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7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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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26–35 (NKRV)
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그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으니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29 어떤 사람이 솔로몬 왕에게 아뢰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이르되 너는 가서 그를 치라
30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아뢰어 이르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31 왕이 이르되 그의 말과 같이 하여 그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32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33 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그를 쳐죽이매 그가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35 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사령관으로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오늘 본문에 다윗이 죽으며 솔로몬에게 여러 유언을 하였다. 그중에 하나가 자신의 군대 장관이었던 요압을 제거하라는 유언이다. 이와같이 다윗이 요압을 제거할 것을 유언한 이유는 두가지이다. 먼저는 요압의 충성이 결국 충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충성은 끝까지 순종 할때만 인정되는 것이다.
다윗에게 있어 요압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요압은 다윗을 위해 앞장서서 예루살렘을 정복한 능력이 뛰어난 군대 장관이었고, 다윗의 왕권 통치에 변함없는 충성을 바친 사람이었다. 또한 요압은 다윗에게 재앙을 가져다준 인구 조사에 대하여 반대할 만큼 때때로 영적인 통찰역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충성은 끝까지 가지 못하였다. 과거 다윗은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압살롬에 대해 살려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였지만 요압은 충분히 압살롬을 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판단으로 압살롬을 죽였다. 그리고 죄없는 사람을 죽이기 까지 하였다. 다윗에 대한 요압의 충성은 끝까지가 아니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간만 못하니라”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우리가 무엇을 할 때 꾸준히 끝까지 해야 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성실이라는 말이 있다. 성실의 사전적 의미는 “정성스럽고 참되다” 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성실한 사람은 성격이나 행동이 바르기에(정직) 어떤 일을 하면서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을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도 성실한 사람을 인정해 준다. 그런데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실함이다. 다시말해 어느한순간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은 꾸준해야 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믿음이 좋다는 것을 여러가지로 설명 할 수 있겠지만 그중에 하나가 어떤 일이 있어도 크게 요동하지 않는 사람. 마치 큰 배와 같은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어떤 일을 만난다고 쉽게 좌절하고 쉽게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잠잠히 주님의 뜻을 구하며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여러분들 모두가 이러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런 믿음은 단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느한순간에 뽕 하니 생기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느 한순간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주신다. 성경을 읽다 깨닫거나 기도하다 깨닫거나 말씀을 듣다 깨닫거나 찬양을 하며 깨닫거나 여러가지 채널로 하나님이 우리를 깨닫게 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달았다고 이러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믿음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거나 또 기도를 통해 설교를 통해 깨달은 것은 말 그대로 깨달은 것이지, 내가 그것을 깨달았다고 내가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다. 내가 깨달은 대로 다시말해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믿음은 단번에 생기지 않는다. 절대 어느 한번의 체험으로 생기지 않는다.
나의 삶속에서 수없이 깨지고 넘어지는 그 과정속에서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 싸움가운데 버겁게, 힘들게 뗀 한 걸음 걸음이 모이고 모였을 때, 나도모르게 생기는 것이 상황과 환경에 요동하지 않는 믿음이다. 그러니깐 우리는 매순간 말씀을 살아내고자 하는 그 싸움을 멈춰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말은 절대 넘어지면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넘어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나라는 것이다. 힘들면 힘들어해라 그리고 기도하며 때로는 믿음의 동역자들의 도움도 받고, 또 내가 도움을 주면서 그렇게 신앙의 여정을 끝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다. 만만치 않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신앙의 여정을 완주하고자 하는 그 바램보다 더 기대하며 기다리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넉넉히 끝까지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요동하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은 것에서부터 주님의 일하심이 보이기 시작하면 신앙생활이 이제 재밌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이벤트가 아니다. 어느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순간에만 발휘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삶이다. 신앙생활이라고 하지 않는가? 여러분의 생활 속에 신앙이 있길 바란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길 바란다. 진심으로 정직하게 맡겨진 사명을 향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길 바란다.
그러기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해서 교만하면 안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권면한다. 고린도전서 10:12
고린도전서 10:12 (NKRV)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리고 이처럼 끝까지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처음이자 마지막은 “주변 정리”이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요압을 처리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 두번째 이유는 그가 자신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유익이 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니 유익이 안되는 것뿐만 아니라 솔로몬에게 해가 될 것을 알았기때문이다. 다윗은 요압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앞에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요압의 믿음을 믿을 수 없었기에 지금 당장은 솔론에게 유익이 될지몰라도 마지막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그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요압을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 곁에 두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죽으면서까지 요압을 숙청 할 것을 남긴 것이다.
이뿐 아니라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나서 처음 하는 것이 주변 정리이다.
정리의 사전적 의미는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함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잡음
다시말해서 있어야 할 곳에 놓는 것이 정리다. 버려야 할 것들은 버리고 옮겨야 할 것들은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다들 정리를 해봐서 알겠지만 정리의 핵심은 버리는 것이다. 버리지 않으면서 정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정리의 핵심은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끝까지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잘 버리는 것이다. 신앙생활하는데 있어서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것이다. 신앙생활하는데 있어서 불편한 것들을 버리는 것이다. 내가 신앙생활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 여러분 잘 버려야 한다. 오늘 동산모임 때 내가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 나누는 시간이 갖길 바란다.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미움과 분노, 증오, 독선(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것), 이기심, 불평과 불만, 부정적인 생각, 죄의식(자신을 비난하거나 자책하는 것), 두려움, 자기중심성 등등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버려야 한다.
바울은 신앙생활하는데 특별히 주님을 따라가는데 있어서 세상이 가치 있다고 여겼던 그 모든 학벌과 지위 부와 같은 세상사람들이 탐내고 원하는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겼다고 고백하였다.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지식 이외에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바울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주님만을 따라갔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버려야 하는 것인가? 동산모임을 통해 정말 잘 나누길 바란다.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버려야 한다.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직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물건을 잘 못 버린다. 옷이던 물건이던 잘 버리지 못한다. 이유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것이 필요가 있을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아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인이란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시말해 예수님을 닮길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떻게 살아가셨는지 어떤 방법으로 그 길을 가셨는지 자세히 보고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불필요 한 것은 버려야 한다. 아까워하지 말고 미련 갔지 말고 버려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방해가 된다면 그것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방해가 됨에도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정직히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그것을 더 사랑하고 있기 때문임을 인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