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5교사기도회] 믿음으로 승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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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히11:32-38
코로나 시간을 보내면서 참 여러 가지 어려움이 참 많았을 것이다. 어느 교회나 비슷한 것 같다. 참 많은 부분에서 교회가 타격을 입었지만 그 중에서도 교회학교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 같다.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로 전도나 선교나 구제나 예배나 다른 부분들은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는 추세이긴 한데, 유독 주일학교만큼은 회복이 되질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처참해진 상황이다. 여러분들 대부분 그러하셨겠지만 나름 학생들을 잡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학생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어지고 점점 교사들도 지치고 무력해진다.
그런데 여러분 이상하다. 분명히 코로나는 다같이 경험했는데 코로나 이후로 부흥하는 교회가 있더라는 것이다. 분명 코로나는 우리 모두를 타격했는데 코로나 이후로 회복이 빠른 교회들이 있더라는 것이다. 이상하다. 우리도 한다고는 해봤는데, 우리도 열심히 하긴 했는데,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용산구 산동네에 위치한 어느 교회는 건물도 너무나도 노후했고 고령화된 교회였다. 그런데 그 교회에 새로운 담임목사님이 부임하자마자 코로나를 맞았다. 가뜩이나 주일학교 몇명 되지도 않는, 우리교회보다 훨씬 작은 교회에 코로나까지 닥치니 너무나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 목사님은 학생들이 즐거워하는 교회를 만들자는 일념으로 모든 전반적인 구조 시스템을 새롭게 쌓기 시작했다. 그래서 찬양대 연습실을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아이들이 성경을 암송하면서 활동을 할 수 있는 다목적실을 만들었다. 재능기부를 통해 그 다목적실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만화처럼 그려서 아이들이 쉽게 외울 수 있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또 중고등부실에는 품질 좋은 당구대도 설치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아이들이 평일에도 충분히 교회로 찾아와 안전하게 쉬고 놀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기독교 설문조사기관에 의하면 미취학아동의 평균 하원시간이 오후 4시반이며, 부모가 일반적으로 퇴근 후 집에 도착하는 7시 정도까지는 대략 2시간 남짓의 공백기간이 생긴다고 한다. 이 기관의 보고에 의하면 불신자 워킹맘 10명 중 3.5명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돌봄서비스라도 맡길 의향이 있다고 했다. 비용, 학습, 안전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돌봄기관의 부재가 3040 맞벌이가정에겐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을 정확하게 간파했던 400명 남짓의 어떤 교회는 어떻게든 젊은 엄마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주중 아기학교를 개설했다. 되든 안되든 한번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시범운영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몰려 조기 마감이 되었고, 그렇게 아기학교가 그 교회의 주사역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것들이 모두 코로나 때 진행된 일이다.
예전에 국민일보에서도 소개되었던 어느 교회는 중고등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 내 pc방과 만화방을 운영한다고 한다. 깨끗한 시설에 쾌적한 분위기에 맛있는 간식까지 있으니 입소문을 타고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몰려든 학생들이 조금씩 교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니 주일 예배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것도 코로나 때 진행된 일이다.
제 동기 목사님 중 한분은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 상가에 임대를 얻어 교회를 개척했다. 본래 이 형님은 이단에서 성경강사로 활동했을 정도로 나름 지도급이었는데, 어느날부터 이단의 가르침이 성경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혼자 교회사와 전통적인 신앙고백서를 공부하면서 김기동 베뢰아 이단이 정말 비성경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 공부하던 구역 5가정과 함께 개척을 시작했다. 개척하고 이 교회의 방향은 다른게 없었다. 전통적인 신앙고백서와 교회사, 교부들의 신학들을 모든 교인들이 함께 공부했다. 어렵다. 지루하다. 그럼에도 교회사를 통해 세워진 교리와 기독교고전서들을 탐독하기 시작하니까 이단의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말씀을 가르치지 않고 말씀을 편협하게 가르치는데 피로한 청년들이 그 교회로 찾아들기 시작한다. 개척 3년만에 그 교회는 상가임대 1칸을 더 임대해야 할 정도로 부흥했고, 3년이 지나면서 더욱 넓은 상가건물을 임대해야 할 정도로 부흥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년 뒤 코로나를 맞았다. 지금은 어떨까? 지금은 청장년 성도만 300명이 넘고, 신촌에 또 하나의 교회를 개척해서 목회를 하고 있다. 이것이 다 코로나 때 진행된 일이다.
여러분, 코로나는 분명 누구하나 예외로 두지 않고 모두를 타격했다. 한창 서울에 코로나 심각할 때 다들 경험해보셨지 않는가? 모든 교회들이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끝나고 어떤 교회는 완전히 장례식장처럼 풍비박산이 나 있는데, 어떤 교회는 급성장을 하고 있더라. 똑같이 코로나로 진통을 겪었는데 어디는 완전 주저앉아버렸고 어디는 오히려 코로나 전보다 부흥을 하고 있더라.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환경을 탓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운데 하나가 무엇인가? 인구의 급감이다. 지금 한국의 출생률이 어느 정도 되시는지 아시는가? 작년 10월부터 12월까지의 출생률이 무려 0.65였다고 한다. 0.65이다. 100명중 60여명 밖에 애를 낳지 않는다. 그리고 0.6대의 마지노선이 무너질 것도 시간문제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아이를 낳고 기를만한 3040대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3040대가 사라지니 교회에 아이들도 사라지는 것이 당연해보인다.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 출생률이 0.65이니까 1천명이 결혼을 하면, 500개의 가정에서 단 650명만 태어난다. 그런데 이 650명의 아이들이 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신자인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아이들만 교회를 다닌다. 그런데 신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이라고 무조건 교회를 가는 것도 아니더라. 대한민국 전국을 통틀어 새로 태어난 아이들 중 몇 % 정도가 교회를 다니게 될까? 학자들은 출생한 아이들 중 고작 10% 내외만이 교회에 정착할 것이라고 의견을 모은다. 거기에 친구 따라 전도된 아이들까지 넉넉하게 계산해서 대략 20%정도가 교회에 정착할 것이라고 해도, 650명 중 20%면 130명이다. 전국에 단 130명만이 교회에 정착하게 된다.
그런데 대한민국 전체에 교회가 몇개나 될까? 우리 고신교단 교회만 봐도 전국에 2128개의 교회가 있다. 또한 2015년 자료이긴 하지만 전국에 교회가 8만여 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전국에 편의점이 2만 5천개라는데 편의점보다 교회가 3배 더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계산하면 전국에 태어나는 아이의 숫자 중 130명만 교회에 정착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1교회당 아이는 0.0016명이 남게 된다. 우리 교회에 올해에만 4명의 아이가 유아세례를 받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처럼 다가오지 않는가? 참 웃픈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세상에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맛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교회가 더이상 이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아무리 맛있는 것으로 유혹해도 넘어오질 않는다. 부모 세대가 자식들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고, 학원이나 학교, 성적을 신앙보다 우선시 여기는 풍조가 되다보니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교회를 끊어버린다. 과거와 문화가 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옛날 전도방법이 이제 더이상 먹히질 않는다. 여러분들도 다 경험해 보셨을 것이다. 옛날 모든 것들이 참 부족할 때는 교회 달란트 시장 연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렸던가? 교회 다니지 않던 친구들도 달란트시장에 혹 해서 교회에 등록하는 경우들도 제법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달란트시장이야 사라진지 오래이고, 이제는 많은 재정을 가지고 주일학교에 쏟아내려 해도, 그 재정을 누릴 아이들이 없다. 갓 건축이 된 이런 아파트 단지라든지 어떤 신생 도시를 제외하고는 애들이 없다.
옛날에는 주일 아침마다 아파트단지 놀이터를 돌며 교회로 끌고 오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놀이터에 애들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다가는 실종 납치 신고를 당할 수가 있다. 그래서 과거의 어떤 패러다임으로 교회가 접근하기 상당히 어려워진 이런 시대가 지금 우리에게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아주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을 만났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무엇이냐, 아이들의 숫자가 아닌 본질에 있어서 믿음이 사라져버린 이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 교적부에 등록된 아이들 중에서 많게는 50% 이상이 교회를 떠났다. 직분자의 자녀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여러분,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성인이 되면 자동적으로 교회에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아이들이 언젠간 다시 교회로 나오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시는가? 천만의 말씀.
최근 아동발달심리학자들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아이들의 핵심 발달은 청소년기 이전에 이미 완성 된다고 한다. 학자마자 조금씩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근육과 소근육은 0-2세, 언어발달은 1-6세, 인지 발달은 2-7세, 사회성과 정서 발달이 0-18세 안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은 어쩌면 우리 아이들의 영적 성숙과 신앙형성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다. 아이들의 영적인 발달도 만18세 이전에 거의 다 이루어진다. 아이들의 신앙의 토대도 만18세 이전에 거의 다 형성된다. 아이들의 예배에 대한 태도, 예배에 대한 훈련, 경건생활도 이미 만 18세 이전에 거의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이루어지는 케이스는 고작 12%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씀드리겠다. 만 18세 이전에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모른다. 만 18세 전에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 제대로 예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 18세 전에 거룩과 성결에 대한 의식이 굳어지지 않은 아이들은 진짜 어지간해서는 그 고정화된 틀이 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교회학교가 짊어진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교회가 다음세대 교육에 목숨을 걸어야 하느냐, 이 시기에 아이들의 믿음을 세워주지 못하면, 이 시기에 아이들을 놔버리게 되면, 그 아이가 평생 믿음을 잡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기에 아이에게 온전히 복음을 전수하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장차 자라나 교회를 떠날 확률이 매우매우 높기 때문이다. 여러분, 제발 막연한 “긍정”에서부터 벗어나라. 이것은 영혼이 살고 죽는 문제이다. 지금 아이들에게 신앙의 부분을 잡아주지 않는다면 다음은 없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귀한 영혼들을 맡겨주셨는데, 우리가 그 영혼들을 바르게 양육하지 못해서, 복음 가운데 세워주질 못해서 그 아이가 죽는 순간까지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우리에게 맡겨주셨는데, 내가 게을러서 내가 안일해서, 나는 아무 노력도 안하는데 언젠가 하나님이 만나주시겠지 하는 막연한 긍정 가운데 그 아이를 내버려두었고, 이 아이가 끝내 완악함 가운데 돌이키지 않았다면, 장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 진노의 화살을 어찌 감당하시려는가?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먼저된 우리에게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돌아오게 하시겠지” 라는 말은, 그 아이를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무릎꿇고 눈물로 기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아이를 복음 가운데 바르게 세워주기 위해 내 시간과 정성과 노력과 땀을 쏟아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예전에 학생들과 함께 전국수련회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전국에서 몰린 엄청난 인원들이 온갖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온갖 빵빵한 악기들로 무장한 찬양팀과 거의 1시간을 찬양하고 기도했다. 이제부터 이어질 설교시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달라고, 아이들의 심령을 만져달라고, 함께 뜨겁게 기도했다. 그리고 이제 설교시간. 설교가 시작하니까 자연스럽게 애들이 밖으로 나간다. “너희 어디 가니?” “물마시러요” “화장실요” 이렇게 뜨겁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던 애들이 안들어온다.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혹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이 믿음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믿음이 자리잡을 준비조차 안되어 있는 모습들을 얼마나 많이 보는지 모른다. 비단 우리만이 아니라 지금 한국교회 전반적으로 그렇다. 이 시대에 우리 아이들이 믿음이 없는 것, 이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라. 우리는 보통 교회 안에서 아이들이 뭔가 봉사라도 하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청년이 신앙서적도 열심히 읽고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교사로도 봉사한다. 믿음이 좋아보인다. 그런데 뭐 하나 틀어지고서 교회를 떠났다. 교회 찬양인도 하던 청년이 뭐하나 문제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 열심히 교사 섬기던 사람이 교회를 떠났다. 이러한 믿음을 제대로 된 믿음이라 할 수 있는가? 없다. 믿음이 없으니까, 믿음이 세워지질 않으니까. 믿음이 세워진 적이 없으니까.
제가 청년 사역을 10년 가량 해오면서 지난 교회에서 어떤 청년과 상담을 했다. 청년부 회장도 했었고, 개혁신학에 심취해서 여러 어려운 도서들도 공부했으며, 예배에는 빠짐이 없었고, 중고등부 교사까지 맡으며 그야말로 헌신하던 청년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청년과 사귀던 자매가 저에게 상담을 신청했다. 그 둘은 결혼을 준비하던 커플이었는데, 혼전 성관계를 아주 상습적으로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헌신적인 것처럼 보이던 남자청년이 자매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아시는가? “야! 어쩌피 결혼할 건데, 내가 너 책임지면 되잖아! 관계를 갖고 버리는게 문제지 책임지고 결혼하면 그것은 죄가 아니야!” 그렇게 교회에서 드러나는 모습으로는 온갖 헌신적인 모습들로 자기를 포장하고서는, 단둘이만 있는 자리에서는 자기가 배워왔던 온갖 성경적인 것들을 악용하여 자신의 성적인 쾌락을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삼더라는 것이다. 정말 이 청년에게 믿음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더라.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이 속해있는 히브리서 11장 은 흔히 “믿음” 장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믿음으로”라는 단어가 20번 반복이 된다. 세지 말라. 진짜 20번 나온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내었다.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믿음이었다. 사람을 톱으로 켜서 죽여도 믿음이었다. 그들은 오직 믿음이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자녀들 믿음이 있는가?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오늘 이 밤에 어떻게 하면 우리 주일 학교가 다시 한 번 부흥할까, 숫자적인 것이 아닌 본질의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하고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 자리에 앉아계신 여러분들 대부분은 저보다 훨씬 신앙의 경력도, 인생의 경험도 많으실 것이다. 여러분들이 한창 하나님을 만나셨을 당시를 생각해보라. 제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회심을 경험했던 때도 비슷했었지만, 80-90년대 교회생활들을 생각해보면, 교회에서 늘 기도의 자리를 지키셨던 분들이 계셨다. 심지어 우리가 주일학교 때에도 학교가 끝나면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가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있었다. 저는 중학교때부터 교회를 다니질 않았다. 소위 말하는 일진 친구들과 어울리며 주일마다 부모님께는 교회간다고 거짓말하고 피씨방에 가거나 아이들과 어울려 술담배를 했다.
그랬던 저에게 교회를 다니던 친구 하나가 있었다. 그 친구는 매일 학교 수업이 마치면 교회를 간다. 오늘은 예배가 없는 날인데 왜 교회를 가냐 했더니 그냥 기도하러 간다더라. 그러던 어느날 저도 그 친구와 함께 교회를 가며, 정확하게는 교회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주변에서만 어물쩡 거렸는데, 매일 저녁마다 학생회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기도를 하고 있더라. 학창시절 여러분들의 동기나 선배들 중에서도 이런 분들이 계셨는지 모르겠다. 바로 앞에 있었던 교회에서도 직장 점심시간에 빠르게 식사하시고 교회 와서 기도하고 가시던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어쩌면 그분들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교회학교의 문제가 무엇인가? 누구에게나 일주일 168시간 동일하게 주어진다. 그 시간 가운데 잠자는 시간 넉넉하게 50시간 빼고, 학교 50시간 빼고, 학원가는 시간 빼고, 밥먹는 시간 빼고, 친구들과 공 차는 시간 빼고…. 그렇게 남고 남고 남은 단 한시간, 영적인 것, 신앙에 투자하는 것, 믿음에 투자하는 것 고작 1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약 170시간 중에서 믿음의 토대를 위한 시간이 고작 1시간, 그것도 설교는 10-20분, 공과 끽해봐야 인사하고 삶 나누고 간식먹다가 성경공부 고작 10분, 그거 가지고 믿음이 들어간다면 그게 바로 기적 아닌가?
저는 오늘 이 시간 가좌동광교회 교사기도회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들에게 믿음이 심겨질 수 있을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자료들도 찾아보고, 다른 교회들의 좋은 예들도 참고했다. 그런데 “믿음” 이라는 본질적인 요소가 작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도 필요없었다. 어떤 것도 소용이 없더라. 오직 예배 외에는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본질적인 것 : 예배의 회복

우리 아이들 믿음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예배의 회복이다. 우리가 승부를 봐야 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이 바로 주일예배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다. 로마서 10:17 함께 읽어보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기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는데, 들음은 무엇을 듣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를 통해서 믿음은 만들어지게 되어 있다.
다시, 우리 아이들은 168시간 가운데 단 1시간 교회 온다. 들음에서부터 믿음이 난다고 하는데, 이 1시간의 예배가 이 아이들이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교회가 재미있고 많은 선물을 쏟아준다 하더라도 결국 예배가 아니고서는 믿음이 생길 수가 없다. 믿음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것, 바로 예배이니까. 그러면 우리는 이제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아이들 지금 어떠한 믿음 가운데, 어떠한 예배 가운데 있는가, 우리 부서 아이들 예배를 점검할 수 있는 몇 가지 질문이 있다. 여러분 한번 스스로 답을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우리 아이들은 교회를 오고 싶어 하는가?

첫 번째 질문, “우리 아이들은 교회를 오고싶어하는가?” 제가 전도사 첫 사역지에서부터 오늘 가좌동광교회까지 6개의 교회를 거치면서 아주 깊은 인상에 남은 두 분을 소개한다. 첫번째는 지금으로부터 13년전 전도사 시절 중고등부를 맡았던 때였다. 새학기가 되어서 학생심방을 하며 물었다. “아무개야, 쌤이 잘 챙겨주시지?” 그랬더니 그 학생 하는 말, 자기 쌤 연락처도 모른단다. 1월에 반편성을 마치고 새학기 시작을 했다. 3월이 훌쩍 지났는데도 담당 선생님이 전화한통, 문자한통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부장쌤도 그랬고, 저도 그랬고 그 선생님께 학생들좀 잘 챙겨달라고 계속 권면을 했다. 결국 그 학생은 여름수련회 참석 독려차 연락오기까지 담당 쌤의 전화, 문자를 받은 적이 없었다. 담당교사의 목양을 받지 못한 학생은 결국 교회에서 떨어져나갔다. 이 자리의 선생님들, 한번 대답좀 해달라. 이런 교사는 교회의 성장과 부흥과 발전을 위해 교사를 계속 하는 게 맞나? 아니면 모두의 유익을 위해 그만 두는 것이 맞나?
한편, 제 기억속에 참 깊은 인상을 남긴 교사 한명이 또 있다. 이분은 사실 교사라기보다는 교육위원장이자 그 교회의 장로셨다. 60 되신 분께서 주일학교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교육위원장 장로님은 매주마다 돌아가면서 모든 교육부서 예배를 다 참석하셨다. 하루는 유치부, 하루는 초등부, 하루는 중고등부, 하루는 청년부, 심지어 그 교회는 노숙인예배도 있었다. 이런 표현이 실례이기도 하고 참 죄송한 말이지만, 주일에 가장 단정하고 깨끗한 양복을 입고와서 냄새나고 술냄새 가득한 노숙인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여름철엔 설교하는 것도 정말 고역이다. 그런데 한번도 이를 거르지 않으셨고, 그것도 가장 앞에 앉으셔서 예배를 드리셨다.
그 당시 저는 유치부와 청년부, 그리고 노숙인예배를 맡았는데 율동 위주의 유치부 예배에 가장 앞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시는 그 모습을 상상해보라. 요즘 나오는 찬양들의 리듬이 얼마나 어렵나? 청년예배에서 가장 앞에 앉아 예배드리시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뿐만 아니라 그 예배에 참석하실 때는 늘 양손 가득히 간식거리들을 들고 들어오셨고, 간식을 나눠주실 때는 그 아이의 이름을 한명한명 불러주시며 나눠주셨다. 여러분, 저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는 것도 사랑이고, 그렇게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손수 준비해오신 간식을 나눠주시는 것도 사랑이며, 교육부서 예배에 당회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랑이고, 함께 실제로 예배드리면서 부서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부서활동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파악해서 당회와 함께 의논하는 것도 사랑이다. 그 장로님이 지금 제 장인어른이시다.
피자 귀한 시절에 부서마다 피자를 몇판 씩 사주셨고, 여름사역이 마치면 교사들 수고했다고 모든 교사들 모아서 장어도 사주시곤 했다. 그러니 교사들도 힘이 나고, 아이들도 행복한 것 아니겠는가? 판자집 두세 건물을 이어붙여 만든 교회당 건물이었기 때문에 비록 교회건물은 너무 낡고 노후해서 여름만 되면 비가 새고, 이곳 저곳이 잠겨서 교역자들이 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날라야만 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유치부실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열악했겠는가? 벽은 온통 곰팡이에 화장실도 없고 빛도 들어오지 않던 곳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관심이 교육부서에 있고, 준비된 열심있는 교사들이 함께 하니까 아이들이 오더라는 것이다. 저는 아직도 그 아이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교회의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행복해하는 유치부 학생들의 표정을.
강서구 화곡동 그 낙후된 동네에 100명 남짓 모이는 교회였는데 당시 유치부가 7명, 초등부가 10명, 중고등부가 20명, 청년부가 20명이었다. 여기 교육위원장 장로님도 계시고, 또 권사님들도 여러분 계신데, 많은 도전이 되시길 바란다. 아이들이 올 수 있는 교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교회가 답답하고 꽉 막힌 느낌이 아니라, 언제든 와서 쉴 수도 있고, 때로는 재미도 좀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교회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을 연구해야 한다.
어느 교회는 별 행사도 안하고 별 프로그램도 안하는데 중고등부가 계속 부흥을 하더라는 것이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어서 어느날 그 교회로 답사를 갔더란다. 그랬더니 그 중고등부에 진짜 연예인급 여자청년 쌤이 있었더란다. 사춘기 남학생들이 선생님의 외모 때문에 교회를 온다더라. 머스마들만 득실거리는 중고등부.
반면 어느 교회 중고등부는 또 여학생들만 득실거리더란다. 이유가 뭐였을까? 꽃미남 청년쌤 때문? 아니다. 알고보니 그 교회 교사 중 하나가 뷰티 관련 인플루언서였는데 여학생들에게 기초화장법을 가르쳐주고, 자기가 협찬을 받는 제품들을 소개해주고 선물도 해주더란다. 그러니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로 몰려들더라는 것이다.
어느 교회 초등부는 시골교회임에도 수십명이 모인단다. 그 이유가 초등부 선생님 중에 풋살을 수준급으로 하는 쌤이 있는데 그 교회를 가면 축구를 가르쳐준다더라. 이러니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더라.
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해서든 교회에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가 가진 은사들을, 우리가 가진 재원들을, 우리가 가진 능력들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주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가 가진 무기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무엇무엇이 있나? 지금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필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오해하지 말라. 저는 단지 숫자적인 부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오는 이유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믿음의 수준이 올라가지 않으니까 바로 주님을 볼 수가 없다. 선생님의 역할은, 교회학교의 역할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주님을 볼 수 있게끔, 만나게 할 수 있게끔 하는 연결시켜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오고 싶은 교회도 될 수 있고 오기 싫은 교회도 될 수 있다. 교회가 어떻게 이들에게 관심을 쏟느냐에 따라 학생이 오고싶어하는 교회가 될 수도 있고, 오기 싫어하는 교회도 될 수 있더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오고 싶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여지는 비주얼도 신경 써야 한다. 여러분이 학부모의 입장으로 내 아이를 맡기는데 시설을 안볼 수가 있을까? 따라서 아이들을 잘 맞이할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도 필요하겠고, 교회의 재정들도 많이 투입해서 아이들에게 풍성한 먹거리 간식들도 제공되어야 하며,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선물도 쏟아부어야 한다. 잘생기고 예쁜 선생님들 있음 좋지, 선물도 빵빵하게 주고, 함께 먹는 간식도 맛있어야 하고, 눈높이를 철저하게 학생들에게 맞춰야 한다. 아이들이 교회 오는 것이 즐거워야지.

교사는 아이들의 예배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 부서예배를 점검해볼 두번째 질문, 교사는 아이들의 예배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이다. 제가 앞전 교회에 있을 때 어떤 성도님은 늘 예배 20분 뒤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축도 전 헌금기도할 때 집에 가셨다. 예배 시작 20분 후의 시점은 찬양도 끝나고 대표기도도 끝나고 성경봉독도 끝나고 설교 시작 후 몇분 지나서이다. 처음에는 그분이 집이 머셔서 그런가보다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집이 코앞이더라. 결국 지각은 그냥 상습적인 습관이었던 것이다. 예배에 대한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냥 전체 참석하기는 싫고, 하나님 나 왔다 갑니다! 얼굴도장만 찍고가는 것이다.
여러분, 교회는 예배 지각에 대해 엄격한 벌을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지각을 쉽게 생각한다. 한두번의 지각이 마치 악성 종양처럼 부서를 망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다. 이것은 습관이다. 이 습관을 바꿔야 한다.
제가 대구에서 사역할 때였다. 저는 당시 유치부를 맡았다. 보통 유치부 아이들은 정말 집중해봐야 그 집중 시간이 5분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러면 저는 유치부를 대상으로 설교를 몇 분 했을까? 저는 30분을 설교했다. 유치부 선생님들 잘 아실 것이다. “유치부 설교를 30분을 해? 애들 난리났겠네” 천만의 말씀. 유치부 학생들 전원이 설교자인 저를 또렷이 처다보며 얌전히 예배했고, 예배 시작 이후로 끝나기까지 화장실 가는 친구 하나 없었다. 예배 시간에 기어다니는 아이들 하나 없었고, 예배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제가 탁월한 유치부 명설교가여서 그랬겠나? 그렇지 않다. 지금 말슴드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여러분, 예배는 훈련이다. 유치부 아이들이 예배 중 화장실 들락날락하는 것,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러나 저는 이것부터 훈련시켰다. 예배 시작 5분전부터 모든 교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을 가서 미리 볼일을 보고 오게 만든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면서 물도 한잔 마시게 한다. 이것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그런데 중고등부, 심지어 청년들도 예배 중 화장실 참는 훈련이 안된 것들을 보게 된다. 답답하다.
어쨌든, 그 이후로 설교시간을 확보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5분, 그리고 7분, 10분, 그렇게 늘려가다가 결국 30분까지 했다. 물론 중간 중간 아이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질만하면 흥미를 끌 수 있는 이야기거리들을 던져가며 했다. 때로는 간식들도 줘가며 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결국 30분간 설교를 듣더라는 것이다.
저는 유치부 아이들에게 심지어 소요리문답 암송까지도 시켰다. 저는 매주 유치부 아이들에게 소요리문답 한 문답씩 암송을 시켰다. 늦는 아이들은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이 암송을 시작했다[영상재생]. 이것이 가능했던 것이 주중 부모교육과 연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제가 처음 유치부를 맡았을 때 40명에서 시작했다. 제가 그 교회 사임할 때 유치부 80명을 찍었다. 공간이 부족해서 유치부 예배를 1,2부로 나눠서 드려야만 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에는 모든 예배의 순서들을 교역자와 교사들이 심도있게 고민하고 구성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처음에 예배당에 들어오면 어떻게 맞이할 것이고, 외투는 어떻게 받아둘 것이며, 화장실과 식수는 어떻게 준비할 것이고, 찬양은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율동은 어떻게 할 것인지, 분반공부는 어떤 식으로 진행할 것이며, 주중 부모들에게 보내는 소식지는 어떤 내용을 다루고, 가정에서 진행할 가정예배 순서지 구성, 주중 부모들과의 연계사역 등 모든 것들을 꼼꼼하게 교역자와 교사들이 다 점검하며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 예배를 치밀하게 준비하는데 아이들에게 그 마음의 중심이 전해지지 않겠는가?
반면 어떤 교회는 이렇다. 학생들이 오든 말든 교사들이 교사대기실에서 잡담을 하고 있다. 부모가 아이 손을 잡고 예배실 안으로 들어오든 말든 신경도 안쓰고 자기들끼리 노닥거리고 있다. 찬양이 시작했는데 아이들은 찬양을 하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쓰는데 교사들이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 설교가 시작되었는데 설교를 안듣고 앉아서 장난을 치든 말든 교사들은 신경도 안쓴다. 교사가 예배의 본을 보이지 않는데 어찌 학생들이 바르게 예배드릴 수 있으며, 교사가 예배를 준비하지 않는데 어찌 최선의 예배, 최고의 예배가 드려질 수 있겠으며, 교사가 예배에 대한 기대가 1도 없는데 어찌 학생들이 예배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겠으며, 교사가 예배자가 되지 못했는데 어찌 학생들이 예배자가 될 수 있겠는가?
교사 여러분, 제가 부교역자 생활을 그래도 10년 이상 하면서 가장 지겹게 듣던 말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목사님, 제 아들이요, 중고등부때는 회장까지도 했던 애에요, 제 딸이요, 찬양팀 리더까지도 했던 애에요” 그랬던 애들이 왜 교회를 떠났는가? 믿음이라는 본질이 작동하지 않았으니까. 교회의 울타리 안에는 머물렀는지 몰라도 그 숫하게 드려왔던 예배생활들이 그 아이에게 믿음으로 작용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이런 일이 한국교회에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본질이라는 이 믿음이다.
여러분 주일 학교의 승부수는 다른 데 있지 않고 예배에 있다. 아이들이 교회에 오는 목적과 이유는 반드시 예배여야만 한다. 이것은 타협할 수 없는 진리이다. 아이들이 예배참여를 재미있어 해야 하고, 아이들이 예배의 자리를 기대해야 하며, 아이들이 예배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가 먼저 그 예배를 힘써 준비해야 한다. 먼저 와서 미비된 부분들은 없는지 점검해야 하고, 아이들이 예배에 집중하지 못할 정리되지 못한 부분들을 치워야 하며, 예배 가운데 일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함으로 그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예배 태도는 어떠한가?

우리 부서예배를 점검해볼 마지막 질문, 우리 아이들의 예배태도는 어떠한가. 두번째 질문에서는 교사와 교역자가 준비하는 예배에 대한 방점이 있었다면, 마지막 질문은 이렇게 잘 준비된 예배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태도에 방점이 있다.
제가 바로 앞에 있었던 교회에서 아주 충격적인 모습을 봤었다. 4남매 가정이 있었다. 큰아들은 고3, 둘째 아들은 고1, 셋째 딸은 중1, 막내딸은 초등학생. 그런데 주일 오전저녁예배 뿐만 아니라 수요예배나 금요기도회에도 이 아이들이 단 한번 빠지지 않는 것이다. 너무 신기하지 않는가? 부모 여러분 이 광경이 이해가 되시는가? 심지어 거기는 주일오후예배가 아니라 주일저녁예배였다. 그런데도 안빠지더라. 어느 주일 저녁예배때였다. 셋째 딸이었던 중1짜리가 예배시간에 꾸벅 졸았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분위기도 따분하니 좀 졸 수도 있지. 나온 것만 해도 얼마나 기특한가. 그랬더니 옆에 앉은 고1아들이 동생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경고한다. “예배시간에 조는거 아니야!
여러분, 이런 믿음으로 예배하는 아이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이런 학생들이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말씀이 서로 대립될 때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불보듯 뻔한 일 아닌가?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아이들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불과 1-2년 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절대 대다수의 학생들이, 절대 대다수의 자녀들이 이런 고민을 해본 적도 없이 세상의 가치관을 선택하고, 고민하고 말것도 없이 졸리면 예배시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잠을 자며, 할 수만 있거든 앞에서 설교를 하든 말든 게임을 하는 이런 상황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아이들에게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가? 그들의 예배 태도이다. 설교자가 앞에 서면 앉아있는 회중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잘 보인다. 그들이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먹고 있는지, 아니면 반쯤 넋나간 표정으로 다른 생각하며 앉아있는지 잘 보인다. 예배자의 예배 태도가 사람의 눈에도 이렇게 잘 보인다면,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분명하게 간파하고 계실까.
아무리 좋은 음식을 차려줘도 아이들이 그 식탁에 안기를 거부한다면 그 음식은 아무 소용이 없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줄 뿐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교역자들과 교사들이 아무리 최고의 예배를 준비했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이 예배에 영과 진리로 참여하지 않으면, 저는 개역한글 버전이 조금 더 와닿는 것 같긴 한데, 우리의 아이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그 예배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아닌가?
주 안에서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시대는 과거 우리가 경험해왔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대이다. 이미 여러분들 경험해보고 계시지 않는가? 그렇다는 것은 내가 과거 주일학교 시절에 경험한대로 똑같이 해서는 답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접근방식 자체가 틀린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게 우리도 새로운 계획을 짜야 하고, 교육 커리큘럼을 재점검해야 하며, 우리만의 특화된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본질적인 부분들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 바로 복음이다. 이 모든 전략들은 아이들에게 복음을 심겨주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지, 그것 자체가 본질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저는 오늘 첫번째 교사기도회의 밤이 우리 가좌동광교회 교회학교의 재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길 소망한다. 나는 배워왔던 대로 잘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호응해주지 않는다며 포기했던 우리의 마음은 아니었는가? 급변하는 시대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이 나에게 맞춰주길 바라고 기대했던 우리의 마음은 아니었는가? 내 편에서 큰 희생과 땀방울 없이 하늘의 상급을 기대했던 게으른 우리는 아니었던가? 나는 주님 보시기에 착하고 충성된 교사라고 부를 수 있는가?
더 나아가 들은 말씀을 기억하며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교사로 불러주셨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함께 세워가도록 사명을 주셨는데, 그렇다면 우리 부서가 가진 재능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 부서는 어떤 식으로 복음을 심어줄 수 있을까? 우리 부서만의 어떤 전략을 구상할 수 있을까? 우리가 듣고만 끝난다면 사실 이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늘 내용들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선한 자극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점점 교회학교 아이들이 줄어간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믿음의 자녀들이 양육되고 착하고 충성된 교사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우리 가좌동광교회 모든 교사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우리가 다음세대에 믿음을 바르게 심어주기 위해서는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 우리의 교회학교 예배를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 정말 빠르게 변해가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이, 우리가 정말 붙들어야 할 것이 예배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부서 예배를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 예배를 통하여 아이들에게 믿음이 심겨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지금 당장은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아도 말씀이 그들의 마음 가운데 심겨지게 하옵소서. 함께 예배하는 교사들을 붙드셔서 예배에 방해되는 것들을 잘 살피게 하시고, 말씀을 전하는 교역자들을 성령의 권능으로 붙드사 복음이 분명하게 선포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모든 상황 속에서-
2. 아이들이 언제든 편히 드나들 수 있는 곳, 아이들이 언제든 거리낌 없이 쉴 수 있는 곳, 아이들이 오고 싶은 곳, 바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은사가 무엇인지, 우리가 가진 자원들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특화된 무기는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하겠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에게 무얼 준비하길 원하십니까? 각부서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자원과 재능들이 있을 것인데, 또한 우리 교회에게 허락하신 은사와 자원과 재능들이 있을 것인데, 이를 잘 활용하여 더욱 많은 아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데 사용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부서마다 지혜를 주셔서 암담한 시대이지만 최선을 다하여 다음세대를 길러내는 우리 가좌동광교회 되게 하옵소서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사 지혜를 주실 것이다. 우리가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지혜를 주실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놓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나님께서 일러주셨는데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무슨 미래가 있으랴. 따라서 이 시간 기도하실 때 “하나님,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옵소서. 우리에게 무얼 준비하면 좋을지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주님, 주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일러주실 때 우리의 게으름으로, 우리의 나태함으로 불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주님께서 하라 하시면 순종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하라 하실 때 기꺼이 헌신하는 교사들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감당하라 하실 때 기꺼이 엎드러지는 우리 모든 부서들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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