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본)하나님을 찬양한 레아
서론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야곱은 그 두 여인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을 것이다. 레아는 언니였지만 시력이 약한 흠이 있었다. 라헬은 야곱이 처음 만난 여인이었기에 그녀의 인상이 더 깊게 남았을 것이다. 또한 그는 곱고도 아름다웠다. 라헬에게 “아름답다”라는 예파트(ךֶיפַת) 단어가 두 번 사용되었는데, 첫 번은 형체(몸매)가 아름다웠으며(예파트 토아르, ךֶיפַת־תֹּאַר), 두 번째는 용모가 아름다웠다(예파트 마레에, ךֶיפַת־מַךֶראֶה). 본문에 이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함으로써 그녀의 아리따움이 강조되었다. 그리하여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게 되었으며(18절 상), 라헬을 위해 7년 간 노동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결혼 선물이 필요하다. 신부에게 선물을 줄 뿐만 아니라 신부의 부모에게도 딸을 위한 보상금을 주어야 한다. 성경은 그 보상금의 최고 한도를 50세겔로 규정한다(신 22:29). 야곱은 현재 이만 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를 위해 부모에게 연락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그래서 그 지참금 대신 노동을 제공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지참금 대신 칠 년을 노동한다는 것은 지나친 대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성급하게 이것을 제안한 것은 라헬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행여나 외삼촌이 쉽게 허락하지 않을까 겁이 나서 넉넉하게 불렀을 것이다. 그녀를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 리브가가 외삼촌 집에 “몇 날”을 가 있으라고 말했는데(창 27:44), 야곱은 라헬을 위해 7년이라는 세월을 여기에서 보낼 작정이다. 그것은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보다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앞서 있다는 증거이다.
라반은 기꺼이 이 제안에 동의한다. 그러면서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한다(19절). 굉장히 선심을 쓰는 듯한 말이다. 라반의 욕심이 엿보인다. 여기에서 라반이 “라헬”이라는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 단지 “그녀를”(오타, אֹתָהּ)이라고 말한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후에 라헬이 아닌 레아를 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야곱이 라헬을 위해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20절). 사랑이 야곱에게서 세월을 빼앗아 간 것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기한이 찼다. 야곱이 그날을 수도 없이 세면서 지냈을 것이다. 야곱이 라반에게 자기 아내(이쉬티, אִשְׁתִּי, “나의 아내”)를 달라고 하였다(21절). 야곱은 마음이 급하다. 거창한 잔치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당장 그녀에게 들어가겠다고 말한다. 라반도 약속을 어길 수가 없다. 그러나 야곱의 성급함을 달랜다. 그리고 사람을 모아 잔치를 베풀었다(22절). 일반적으로 잔치는 신부집과 신랑집을 오가며 7일 동안 진행된다. 이번의 경우에는 신랑 쪽의 가족이 없기 때문에 신부측 이웃을 초대하여 잔치를 벌이는 정도로 단순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어두워졌다. 야곱은 마련된 신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라반은 레아를 신방에 넣었다(23절). 라반은 원래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야곱이 좋아하는 라헬을 계속 담보로 잡고 있으면서 더 큰 유익을 얻을 심산이었을 것이다. 라반은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다(24절). 부유한 가정에서 결혼하는 딸에게 여종을 딸려 보내는 것이 관습이었다. 시녀는 신부가 가지고 가는 지참금에 해당된다. 야곱은 신방에 들어와 있는 여인이 레아라는 사실을 몰랐다. 신부는 얼굴을 베일로 가렸을 것이며, 또 어두워서 얼굴을 잘 분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이 조금이라도 조심성이 있었다면 쉽게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침이 밝고 나서야 야곱은 그녀가 레아라는 사실을 알았다(25절 상). “보니 레아라”는 말을 히브리어는 더 실감나게 표현한다. 힌네 히 레아(הִנֵּה־הִוא לֵאָה), 이를 번역하면 ‘보라, 그 여자는 레아였다’이다. 이 세 단어는 야곱의 충격을 잘 표현한다. 야곱이 레아를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야곱은 급히 라반에게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따졌다. “어찌하여 이같이”의 마-조트(מַה־זֹּאת)는 황당한 일을 당한 자의 표현이다. 또 라마 리미타니(לָמָּה רִמִּיתָנִי), 즉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습니까?”라는 표현도 속임을 당한 억울한 자의 하소연이 담겨있다. “속이다”의 라마(רָמָה)는 ‘배반하다’의 의미가 강하다. 칠 년 동안 열심히 일한 자신을 배신한 것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속인 자였던 야곱이 이제 속임을 당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야곱은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대가를 받은 것이 된다. 따라서 야곱이 억울함을 하소연 할 때에 자신도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하였다.
라반은 교묘하게 말을 둘러댄다.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26절). 이것은 형 에서가 장자의 축복을 우선적으로 받아야 하는 원리와 일치한다. 그러나 고대 습관에서는 부모는 차자에게 장자의 상속을 물려줄 권한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야곱이 에서를 제치고 축복을 받지 않았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마음만 먹으면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시집보낼 권한이 있다. 만약 그것이 진짜 이유였다면 라반은 칠 년 전에 야곱이 라헬을 달라고 했을 때에 이 사실을 말해주어야만 하였다. 라반이 둘러대는 말은 한갓 구실에 불과하다. 라반은 처음부터 야곱이 라헬에게 반한 것을 눈치 채었다. 라반은 욕심이 많은 자이므로 라헬을 통하여 더 큰 유익을 얻고자 함이었다
부모가 첫째를 두고 둘째를 먼저 줄 수 없다는 변명에 대하여 야곱이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다. 그러나 완전히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라반은 라헬도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런데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라헬을 얻기 위해 칠 일을 기다리라는 것과, 둘째, 또 다른 칠 년을 섬기라는 것이다(27절). 칠 일을 채운다는 것은 레아를 정식 아내로 맞이하라는 것이다. 당시 결혼식은 칠 일 동안 진행된다(삿 14:10–12 참조). 이 칠 일 간의 결혼식을 완성함으로써 레아는 야곱의 아내로 완전히 인정되는 것이다. 라반은 자기 딸이 몸만 버리고 그의 정식 아내가 되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므로 레아가 법적으로 야곱의 아내 됨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조건은 라반의 욕심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또 다른 칠 년 동안 야곱을 공짜로 부려먹으려 하는 것이다. 야곱은 라반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는 더한 것도 받아들여야 할 판이었다
야곱이 라반의 제안대로 칠 일을 채웠다(28절). 결혼 의식을 제대로 갖춤으로써 레아를 정식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의미가 된다. 레아의 결혼식 기간이 끝난 후에 라반이 딸 라헬도 야곱에게 주었다. 라반이 또 라헬에게 여종 빌하를 주어 시중들게 하였다(29절). 야곱이 라헬에게 들어가 아내로 맞아들였다(30절). 물론 야곱이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한 것은 당연하였다. 야곱은 라헬을 위해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다. 그러나 첫 칠 년 간 즐겁게 일한 것보다 두 번째 기간은 불만스럽게 세월을 보내었을 것이다.
야곱이 외삼촌 집에서 머슴살이 하며 지낸 세월이 전혀 무익하지만 않았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은 야곱에게 자식의 복을 주셨다. 야곱이 많은 자식을 가질 수 있었던 데에는 두 여인의 경쟁심리가 작용하였다. 야곱의 두 아내는 여종들까지 동원해 가면서 아들 낳기를 경쟁하였다. 그러나 결국 자식들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었다.
본문 31절은 “여호와께서 보시고”(와야르 여호와, וַיַּךֶרא ךֶיהוָה)로 시작한다. 레아가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함을 여호와께서 보셨다. 부부관계의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시기 시작하는 신호이다. “사랑받지 못하는”의 사네(שָׂנֵא)의 의미는 ‘미워하다, 증오하다’이다. 야곱이 레아를 단순하게 사랑하지 않은 것에 더하여 아예 미워했다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사랑하는 라헬의 자리에 레아가 차고 들어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레아로서는 억울하다. 자신은 정당하게 한 주간의 결혼예식을 다 치러서 야곱의 정식 아내가 되었다. 단지 아버지의 욕심 때문에 남편 야곱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레아의 억울함을 자식을 줌으로써 보상하셨다.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였다(32). 르우벤(רְאוּבֵן)은 ‘보다’(라아, רָאָה)라는 단어와 ‘아들’(벤, בֵּן)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아들을 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남편 야곱을 향한 울부짖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름에는 ‘보시오, 당신의 아들이 아닙니까? 그래도 나를 외면하시겠습니까?’라는 하소연이 담겨 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라고 말을 덧붙인다. “괴로움”의 아니(עֳנִי)는 ‘고통, 비참함’을 뜻한다. 하나님이 자신의 고통을 돌보아주셨음을 고백한 것이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가 당하는 아픔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레아의 표현은 사래의 학대를 피해 도망하던 하갈에게 사막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을 들었음이라”(16:11)고 말한 것과 비교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이름을 지을 때에 아버지가 주된 역할을 하지만, 야곱의 가정에서는 모두 다 어머니가 자기의 염원을 담아 이름을 붙이고 있다.
그러나 레아는 이제 마음을 고쳐먹고 있다. 남편을 향한 애처로운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네 번째 아들의 이름에서 나타난다.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고 있다. 다시는 남편에게 매달리지 않고 자기를 복 주신 여호와께 감사의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름을 “유다”라고 하였다. 유다(예후다, ךֶיהוּדָה)는 ‘찬송하다’라는 의미인 야다(יָדָה)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레아는 이제 남편에게 집착해 있던 자신을 풀고 관심을 여호와께로 돌리는 것이다. 본문은 이제 레아의 출산이 멈추었다고 말한다(35절 하). 이것은 그녀가 불임이 되었는지 아니면 남편의 발걸음이 끊겨서 그런지 잘 알 수 없다. 나중에 레아가 임신한 것을 보면 후자의 가능성이 크다.
라헬은 시기심이 많은 여자였다.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고도 아이들을 낳는 언니를 보고 시기하였다(30:1). “시기하다”의 카나(קָנָא)는 ‘질투하다’의 의미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떼를 쓴다.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1절 하). 마치 자신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야곱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 레아가 아이를 낳은 것을 보면 문제는 라헬에게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렇게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은 언니를 질투해서이다. 이 라헬의 말이 씨앗이 되었는지, 나중에 그는 자식을 낳다가 죽게된다(35:16–19 참조).
야곱은 라헬에게 화를 내었다(2절). 함부로 죽겠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경솔하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므로 그가 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라헬을 달랜다.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2절). 임신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둘러댄다. 그리고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여태까지 야곱은 순리가 아닌 일도 자신의 힘으로 빼앗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아이를 낳는 일만큼은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애써 책임을 라헬로부터 비켜나가게 애를 쓰면서 사랑하는 그녀를 위로하려고 노력한다.
라헬이 자기의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고 남편에게 요구한다. “들어가라(보우, בּוֹא)”는 말은 ‘동침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여 주인이 아이가 없으면 자기의 종을 남편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하고, 그 아이를 자기의 아들로 삼는 당시의 풍습을 반영한 것이다. 사라가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준 것도 같은 풍습에 의한 것이었다. 라헬은 자기의 여종이 낳는 아들을 자기의 무릎에 두겠다고 말한다(3절). 자신이 아이를 가지는 것을 체념하면서, 종을 통해 양자라도 가지겠다고 결심한다.
라헬은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었다(4절). 야곱이 라헬의 요구를 수용하여 그에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빌하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5절). 라헬이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라고 하고,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다(6절). “억울함을 풀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딘(דִּין)은 ‘재판하다, 탄원하다’이다. 재판정에서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단(דָּן)은 딘에서 따온 말로서 ‘그가 심판하시다’의 뜻을 가졌다. 사실 억울함을 호소할 사람은 레아였다. 라헬은 아들 외에 모든 것을 가졌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아들을 대신하지 못하였다. 그만큼 고대 사회에게서 아이를 가지는 것이 여자로서 중요한 의무였다.
이로써 두 자매 간의 자식 낳기 경쟁은 일단 멈추었다. 하나님께서는 레아에게 아들 여섯을 주심으로 그의 서러움을 먼저 달래어 주셨다. 그리고 나중에 라헬의 치욕도 씻어주셨다. 이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은 위로하시고, 그들의 원한을 들어주시는 분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초점은 야곱에게로 모아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약속의 줄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두 아내의 경쟁 속에서 야곱에게 많은 아들을 얻는 복을 주셨다. 그는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첩으로부터 열한 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얻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리라는 자녀의 약속을 야곱에게서부터 이루기 시작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