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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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 동행하느냐에 따라 삶이 좌우됩니다. 자음은 모음을 만나야 글자가 되고, 작은 불꽃은 바람을 만나야 큰 불꽃이 됩니다. 칼이 어머니를 만나면 요리에 쓰이고, 도둑을 만나면 사람을 해치는 데 사용됩니다. 쓰레기가 백남준과 만나면 예술품이 되고, 길가의 바윗돌이 미켈란젤로를 만나면 다윗상(像)이 됩니다. 철이 철을 만나면 더욱 날카로워지지만, 철이 물을 만나면 녹이 습니다.
천하장사 삼손은 ‘작은 태양’이라는 의미입니다. 삼손이 델릴라를 만납니다. 델릴라는 ‘밤’이라는 뜻입니다. 태양의 복을 받은 그가 어둠을 만나 동행하니, 실제로 눈도 뽑히고 영혼도 어둠의 골짜기를 방황하게 됩니다. 좋은 만남, 그 만남을 볼 줄 아는 눈, 그 만남과 동행하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요한복음은 주님을 만난 이들이 받은 은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주시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부활의 놀라운 소식을 믿고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삼손과 데릴라의 만남으로 사사 삼손이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것처럼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죄악의 권세를 만나면 죽음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를 직접 만난 제자들>

부활의 주님은 이제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마리아가 아직 어두울 때 주님을 만난 것처럼, 제자들은 저녁 어두울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John 20:19 NKRV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들은 이미 마리아를 통해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19절에서 “문들을 닫았더니”에서 “닫았다”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서는 “문을 꽁꽁 잠그다”라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소식을 들었지만, 여전히 영적인 어둠 속에 갇혀서 자신들의 마음을 꽁꽁 잠그고 주님이 그 마음 속에 들어 오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을 보시면 주님도 실망하실 법한데 전혀 그러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제자들을 만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평화의 인사를 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인사는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는 주님의 약속이 실현된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평화의 선물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천국이 우리의 소망이 되고, 주님과 함께 하면 걱정과 근심이 떠나가고, 주님과 함께 하면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게 되니 이와같은 평강은 세상이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며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건내시며 주님은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주님의 부활이 환영이 아니라 실제적 사건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더이상 두려워 떨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후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보혜사를 보내어 주시겠다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실 보혜사 성령께서 주님이 계시지 않는 자리를 대신 채워주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하신 것은 창세기 2 에서 이 흙으로 만든 인간에게 들어 왔을 때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었던 것처럼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는 자는 생명을 얻게 됩니다. 주님은 보혜사를 통해 제자들을 새롭게 다시 창조해주셨습니다. 생명인 예수님은 곧 떠나시겠지만,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 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통해 새로운 시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며 살아갈 시대에 들어가게 되며 그 시대에 걸맞는 선물인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평강은 성령이 함께 하실 때 우리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때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은 “항상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그러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얻게 될 것입니다.” 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을 받으심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강을 누리며 사는 복된 중앙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의 말씀을 통해 만난 도마>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평강의 선물을 받았지만, 아직 도마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본문 25절을 보면
John 20:25 NKRV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고 말합니다. 물론 제자들도 완벽하게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온 새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도마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은 여전히 집 안에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님은 다시 도마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26b)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한번만이라도 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교회에 다니겠다는 분이 종종 계십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이 이해가 가면 신앙을 가지겠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을 보면 정말 그분들이 눈으로 하나님을 보거나 성경 속 사건들이 이해가 가면,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마는 모든 것을 직접 관찰하고 경험해야지 믿고 받아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변의 제자들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 말이 믿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못자국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야지, 자신의 정확한 오감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해야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부활의 사실을 인정하겠다 말한 것입니다. 도마가 직접 예수님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보고 만져야 믿는자가 된다면 그의 믿음은 엄밀히 따지면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도마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네 손가락을 일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아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도마에게 책망하고 계십니다. 만져서 믿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1 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주는 것입니다. 보고 이해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기 때문에 이해가 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도마도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게 됨으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원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도마는 눈으로 자신이 의심하는 바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만 듣는 것만으로 주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평강이 그에게 실현된 것입니다. 성령이 그의 마음을 붙잡고 역사하시자 도마가 부활의 주님을 향해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의 부활에 대하여 가장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자의 입에서 주님을 향한 가장 최고의 신앙고백이 터졌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황제를 주와 하나님으로 숭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도마가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진정한 통치자이며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 선포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도마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들려지는 말씀으로도 주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복된 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보지 않고 만난 사람들>

본문 2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John 20:29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 당시 동시대를 살았던 제자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주님의 승천 이후에 주님을 따르게 되는 이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본 고로”, “보다”는 말씀은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각으로 알게 되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자들은 이런 것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더 이상 직접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누군가 전해줘야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 또한 예수님이 직접 전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예수님은 주님을 전하라는 명령은 본문 21절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만나게 된 것다른 사람들을 전하는 소식을 통해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과정을 통해 만나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온전한 만남이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고,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이 도마를 향한 책망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더 큰 믿음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9절 어디에도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더 복되도다”는 말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않고 믿는 것이 더 큰 믿음이란 뜻이 아니라 보고 믿는 것이나 그렇지 못하는 것이나 똑같은 믿음이며 둘 다 복된 믿음이다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이후로 직접 주님을 만나지 못하였지만, 주님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는 이들에게도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주님이 보증해 주십니다. 비록 우리는 직접 우리의 육의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 믿음과 주님과의 만남이 거짓이 아닌 명백한 사실임을 증명해주는 말씀이 바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해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과 더 완전한 만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보혜사를 통해 주님의 가르침이 생각나고 주의 말씀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에게 평강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주님을 만난 자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주님이 보증해 주시는 믿음입니다. 두려워 떨 필요도 없습니다. 무서워 숨을 필요도 없습니다. 항상 주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시며 성령으로 함께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보증해 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오직 주님만이 주시는 평강을 얻고 누리며 사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귀한 말씀 들려주심에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과 같은 시대를 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향한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주께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셔서 주님을 만났고, 부활의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약속하셨는 우리는 그 권세도 누리는 주님의 복된 자녀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만나보지도 못한 주님을 어떻게 만났냐고 확증할 수 있고, 그 믿음이 정말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줄 수 있냐고 끊임없이 우리를 심험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를 세상의 그런 소리에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그 누가 우리의 믿음을 깎아 내리고 폄훼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절대로 주눅들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증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보고 믿는 자도 복되지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도 모두 복되다고 인정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성령으로 함께하시며 우리에게 평강의 선물을 더하여 주옵소서. 새로운 시대에 보혜사 성령과 동행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우리를 굳게 잡아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그날까지 굳센 믿음의 소유자로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우리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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