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가까운 사람(막 12: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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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고 시험할때,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대접하며 신앙의 본질을 묻는 한 사람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정치 종교의 분파들이 협력하여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하는 이때에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 묻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모든 계명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여러분 구약에 나오는 계명이 몇개나 될까요? 정확하게는 613계의 계명이 나옵니다. 이 가운데 ‘~하라’는 긍정적 계명이 248개, ‘~하지 말라’는 금지 계명은 365개인데, 이 당시 서기관들 사이에는 613개 계명 가운데 어느 계명이 더 크고 중요한 계명인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 이 당시 대표적인 랍비인 힐렐은 “네가 싫어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했고, 랍비 아키바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은 이 같은 가장 큰 계명에 관한 랍비들간의 논쟁을 잘 알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 찾아와서 지혜를 구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같으면 이 분위기에서 예수님께 와서 질문할수 있겠습니까? 모든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적으로 여기는 상황에서 왠만한 사람이라면 이런 용기를 낼 수가 없습니다. 잘못하면 무리에서 왕따 당하고 축출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기관은 예수님께 직접 와서 그가 알고자 하는 것을 묻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루살렘의 내노라하는 종교지도자들이 결코 빠져 나올수 없을 것과 같은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데도 예수님은 전혀 그들이 놓은 덫에 걸리지 않고 유유히 잘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그는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책잡으려고 할때 예수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는 모든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아니면 소위 카더라~라는 것에 현혹되어서 이런 말도 안되는 음모를 꾸민것은 아닐까요? 이 당시에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만나서 대화해 본 것도 아니엇습니다. 그런면에서 이들의 비난과 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와중에 서기관은 직접 보고 나서 자기의 궁금증을 풀어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서기관들이 누구입니까? 오랫동안 율법을 배우고 가르쳐온 율법 학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갈릴리 촌구석에서 자랐고 율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서기관은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합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우리가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으면서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사람들을 쉽게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깔보고 무시합니다. 오늘날 소위 카더라, 아니면 신문에서 비난하는 것들을 듣고 사람들은 쉽게 흔들립니다. 그런 피해를 입고 고통중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를 비난하기에 앞서서, 보지도 않고 욕하기에 앞서서 오늘 본문의 서기관처럼 직접 보거나 경험해 보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만나서 경험하다 보면, 누군가에 대해서 알려고 하다가 보면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존중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도움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누구를 쉽게 정죄하기 보다는, 누구를 더 잘 알아보기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서기관의 질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무시하라는 말도, 이웃만 사랑하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두가지를 다 겸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일방적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이웃과의 관계가 틀어진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서 교회에서 봉사도 잘하고, 헌금도 많이 하지만, 이웃들과 직장에서 온갖 욕이란 욕을 다 먹으면서 살아갑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천사와 같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두가지 중 하나만 잘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둘다 잘 할 것을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와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를 잘 맺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한쪽의 관계에만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잘하고 이웃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살아가면서 여러분 하나님과이 관계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더불어 이웃과 직장 동료들과 세상에 나가서도 누구못지 않게 좋은 관계를 맺으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 잘하는 것이 이웃에게 잘하는 것이고, 이웃에게 잘하는 것이 하나님께 잘하는 것임을 오늘도 기억하며 이웃과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오늘도 행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에 서기관은 전적으로 동의하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성전 제사보다 낫다고 평가합니다. 예수님은 이 서시관의 대답을 지혜롭다고 보시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마가복음에서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 칭찬을 받은 사람은 가장 큰 계명에 대해 물은 이 시기관과 아리마대 요셉 두사람 뿐입니다. 왜 이런 칭찬을 받았을까요? 자기가 겉으로보면 예수님 보다 더 배운 사람임에도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지 우리의 생각과 교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면 이런 은혜를 우리에게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시험하거나 가르치러 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겸허하게 동의하는 것이 바로 참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말씀을 듣고도 의심하거나 시험한다면 그 말씀은 결코 우리에게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앞에 자신을 낮추고 동의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것 보다 더 큰 지혜와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시고 들은 말씀에 동의하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세상이 줄수 없는 큰 지혜와 은혜가 여러분 삶속에 가득차서 세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더 해 줄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지혜와 은혜속에 거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의 질문에 예수님은 가장 먼저 신 명기 6장 4절을 인용하십니다. 이 본문은 유대인들의 신앙고백문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지금도 매일 이 구절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씀은 신 명기 6장 5절을 인용하신 것입니다.즉 예수님은 십계명중 제 1계명을 재확인 하시는 것으로 대답합니다.
두번째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이웃사랑의 계명은 레위 기 19장 18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레위기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이웃을 한정했다면 예수님은 원수까지 확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째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을 구분하시지만 이 두가지를 다른 계명보다 크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웃 사랑의 중요성은 신약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