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9 화요전도: 왕하 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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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358장 찬송하시겠습니다.
352장 찬송하시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보겠습니다. 열왕기하 5:9-17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열왕기하 5:9–17 NKRV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화요전도기도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도는 단순히 전도지와 함께 사탕을 나눠주는 행위를 넘어서 참된 행복이신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런 위대한 일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와 같이 연약한 자들에게 자신의 일을 맡기시는 주님의 은혜, 정말 감사하지 않습니까? 오늘도 전도를 함으로써 하나님께 감사하며 아직 믿지 않는 자들에게 참된 행복이신 하나님을 전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실 전에 제가 수요강론 때 설교했었던 본문입니다. 그때는 본문 자체의 원래 의미에 맞춰서 설교를 했었지만, 오늘은 전도에 초점을 맞추고 말씀을 전하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전체 스토리를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오늘 본문은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이야기입니다. 나아만은 아람에서 크고 존귀한 자이지만 나병환자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람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지만 신의 진노라고 불리는 나병을 앓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래서 이 나병을 고치고자 나아만은 자신의 집에 있는 이스라엘에서 데려온 여종의 말을 통해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에게로 왕의 서신을 들고 갑니다. 그것도 각종 예물들을 들고 말이죠.
그렇게 나아만은 이스라엘 왕을 찾아가 자신의 왕이 준 서신을 건냅니다. 하지만 쉽게 말해 퇴짜를 맞고 이스라엘 왕은 오히려 나아만과 아람 왕이 정치적 술수를 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엘리사가 듣게 되고 이스라엘 왕에게 왕을 찾아간 그 사람을 자신에게로 데려와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나아만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집에 있는 여종이 말한 그 하나님의 사람의 집에 도착하게 됩니다. 엘리사는 밖에 자신에게로 데려와달라는 그 사람이 도착한 것을 알고 10절에서 사자를 보내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너무나 쉬운 명령 아니겠습니까? 그저 요단 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기만 하면 낫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낫는다고 하니 냉큼 하러 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나아만의 반응이 심삼치 않습니다.
11절에서 나아만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와서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가 손을 상처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이 화를 낸 것은 자신의 국가에서 행하는 치료 방법처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선지자 또는 주술사가 주술적 방법을 사용하여 병을 치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바로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나아만은 지금 화를 내고 있습니다. 또한 그 방법은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작은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어떤 방법, 자신에게만 독특한 방법을 쓰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요단 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값비싼 예물들을 가지고 온 것도 치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의 기대와는 다른 방식을 제시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14-15절에 보시면 나아만 그가 가지고 온 예물을 엘리사에게 주지만, 엘리사는 거절합니다. 이것은 바로 아무런 대가 없이, 이런 작고 쉬운 방법으로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호의에 대해 나아만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엘리사는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 하고, 예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은 사실 자신의 공로가 일체 필요 없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호의로만 받는 구원을 싫어합니다. 내가 내 구원을 쟁취하고 싶고, 그 구원에 마땅한 대가를 지불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정반대입니다. 인간의 공로로서는 구원을 절대 받을 수 없고, 그 공로가 필요도 없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호의로만 받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현대인들도 이것을 굉장히 불편해 할 겁니다. 예를 들어 인간관계에 있어서 공로 없이 받는 호의에 대해서 불편해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힘이 들어갑니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 시간을 써야 하고, 필요하다면 돈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에너지도 써야 하죠.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바로 그 사람과 계속해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나의 희생이나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의 것을 어느정도 써야합니다. 이전에는 우선 인간관계를 맺고 그 이후에 이 관계에 자신이 투자한 만큼 돌려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싸우고 다투었다면, 이제는 이런 과정이 너무나 소비적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아예 관계를 기피하는 경우가 다반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을 통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자신이 희생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기에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이전에는 대가를 지불하고 그 대가에 맞는 보상을 받고 싶었다면, 이제는 대가를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관계를 애초에 맺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원하는 것만 취하여 즐기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오죽하면 이런 말도 등장합니다. 원래 네 자로 줄인 말이 있는데, 너무 자극적이어서 하지 않고 그 개념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성관계를 맺어본 후에 서로가 괜찮다면 사귀는 것을 결정합니다. 이전에는 결혼하지 않고 성관계를 맺는 것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그 연인 사이에서도 아니라 서로가 아무런 사이가 아닌데도 성관계를 맺고 서로가 괜찮으면 사귀는 것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내가 연인 사이라는 관계로 들어가 맞이할 수 있는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이처럼 현대인들에게도 “호의”라는 것은 불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호의를 받을 때 어떻게 됩니까? 바로 1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것도 어린아이 살 같이 회복되는 어른이 되기 전의 아주 깨끗한 피부의 상태로 말입니다. 모든 화장품 회사가 지향하는 목표가 바로 이것이죠. 아기 피부를 갖게 만드는 것 말입니다.
이처럼 나병의 상처를 없애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피부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호의를 통한 구원입니다. 나아만은 그저 시키는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가 나병으로부터 구원받는 일에는 단 하나도 한 것이 없습니다. 이 일을 통해 나아만은 자신의 세계관이 깨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자신은 일정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구원을 받을줄 알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일체 그것을 받지 않으시고 오로지 호의로서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화요전도대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호의를 통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일정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것 다 필요없고, 아니 오히려 그런 것들은 하나님 앞에 무가치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호의와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를 먼저 한번 봅시다. 우리도 하나님의 호의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대가를 치러야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내가 그 관계에 참여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를 누군가가 대신 치렀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배상하여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대가를 내어주심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먼저 받았으니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도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희생과 호의를 통해 하나님을 전하게 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바로 이런 그리스도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전도는 전도축제와 같이 사람들을 초대해 크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도지를 나눠주는 이런 작은 일을 통해서도 우리는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화요전도대를 통해 이 일대가 하나님의 호의를 알고 구원을 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나아만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호의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도 하나님의 호의로 구원받았음에 감사하는 기도를 합시다. 그리고 아직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못한 자들도 우리의 희생과 호의를 통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두 가지를 놓고 먼저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오늘 있을 전도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가 나눠주는 것은 종이 한 장, 먹을 것 몇 개 정도이지만, 이것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지역을 정복하고 무례한 방식이 아니라 회의를 베푸신 하나님을 따라 지역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전도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 시간 오늘 있을 전도를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호의를 받은 자들로서 성숙하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 교회에 있는 어느 누구 하나도 뒤쳐지지 않고 함께 손을 이끌어주며 서로를 세워가는 교회가 되어 “잘하였다 충성된 종아”라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우리 교회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화요전도대로 저희를 부르시고, 이렇게 함께 모여 기도하게 하심 감사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베푸신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호의임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됩니다. 저희가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 호의를 받았으니 저희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도 언제나 호의를 베푸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선물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기억하며 그리스도를 날마나 전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함께 나가는 전도에 있어서도 저희의 이름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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