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권세와 요한의 세례(막 11: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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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가 살펴본것처럼 예수님은 성전을 깨끗이 하시기 위해서 장사꾼들을 쫓아내고, 환전상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에 대한 반응으로 예수님 나아온 종교지도자들과의 논쟁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여기에서 말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대표적 구성원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라는 것은 로마의 통치 아래에서 유대인의 문제를 담당하는 최고 의회였습니다. 주로 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로 구성된 집단이었고요,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파급 효과가 있는 법적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 나온 자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대표적 구성원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장로들은 제사장 가문이 아닌, 평민 가문 중에서 매우 명망있는 가문의 대표들을 말합니다. 이들 모두가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앞서 성전에서 행한 일들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이들은 18절에서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꾸몄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어떤 구실을 찾기 위해 예수님께 찾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28절에서 종교지도자들은 연속적으로 두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번째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행한 행동과 가르침이 ‘무슨 권세’, 즉 ‘어떤 종류의 권세로서’ 행한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그 권세를 누가 주었느냐’ 즉 ‘권위의 출처’를 묻습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 질문은 별개의 질문이 아니라 사실상 하나의 질문입니다. 두번째 질문은 앞의 질문을 보다 자세히 설명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까 예수님을 찾아온 종교지도자들의 질문은 결국 ‘누가 ‘예수님에게 권위를 주었느냐의 문제, 즉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출처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문제를 삼은 것은 ‘이런 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런 일’이란 바로 앞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상징적인 성전 심판 행위와 성전의 본질적 기능에 대한 가르침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상징적 성전 심판 행위 및 가르침을 자신들이 수호하는 성전 체제에 도전한 것으로 인식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교훈과 여러 이적을 놀라워하며, 그분을 따랐지만 예수님이 베푸신 동일한 교훈과 이적을 듣고 보고서도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들은 완악한 마음의 소유자들이었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인 장애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과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까?
그들은 성전의 타락과 부패가 주는 달콤한 열매에 취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제 살펴본것처럼 이 사람들은 성전에서 제물과 환전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게다가 일반 사람들보다 높은 지위도 누렸습니다. 당연히 이 자리를 고수하며 계속해서 그 열매를 자기들만 누리고 싶어했습니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다가보니 결국 타락하고 부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그들이 저지른 부패와 타락을 행동을 통해 보여줘도요, 끄덕도 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편안하고 너무 잘 풀리는 풍요로운 삶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소득이 높아지면 종교에 의지하는 비율이 낮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편안하고 잘 풀리며 잘 살게 되면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심령이 가난한 삶이 필요합니다. 풍요하게 살더라도 마음이 가난해져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살아갈때에 우리는 풍부해도, 잘 살지 못해도 형편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직접 대답하지 않고, 그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늘’이란 말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과 대립하는 권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요한의 세례를 말씀하셨을까요? 1장 4-5절에서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합니다. 그러자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요한에게 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의 명성이 이렇게 높았기에 종교지도자들 역시 요한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11장 32절에 따르면 종교지도자들은 사람들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겼음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한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인정했던 반면에,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베푼 세례는 ‘죄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인데, 성전이 아닌 한 개인이 죄를 용서해 주는 세례를 주는 것을 종교지도자들은 성전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워낙 대중적인 인기가 있었던지라 그들 함부로 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아시고 종교지도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31벌에 따르면 종교지도자들은 만일 자신들이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고 대답할 경우, 그러면 왜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고 자신들을 질책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이 요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미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요한의 세례에 대해 물은 것은 그들을 난처한 처지에 빠뜨려 논쟁에서 이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 의논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상치못한 예수님의 질문에 당황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요한’을 믿는 다는 것은 요한을 믿음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라, 요한이 사람들에게 전파한 회개의 세례를 인정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요한과 예수님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요한의 세례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할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진실로 선지자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마가는 ‘모든 사람'이라는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고, 또 ‘진실로’라는 부사를 사용함으로써 요한이 참 선지자임을 강조합니다. 마가가 요한을 참 선지자로 생각하는 두 가직 목적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요, 하나는 모든 사람이 요한이 정말로 선지자였음을 인정하고 있는데 반해 종교지도자들은 거부하고 있음을 대조함으로써 종교지도자들의 불신을 강조합니다. 둘째,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다고 한다면, 요한의 말은 참되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요한은 자기 뒤에 올 예수님이 자기보다 더 능력이 많은 자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인정하였음으로 요한의 예언은 옳으며, 예수님은 요한보다 뛰어난 분, 즉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신 분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33절에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도 그러면 나도 내가 무슨 권세로 이 같은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모르겠다고 한 것은 말 그대로 요한의 권위의 출처를 모르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의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거부하는 것이며 그들의 불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