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1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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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 380 나의 생명 되신 주
헌금명단호명 / 기도
사랑이 충만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로 4월을 시작하게 하시고, 또한 새 아침에 주의 전에 나와 기도로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도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무리들을 기억하시고 우릴 위해 예비하신 크고 놀라우신 은혜들을 부어 주시길 사모합니다. 특별히 주님, 고난 주간 주님의 크신 은혜를 맛보게 하시고, 기쁘고 감격스러운 부활의 날을 맞이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위하여 낮고 천한 이 땅 가운데 내려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받고 죽임당하셨다가, 우리를 위하여 부활승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 드리는 예물들을 주님께서 흠향하시고 그 마음의 소원들을 주께서 아시오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왕상 1:1-10
이번 4월 한달간은 새벽마다 열왕기상 말씀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열왕기는 다윗에서부터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다윗왕조의 발흥기부터 시작해서 주전 930년을 기점으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열, 그리고 주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 북왕조와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여 포로기로 들어가는 남유다의 이 모든 역사를 조망한다.
다시 말해서 열왕기는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분류상으로는 역사서에 속하지만 세상의 역사책과는 분명 관점이 다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번영과 안녕, 평안과 복의 기준은 아주 분명하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에 얼마나 충성했는가 라는 부분이다. 아무리 나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고, 아무리 나에게 뛰어난 정치감과 외교력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끝은 파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도 이러한 주제를 엿볼 수 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본문의 말씀부터 열왕기상 2장까지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왕이었던 다윗과 솔로몬의 왕권 전환에 대한 기사를 다루고 있다. 1절처럼 다윗은 나이가 많이 들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질 않을만큼 노쇠했다. 고대근동 사회에서 노쇠한 사람을 케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젊은 사람을 곁에 눕히게 하는 일들은 일종의 치료책으로 제시되곤 했다. 고대 그리스 의학문헌에서도 이러한 사실들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이 때 신하들은 왕권의 안정을 위해 왕의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치료책으로서 젊은 사람을 구해 함께 잠자리에 눕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하들의 태도는 충정처럼 보일런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불신앙이다. 그들은 다윗의 노쇠함이 국정 공백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다윗을 회복시키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그래서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곁에 두면 다윗의 기력이 회복될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안위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아니라 다윗의 강건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
지금 다윗은 매우 늙고 노쇠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의 뒤를 이어서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다윗이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솔로몬을 왕위 계승자로 공식선포한 상황은 아니었다. 왜 다윗은 젊은 사람이 없이는 몸이 차서 괴로워할 정도로 노쇠했는데도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선포하지 않았을까? 이는 어쩌면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삶으로 고백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도무지 자격이 없던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셨고, 또한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에 그를 끌어내리신 분도 하나님이셨으며, 다시 회복시키셔서 지금 이 순간까지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따라서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를 자신의 마음대로 세울 수 없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면 하나님의 때까지 그는 기다려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럴 때가 있다. 내 판단으로는 지금이 최적일 것 같은 때가 있다. 내 생각으로는 지금 이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때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상황이라고 판단될 때가 있다. 바로 이 때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때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열어주시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하들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하들 뿐만 아니라 다윗의 가문에서도 압살롬에 이어 또 다른 불신앙의 아들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아도니야였다. 5절 상반절을 보시면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 아도니아는 죽은 압살롬에 이어 왕위 계승 1순위였던 넷째 왕자였다. 또한 6절을 보면,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그는 용모가 심히 준수했고, 다윗도 그를 꾸중할 일이 없을 정도로 매사에 자질이 뛰어났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방금 읽었던 5절을 보면 원문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으나 히브리 원문에서 강조점은 “나”에 있다. 다시 말해서 아도니야의 말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자면 이럴 것이다. “노쇠한 아버지의 뒤를 이을 왕이 누가 있겠는가? 나 아니면 도대체 누가 이 나라를 먹여 살리겠는가? 나 아니면 누가 아버지 다윗의 뒤를 잇겠는가? 이 나라는 나 아니면 안된다!” 라는 의미로 자기 자신을 높이고 있다.
어쩌면 그는 외적으로 준비된 왕처럼 보인다. 나름대로의 야망도 있어보이고, 5절 하반절에 “…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할 정도로 권력과 힘도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좋은 인상도 남겨져 있었고, 7절과 9절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적으로나 군사적 실권자들의 지지까지 받았다. 누가 봐도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할 탁월한 지도자감으로 보인다. 누가 봐도 능력있는 왕, 지혜로운 왕, 리더십 좋은 왕처럼 보인다. 누가 봐도 이 나라를 다스리기에 최적화 된 왕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이 아니었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왕 사울과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심을 통해 왕의 직분을 받았다. 나라의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을 세우신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자신의 왕위 계승에 필요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당시 군대 장관이던 요압과 대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을 포섭하여 군부와 종교세력을 규합하지 않았나. 그는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났던 압살롬의 반역이 왜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 교훈을 얻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실리를 따르지 않은 경건한 무리들이 있었다. 8절과 10절을 보라. 제사장 사독,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예언자 나단,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 그리고 솔로몬은 이 악한 무리에 가담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지킨다. 겉으로 보기에 실세는 아도니야처럼 보인다. 모든 권력을 휘어잡고 곧이어 왕위에까지 오르게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든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들은 흔들리지 않고 잠잠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라. 아무리 좋게 보이는 상황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과감히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탁월해보이는 상황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어울리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지혜롭게 보이는 방법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중단해야 한다.
신앙의 눈은 눈 앞의 이익과 욕망을 따르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며 세운 모든 지혜들은 다 부질없는 일이 되고야 말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늘 마음을 낮추라. 늘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이다.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때를 잠잠히 기다림으로서 패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걷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주기도문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자. 주님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을 주사, 눈 앞의 실리를 좇아 하나님을 거역하는 불순종의 삶을 살지 않게 하옵소서.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때를 잠잠이 기다릴 줄 아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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