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5 금요기도회: 왕상 1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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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한 주를 마무리하는 오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마무리하게 하시니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 알게 됩니다. 오늘도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을 통해 기도함으로 저희의 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게 되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삶 속에서도 무장된 저희의 영혼을 통해 죄를 짓지 않고 삶을 능히 살아내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함께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상 15:9-24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아사와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 사이에 일생 동안 전쟁이 있으니라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와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
아사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그 신하의 손에 넘겨 다메섹에 거주하고 있는 아람의 왕 헤시온의 손자 다브림몬의 아들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나와 당신 사이에 약조가 있고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도 있었느니라 내가 당신에게 은금 예물을 보냈으니 와서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벧마아가와 긴네렛 온 땅과 납달리 온 땅을 쳤더니
바아사가 듣고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중단하고 디르사에 거주하니라
이에 아사 왕이 온 유다에 명령을 내려 한 사람도 모면하지 못하게 하여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가져오게 하고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더라
아사의 남은 사적과 모든 권세와 그가 행한 모든 일과 성읍을 건축한 일이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 발에 병이 들었더라
아사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조상 다윗의 성읍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께 드리는 기도는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을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보내게 되니 참 감사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복과 선물을 마음껏 누리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은 남유다의 세 번째 왕 아사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사의 앞의 왕들은 르호보암과 오늘 본문 앞에 등장하는 아비얌이었습니다. 이 두 왕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고, 그들은 실패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통치해야 하는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뜻을 따라 통치하였고, 그 결과는 우상을 들이고, 그 우상에게 예배하는 방법인 남자 동성애를 들이게 되는 하나님 앞에 너무나도 가증스러운 나라를 만들게 됩니다.
르호보암과 그의 아들인 아비얌이 그러했듯이 자연스레 열왕기를 읽는 독자들은 아비얌의 뒤를 잇는 왕도 똑같이 행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상과는 달리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 아사는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고 평가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사에게 이런 평가를 내리셨을까요? 그가 통치할 때 어떻게 남유다를 통치했던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고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의미를 2가지를 통해 살펴볼텐데요. 첫째는 아사의 긍정적인 면, 두 번째는 아사의 부정적인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아사의 긍정적인 면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아사는 아비얌의 뒤를 이어 남유다 왕에 오릅니다. 그리고 그는 무려 10절에서 41년 동안 통치했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부터 아합이 통치하기 전까지, 즉 북이스라엘을 다섯 명의 왕이 통치하던 때에 남유다에는 아사가 통치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아주 길게 통치하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을텐데요. 오늘 본문은 이 아사의 통치 중에서 가장 중요한 면모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사는 앞의 두 왕인 르호보암과 아비얌의 전철을 밟지 않고, 우상과 남성 동성애를 몰아내었다고 말합니다. 12-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바로 열왕기 기자는 41년 간의 아사의 통치 중에서 아사가 행한 일종의 종교개혁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사는 르호보암과 아비얌이 들여온 우상을 없애고 남성 동성애를 몰아내어 르호보암과 아비얌의 범죄로부터 남유다를 깨끗하게 만들어 다시 하나님만을 섬기는 왕국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특히 13절에서 어머니로 번역되었지만 사실상 할머니인 마아가를 아사는 남유다의 태후인 할머니가 남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남유다에 만들어 범죄한 것에 대해서 태후의 위를 폐하고 아세라 상을 찍고 불살랐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아사의 행보는 실로 엄청난 행보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다보면 조상은 둘째치고 할머니가 범죄한 것에 대해 눈 감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아사 또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아세라 상을 만든 자는 그의 할머니인 마아가였고, 특히 남유다의 태후였습니다. 한 나라의 태후이며 자신의 할머니인 마아가의 위를 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태후의 위를 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왕국의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엄청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가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다윗 같이 정직하게 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자신의 처지와 상황, 그리고 감정을 앞세우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에만 기준을 두고 통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아사의 통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과감히 선조 왕들의 잘못으로부터 남유다를 돌이키게 만들었고, 자신의 할머니인 마아가의 태후의 위를 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우상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 대부분은 우상숭배였습니다. 그리고 그 우상은 아사가 통치할 때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아사는 우상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오직 하나님만이 참신이심을 고백하며 그분만을 예배할 것을 선택하는 올바른 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려고 하니 우상이 아사에게는 쓸모가 없어져버렸고, 그에게는 일종의 쓰레기처럼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우상을 없애고 찍어 불살라버렸던 겁니다.
이러한 아사의 모습은 14절에서도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그러나 14절은 우리에게 한 가지 걸림돌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바로 아사가 “산당은 없애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산당은 이방 신을 예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따라서 산당을 없애지 않았다는 것은 아사가 훌륭한 왕이긴 했지만 이러한 오점을 남긴 왕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역시 살아갈 때 우리의 선조 또는 바로 위의 선배들의 오점을 보게 될 때 그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토대나 업적보다는 오점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동시에 죄인이기에 연약함이 있어서 오점이 생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따라서 후배들에게 맡겨진 것은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좋은 토양에 감사하며, 동시에 선배들의 오점이나 잘못이 보인다면 그것을 자신의 때에 그것을 극복하여 자신의 후배들에게 더 좋은 토양을 제공하는 것이 아주 올바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각은 아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도 중요합니다. 아사는 선조들의 잘못을 그대로 밟지 않고 오히려 선조들의 죄로부터 돌이켰고, 자신의 어머니인 마아가의 태후의 위를 폐할 정도의 놀라운 통치를 했다는 정도만 해도 아사의 업적은 높이 평가될만 합니다.
더구나 아사는 15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인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 금과 은을 모아 성전에 바치기까지 했던 왕이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할 수 있는 왕국인 남유다가 되도록 다시 기반을 닦은 것이 아사입니다. 이런 아사의 뒤를 잇는 왕들에게 맡겨진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아사가 놓쳤거나 하지 못한 그 산당을 없애는 것이죠.
더 나아가 아사가 산당을 없애지 못한 것을 읽는 열왕기 독자들은 무엇을 기대하게 되겠습니까? 바로 아사가 하지 못한 그것을 이후에 등장할 왕들 중 누군가가 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품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을 행한 왕들이 이후에 등장합니다. 열왕기하 18장은 히스기야가 어떤 통치를 펼쳤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바로 아사가 하지 못한 그 산당들을 마침내 히스기야는 제거하였습니다.
또한 요시야에 대한 기록인 열왕기하 23장 4절과 6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 6절입니다. “또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 거기에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바로 아세라뿐만 아세라를 비롯하여 바알,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오늘 본문의 13절에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아세라 상 한 개를 불사른 아사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부수고 불사른 왕이 요시야였습니다.
후배 왕들이 아사가 하지 못한 그 일을 아주 훌륭하게 극복했던 것이죠.
더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사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11절에서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말씀하시며 14절 하반절에서는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라고 평가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사가 산당은 없애지 않았다는 것에 너무 치중되어서 아사를 격하시켜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에 대해 좋게 평가하시기 때문입니다. 아사는 이처럼 남유다의 왕들 중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남유다 왕국으로 바꾸는 것에 최선을 다했던 왕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사의 긍정적인 면모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그가 좋은 왕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사에게는 긍정적인 면모와는 달리 다른 부정적인 면모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쓰려고 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어떤 때에 그런 모습이 드러났을까요?
두 번째로 아사의 부정적인 면모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15절까지는 아사의 일종의 종교개혁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6절부터는 남유다의 왕 아사와 여로보암이 죽고 그의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지만, 쿠데타를 일으켜 이 나답을 죽이고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바아사가 서로 전쟁하는 것에 대한 기록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바아사가 17절에서 남유다를 공격하러 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아사와 만나지 못하게 만들게 됩니다. 과거에 이 라마는 사무엘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바아사는 라마를 요새화시켜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이에 아사의 반응은 어떻겠습니까? 바아사가 요새화를 시키니 위협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그러자 아사는 이 위기에서 탈피하고자 해결책 하나를 고안해내는데요. 그것은 바로 이방 국가를 매수하여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국가는 바로 당시 강대국이었던 아람이었습니다. 아사는 아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성전과 왕궁 곳간에 남은 은금을 모두 가져다가 사절을 보내 아람의 왕 벤하닷에게 보내어 자신의 편이 되어달라고 약조를 맺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솔로몬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습이기도 한데요. 솔로몬 또한 두로의 히람과 약조를 맺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과 아사와의 차이는 약조에 있어서 솔로몬은 매우 우위에 있었지만, 아사는 “아람”의 “벤하닷”에게 애원하는 처지였습니다. 다시 말해 같은 약조이지만 갑을 관계는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이에 아사의 전략은 성공적이었고 아람 왕 벤하닷은 바아사와 세운 동맹 관계를 깨뜨리고 20절에서 군대를 보내 이스라엘 성들을 공격하여 북이스라엘에게 위협을 주게 됩니다. 벤하닷이 이처럼 아사의 말을 들어준 것은 그가 남유다를 위해서 했다기보다는 아람과 인접해있는 북이스라엘을 견제하는 동시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서로 다투게 만들어 아람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그랬을 겁니다. 아람은 어디까지 철저하게 세상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람을 두고 형제 나라인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전쟁하며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는 모습 너무나도 안타깝지 않습니까? 인간의 죄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다주는지 알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아사의 전략에 의해 아람에게 공격받은 바아사는 라마를 건축하는 일을 21절에서 중단하게 되고, 22절에서 아사는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건축 재료를 가져오게 하여 그것으로 베냐민의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여 오히려 남유다를 지키기 위해 이 도시들을 요새화시킵니다. 이런 아사의 전략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봤을 때 매우 훌륭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외교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국가적 위기를 아주 잘 극복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아사의 이 모습은 결코 좋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역대하 16:1-14에서 하나니라고 하는 선지자는 이 행동에 대하여 아사 왕을 책망합니다. 이때 책망할 때 아사의 과거 일을 통해 책망하는데요. 아사는 과거에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이 큰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위기를 맞이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역대하 14:11-12 입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이때 아사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위기를 잘 극복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선지자 하나니가 책망한 것은 바로 이번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전략을 썼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하나님을 찾는 대신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 세력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역대하 16:8입니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면 하나님을 찾아야 함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방 국가를 의존하여 범죄한 아사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23절에서 발에 병이 나게 하셨고 아사는 심각한 상태가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사는 이 병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사들을 의지했음을 역대하 16:12에서 말씀합니다.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아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있어서 아주 긍정적인 면모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부정적인 면모 또한 같이 보았습니다. 이런 아사의 모습을 통해서 열왕기를 읽는 독자들이 아사 이야기를 읽을 때 이런 아사를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완벽한 왕이 누구인지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사를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완벽한 왕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심으로 아사도 훌륭하게 했지만, 아사보다도 더 뛰어나게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할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강도의 소굴로 성전을 만들어버린 성전을 정화하셨으며 참된 왕으로서 누구든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초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사의 부정적인 면모를 결코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기가 찾아오셨을 때에도 인간적인 전략을 사용하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라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에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면서 오직 성부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히셨을 때에도 자신이 능히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에게 수치와 모욕을 주는 자들에게 벌을 주실 수 있으심에도 성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 된다는 것은 우리를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 있게 만듭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에도 인간적인 전략을 세우고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위기를 극복하게 만듭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기억할 때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통치함으로 이스라엘이 엄청난 복을 누린 것처럼 그리스도의 복을 누리는 교회가 됩니다. 우리의 각자의 삶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심으로 인간적 전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 삶 속에서도 엄청난 복을 누리게 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두고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아사는 좋은 면모와 좋지 않은 면모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좋은 면모에 있어서는 아사보다 탁월하셨고, 좋지 않은 면모에 있어서는 아사와 같은 길을 걷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합시다.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오로지 하나님을 예배하며 위기의 순간 속에서 인간적 전략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기를 극복하게 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붙들어주셔서 삶 속에서도 능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