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2장 1-6절(완전한 변호사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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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작년 말 세웠던 수 많은 계획들이 기억나십니까?
그 계획들을 잘 행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이미 기억속에 사라져 버렸습니까?
년 초가 지나면서 지금쯤 우리가 항상 깨닫는 것은 모든 계획이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좀 더 발전적이고, 나은 방향의 계획과 삶을 꿈꾸지만 항상 실패 합니다.
똑같은 문제로 넘어지고 낙심합니다.
특히 신앙과 영적인 계획들 앞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의지가 부족하고, 계획과 실행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돌발스러운 상황이나 문제들 때문입니까?
겉으로 보이는 징후들은 그렇지만, 성경은 우리 삶의 수 많은 문제 중 가장 근본적 문제를 잊고 살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도, 관계도, 환경도, 계획도, 실행력도) 아닌 /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영원한 사귐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죄로 인해 /그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고 / 여전히 죄의 범벅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자인 요한도 죄의 범벅인 상태로 / 하나님이 주시는 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교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려운 시련과 문제와 이단들의 끝없는 공격 앞에서 어리고, 미숙한 교회를 바라보며 / 그들의 문제점에 대하여 진심어리고, 사랑이 담긴 말로 권면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지금 우리는 고난 주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문제로 낙심하고, 아직도 죄의 사슬을 끊지 못하는 수 많은 죄의 문제들 앞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아 ~ 라고 부르시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요한은 죄의 문제 앞에 있는 교회를 향하여 어떤 권면을 전하고 있습니까?
첫번째, 주님은 우리의 최고의 변호사가 되십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자는 왜 이 서신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1절 에서 말하는 것 처럼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하기 위해 썼다고 합니다.
죄가 무서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멀어지고, 끊어지는 단절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죄는 당시 교회를, 그리고 지금 우리를 흔드는 여러 요인 중 가장 위험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일어나는 (관계의 문제, 질투와 이기심과, 욕심과 교만등) 수 많은 문제들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죄 때문입니다.
반대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 교회를 공격하는 내 외부적 수 많은 문제들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며, 얼마든지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누가 죄를 범하지 않고 완전하게 살 수 있냐는 것입니다.
역사상 단 한명만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바로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주님 말고는 아무도 죄를 범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3장 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 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진리이며 본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사귐에 실패합니다.
예배를 잘드려야겠다는, 말씀을 묵상하겠다는, 기도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하겠다는 / 수 많은 다짐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천만다행인 것은 이런 우리의 연약하고 악한 현실을 하나님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연약하고, 죄에 파묻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에게 / 하나님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 분을 우리의 대언자로 세우셨습니다.
여기서 대언자는 영어로 advocate, 변호하다, 변호사 라는 뜻입니다.
작년에 ‘천원짜리 변호사’라는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주인공이 어떤 계기를 통해 사회적으로 약하고, 힘없고, 돈없고, 억울한 자들을 변호하는 데 수임료가 천원입니다.
변호사 스스로가 / 왜 도와야 하나? 왜 이렇게 해야 하나 정체성에 혼란을 겪지만 / 결국 약자 편에 서서 그들을 변호하고 통쾌하게 이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변호사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어떤 변호사 이십니까?
의로우시다 는 것은 완전하고 흠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인생은 세상과 죄라는 /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저 마지막에는 빛이 있다는 것을 알고, 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터널을 빠져 나온 것이 아니라 아직 터널 속에 있습니다.
죄를 지어서는 안되지만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시기에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이 땅에, 흠이 없고 완전하신 우리의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회개는 일방적 통보가 아닙니다.
내가 회개하고, 내가 이야기 하니 하나님은 잘 듣고 다 용서해주시고, 다 해결해 주세요
그게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이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죄를 싫어하시며, 우리의 죄를 가슴아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과 함께 울고, 슬퍼하고, 함께 고난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변호하십니까?
2절입니다.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주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오셨습니다.
화목제물은 덮음과 완화와 화해를 상징합니다.
주님의 생명으로 인해
우리의 죄를 덮으시고, 하나님의 분노를 완화 시키시며,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시는 완전하신 대언자 이십니다.
주님 한분 만으로 온 세상 죄를 다 뒤덮을 수 있을 만큼 / 충분하시고, 완전하신 속죄의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 주님 앞에서 감히 어떻게 ‘그럼 우리는 죄를 지어도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구원은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회개의 동전을 넣으면 그 만큼 차감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를 짓고 회개하면 그만입니까?
이런 생각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에 있는 자들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원한 참된 사귐에 거한다고 하면서 /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짓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가장 큰 고통이며, 후회이며,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진 주님을 /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것과 똑같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님과의 사귐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어 주셨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장치와 보상을 충분히 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 죄 가운데 계속 거하는 것은 하나님 책임이 아닌 우리 책임 입니다.
참된 회개는 죄인이 먼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회복하심과 다시 세우심을 통해서만 참된 회복이 주어집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 특별히 고난 주간을 통해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이 시점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완전하고 흠없는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겸손히 엎드리는 것 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회개의 놀라운 역사, 이제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 바뀌는 참된 회복의 은혜가 하늘로 부터 충만히 임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두번째는, 죄를 짓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고, 회개의 회복을 누리고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지키며 살고 있는 가 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오로지 돈 되는 것만 봅니다.
그들의 눈에는 집, 땅, 주식, 코인, 아파트 등등 그런 것들만 보며 살아갑니다.
그럼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무엇을 봅니까?
그의 계명을 보아야 합니다.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면 3절에서는 우리가 그를 안다 고 하십니다.
또한 5절입니다. (함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하지만 4절에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 하는 자,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한 자라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에 대한 경험, 지식, 체험, 종교적 행위, 직분 등으로는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대학 때 다녔던 교회에서 저희 동기들 중에 예배 맨 앞자리에 앉아서 손들고, 눈물로 찬양하는 자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기 모임만 가면 그렇게 없는 사람 뒷담화에,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교회에서 왕따 시켜서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 그 때 교육 부서 부장이었고, 장립집사셨던 분은 자기 딸이 입고 온 옷이 마음에 안든다고 오전예배 마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교회당 앞에서, 자기 딸의 뺨을 때리는 것을 눈 앞에서 보기도 하였습니다. //
여러분, 주님이 말씀하시는 계명, 그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3장 34절 입니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마태복음 22장 37-39절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함께)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저자는 오늘 본문 6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가 행하시는 대로,,,어떻게 행하셨습니까?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나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나 때문에 채찍에 맞으신, 나 때문에 목숨을 내어 놓으신 / 그 사랑을 우리도 행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으라, 서로 사랑하라는 좋은 명언이 아닌 사귐의 실제 입니다.
마태복음 7장 20절에서 그들의 열매로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순종의 확실한 증거를 원하십니다.
구원 받은자, 확신에 거하는 자는 절대로 계명과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
부차적이고, 있으면 하고 없으면 말고, 자존심 상하면 안하고, 누가 인정해주면 하고, 지킬 수 있음 하고 아님 말고 가 아닙니다.
아들을 주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사랑은 / 기념이 아닌, 신화가 아닌 실재 입니다.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것은 (묵상, 기도, 영적 체험에 국한된 종교적 모습)이 아니라
그가 행하시는 데로 나도 행하는 온전한 순종의 삶 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정통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정통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 닮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누구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 앞에서, 그 무덤 앞에 서서 / 나의 교만과 욕심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습니까?
우리를 위해 최고의 사랑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우리는 어떤 자 입니까?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도 용서합시다. 기분이 나빠도 좀 참읍시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 때문에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을 좀 더 높여 줍시다.
나의 이익이 아니라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랑하고 섬깁시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께서 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생명을 내어 놓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죄에 뒹굴면서 껍데기는 깨끗해 보이고자 하는 불완전하고 허점투성이 완전함이 아닙니다.
얽매여 있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에 대하여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입니다. (함께)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 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 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자격이며, 능력이며 힘이 되십니다.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 앞에 쏟아내고,
주님을 사랑하고 닮아가는 / 기쁨과 즐거움을 / 죄와 사망에 빼앗기지 않는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장전중앙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