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부르심 2024 0407 출3:1-12
Notes
Transcript
찬송가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출애굽기 3:1–12 (NKRV)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절에서부터 굉장히 많은 묵상할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인물, 사건, 배경
인물, 사건, 배경
인물
인물
지금 모세는 아무것도 아님. 왕자였음 -> 살인자, 도망자 -> 무명의 양치기. 본인 양도 아님. 그 양의 주인은 자신의 장인. 미디안의 제사장.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님.
배경
배경
미디안 광야에서 서쪽 광야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음. 광야. 아무것도 없음. 돌. 황무지. 특별한 장소가 아님. 어떤 거룩한 표징이 나타날만한 장소가 아니었음. 호렙도 하나님이 계시의 장소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산이 된 것이지. 원래 있었던 그냥 깡 돌산. 아무것도 아닌 곳.
사건
사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보기에 기대할 것이 하나 없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일하심. 모세는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민족의 구원자로 부르고 계심. 그가 서 있던 그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음.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있다.
광야는 히브리어로 미드바르. 미는 전치사 from. 다바르는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곳이 광야이다.
세상적인 눈으로 봤을 때, 그 모세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그 황무지 광야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모세에게 화려한 궁정에서의 삶은 끝이 났다. 과거의 영광은 다시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됐다. 남의 양이나 치면서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러나 바로 그 때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 한 가운데서 만나주신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이 들려지는 그 광야에서 모세는 민족의 구원자로 서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호기심에서 소명으로
호기심에서 소명으로
하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발화 사건으로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그 불은 떨기나무를 태우지 않고 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간다.
출애굽기 3:3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오해하지 말 것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음. 떨기나무가 타지 않음.(2절) 그 떨기나무를 감싸고 도는 불꽃, 그 자체의 형상으로 드러나신 것이 아님. 하나님의 음성은 분명하게 떨기나무 속에서 나오고 있음. 어떠한 세속적 형태로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심.
다시 모세의 인간적인 호기심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발전된다. 모세는 이 큰 광경, 생소한 광경, 신기한 광경을 “보려고” 갔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모세가 오늘 것을 보고 계신다.
출애굽기 3:4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오늘 본문의 중요한 키워드는 “본다”이다. 사람의 눈은 호기심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당신의 사명을 맡길 사람을 보고 계신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그에게 떨기나무 불꽃은 그저 호기심이었다. 하나님을 먼저 발견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를 먼저 보고 계셨고, 그가 가까이 오자 부르셨다.
예화) 현준. 친구 따라서 교회. 호기심. USB 준다고. 아마도 전도 축제. 호기심. 교회를 처음. 교회 친구들도 처음. 환영. 한번 두번 예배 나오더니, 부서활동을 참여하더니. 지금은 신학생이 되어 있음. 전도사가 됨.
우리도 마찬가지. 호기심이 사명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사역의 자리들을 보자. 처음에는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어떤 분은 화장실이 그렇게 눈에 밟힌다고. 그래서 한번 화장실 청소를 하고, 어떤 분은 교회 창문이 그렇게 신경쓰여, 한번 닦고, 또 닦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교회 사역은 내 눈에만 보이는게 있다. 그러면 그 때 왜 내 눈에만 보이냐고 다른 사람은 안보이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이게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보자. 모세도 마찬가지였다. 광야에서 자연발화 일어나는거 완전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가서 신기하게 쳐다볼 내용의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것을 큰 광경이라 여기고 호기심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내 눈에 보이는, 내 마음에 주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부담감을 수용 해보라. 그것이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이 될 수 있다.
특별히 초신자의 경우, 신앙생활 처음하시는 분들의 경우에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봄. 교회에 필요한 어느 한 부분이, 내가 하면 될 것 같은 부분에 봉사를 함. 그것이 한번이 되고 두번이 되고, 계속해서 예배의 자리에,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에 나아옴. 그렇게 하나님이 그를 보고 계시면서, 새로운 소명으로, 사명으로 이끄시는 줄 믿으라. 하나님은 당신의 부르심에 우리가 반응하길 원하신다. 호기심에서 부르심으로 역사를 체험하길 바람.
소명이 사명으로 : 하나님이 함께 하심
소명이 사명으로 : 하나님이 함께 하심
소명이 사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라.
모세는 두려웠다. 내가 누구이기에. 자기 자신을 너무 잘 알았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자기 자신을 잘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그런데 너무 자기 자신을 잘 알면,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는 그 가능성을 제한해 버리기도 한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것. 나 혼자 하게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출애굽기 3:12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출 3:7, 개역개정)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고 계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