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1장 1-10절(하나님과의 사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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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서신이 쓰여질 당시 교회들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해 있었습니다.
거짓교사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잘못된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특히 당시 유행하던 영지주의 사상은 신앙의 뿌리를 뒤흔들고, 교회를 혼란에 몰아 넣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영적인 것을 선한 것으로, 육적인 것을 악한 것으로 구분 짓습니다.
그래서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고, 말씀 이외의 다른 지식을 찾기 위한 부질없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다양한 이단들의 공격과 무너진 기독교 교리는 신앙과 죄를 분리하면서 도덕적으로도 교회가 타락해 버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단, 왜곡된 기독교 교리, 무시되는 하나님의 말씀, 도덕적 타락, 교회의 분열과 무너짐 이라는 위기 앞에서 저자는 이 서신을 통하여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를 급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향하여 적대적이며, 손가락질 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으로써
또한 교회 안에 세상의 풍조와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며 혼란과 분열의 위기 가운데 있는 교회를 바라보며,
무엇보다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다 시험과 환난과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교회가 무엇이며, 누가 교회를 세우셨는지를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하며, 그 은혜를 기억하는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첫번째, 우리는 예수님과의 사귐을 통해서만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요한 서신의 저자는 사도요한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신서의 시작이 요한복음의 시작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입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은 요한복음의 말씀을 인용하여, 혼란과 분열과 어려움에 처한 교회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본문 1절 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지금 너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아느냐? 그는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생명으로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어서 더 놀라운 사실을 선포합니다.
2절입니다.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생명 그 자체이시며 /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 빛으로, 말씀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에게서 직접 듣고 보고 만지는 인격적 만남을 누림으로 / 단순한 말씀의 선포와 가르침을 넘어
생명을 얻고 생명을 경험하는 놀라운 은혜와 신비를 경험한 자들이 성도이며, 교회임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선포하는 이 예수 그리스도는 만들어낸 이야기, 신화가 아닙니다.
이 땅에 빛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직접 경험한 요한이 전하는 참된 복음이며 진리 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교회와 성도의 삶에 가장 큰 능력이며, 해답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교회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이 복음의 진리, 생명의 말씀이 분열과 거짓복음으로 무너져 내리니까 / 교회도, 성도의 삶도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경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단순한 문제의 해결을 넘어선 근본적 채움과 회복입니다.
3절입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3절에서 사귐을 헬라어로 ‘코이노니아’ 라고 합니다.
코이노니아는 교제, 나눔, 섬김, 헌신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는 참된 교제 속에 있어야 합니다.
이 교제는 그냥 열심히 관계를 맺는 것, 사람을 사귀고, 발이 넓은 것이 아닙니다.
3절에서 무엇이라 합니까?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한다.
무엇을 보고 들었습니까?
먼저 경험한 / 말씀이시며,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보고, 듣고, 전합니다.
공동체가 경험한 생명의 말씀을 함께 나누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아들과 교제하는 것과
더 나아가 주님과 교제를 누리는 자들이 주님의 말씀 위에서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 더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와의 교제의 자리에 나아올 수 있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교제, 코이노니아 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제의 기초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의 기초 위에 있어야 하고, 그 사귐과 함께 교회의 사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귐을 먼저 행하셨으며, 가르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가장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 주님께서 / 우리를 하나님과의 사귐의 자리에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 놀라운 사귐을 통해서만 우리의 기쁨이 완성됩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사귐을 통해 기쁨을 가득 채우십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큰 기쁨은 /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사귐이 날로 풍성해지며, 세우신 공동체의 모든 동역자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것 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하여, 그 분의 생명으로 주신 이 놀라운 축복의 교제의 자리에 나아와 풍성한 기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빛이시며, 생명이시며, 말씀이신 주님과 함께 어떻게 기쁨의 교제를 누릴 수 있습니까?
두번째, 참된 사귐은 어둠과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라 고 합니다.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으며, 빛과 같은 존재이시며, 빛으로 인도하시는 빛,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는 것은 도덕적 완전함을 의미하며 죄와 악이 없으심 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조금의 어둠도 없으시며, 허용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도덕적으로 완전하신 하나님을 따름이 마땅합니다.
빛과 어둠을 타협할 수 없으며, 타협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어둠과 함께 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빛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며 기쁨을 누린다 하면서
우리의 삶이 어둠에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진리를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거짓을 고백하고, 거짓을 살아가며, 하나님을 망령되게 하는 자들과 같습니다.
본문은 단호하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면 어둠을 행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사귐이 없으면 어둠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9-21절 입니다.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빛과 어둠을 동시에 따를 수 없습니다.
동시에 붙잡을수도 동시에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 중 한가지를 선택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죄에 대하여 두 가지 태도를 보이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죄가 없다고 말하는 자 입니다.
6절입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말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지만, 그의 삶이 어둠을 행하고, 거짓을 말하며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는 자이며,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자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고 말을 합니다.
로마서 3장 23절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지만 자신이 죄인임을 부정하거나, 하나님을 안다 믿는다 하면서도
그 마음 속에 악독과 악행과 악한 말과 정죄와 자신의 욕망과 욕심이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면 빛 가운데 있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둠 속에 있으면 자신의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10절에서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한 자 라고 합니다.
말씀이 없다는 것은 빛이 없다는 것이며, 생명의 빛이시며,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외치는 껍데기 뿐인 신앙이 아닌지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항상 점검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두번째로 빛으로 오신 주님과 교제하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자는 어떻게 합니까?
9절입니다.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과의 참된 인격적인 관계맺음이 무엇입니까?
참된 죄인은 자신의 죄를 숨기거나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께 공유하고 털어놓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어둠이 있기에, 빛 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죄와 허물과 자존심과 욕망을 내어 던집니다.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의 피로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임을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신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 받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며 / 빛 가운데 거하는 자가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귐 가운데 있는 자 입니다.
무엇이 은혜 입니까? 나의 원하는 것, 바라는 것, 필요한 것을 채우실 때 그것이 은혜입니까?
아닙니다.
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더럽고 추악한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힘입어 주님과의 사귐의 자리로 온전히 나아갈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귐의 반대말은 단절이 아닌 죄악 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에 어떻게 나아갈 수 있고, 누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백 뿐입니다.
우리는 이 자백을 통해 주님께 우리의 죄를 드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불의와 죄만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자백 만으로 하나님께서는 죄 사함과 아들을 통한 영원한 생명과 사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의 사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며, 은혜이며, 역사입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 빛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해결하셨습니다.
생명의 말씀으로 / 복된 사귐의 자리로 / 인도하시는 주님만을 붙들고, 생각하며, 우리의 모든 해결책이신 주님 앞에 온전히 엎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요한은 이 서신을 통해 분열되고 위기와 무너짐 앞에 있는 교회를 향하여 교회가 무엇인지를 다시 기억하고 찾으라 고 합니다.
위기와 분열 가운데 교회는 / 어떠한 방법을 모색하고, 좋은 사람을 세우는 것 보다 / 더 근본적이고 위대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세우셨으며,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된 교회의 영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앞에 놓여진 허다한 많은 문제들 앞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장 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무엇 때문에 믿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삶과 중심과 생각이,
신앙 조차도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습니까?
성도는 마땅히 교회의 존재와 교회가 소유한 그 생명을, 그 복음을 가능하게 하신 /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아는 지식과 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분, 나의 가정을 세우신 분, 이 교회와 공동체를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누구신가? 를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빛으로 오신 하나님 한분만으로 모든 것이 채워졌습니다.
그 분의 빛 안에는 뜨거운 긍휼과 얼어붙은 마음과 관계를 녹여줄 사랑이 가득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 이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이며, 실천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사귐이 우리 각자의 삶 가운데, 특별히 주님이 세우셨으며,
주님이 주인되신 장전중앙교회의 모든 공동체 안에
충만하게 차고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