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4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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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시키는 것.
준비시키는 것.
어느 목사님이 이제 한 가정이 아이를 낳아서 같이 이 아이를 위해서 첫 심방을 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모습은 아직까지 완전하지 않지만, 주님께서 준비시키시는 일들이 있고, 회복시키시는 것들이 있어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준비시키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주님의 백성으로 회복되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https://youtu.be/BnBPPq8XDMQ?si=QajUfvZpQ8k6mR_n 7:30
배경
배경
이제 느헤미야는 자신이 온 목적대로 성벽을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140년동안 무너져 있었던 성벽을 52일만에 완성을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을 돌아다니면서, 준비하고 구상한 것이예요.
아주 디테일하게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시작을 어디서부터 시작하냐면…
시작은 양문…
그리고, 마무리를 어디서 짓는가? 32절 보니까요, 양문에서 짓더라는거예요.
양이 지나다니는 문 -> 양은 제사의 제물이 됨.
말씀을 보면요, 계속해서 등정하는 단어가 “그 다음에”
어디서부터… 예배로 부터 시작되어야 그다음이 될수 있는거예요.
예배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다음은 없어요.
1. 예배란 무엇인가
이 구절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사용되는 단어는 프로스키네오라는 작은 헬라어 단어인데, 이 단어는 예배로 계속 번역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생생하고 번역하기에 아주 간단한 단어입니다. 말 그대로 윗사람 앞에 엎드린다는 뜻입니다. 프로스키네오라는 단어가 그리스어에서 반드시 신에게 바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단어는 자신을 엎드리고, 갑판을 치고, 상급자로 인정하는 사람 앞에서 흙을 치는 것을 의미하므로 예배에는 두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예배라는 영어 단어는 weorthscipe(가치 있는 배)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치를 보고 그분께 그분의 가치를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기의 가치를 보고 아기에게 가치 있는 것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하나님의 가치를 보고 그분께 그분의 가치를 드리는 것입니다.
weorthscipe (worth-ship)
다시 말하면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는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것을 드려야 되는 것이예요. 이것이 예배예요.
가인과 아벨의 차이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배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회복은요, 우리가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드리는 것에서 부터 출발하는거예요.
https://youtu.be/j_q6ylsdHqs?si=feJ-SBAWypB1ghMY
이디오피아의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
그리고, 이것을 알아야 혹 내가 흔들리거나, 예배의 진정한 방향에서 빗겨 갔을때, 틀렸는지를 알 수 있는거예요.
모든 공사의 시작은 예배로 부터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 역시도 예배로 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예배로 마쳐야 합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도 바로 예배이다.
왜 그런가요? 예배가 회복되어야 기준이 바로 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부족을 깨닫아요.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도움을 깨닫아요.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만족을 깨닫아요.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삶의 목적을 깨닫아요.
첫 번째 해리 포터 책과 첫 번째 해리 포터 영화(영화가 몇 편이나 나올지 궁금합니다)에는 소망의 거울이라는 물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소망의 거울의 원 이름은 에리세드 라는 이름이예요.
욕망의 철자를 거꾸로 쓴 단어입니다.
해리 포터가 이 거울을 발견합니다. 그는 거울을 보고 놀랍게도 자신의 부모님을 보게 됩니다.
해리에게 그토록 놀라운 이유는 부모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부모님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어요. 부모님은 해리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으니까요.
하지만 거울 속에서 해리는 부모님이 자신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는 너무 흥분합니다. "이건 분명 마법이다."라고 말하며 친구 론 위즐리에게 달려갑니다.
그는 론을 끌어당기며 "거울을 봐"라고 말하며 론이 부모님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론은 거울을 보며 "난 스포츠 챔피언이야. 난 멋져요. 난 학교의 교장이야."라고 말합니다.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잠깐만요. 이 거울은 뭐 하는 거지?" 해리 포터는 덤블도어가 와서 설명하기 전까지
“거울은 네 마음속 가장 깊고 간절한 소망을 보여주는 거야."
모든 사람은 "저것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며 무언가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지. 그러면 인생에 의미가 있겠지. 그러면 행복해지겠지." 누구나 거울을 통해 무언가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마음 속 가장 깊은 욕망이 무엇이든... 물론 여러분에게도 있습니다.
"그것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서 의미를 갖게 되고, 기쁨을 갖게 되고, 행복을 갖게 되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겠지..."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요.
모두가 해냈습니다. 누구나 무언가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이든 그것은 여러분의 삶을 완전히 지배합니다.
그것은 당신을 완전히 통제 할 수 있습니다.
덤블도어는 해리포터에게 "사람들이 거울 앞에서 낭비하고, 거울을 보며 낭비하는 것이 문제니까 이 거울을 숨길 거야"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베키 피퍼트의 책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용문 중 하나는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무엇이든 우리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은 권력에 의해 통제됩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는 사람은 자신이 기쁘게 하려는 사람에 의해 통제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에 의해 통제됩니다."
그런데, 우리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누구를 위해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요? 너를 위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가장 큰 적이 바로 나라는 것이예요. 우리의 궁극적인 문제는 항상 우리가 우리를 숭배하는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요, 이 예배의 회복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절대 회복될수 없습니다.
다윗도 보세요. 시편 139 편의 고백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를 더 살피시는데…
왜 범죄하나요? 내가 앞설때 범죄하게 되는 것이예요.
그런데,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 향하지 않을때의 모습이 5절에 나와요.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드고아 사람들이 나오는데…. 누가 함께 하지 않았다고요?
드고아 사람들의 귀족들이…
3장 읽어보면요, 유일하게 지금 느헤미야의 이 성벽 재건에 협조하지 않은 그룹이예요.
왜 하지 않았을까요?
간단하지 않아요. 귀족이래요. 구지 이거 재건하지 않아도 자신들은 아쉬울 것이 없어요.
그래서, 사단은 우리가 예배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거예요.
베트남. 중국, 북한… 뭘 통제하나요? 예배하지 못하도록 통제 하는거예요.
예배가 무너지게 만드는거예요.
이집트 상황.
~~
우리는 그런 억압이 없는데도 왜 예배하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은 너무 1차원적인 질문이죠.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는… 내가 내려놔져야 된다는거예요.
그래서, 예배가 회복될때, 우리의 영이 회복되고,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우리의 목적이 회복될수 있어요.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과의 관계가 다른 어떤 형태의 명예나 쾌락보다 더 아름답고 강력하다는 것을 깨닫을 때…
비로소 비판을 받거나 실패하는 것에 겁먹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계속 겁에 질려 있고, 감정적으로 계속 굴러다니는 자신을 발견하고,
불안이나 낙담,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긴장이나 두려움으로 끊임없이 힘들어한다면,
삶의 궁극적인 가치를 하나님에게 재지정하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치유되고 변화되며 무한히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 결코 예배가 회복의 시간이 되지 않아요.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예배는 그냥 와서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당신이 이미 당신의 삶에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예배는 찬양을 통해 그분을 묵상하고 찬양할 때마다 ...
예배의 모든 행위는 자신을 치유하고, 자신을 움직이고, 당신을 지배하는 것들로부터 당신의 마음을 당신의 삶을 왜곡시키지 않을 한 가지로 끌어당기는 과정입니다 ...
그렇기에, 예배 드릴때, 우리가 회복되는거예요.
그리스도인 여러분, 에리세드의 거울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완벽하게 누리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완벽하게 소중히 여기고, 그분을 완벽하게 즐기고, 그분을 있는 그대로 완전히 즐기는 완벽한 예배 행위를 한 번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완벽할 것입니다.
그 무엇도 당신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당신을 파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직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공중 그네에 많이 비유를 하죠.
그런데, 이 공중그네의 묘기를 완료를 하려면 상대방을 확실하게 믿어야 되요.
믿고, 한걸음씩 나아가야 됩니다.
그렇다면, 예배는 무엇인가? 나의 손을 잡아주시는 하나님과 아이컨텍 하는거예요.
물론 우리의 모든 예배 행위는 불완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면서, 그리고 예배를 점점 더 잘하게 되면서 우리의 마음은 조금씩 조금씩 변화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얻으면 우리를 만족시켜 주시고, 실패하면 우리를 용서해 주실 분에게 궁극적인 가치를 재지정합니다. 성
취를 위해 살다가 그 신에게 실패하면 그 신은 결코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을 영원히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찾고 있는 것이 사랑과 로맨스 또는 가족인데 어떻게든 그 신에게 실패한다면, 그 신은 당신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영원히 자신을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감당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감당하게 하신다.
이 예배를 누가 세우는가? 1절 다시 보겠습니다.
솔선수범 하는 그룹이 있어요.
~~
누가 먼저 솔선수범 했는가? 1절 말씀입니다.
대 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제사장들이 가장 먼저 솔선수범 했다는 것이예요.
이제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후에 신구약 중간기를 보면…
대 제사장이 이 이스라엘의 왕과 같은 역할을 했어요.
이처럼 가장 먼저 솔선수범한 사람들이 리더 였다는거예요.
그런데, 솔선 수범 해서 먼저 회복시킨 것은 바로 양문을 회복시키는 것이였다는거예요.
무엇이 여러분을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모든 문제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있나요?
어떤 사람들은 돈에 문제가 생기면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에 문제가 생기면 두려워 해요.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것에 겁을 먹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면 더 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신은 목자이신 유일한 신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목초지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손길이 닿은 양떼입니다. 그분은 당신을 용서하시는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신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무언가를 숭배할 것이고, 진짜 신이 아닌 다른 것은 우리의 삶을 왜곡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일종의 의무로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궁극적인 필요, 삶의 궁극적인 필요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면 ... 그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완벽하게 할 수는 없지만 점점 더 잘해야 한다면 이제 갑자기 마지막 요점이 매우 중요해집니다.편
1절 우리는 감정으로 그분을 예배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감정적인 언어입니다. "노래하고, 큰 소리로 외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음악을 하라." 둘째, 6절에서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그분을 경배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 언어는 복종과 의지의 언어입니다. "와서 무릎을 꿇고 절하라." 마지막으로 8절에서는 이성의 언어입니다. 사고의 언어입니다. "그의 음성을 들어라. 그의 음성을 들어라. 그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여라." 예배는 사고와 이해의 언어입니다.
다시 말해, 예배는 우리의 마음과 의지, 감정, 즉 우리의 존재 전체가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의식에 참석해서 의식을 거치고 내면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경험하지 않은 채 교리와 신념을 확인한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아니면 뒤집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배에 가서 큰 감동을 경험할 수 있고, 눈물을 흘릴 수 있고, 미적 경험을 할 수 있고, 정서적 경험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당신의 근본적인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의 성격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의 삶의 패턴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세요. 기쁨 없이 절하고 무릎 꿇는 것, 반대로 삶에서 절하고 무릎 꿇지 않고 소리 지르고 노래하는 것, 삶의 변화 없이 외치고 노래하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문화적 경험, 정서적 경험, 미적 경험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전 존재를 수반합니다. 그렇다면 전 존재를 참여시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시편을 살펴보면 모든 감정과 모든 위대한 참여가 시편 기자가 하고 있는 일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7절: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그는 단지 위대한 신이 아니라 우리의 신이시고 목자이시며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고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모든 감정, 모든 예배, 모든 삶의 변화는 시편 기자가 하고 있는 일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탁월하심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폭발이 일어날 때까지 그것들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는 바로 이것입니다. 한 여성이 어머니로부터 보석(브로치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을 물려받았다고 상상해 보세요.
몇 년 동안 가족 곁에 있었지만 아무도 그 보석이 어디서 왔는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지 못하며 절반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그 물건을 발견하고 "그래, 그 오래된 물건. 감정을 받으러 가야겠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보석상에게 가져갑니다.
보석상은 확대경을 들고 보석을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어젯밤 이 그림을 준비하면서 인터넷에 들어가 보석상이 진짜 다이아몬드와 가짜 다이아몬드를 구별하는 방법을 살펴봤습니다.
꽤 흥미로웠어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어서 그림에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패싯이 빛을 굴절시키는 방식에 주목하는 것처럼 사물을 보기 시작합니다. 색을 알아차립니다. 질감도 알아차립니다.
그렇게 조금씩 바라보고 생각하다가 몇 분 후 갑자기 보석 확대경을 떨어뜨리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하면서 이것이 잃어버린 고대의 독특한 보석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절하기 시작합니다. 이 보석을 만든 기술이 지구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더 이상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모릅니다. 이 보석은 그 아름다움이 독특합니다.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그가 갑자기 경험하는 이유는 ... 그의 모든 마음, 의지, 감정이 모두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손에 자신의 가게에 있는 모든 보석, 30년 동안 자신의 가게에 있던 모든 보석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물론 이 물건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 여인도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녀는 전율하며 자신이 가진 것의 가치에 걸맞게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마땅히 살아야 할 방식대로 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녀는 그 가치를 알게 되면서 인생 전체가 바뀌었습니다.
이 예화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예화보다 예배가 무엇인지 잘 말해줍니다. 시편 기자는 보석 세공인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라고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가 가장 먼저 십자가를 졌나요?
솔선수범의 이유가 무엇인가요?
내가 할테니까… 나를 보고 따라라….
그럼 리더가 되기 위한 가식적 섬김이잖아요.
그런데,
그런데, 이 계획은요, 모든 사람이 함께 동참하게 하시는거예요.
자녀들, 아들들, 딸들까지도 다 나왔습니다.
이 말은 모두가 다 함께 하는거예요.
우리 교회로 따지면… 다 우리 교회 성도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거예요.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교회의 목회 방향은 모든 교회가 함께 가야 되는거예요.
이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일할 사람들을 하나님께선 하나님의 방법대로 배치하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기러기 때 v자 대형.
베이직 - 7:30
하나님의 계획에도 자유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도 자유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마음이 되게 하신다.
이것이 아니면, 교회는요, 교회의 역할을 할수 없어요.
모두가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향은 같아요. 주님을 위해서…
이 말씀을 보면요, 여리고 사람들과 드고아 사람들을 비교하기도 합니다.
왜냐면, 드고아는 18km정도 떨어져 있지만,
여리고는 26km나 떨어져 있었거든요…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라는 것이예요.
이집트 콥틱교회, 베트남의 기독교인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유일한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살기위해 울라 P.78)
3장의 말씀 중에 유일한 차이점은 5절의 드고아 사람들…
그다음은… 그 다음은… 그 다음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