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하지만 그래서 능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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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나의 약함은 나의 자랑이요
요한복음 21:15–19 NKRV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서론

부활주일 -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근현대 들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역사성 논쟁이 학문적으로 연구됐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믿으십니까? 여러분의 신앙을 떼어놓고 본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오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변호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부활에 대한 역사성의 연구는 오히려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역사적으로 일어났었던 사건임은 확실하게 여겨집니다.
물론 반대 견해는 있습니다만, 사실 가장 처음 부활의 역사성을 논증하려했던 시도는 그 전제가 “부활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현재 예수님의 부활은 수많은 학자들이 역사적 사건으로 인정하는 일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예수님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증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 오히려 더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신앙 가운데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ppt)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ppt)우리가 믿음으로 그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ppt)만약 믿는다면, 여러분은 부활과 상관있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부활을 믿는데, 부활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으시다면, 그것은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시 살아난 자들입니다. 부활을 경험했고, 부활을 경험해가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여러분들의 삶이 아주 깊이까지 부활이 영향을 미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제자들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을 보고도 예수님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처럼 그들과 함께 말씀하시고, 더불어 드심으로 인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이후 예수님은 제자들 중 특별히 시몬 베드로와 깊은 대화를 나누십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어떤 자였습니까?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부르신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재판에 끌려가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인 것은 세 번 부인했던 연약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베드로가 배반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나, 그는 닭이 울기 전에 세번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알고, 자신이 사랑한 선생님인 예수님의 죽음과, 끝까지 예수님을 지키지 못하고 부인했던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의 눈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와 대화하시는데, 어떤 대화를 하실까요?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번 부인했던 것을 다시 말씀하시면서 혼내시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의 대화를 한번 봅시다.
요한복음 21:15–17 (NKRV)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니?”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주님께서 아십니다.”
두번째 물으십니다.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니?”
베드로는 두번째 대답합니다.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이 세번째 물으십니다.
“베드로야, 너가 나를 사랑하니?”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세번째에 피할 수 없는 근심을 마주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왜 베드로에게 세번이나 사랑하는지 물으셨겠습니까?
예수님은 베드로를 질책하거나, 혼내시거나, 지적하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은 그저 베드로가 세번 부인했다면, 세번 사랑하는지 물으셨을 뿐입니다.
이 순간 베드로는 근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번 배반한 것을 세번 사랑을 고백하게 하심으로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용서하시고 씻어주십니다.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베드로는 너무나도 인간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이라는 말이 하나님적이다, 신적이다라는 말의 반대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압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던 것은 정말 인간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연약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인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은 곧 모든 인간은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인간적이며, 연약하다는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죄책감을 가지고 예수님이 세번째 물으셨을 때 근심합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을 하신 분이 바로 자신이 부인했던 예수님이며, 심지어 그 예수님이 부활해서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인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지금 우리가 믿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언제나 물으십니다.
“ooo아, 너 나를 사랑하니?”
거기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오늘 부활주일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된 여러분은 싫든 좋든,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정말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든 다른 이유에서든 이 곳에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 말을 듣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오늘 부활주일 예배로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이 예배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ooo아, 너 나를 사랑하니?”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우리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세 번을 물어보실 때 우리 중 과연 아무런 마음의 근심이 없이, 아무런 불안함이나 찔림이 없이 “네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선뜻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님을 부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해야할 때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삶 가운데 주님의 방식과 세상의 방식 가운데 고민하다 세상의 방식을 택하기도 했고,
고의로든, 부지로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이 “사랑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근심이 없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연약합니다. 베드로처럼요.
베드로가 인간적이었습니다. 우리처럼요.
우리는 연약하고, 인간적인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앞에 오셔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가장 연약한 자들이 됩니다.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그러나 오늘 본문 가운데 정말 큰 감동과 은혜인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번 물어보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베드로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세번의 질문에는 이런 예수님의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너가 나를 세번 부인했지만, 나는 너를 세번 용서한다.”
“나는 너의 연약한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일 것이고, 나의 부활에 함께하는 자로, 그리고 양을 치는 나의 역할을 함께 감당할 자로 부를 것이다.”
“나의 사역에 쓰임받는 자는 강하고, 갖추어진 자가 아니라 나를 부인하고 인간적이고, 연약했던 바로 너 베드로이다.”라고요.
여러분 이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의 장면으로부터 바로 초대교회가 시작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모두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이 잡혀간 이후,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도망치거나, 다시 어부일을 하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이 모인 가운데서 그 연약한 제자들 중 가장 연약했던 베드로에게 세번의 질문과 답변을 이끌어내시며 “네 양을 치라”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대면하는 방식은 우리의 연약함 그대로를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요. 다른 제자들처럼요.
우리가 연약하고, 인간적이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부족했던 그 모습 그대로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그 연약함, 인간적인 모습, 순종하지 않는 모습, 부족한 모습을 대신해서 그것들을 십자가에 함께 못박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3:4 NKRV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예수님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 연약함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입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우리의 부인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 모든 연약함을 못박으시고, 죽이신 후, 자신은 다시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약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 안에서 함께 삽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부활의 능력이 초대교회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예수님이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나서 초대교회가 생겨요.
그 초대교회에서는 병자가 고침 받고, 서로 사랑함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그 교횔르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습니다.
그 초대교회에서의 사역으로 인하여 복음이 전해지고, 모든 하나님의 선한 것들이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초대교회에서 그 사역들을 해낸 사람들이 누굽니까? 베드로입니다. 제자들입니다. 연약했던, 부족했던 그들입니다.
그들이 병자를 고쳤고, 그들이 서로 사랑함으로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에게 나눴고, 그들이 구원받았습니다.
심지어 그 제자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고 순교했습니다.
연약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은 그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M6 : 동일한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의 반응을 제시하

청년부 여러분.
초대교회가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 초대교회에서는 정말 많은 능력들이 일어났고, 특히 서로 사랑하는 그 교회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천국이었습니다.
모두가 서로 사랑해서 서로를 섬기고, 위하는 모습들. 결코 연약하다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했던 자들은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다만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그들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예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때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2000년전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도대체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러분. 2000년 전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이 부활주일 이 말씀 가운데 우리이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가 연약한거 다 안다. 그래도 너 나를 사랑하니?”
세번 물어보세요.
“너 인간적이고 부족한거 다 안다. 그래도 너 나를 사랑하니?”
“너 나를 사랑하니?”
우리는 연약함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고, 사랑을 고백해야 합니다.
“네 주님. 저 연약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그 고백을 하는 자들이, 연약함을 가지고, 인간적인 모습을 인정하고 그 고백을 하는 자들이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마치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그러한 능력이 연약함 그대로 나아가며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일어납니다.
네 맞습니다. 우리는 정말 연약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부활에 참여하느 자들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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