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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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내진 설계는?
내 마음의 내진 설계는?
최근 대만에서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이 지진은 25년 만에 발생한 7.4도의 강진으로 많은 피해를 일으켰습니다. 많은 빌딩, 다리, 건물이 무너졌는데, 그 와중에 ‘타이페이 101’이라는 초고층 건물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소식이 해외 여러 방송국과 신문사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초고등 빌딩은 지진을 버틸 수 있는 특수한 설계가 내장되어 있는 건물로 지진이 많은 대만에서 여러차례 지진을 이겨낸 대만 내진 설계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입니다.
지진과 같이 외부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그리고 강력한 자극을 건축물이 직면하게 되면 대체로 무너지거나 건물에 균열이 생깁니다. 그런데 ‘타이페이 101’과 같이 외부의 충격을 고려하여 초기부터 건축물의 기반을 설계한다면 7.4도의 강진이 일어나도 쉽게 무너지거나 건물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균열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사람도 건물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외부에는 수많은 자극들이 존재합니다. 나에게 유익한 자극도 있고, 세상 무익한 자극들도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 자극들만 있다면 아무 상관 없습니다. 지진을 만난 건물과 같이, 나에게 무익한 혹은 해로운 어떤 상황과 환경을 만나게 되면 각자 마음의 내진 설계에 따라서 살짝 흔들리는듯 하다가 아무렇지 않은듯 그것을 넘기기도 하고 -마치 타이페이 101-처럼- 혹은 삶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서 짧게 혹은 길게 재기가 불가할 정도로 주저앉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도 내진설계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에게 어떤 특수한 장치를 내진설계의 핵심으로 둘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 튼튼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세상에서는 여러가지를 제시합니다. 세상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궁금하면 한번 찾아 보세요. 일단 저는 여기에 관심이 없다보니 여러분에 할 말이 없기도 합니다. 대신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교(개신교)에서 소개할 수 있는 특수한 내진 설계 방법의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나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나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는 믿음에 대하여 정말 어려운 말을 합니다. 히브리서 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1절과 2절의 말씀을 보았을 때,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되나요? 마치 믿음이란 우리의 어떤 소망인것 같고 우리는 그것을 소망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어서 1절의 말씀은 믿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니 그러한 해석은 더 적절해 보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대체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에 이 해석에 신빙성이 더해지는 듯합니다. 만약 이 해석대로 말씀을 이해한다면, 2절의 선진들-우리보다 앞서 믿음의 길을 걸었던 이들-이 얻었다는 증거는 그들의 소망의 이루어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이렇게 이해하면 이후에 읽을 말씀 속의 믿음에 대한 설명들과 어긋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히11:3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것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복잡한 논증을 제시할 수도 있지만 저는 이런 질문을 통해 히브리서가 설명하는 믿음이 우리로부터 시작되는 보이지 않는 희망이나 소망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에 앞서 제가 이런 주장하는 하는 것은 오직 기독교만이 천지를 만든 주체가 분명히 존재하며, 그 창조주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우주와 세상을 탐구하며 그 안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관찰하고 탐구합니다. 세상이 왜 창조 되었는지는 그리고 누가 창조했는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질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탐구와 관찰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질문들은 믿음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저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창세기 1:1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의 말씀을 믿습니다.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을 믿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렇게 질문하겠습니다.
앞서 설명했던 믿음, 곧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하는 나의 소망과 희망을 통해 3절의 말씀과 같이 ‘이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이 나의 소망과 희망을 들어주시는 누군가를 향한 기대라면, 이러한 믿음에 대해 오늘 말씀의 3절은 그거 아니야 라고 말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선조들이 얻은 증거
믿음으로 선조들이 얻은 증거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말씀을 조금 더 살펴 봅시다. 4-5절입니다. 1절을 새번역 성경에서 찾아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성서가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면, 이 믿음이 말하는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라는 것을 우리도 얻게 될 것 같습니다.
4절과 5절에는 믿음이 말하는 바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먼저는 아벨입니다. 아벨은 창세기 4장에 등장하는 아담의 두 명의 자녀 중 한명입니다. 그의 형은 가인이었는데, 그들이 자신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것을 시기하던 형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인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이유로 아벨의 제사만 받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창세기와 오늘 히비리서를 통해 추측해 볼 때, 하나님께 올려드릴 제물을 준비할 때, 하나님을 향한 가인과 아벨의 중심이 서로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4절의 말씀과 같이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예물과 제사를 보시고,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아벨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벨 안에 있던 믿음은 그에게 한가지 소망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특별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더 나은 제사를 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는 형 가인의 시기로 인하여 억울하게 죽었으나, 하나님은 아벨의 중심을 보시고 그를 의로운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벨의 제사를 보며 절대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아벨이 뭔가 눈에 보이는 어떤 특별한 행위를 했다라는 생각입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아벨의 믿음은 하나님을 소망하게 하였고 그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내어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벨이 하나님께 드렸던 것은 눈에 보이는 제사와 예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 자기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셨고 그렇기에 아벨에게 증거를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5절의 에녹은 어떻습니까? 아벨과 비슷합니다. 에녹은 일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죽지 않고 하나님께 불림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믿을지 말지는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에녹의 이야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에게 있던 믿음으로 인한 소망의 확신이 무엇인가 입니다. 추측해 보건대 에녹도 하나님을 향한 특별한 확신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말하며 또한 옮겨지기 전에 그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다고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다!? 생각하기에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던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을 때도 하나님이 기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믿음으로 믿음에
믿음으로 믿음에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 방법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인 성경은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믿음은 정말 중요합니다. 참된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로 회복되는 것이 이 세상이 창조될 당시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고 또 사람을 통해 받으시고자 했던 처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1절의 문제,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결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믿음으로 살았던 아벨과 에녹의 이야기를 하며 그들이 그 실상으로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 그 실상이 하나님의 존재 그 자체 혹은 하나님을 향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함이라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아벨과 에녹의 삶을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 밖에는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들이 받은 상은 무엇일까요?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지만 아벨은 하나님께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고 에녹은 하나님께 들려 올려졌습니다.
우리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처음은 단순하지만 로마서의 말씀과 같이 내 안에서 시작된 내 중심의 믿음에서 하나님께서 더하시는 믿음에 이르게 되면, 믿음의 차원이 복잡해지고 깊어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깊은 차원에 이르게 되면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의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인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오늘 우리에게 믿음 안에서 믿음으로 산 하나님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우리보다 앞 서 믿음의 길을 걸었던 선조들에게 믿음의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할 것이 많았기에 때론 그것들을 지키다가 믿음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참된 믿음의 시작점이 될 기준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로마서 1:17 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은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를 줄여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 바로 복된 소식입니다. 이 복음을 우리가 받아 들일 때, 하나님의 의로움, 선한 역사가 나타나 나로부터 시작된 믿음을 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깊이 있는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며 쉬지 않으시는 성령님도 만나게 됩니다. 참된 믿음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일하시는 삼위의 하나님을 바라게 합니다. 또한 믿음 안에서 삼위의 하나님 더불어 사는 이는 반드시 그 증거를 얻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것이 믿음의 전부가 아닌 일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믿음은 더 깊고 더 넓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이 믿음에 대한 신앙고백을 매번 예배 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신경’ 입니다.
다음 주부터 3주 간 사도신경에 대해서 함께 배워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대체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믿는 바를 몰라서 이단에 현혹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무엇을 믿고 있고 내 믿음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 지를 분명히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믿음 생활은 끊임 없는 선택입니다. 예전에 교회들은 강제해서라도 예배나 기도회에 참석시키려고 엄청 노력했습니다. 만약 그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이 성장함에 도움이 된다면 아마 저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도 그렇게는 안하세요.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라고 고백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까지 내려오셔서 우리 마음 가운데 울림을 주십니다. 예배를 갔으면 기도를 했으면 말씀을 읽었으면 하는 울림들을 끊임없이 주십니다. 강제하지 않으세요. 대신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싸움에서 하나님을 선택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더불어 4월 한달 간 진행되는 사도신경 특강도 열심히 준비할테니 여러분이 하나님 알기에 더욱 욕심을 내고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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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한달 간 사도신경 특강이 진행됩니다. 많은 참석을 부탁합니다.
교회에서 매월 셋째주 금요일 저녁 9시에 전교인 능력기도회가 있습니다. 4월은 19일에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차량운행을 할테니 한 달에 한번이라도 여건이 된다면 함께 뜨겁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서희천 집사님께서 과자를 많이 후원해주셨습니다. 그것을 지금 나눠드립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지금 준비된 과자를 나눠주세요
이후 학생회 주관으로 1분기 설문조사를 실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