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와 포용

신명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9 views
Notes
Transcript
배제와 포용
[서론]
예전에 우리나라에 예멘 난민들 500여명이 제주도로 넘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내전으로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제주도까지 넘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대부분 그들을 받아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이죠.
당시 IS테러에 대한 경계심이 많았던 때였습니다.
그럼 그때 크리스천들은 어떤 목소리를 냈을까요?
크리스천들 역시 예멘 난민들을 받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무슬림화 될수 있다는 게 근거였습니다.
무슬림들은 아이를 많이 낳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무슬림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겁니다.
누구는 받아주고, 누구는 받아주지 말아야 할까요?
누구는 배제하고, 누구는 포용해야 할까요?
다음주 수요일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지지를 위해 사용하는 전략이 바로 혐오와 배제입니다.
나랑 생각이 같지 않으면 적으로 삼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좌파와 우파의 극단적 대결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남여간의 갈등, 세대간 갈등이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배제와 포용의 문제는 크리스천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무조건 포용하다가는 정체성이 사라질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배제하면 스스로 고립되고 단절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배제하고 무엇을 포용해야 할까요?
[본론]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겠습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주는 마지막 유언이자 설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서 이방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다 쫓아내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럴때 그들이 어떤 사람들을 자신들의 공동체에 받아들일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총회에 들어올수 있는 사람과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총회라는 단어는 신약에서‘에클레시아’즉,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총회란 쉽게말해서 이스라엘 예배공동체를 말합니다.
예배에 참여할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럴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은 포용하고 어떤 사람들은 배제하실까요?
먼저 배제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첫째, 고환이 터졌거나 음경이 잘린 사람들입니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말씀입니다.
생식기가 문제가 있다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갈수 없다는게 말입니다.
팔, 다리도 아니고 왜 하필 생식기일까요?
물론 하나님이 장애인들을 차별하시거나 배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은 태어날때부터 생식기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고로 생식기에 문제가 생겨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이방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종교적 의식으로서 자신의 생식기를 상하게 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생식기는 생명을 낳는 도구이기에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생명의 도구를 오히려 영혼을 죽이는 우상숭배에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유대인일지라도 예배 공동체에 참여할수 없습니다.
둘째, 사생아입니다.
보통 사생아란 혼인관계가 아닌 상태에서 낳은 자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생아는 좀 다른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사생아라고 해서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생아 역시 이방종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방 성전에서 매춘하는 사람들에게서 낳은 자식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일지라도 예배 공동체에서 배제됩니다.
이처럼 두 경우 모두 우상숭배 그리고 성적타락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거룩한 예배 공동체에 들어올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생명의 도구를 죽이는 도구, 죄악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분별한 성적 타락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성과 관련된 범죄와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버려진 아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보육원 출신 아이들중 8-9명은 모두 부모가 있지만 버려진 아이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모든 타락한 모습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죽이는 문화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배제해야할 세상의 문화인 것입니다.
셋째, 암몬과 모압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4-6절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모압땅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모압민족은 조상으로 따지면 형제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전쟁을 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려 합니다.
그런데 모압왕 발락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형제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발람이라는 아주 용한 마법사를 고용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할수 없게 만드십니다.
오히려 그의 입에서 저주가 아닌 축복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상으로 따지면 암몬도 모압도 피가 섞인 이스라엘의 형제나라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딸들이 낳은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히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대적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저주를 퍼부으려 했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하나님 나라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포용할 사람들이 아니라 배제해야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문화는 비난과 혐오, 차별입니다.
저는 정치에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전략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입니다.
우리가 국회의원을 분별해서 잘 뽑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비난과 혐오, 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을 절대 뽑아서는 안됩니다.
반면,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갈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제할 사람들이 있는 반면 포용해야할 사람들도 있습니다.
7절에 나온 에돔 사람과 이집트 사람입니다.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암몬, 모압보다 훨씬 더 가까운 친족관계입니다.
그럼에도 원래 이스라엘은 에돔 족속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3대손부터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올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또한 이집트 사람은 피한방울 안 섞인 완전 이방인입니다.
그럼에도 그들도 이스라엘 예배 공동체에 들어올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뿌리인 야곱 가족을 머물수 있게 한 것이 바로 이집트 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큰 민족으로 성장할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때 이집트인들이 일부 따라나왔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이스라엘의 예배 공동체 안에 들어갈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올수 있느냐 없느냐는 혈통에 따른게 아닙니다.
유대인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 있는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신앙 공동체, 예배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룻기에 나오는 룻같은 경우도 모압 여인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우리에게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배제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예배드릴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어떠한 차별과 배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배제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세속입니다.
세상의 죽이는 문화, 세상의 거짓된 가치관을 배제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상처내고 생명을 훼손하는 것들을 배제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는 거룩한 예배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도, 즉 거룩한 무리입니다.
우리에게 거룩은 날마다 입어야할 옷과 같습니다.
거룩의 핵심은 구별됨입니다.
우리의 교회안의 모습뿐만 아니라 교회밖, 세상에서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포용하십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전쟁 공동체입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도 적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냥 전쟁이 아닙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전쟁을 치뤄야 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하나님의 전쟁을 하기 위해 먼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는 일입니다.
전쟁에서 싸우는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해야할 유일한 일은 정결함과 거룩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부정한 일의 예로서 몽설과 배설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몽설은 남자가 정액을 배출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둘다 육체의 분비물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몽설을 한 사람은 진 밖에 머물다가 저녁에 목욕을 해야만 진 안으로 들어올수 있습니다.
생명을 낭비한 것이기 때문에 죄는 아니지만 부정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배설물은 어떨까요?
배설물도 죄는 아니지만 더럽기 때문에 부정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진 안에 배설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진 밖에 변소를 설치해야만 합니다.
진 안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정결하게 거룩하게 유지해야만 합니다.
이처럼 몽설이나 배설물처리는 개인에게 있어 매우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심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날마다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말씀과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나의 몸과 마음, 생각에 묻은 더러운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 마음의 배설물들을 처리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서 모든 더러운 것들이 밖으로 나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탐욕, 미움, 시기, 분노 모두 우리 마음의 배설물들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정결하지 않고 세상에서 제대로 전쟁을 치룰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치루는 전쟁은 거룩한 하나님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싸우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에게 승리와 구원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스스로를 정결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공동체는 포용공동체이며 동시에 배제공동체입니다.
우리가 포용할 것은 거룩함과 정결함입니다.
우리가 배제할 것은 세상의 타락한 문화와 배설물같은 우리의 더러운 마음들입니다.
최근에 피디수첩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몇년전 아이들 매트를 판매하던 1등 기업이 있었습니다.
그 기업은 친환경소재로 매트를 만들어 너무 잘 나갔습니다.
그런데 경쟁사에서 음모를 꾸몄습니다.
악성 댓글을 지속적으로 달아 1등 회사를 완전히 망가뜨려버렸습니다.
그때 잘못된 이미지가 씌워져 지금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그 경쟁사 사장이 크리스천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그는 대형교회에서 선교담당 장로였습니다.
악성 댓글을 지시할때에도 선교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참 많이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요?
진짜 배제해야할 것은 배제하지 못하고 진짜 포용해야할 것은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배제와 포용은 우리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
그 예가 15-18절에 등장합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포용해야할 대상이 있습니다.
바로 주인에게서 도망친 노예들입니다.
당시 이웃 나라에서 도망친 노예들이 이스라엘에 들어온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시 국제 조약에 따르면 이 노예들은 재산이기 때문에 다시 돌려보내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 노예는 주인에게 돌아가 잔혹한 벌을 받거나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국제조약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다시 돌려보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놀랍게도 종의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그들을 착취하거나 되팔아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적극적으로 그들이 도와 함께 살수 있도록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라고 하십니다.
주인의 재산권을 제한하고, 종의 인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거룩과 정결함은 우리의 일상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먼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장애인들, 외국인 노동자들, 미혼모들, 보육원출신 아이들, 역기능 가정 아이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을 선하게 대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일이 우리가 해야할 포용입니다.
반면 거룩하고 정결한 공동체로서 이스라엘이 배제할 대상도 있습니다.
성을 파는 일입니다.
당시 가나안 이방종교에는 신전에서 일하는 창녀나 남창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아들, 딸들은 이런 일을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결국 가나안 이방종교를 따라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는 비판들이 바로 이런 비판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어떻게 그런 일들을 할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이 벌어들인 돈도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그들이 부도덕하게 번 소득으로는 성전에 헌금을 드릴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배제해야할 대상은 부도덕한 헌금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며 벌어들인 돈은 부도덕한 돈입니다.
남을 짓밟고 착취하여 벌어들인 돈도 부도덕한 돈입니다.
놀랍게도 앞서 악성댓글을 달았던 그 장로님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은 헌금을 내던 사람중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남을 무너뜨리고, 불법을 행하여 번 돈을 헌금으로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돈을 가증스럽게 여기십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다카포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교회입니다.
거룩한 예배 공동체이며, 정결한 전쟁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포용과 배제 모두 필요합니다.
함께할수 있는 믿음의 동지들을 포용해야 합니다.
겉모습이나 배경이 어떤 사람이든 우리는 포용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약자들을 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배제도 해야 합니다.
생명을 해치는 세상의 더럽고 추악한 문화들을 배제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문화를 배제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더러운 배설물들을 배제해야 합니다.
우리 다카포 식구들이 거룩하고 정결한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포용과 배제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예배공동체, 전쟁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