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요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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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생명
부활의 생명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랑합니다! 오늘은 무슨 예배인가? 부활주일이다. 부활절하면 떠오르는게 무엇이 있는가? 보통은 달걀이나 토끼를 떠올리게 된다. 왜 부활주일에 토끼와 달걀이 상징이 되었을까? 김계란이라는 헬스 유튜버는 예수님도 근손실을 피할 수 없었으니, 그것을 방지하려고 계란을 먹는게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부활절을 지키라는 이야기와 또 달걀을 먹는 것, 토끼가 구약에 제사드릴 때 번제물로 등장한 것도 아니였다. 그렇다면 부활절 영어로 무엇인가? Easter이다. 부활은 영어로 무엇인가? resurrection이다. 부활절을 영어로 해야한다면 Happy resurrection이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것에 대해 여러분과 나누고 시작하도록 하겠다.
부활절은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인가? 봄이다. 봄에는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게 되면서 새싹이 자라나고 생명력을 가지는 시기이다. 옛날 아주 먼 고대 북유럽 신화에서 숭배했던 봄의 여신 ‘에오스트레’를 기념하면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달걀과 토끼를 사용했다. 토끼가 동물 중에서 강할까 약할까? 우리는 보통 토끼가 초식동물이고, 공격력이 하나도 없어서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토끼를 무시할 수 없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토끼는 엄청나게 번식력이 뛰어나다. 토끼는 최대 1년에 최대 4,556마리를 생산했다는 기네스 기록도 있다고 한다. 반대로 동물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자는 임신기간이 100일이며 최대 6마리를 낳는다. 아무리 일 년 동안 열심히 새끼를 낳는다고 해도 최대 18마리 밖에 가질 수 없다. 그렇기에 공격력이 강한 동물이 강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생존하는 동물이 제일 강한 동물인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봄이 오면 자연스럽게 토끼와 달걀을 보면서 ‘에오스트레’라는 여신을 생각하게 되는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4세기에 춘분(낮과 밤이 똑같은 때 낮 12시간, 밤 12시간)을 기준으로 보름의 첫 번째 주일에 부활절을 지키기로 했다. 춘분에 세계에 많은 종교들이 축제를 벌였다. 이 때 유대인들의 가장 큰 절기 ‘유월절’도 이때 지켰다. 그러나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수용하면서 진정한 생명은 에오스트레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진정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제물이 되신 분이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기에 토끼와 달걀을 보면서 누구를 생각하게 되는가? 모든 만물을 소생시키시는 진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누가 죽은 이야기인가?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이다. 예수님이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었다. 정말 위독하고 심각한 병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고치러 가야하는데, 예수님이 계셨던 곳에서 베다니까지 하루만에 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틀이나 계셨다가 그곳으로 출발한 것이다. 뭔가 이렇게만 보면 예수님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오늘 읽은 본문 17절에 보게 되면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고 한다. 여기서 잠깐, 하루는 며칠인가? 1일이다. 그 다음은 이틀(2), 사흘(3), 나흘(4), 닷새(5), 엿새(6), 이레(7), 여드레(8), 아흐레(9), 열흘(10), 열하루(11), 스무날(20), 스무하루(21), 그믐(30)이다.
자, 예수님과 베다니는 며칠 걸린다 했는가? 하루 걸린다. 그러면 소식을 전하러 갔을 때 하루, 예수님이 소식을 며칠을 머무셨는가? 이틀이다. 그곳에서 베다니까지 하루 걸리면 총 며칠인가? 나흘인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일부러 죽을 때까지 기다리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오빠 나사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하러 출발할 때 죽은 것이다. 그렇기에 나사로가 죽은 것은 예수님의 책임이 아닌 그의 병으로 죽었다.
예수님은 그렇게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다. 중동 대낮의 날씨는 어떠한가? 엄청 뜨겁다. 날이 더우면 시체가 천천히 부패하지 않고 빠르게 부패한다. 지금처럼 차가운 냉동고가 없는 시대이기에 당시 사람들은 죽으면 곧바로 장사를 지낸다. 대부분 바위를 파내어 만든 무덤을 사용한다. 그리고 무덤 앞에 구르는 돌로 막아 놓는다.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애도기간은 7일이다. 당시 랍비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은 3일 동안 몸 안에 들어가려고 애쓰면서 몸 주위를 맴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넷째 날에 죽은 사람의 얼굴색이 변하는 것을 보면 다시 말해, 부패가 시작하면 그 영혼이 멀리 떠난다고 말한다. 나사로는 죽은지 며칠인가? 사흘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부패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사로는 완전히 죽은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오셨다는 소식을 마르다가 듣자마자 자신의 상갓집에 도착하시기 전에 맞이한다. 그때 마르다는 가슴 깊이 아파하면서 원망의 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이고, 주님. 주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저의 오빠가 죽지 않았을겁니다.” 마르다는 실망과 좌절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했지만 예수님이 반드시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때 예수님은 나사로와 함께 계시지 않았다. 마르다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간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나사로는 죽었지만 예수님의 능력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예수님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할 것이라는 의심하지 않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마르다는 예수님이 자기 오라버니를 지금 살리실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대답하신다. 이미 부패하여 썩어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이것을 들은 마르다는 “네네 그럼요. 주님,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 때 저의 오빠가 살아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로 이해한다. 마지막 부활은 당장이 아닌 먼 미래 일이다. 마르다는 종말에 있을 부활을 분명하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다의 대답은 예수님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마르다와 다르게 예수님은 지금 즉시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마르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소개하시는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신다. 생명은 너무나도 신비롭다. 살아있는 사람은 말하고 먹고 움직인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생명은 살아있다. 사람은 그 살아있는 생명을 받은 자들이다. 사람은 어떠한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스스로 창조해 낼 수 없다. 어느 사람도 예외없이 제한된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돈이 아무리 많고 건강하고 힘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거나 늘릴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이라고 소개한다. 생명을 주장하시면서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을 부활이라고 말씀하신다. 부활의 뜻이 무엇인가? 다시 사는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 아무 것도 더 이상 어떤 무언가를 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사람에게 다시 생명을 부여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죽음을 뛰어넘는 아주 강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사로는 실제로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이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거라!”고 소리치시실 때 신기하게도 죽은 나사로가 미라로 베를 칭칭 감은 상태로 걸어나오는 것이다. 온몸을 칭칭 감고 있었기에 걸어 나올 때 걷기가 편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무능력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느낀다. 사람이 한번 죽게 되면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이시며 부활이시다. 그렇기에 사망을 향해 소리칠 수 있는 분이고, 사망과 죽음을 향해 명령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생명이시며 사망을 다스릴수 있는 세상 누구도 가지지 못한 강한 능력의 주님이시다. 그렇기에 죽음은 모든 사람, 인류의 최대 적이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로 죽음이 인류에게 들어왔다. 죽음을 정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심으로 죽음을 정복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후에 생명을 주셨다. 그리고 구약에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이 마른 뼈를 살리시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만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자신이 사람을 만드시고 생명을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장면이다. 부활은 언제 일어나는가? 종말, 곧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모든 죽은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심으로 마지막 때, 종말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보여주셨다. 그렇다면 나사로는 부활하고 어떻게 됐을까? 아직 종말이 오지 않았기에 나사로는 다시 죽음을 경험했다. 예수님이 다시오시면 모든 사람이 다 이처럼 부활할 것을 약속을 미리 성취하는 예고편인 것이다.
오늘의 설교제목은 ‘왜 일요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까?’이다. 먼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하신 7일 째 마지막 날이 안식하셨기에 일주일에 마지막인 토요일에 회당에 모여 안식일을 지킨다. 예수님이 유월절에 진정한 화목제물이 되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첫 날이 일요일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매 주일마다 무엇을 기억하는 날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날이 주일 예배이다. 부활절에만 기억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의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주일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심의 약속을 매 주일마다 기억해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교회는 주일마다 성찬식을 드리는 교회도 있다. 그리하여 교회에서 이상하고도 신기한 현상은 크리스마스가 아닌 날에 성탄 찬양을 부르는 것이 매우 어색해졌다. 분명 다음 주일에 만약에 성탄 찬양을 하면 누군가 와서 ‘오늘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왜 성탄 찬양을 부르나요?’라고 물어볼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절기가 있을지에 대해서 물어보게 될 것이다. 절기는 분명하게 믿음이 연약한 자, 세상 사람들에게 잘못된 문화로부터 진정한 부활과 생명이고 창조주이신 분이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전하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때 많은 사람이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인생에 가장 큰 진정한 선물이 누구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때 종교와 상관없이 세계의 많은 사람이 기쁨을 누리지만 그것은 잠시 잠깐이다. 그러나 영원한 기쁨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우리는 세상에 외쳐야 하는 것이다. 어떤 감귤 농장에 첫 열매가 나오게 되면 무엇을 뜻하는가? 이후에 두 번째, 세 번째 열매도 나타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다시 오실 때 이처럼 모든 사람이 부활을 경험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요,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드림인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과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과 다시 오셔서 모든 죽은 자가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절기때만 기억했다면 이제는 매 주일마다 기억합시다. 그래서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날마다 이를 고백하는 것 아니겠는가? 매 주일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은 날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살아있는 소망으로 살아가게 하실 주님께 감사하며 날마다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저와 드림인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