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3장 18-24절(응답받는 기도의 기쁨)
Notes
Transcript
누가 여러분들께 요한일서의 주제가 뭐야? 라고 물으다면, 코이노니아 아이가~~ 이렇게 대답하시면 됩니다.
코이노니아는 헬라어로 교제하다, 관계를 나누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부터 저자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교제를 이어 나가신다 라는 핵심 주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위하여서는 나누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시장에서 잔돈 몇백원이라도 안받아야지 주인과 친해질 수 있습니다.
음식, 물질, 삶, 생각 등을 많이 나눌 수록 더 깊은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가장 좋은 것,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와 너무나도 깊은 교제를 누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누는 자가 성도 이며, 교회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코이노니아의 시작이며, 완성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좋고 큰 것을 받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드려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8절 입니다.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눔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나눌 때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베푸신 사랑을 우리가 억지로, 기계적으로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구원와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셨을 때 억지로, 기계적으로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도 진실한 사랑입니다.
진실하다는 것은 신실하다,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진실함의 반대말은 왜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을 내 마음대로 상대방을 판단하여서
저 사람은 안돼, 사랑과 용서를 받을 자격이 없어, 저 인간이 예수 믿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그대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자들에게 두 가지를 허락하십니다.
19절 입니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진리에 속한 줄을 알게 된다는 뜻은 ‘진리 안에 거하고 있다, 진리에서 태어난 존재’ 라는 뜻입니다.
사랑을 말과 혀로만 하는 자들은 육체는 있지만 영혼이 없는 모습과 같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로는 외치지만, 정작 본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도, 누리지도, 나누지도 못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나누는 자들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이 사랑의 감격과 감사를 누리고 나누기 위해 마음을 더욱 굳세게 하십니다.
단순히 책으로 배운 것이 아닌, 이론이 아닌, 행함이라는 실천과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하나님으로 부터 나옴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할 때, 책속에 있는 그리스도, 지식의 하나님이 아닌 내 삶에 실제로 역사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역사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이 부족한 나의 삶과 하나님이 명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 하는 삶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20절 입니다.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나누는 자들을 왜 책망을 하십니까?
이 말은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더 잘 전하고 싶고, 그 사랑 안에 살고 싶은데 항상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용서해야겠다, 더 사랑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실천도 하지만 여전히 잘 안되고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괴리감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얕은 사랑과 교만을 두드리며 깨뜨리십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기준점은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바라보며 항상 내가 베푸는 사랑은 부족하고 연약함을 느끼는 사랑의 괴리감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지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앞에
나의 찌질하고,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계산적인 사랑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때서야 진정으로 하나님으로 부터 흘러 나오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눌 수 있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과연 내 삶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지,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삶의 괴리감을 느끼고 살고 있는지를 항상 확인하고 점검함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나누는 자에게 하나님은 세 가지 유익을 허락하십니다.
첫번째는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십니다.
담대함은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담대하게 나누는 삶을 살도록 그 중심과 기회와 입술을 허락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만큼, 하나님을 담대함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두번째는,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자 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 지를 계속 찾게 됩니다.
나를 위한 기쁨을 찾으면, 그 기쁨은 탐욕과 쾌락과 집착과 중독으로 변질 됩니다.
왜 사람들이 술, 담배, 마약, 게임, 도박, 성적인 중독 등에 빠지게 됩니까?
이 모든 것들이 나의 기쁨을 채우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을 찾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위로와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깨닫는 기쁨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품고, 용서하고, 사랑한 사람은
때로는 그 과정이 힘들고 포기하고 싶어도, 모든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품고 용서하시고, 기다려 주시고, 사랑하셨는지,,
넓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만을 챙기는 사람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알 방법이 없습니다.
이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질투하고 시기하고, 복수를 다짐하는
그 마음 자체로 지옥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로 가득찬 그 마음과 삶에 어떻게 기쁨이 생길 수 있습니까?
결국 이런 마음이 상대방을 죽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나 자신을 먼저 죽이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은 너무나도, 아주, 진짜 힘이 듭니다.
잘 안됩니다. 기도해도 여전히 그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나 자신을, 하나님이 먼저 변화 시켜 주심을 기억하시며,
마음으로 누군가를 살인하는 자가 아닌,
먼저 구원의 은혜와 생명의 살아남의 회복을 경험하여,
주님의 기쁨이 차고 흘러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세번째는,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주시는 기도의 능력을 경험 합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합니다.
기도를 꼭 식당에서 음식 주문하는 주문서나, 힘들고 일이 안풀릴 때 넣는 탄원서 같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도는 하나님과의 협상의 도구가 아닙니다.
또한 온라인 마켓 처럼 결제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배달해주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랑의 실천을 이야기 하다가 뜬금없이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과 기도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본문 22절 입니다.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기도는 응답을 받기 위한 도구 보다는,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참되고 깊은 사귐이 우선 입니다.
여러분,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잘 모르십니까?
그러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하면, 교회의 상황과 상관없이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속한 전도회, 구역원들을 사랑하면, 그들을 돌아보고, 중보하게 됩니다.
내가 다니는 직장, 학교, 만나는 사람들, 나의 가족들 등등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도하는 것 밖에 없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먼저 용서하시고 사랑하셨기에 내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하고 하기 싫어도 ‘나를 먼저 살리신 주님이 이제 너도 살리신다’ 라는 마음으로라도 원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에게 주신, 가장 좋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내가 드리를 수 있는 직접적인 관계맺음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자 입니다.
우리는 이 응답받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계명을 나누는 자이며,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나눔으로 기도의 응답을 받는 자 입니다.
행함과 진실함이 있는 사랑을 나눔으로, 하나님과 더 깊은 기도의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풍성한 응답의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본문 24절 입니다.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지금 내가, 우리 교회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지 아는 방법은 단 한가지 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은 그 사람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에서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주님을 떠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나에게 나오는 사랑은 나의 결심과 결단과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거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갑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옛 계명을 두 돌판에 새겨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성취되고 완성된 새언약, 사랑의 계명을 우리의 마음과 삶에 새겨 주셨습니다.
교회가 이 땅에서 승리하고 빛 날 수 있는 이유는 세상과 다른 사랑을 살고, 나누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사랑이 없고, 용서가 없고, 다툼과 고통이 가득하다면, 교회에 무슨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겠습니까?
이렇게 사랑이 없는 교회의 기도를 하나님이 어떻게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들어 쓰시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합니까?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 처럼,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고 격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장전중앙교회의 가장 큰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나가는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놀라운 교제와 응답을 체험하는 우리 공동체와
행함과 진실함으로 주님이 명하신 사랑의 계명을 삶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