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feat.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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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사랑합니다! 드림인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한다. 여러분은 힘들 때 누구에게 찾아가서 의지하는가? 보통은 친구들에게 많이 의지하려고 한다. 특히 연애 상담을 친구에게 많이 물어본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됐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둥 남자친구랑 싸웠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둥 어른들에게 물어보기 보단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또 살면서 힘들고 어려움, 여러 갈등이나 고민이 생기면 내가 믿을만한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를 한다. 나의 고민을 아무리 털어놓아도 100이면 100, 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결되는 일이 많지 않다. 나의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오늘 말씀을 보게되면 시편을 쓴 기자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편의 119편을 살펴보면 글을 쓴 당시에 상황이 몹시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을 싫어하고 못살게 굴고, 나쁜 사람들로부터 마음이 아주 괴롭다고 고백하고 있다. 어느 정도로 힘들게 했냐면 아무런 이유없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것 만큼 어처구니 없고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없는 억울한 상황이 어딨겠는가? 더군다나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온갖 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살던 곳에서 쫒아냈다는 것이다. 차라리 자신이 뭔가 잘못을 해서 미워하는 것이라면 사과하면 되는 일인데 어찌할 방법이 없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는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들은 이러한 삶을 살고 있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왜 그랬는지 물어보면 대답은 항상 이렇다. “장난이었다.”, “이렇게 싫어하는 줄 몰랐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중학생 때 한 친구가 왕따를 시키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왜 그 친구를 왕따시키려고 하냐고 물어보니까 이유는 다른 것이 없었다. 그냥 싫은 것이다. 그냥 보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이것만큼 비인격적이고 악랄한게 어디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왕따를 당하는 친구들 대신해서 학폭위에 신고했다. 내가 중학생 때 학교폭력을 누군가 당하면 가해자가 전학을 가지 않고 피해자가 전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또 뉴스에서 보게되면 왕따를 당하고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친구의 기사를 보게 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어떤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려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실패해서 절뚝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떨어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당장의 해결의 방법이 이것 밖에 없는 그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다.
학교 폭력 피해자도, 오늘 읽은 시편 기자도 바라는 것은 한 가지이다. 그것은 바로 ‘구원’이다.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시편 기자는 그 구원의 근거를 어디서 찾는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언제 사람에게 실망하는가? 말 그대로 누군가에게 기대했던대로 되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는 것이다. 또 언제 가장 많이 사람에게 실망하는가? 사람이 변했다고 느꼈을 때 실망한다. 더 좋은 모습이 아니라 좋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될 때이다. ‘원래는 안 이랬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또 다른 모습에 놀라면서 실망하게 된다. 어쩌면 그 사람은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것인데, 상대방의 이상적으로 상상한 모습을 좋아했기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된다. 그렇다. 세상은 한결같은 것이 없다. 사람들의 생각, 가치관, 아름다움의 기준, 선호하는 직업 등등 세상의 사람들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옆에 사람을 보라. 그 친구와 여러분과 가치관이 같은가? 다들 최고로 여기는 것들이 각자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사람들 떠나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성경 말씀’이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을 악한 세상과 악한 사람들로부터 믿는 자들을 어떻게 보호하시고, 약속을 어떻게 지키시며, 주님이 지으신 세상의 모든 자연만물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명확하게 나와있다. 그러나 성경을 읽지 않으면 이 모든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누가 다스리며 주관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세상을 누가 이끌고 가시는가? 하나님이 모든 상황과 환경을 통치하신다. 또 하나님이 원하시면 자기 자녀를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교회에서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한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폭풍과 같은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가장 아끼던 아들 누구인가? 요셉이 아버지로부터 모든 사랑을 독차지했다. 형들의 질투와 시기로 요셉은 형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서 미디안 족속의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리게 되었다. 요셉이 어떤 잘못을 해서 그런 것일까? 그저 꿈에서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꿨다는 이야기한 것 말고는 요셉은 어떠한 잘못을 한 적이 없다. 그 꿈을 이야기한 것이 노예로 팔릴만큼의 일이었는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러면서 이집트 파라오의 신하 보디발이라는 장군의 집에 노예로 들어갔는데, 보디발의 부인이 요셉을 유혹하면서 잠자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주인 보디발에게 몹쓸 짓이라고 생각하여 뿌리치고 도망나왔다. 그러나 그 아줌마가 요셉이 자신을 강간했다고 고발하는 것이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렇게 감옥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요셉은 관원장들의 꿈을 해몽해주었다. 감옥에서 나가면 꼭 자신이 억울한 일로 갇히게 됐으니 꼭 나가서 이 일을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관원장들이 실제로 요셉이 자신의 꿈을 해석한대로 되었는데,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요셉을 까먹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파라오가 꿈을 꿨는데 아무도 해석을 못하는 것이다. 그때 관원장이 요셉을 이제서야 생각나서 파라오 앞으로 부르게 됐다. 그의 탁월한 꿈 해석으로 인해 파라오는 감동하게 되었고, 그를 총리로 세워 이집트를 지혜롭게 다스리게 되었다.
요셉의 이야기는 총리가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을 보게 되면 그가 억울한 순간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했다는 것이다. 또 그가 형통했다는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아빠가 제일 예뻐하는 귀한 집 자식으로 살다가 형들의 시기로 한 순간에 노예가 된 것이 잘되고 성공한 일인가? 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당해서 감옥에 들어간 일이 잘되고 성공한 일이었는가? 어느 누가 이 상황을 봐도 전혀 성공한 인생 스토리가 아닌 것이다. 이게 내 상황이면 매일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셉처럼, 성경의 인물처럼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셉이 총리가 되고 실제로 어린 시절 꿈꿨던대로 형들이 요셉인줄도 모르고 이집트 총리라고 하여 자신에게 절하는 것이다. 형들이 자신이 전에 노예로 팔아넘겼던 동생이 이집트의 2인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이제 죽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창세기의 마지막 요셉의 고백이 하나님의 섭리를 아주 명확하게 나타난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가? 현재 일이 괴롭고 힘들고 억울한 일이 가득하더라도 결국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신다는 것이다. 요셉 자신의 증조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만났던 하나님, 할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자신의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고 어려운 순간들을 어떻게 선으로 바꾸셨는지 분명하게 알았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 약속의 하나님을 날마다 생각하니 당연히 그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된 것이다.
나는 로마서 말씀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모든 일이 형통하고 잘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에 읽은 로마서와 창세기를 가만 묵상해보면 자꾸만 예수님이 생각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누구보다 가장 사랑했던 분이 누구였는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마음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 땅 가운데 오셨다. 그리하여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죽일까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죽이지 않고 노예로 팔아 넘겨졌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죽임을 당하셨다. 십자가에서 아주 고통스럽게 말이다. 그 십자가의 사건으로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시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인류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고 하셨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변하는 것을 의지하지 말고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읽으시기 바란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말씀을 읽고 하루종일 생각하고 그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암송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순종할까 고민하는 삶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인생, 곧 형통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의 모든 문제와 힘듦과 어려움, 질병, 환란, 고통 모든 것이 하나님이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성경 말씀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들리는 세상의 것을 의지하면서 교회생활하면 구원에 대한 생각도 흔들리게 되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구원의 확신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은 당장에 힘든 상황에 살아갈지라도 영원한 기쁨과 생명을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작은 참새도 하나님이 꼼꼼히 세심하게 돌보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참새보다 여러분을 훨씬 더 귀하게 여기고 세심하게 돌보시는 분이시다.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날마다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누리는 저와 드림인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