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기근과 가난의 원인과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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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1. 사마리아의 포위된 상황
오늘 본문의 배경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분단된 상황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솔로몬 왕이 죽은 이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하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의 왕은 솔로몬의 관료 중 하나였던 여로보암이 되었고, 남유다의 왕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남과 북으로 분단된 후 일정 시기가 지난 후에 북이스라엘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에서는 “엘리사”라고 하는 선지자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선지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많은 이적을 행한 능력있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왕도 등장합니다. 아마도 여호람 왕으로 추정되는 북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이 북이스라엘 왕이 다스리고 있을 때,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가 아람이라는 나라로부터 포위됩니다.
당시 많이 쓰이던 전략은 포위 작전입니다. 성은 점령하기 힘든 위치에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도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당시 성을 함락시킬 때 많이 쓰였던 방식은 성 주위를 모두 포위합니다.
그리고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를 막아버립니다.
그러면 성에 있는 식량이 떨어지고, 그 안에 백성들은 말라 죽어가는 것입니다.
아람 왕은 그러한 전략을 펼쳤고, 사마리아 성의 백성들은 모두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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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1세겔이 노동자의 4일 봉급입니다.
나귀 머리가 은 80세겔이면, 320일치 봉급, 거의 1년치 봉급 수준인 것입니다.
여러분 나귀 머리는 먹을 고기가 많이 붙어있는 부분도 아니죠.
심지어 나귀는 성경에서 부정하게 여겨 식용으로 사용되지도 않았던 가축입니다.
얼마나 극심한 기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죠.
여러분 비둘기 똥 1/4갑이 은 다섯 세겔이었습니다. 1/4갑은 대략 1.2리터라고 합니다.
비둘기 똥은 아마 연료로 쓰였을 수도 있고, 혹은 번역에 따라 콩 종류의 무언가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아주 보잘 것 없는 것 조차도 1.2리터에 은 다섯 세겔이었습니다. 거의 한달치 봉급 수준인거죠.
물자가 들어가지 못하니 물가가 폭등한 것입니다. 모두 굶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끔찍한 일이 일어납니다.
북이스라엘의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도와주세요!”
왕이 무슨 일이냐?하고 되묻자 여인에게 있었던 일을 말합니다.
28 또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오늘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그 여인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내놓아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그가 그의 아들을 숨겼나이다 하는지라
여인에게 한 사람이 오늘은 여인의 아들을 삶아 먹고, 내일은 자신들의 아들을 삶아 먹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아들을 삶아 먹고 다음 날이 되자 아들을 숨긴 것입니다.
여러분 배고픔에 이러한 비인륜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근이 주는 비극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이스라엘의 왕의 반응은 어떨까요?
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그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의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31 왕이 이르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30절 보면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었습니다.
옷을 찢는 것은 애통하거나, 슬퍼할 때 그랬고,
이것은 국가적인 큰 재난이나 슬픔을 표시하기 위해 입는 옷이었습니다.
이 장면만 보면 북이스라엘 왕은 어쩔 수 없는 가난함에 고통을 당하는 여인을 위해 애통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것은 가식입니다. 왜냐하면 31절 때문에 그렇습니다.
왕은 엘리사가 오늘 죽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엘리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왜 엘리사가 죽어야한다고 했을까요?
엘리사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말씀을 맡은 자이면서도, 엄청난 능력의 이적을 행하는 자이기도 했습니다.
왕은 이러한 국가적인 위기 속에서 엘리사는 나라를 위해서 이적을 행했어야 한다고 여기며, 엘리사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두 가지 위기 : 가난과 기근, 왕의 책임 전
여러분 오늘 본문은 포위된 사마리아의 끔찍한 참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난과 기근으로 인해 물가가 폭등하여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배고픔에 못이겨 자신의 아들을 함께 먹고, 그것을 속이는 일까지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에서 나타나는 큰 위기가 하나 더 있죠.
그것은 나라를 책임지는 왕의 책임 의식인 것이죠.
왕은 나라의 위기가 엘리사 때문이라고 책임 전가합니다.
당시 왕은 나라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를 이루어내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통치를 하나님의 뜻을 받아 이뤄내야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뜻대로 통치해야할 왕이, 자신의 슬픔과 애통을 거짓 연기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를 탓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선지자의 잘못으로 나라가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이죠.
북이스라엘은 상황적으로는 기근과 가난, 왕은 책임을 전가하는 무능력한 모습으로 큰 위기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왕의 무능력함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제가 봤을 때 이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오는 무능력함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사회에서 왕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를 맡죠. 그러나 정말 중요한 한 직분이 있는데 그것은 선지자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전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은 구약에서 하나님에게 직접적으로 환상이나 꿈, 혹은 음성 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지자의 탓으로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선지자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말씀의 직분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며,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이루어질 것이라는 불신입니다.
왕의 얘기를 듣고 엘리사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예언을 합니다.
첫번째 예언은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라는 예언입니다.
한 스아는 6-8키로 정도 되는 양입니다. 밀가루 6-8키로를 한 세겔로, 보리 12-16키로 정도를 한 세겔로 매매한다는 것은 사마리아의 기근이 해소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두번째 예언은 “왕의 한 장관이 밀가루와 보리가 매매되는 것을 볼 것이나, 그것을 먹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이 장관은 엘리사의 첫번째 예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냐고 의심했습니다. 그에 대한 결과는 먹지 못함이었습니다.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상황적으로 가난과 기근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말씀에 대한 불신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가난과 기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나, 영적으로는 가난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파 굶어죽지는 않고 있으나, 영적으로는 굶어서 기아인 상태입니다.
여러분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물질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순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고 더욱 물질에 집착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사회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소셜 미디어가 가상의 공간에서 형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계의 단절과 고립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영적인 기근입니다. 영적인 가난이죠.
영적인 기근의 원인은 물질이 부족해서, 관계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부족입니다.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영적 기근은 마치 북이스라엘의 왕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선지자를 홀대하고, 책임전가하는 그러한 태도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홀대하고, 모든 상황적 원인을 하나님을 향한 책임 전가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은 과연 물질이 부족해서일까요? 혹은 관계가 부족해서일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어떤 원인들도 영적인 기근의 원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적인 기근의 원인은 말씀에 대한 믿음의 부족입니다.
말씀을 불신하기 때문에 모든 기근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오늘 본문에서 왕은 말씀을 불신하고 책임 전가하고, 상황적으로 기근을 겪는 가운데 사무엘은 예언했습니다.
다시 먹을 것이 정상적인 가격에 매매될 것과, 그 왕의 장관은 그러한 상황을 보지만 먹지는 못할 것을요.
7장에서 그 예언이 모두 성취됩니다.
나병환자 네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음을 각오하고 아람 진영으로 갑니다.
그들은 굶어 죽거나, 아람 진영에 가서 죽거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아람 진영으로 가서 식량을 얻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아람 진영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아람 군대는 엄청난 군대 소리를 듣게 됩니다.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가 들리게 되니, 아람 군대는 이스라엘이 헷이라는 나라와 애굽 나라의 군대를 사서 자신들에게 공격하러 오는 것이라 착각합니다.
아람 군은 그대로 기세에 몰려 퇴각합니다.
나병환자들이 아람 진영으로 오니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들이 남기고 간 은과 금 의복과 말과 나귀만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이스라엘 진영에 전하자 정탐꾼을 보냈고 사실임을 확인한 이스라엘은 식량을 모두 옮깁니다. 엘리사의 첫번째 예언이 성취됩니다.
그리고 두번째 예언도 성취됩니다. 왕이 그 장관을 성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문을 지키던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장관을 밟아 죽입니다.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M6 : 우리에게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M6 : 우리에게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우리가 본문 중 한 가지 주목할만한 본문이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이 아람 진영의 상태를 확인한 후 어떤 말을 하는지 볼까요?
열왕기하 7:9 (NKRV)
9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아름다운 소식” 은 “베소라”라고 하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이 “베소라”라고 하는 단어는 번역하면 “좋은 소식”입니다. 이 단어가 신약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예상이 되십니까?
“good news” 복음 입니다.
여러분 나병환자들이 복음을 보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은 무엇이었습니까? 기근과 가난을 끝마치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람 군대가 모두 놓고간 물건과 재산들은 그들의 기근과 가난을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궁극적으로 그들이 전하게 되는 “아름다운 소식”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될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은 나병환자들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단순히 기근과 가난을 해소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다시 회복하시고, 엘리사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역사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음이죠.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대로 성취되고, 영적인 기근과 가난을 모두 회복시킬 것이라는 것. 이게 복음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말씀을 성취하시고, 우리 시대에 모든 영적 기근과 가난을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엘리사의 예언이 1차로는 북이스라엘을 향해갔지만, 2차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1차적으로는 그 말씀이 나병환자들을 통해 성취되지만, 2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됩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는 북이스라엘의 기근과 가난을 해소하지만, 2차적으로는 모든 인류의 영적인 기근과 가난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불신과 책임전가입니까?
불신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너무 잔인하고 극단적일지라도, 신하와 같은 죽음 뿐입니다.
신하는 기근과 가난의 해결을 맛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말씀에 대한 불신은 영적인 기근과 가난의 해결을 맛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적인 기근과 가난의 해결을 맛보지 못하고 죽어있는 상태 그대로 남는 것이 맞죠.
우리는 이미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이며, 불신은 그 죽어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는 복된 소식,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지고 그 복음의 효과를 누리게 됩니다.
그것은 생명이 살아나고, 모든 영적인 기근과 가난으로부터 해소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성취하시고, 그 복된 소식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