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노래, 결혼과 정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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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불리어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디즈니 영화 <겨울 왕국>의 ‘렛잇고’입니다.
이제는 가족과 사회가 원하는 ‘착한 소녀’로 살지 않기로 결단하는 주인공 엘사가 부른 노래입니다.
지금까지 억누르던 것을 ‘떨쳐 버리고’ 이제는 표현할 거야. 엘사에겐 ‘옳은 것도 그른 것도, 규범도 없다’. 내버려 둬, 내버려 둬
주인공 엘사는 그렇게 모든 세상을 얼려 버리고 자신도 혼자만의 얼음 성을 만들어 스스로 여왕이 되고 눈 괴물을 만들어 자신을 지키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은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상호의존적이면서도 가치 있는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마고 데이 삼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엘사의 동생 안나는 언니 엘사를 찾아옵니다.
안나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언니 엘사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왕국에 봄이 찾아옵니다.

본론

최초의 사람, 아담은 최고의 사랑의 노래를 결혼식에서 합니다.
아담은 하와를 보고 첫 눈에 반했습니다.
아담이 부른 최고의 사랑의 노래는 그를 행복한 감옥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결혼입니다.
보석으로 풀려날 수 없습니다. 출소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아담은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 최고의 노래를 부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는 최초의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중매와 주례이신 하나님 앞에서 한 몸을 이룹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객들로 참여합니다.
그들의 신방은 에덴 동산에 꾸며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기 전과 후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혼의 달콤한 순간은 거품처럼 급하게 사라지고 그들의 결혼은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유혹에 빠진 아내가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계기로 하나님과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모든 관계의 질서를 파괴한 아담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아담이 이렇게 변명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아담은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을 쏟았습니다.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하와를 모든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했습니다.
이는 사회적인 거리만이 아니라 영적인 거리 두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신체적 거리와 심리적인 거리도 생겨 성적인 수치심이 벌거벗은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수습하려 했으나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죽음의 옷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고대하며 살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실 둘째 아담을 고대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은 첫째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둘째 아담인 예수님과 둘째 하와인 교회의 관계와 연결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경우와는 달리 예수님께서 맞이한 신부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고 누더기에 가까웠습니다.
신부는 빼어난 미모를 가졌거나 건강한 체구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자산이나 인기나 명예가 신부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백성을 교회라는 신부로 택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 죄인이며 원수였던 초라한 인간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자신에게 근거한 사랑입니다.
호세아의 부인, 고멜과도 같은 존재가 우리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결혼 예물로 주신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참으셨습니다.
결국 그들이 돌아와 하나되고 사랑에 빠져 행복과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다시 파국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용했습니다.
자신의 성공과 출세와 건강을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용당하십니다.
인간의 추악한 모든 것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속으셨습니다.
결혼 이후에도 과거를 잊지 못하고 죄악에 빠진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결국 신부를 거룩하게 만드시고 역사를 끝내는 때에 예수님과 교회는 성대한 결혼식을 거행합니다.
예수님과 교회의 사랑 이야기를 오늘 아가서에서 하고 있습니다.
아가서는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최고의 노래입니다.
아가서는 왕인 솔로몬과 시골의 한 여인인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은 잠언을 3천개를 지은 최고의 지혜자입니다.
잠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이 세상, 곧 성전의 뜰에서 살아가는 지혜자라고 가르칩니다.
솔로몬은 또한 전도서를 지었습니다.
전도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든 것은 헛되다는 진리를 성전에서 배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1005편의 노래를 지었습니다.
열왕기상 4:32 NKRV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솔로몬은 이 노래를 통하여 하나님의 경외하는 마지막 단계는 예배, 곧 완전한 사랑임을 아가서를 통해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솔로몬의 노래는 성경에 6개만 기록되었습니다.
나머지 999개는 사라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이것은 아가서를 위한 추론입니다.
솔로몬이 지은 노래들은 대부분 결혼을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40년간 천명의 여인을 맞이했습니다.
한 달에 평균 두 번 정도의 결혼을 치렀습니다.
솔로몬은 매번 결혼식에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신부에게 선사했습니다.
그러나 999명의 신부는 하나님의 경외하지 않는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위한 999편의 노래는 사라지고 솔로몬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기뻐한 여인인 술람미 여인을 위한 노래는 남았습니다.
천 명의 영인 중에서 그녀를 위한 노래만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고 성경에 수록된 것입니다.
아가서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신데렐라의 주인공 엘라는 귀족의 딸이지만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통해 얻은 새 엄마와 언니들로 인해 먼지를 뒤집어 쓰고 일하는 재투성이가 되어 신데렐라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신데렐라는 어느날 왕자를 만나게 되고 급하게 헤어져서 그리움에 잠기다가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왕이었고 술람미 여인은 왕이 통치하는 땅에서 포도원을 맡아 일하는 농부의 딸이었습니다. 어느날 왕은 휴가차 편한 차림으로 그 포도원에 가서 며칠 머물렀습니다. 농사도 짓고 자연도 관하고 일하는 사람들도 살폈습니다. 그러던 중 술람미 여인을 발견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여인의 삶은 고단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형제들의 땅에서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땀을 많이 흘립니다. 그 집의 하인처럼 일하고 일하여 얼굴과 피부가 검게 그을릴 정도로 지친 삶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남자는 나흘이 지나자 청혼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그 남자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그 남자는 다음 날 떠나야만 했습니다. 여인은 몹시 불안해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남자가 다시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솔로몬 왕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옵니다. 자세히 보니 솔로몬 왕은 자신에게 청혼한 그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왕은 이미 60명의 아내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61번째였습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은 시골을 떠나 왕을 따라갑니다. 성대한 결혼식이 열리고 축하연이 펼쳐졌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주변을 살피니 모두 얼굴이 희고 아름다운 여인들로 가득했습니다. 여인은 열등감이 빠져 시골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왕은 자기와 함께 왕궁에서 백성을 섬기자고 합니다.
아가서는 사랑의 시작과 위기와 성숙과 완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치 태초에 이루어진 아담과 하와의 사랑 이야기와 사랑의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과 택하심을 받은 교회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가서는 가장 선정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성적인 묘사들이 가장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성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부부 안에서 행복과 기쁨과 연합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의 끈입니다.
성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타락 이후 성은 수치의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성은 수치스럽지만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면 성은 아름답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간주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제물로 간주됩니다.
성적인 하나 됨은 예수님과 교회의 신비로운 하나 됨을 설명하는 중요한 은유입니다.
그래서 아가서는 성경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가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된 성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솔로몬과 비교하셨습니다.
특별히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헤 찾아온 시바 여왕을 언급하며 예수님 자신은 솔로몬보다 크신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2:42).
사도 바울은 아가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남편과 아내가 하나의 몸을 이룬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되는 큰 비밀과 같다고 알려줍니다.
에베소서 5:31–32 NKRV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성경이 아담과 하와라는 부부 이야기로 시작해서 예수님과 교회의 신랑, 신부 이야기로 끝납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부부의 사랑과 연결됩니다.
부부의 사랑이야기를 최고의 노래라고 성경은 노래합니다.

결론

내버려둬, 내버려둬, 나 혼자 나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내버려둬
우리는 이것이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노래는 가장 외롭고 슬픈 노래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정체성을 통해, 나는 아무 것도 이루거나 획득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세례를 받아 더욱 위대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됩니다.
내가 이룬 업적이나 행함과 노력이 아닌 오직 그리스도의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장 슬프지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교회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사랑을 결단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일곱 마디는 우리를 위한 가장 슬프지만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①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②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③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④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46; 막15:34).
⑤ "내가 목마르다"(요19:28).
⑥ "다 이루었다"(요19:30).
⑦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예수님께서는 솔로몬이 잠시 후에 술람미 여인을 찾아오는 것처럼 사흘 뒤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이처럼 우리는 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대상을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이든 아니면 하나님을 대체한 다른 것이든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예배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든지 다른 것을 예배합니다.
세례는 예수님과 나 사이에 정혼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혼은 결혼과 동일한 것입니다.
다만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정혼 후에 정한 결혼의 시기에 부부로서 한 집에서 연합하여 함께 합니다.
부부의 연은 이 땅위에서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영원합니다.
부부 사이에 다른 누구도 끼어 들 수 없듯이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세례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따르기로 서약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부르시는 노래에 여러분은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나는 어린 양을 따르리,
나는 어린양을 따르리 온 힘 다해 온 맘 다해 그의 명령에 순종하리 나는 어린양을 따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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