믿고 주님을 내 주로 시인하시면 됩니다.”
“이 복음을 받들이겠습니까?”
“저도 믿고 구원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여성이 구원받는 것을 망설이는 이유는 뭘까요?
그럼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습니다.
남편이 교회나가는 걸 싫어 합니다.
병상 누워계신 어머님을 돌봐야 해서
그 일에서 자유로워지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시키는 아이들 돌봐야해서
지금 당장 교회에 나오기 힘듭니다.
- 이 여인은 복음의 내용을 받아들였나요? 네
- 이 여인은 죄로인한 사망과 지옥을 두려워 했나요? 네
- 이 여인은 주님께 자신을 드릴 의지가 있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는지 아시나요?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찾으면 너는 나를 찾게 될 것이다.
(고후4: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선포하지 아니하며 오직 주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또 예수님으로 인하여 너희의 종 된 우리 자신을 선포하노니
(고후4:6)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느니라.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알아야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아야 할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시한
구원에 필요한 기준과 조건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둠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어둠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빛을 발견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없이 다음 일은 진행될 수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알아야하는 지식이 있고 영광의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리문답을 주고 받고 물침례를 받았다고 해도
여러분 안에 진리의 빛이 비추어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기쁨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 이외의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롬10:8)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이 있어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느니라, 하나니 곧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다른 말로 여러분의 지성을 사용하고 감정이 움직이고 여러분의 의지가 동원되어서 믿게 되면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믿어"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지고 믿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정의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롬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전도 구절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빼먹어서는 안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롬10:14) 그런즉 그들이 자기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찌 부르리요? 자기들이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 선포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우리가 13절만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냥 기도하라고 하면
누구에게 기도해야 할지
왜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혼을 찾아 가기 전에
우리에게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선포자입니다.
그 설교자가 진리를 선포해야 하고
상대방이 그 진리가 받다들여져야 하고,
그리고 그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없이 그냥 구원을 말하면 잘못알고 있는 사람은
질병에서 구원받는 것을 구원으로 믿던가
재정 문제에서 해결 받는 것을 구원으로 믿게 된다면
커다란 오류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지식과 진리의 방법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그냥 교인수나 늘려보려고
아무나 구원받은 자녀라고 딱지만 붙여놓고 교회에 앉혀놓으면
교회에 앉혀놓고 지옥으로 보내는 혼만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교회에 앉혀놓아서는 안됩니다.
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거나,
인맥이나 사람의 약점을 이용해서 교회에 붙잡아 놓거나
자신의 전적을 올리기위한 행위로 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은 자신의 마음으로 믿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주님을 찾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마음이 움직여서 그 복음에 고개가 끄덕일때
그리고 자신의 결심을 가지고 주님을 부를때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구원받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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