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이 난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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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투표는 잘 하셨나요? 저는 사전투표를 하고 투표날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투표날 오랜만에 흥미진진하게 투표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께 일부로 투표하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투표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조금이나마 더 좋은 곳을 만들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대표자를 뽑는 것입니다. 제가 투표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항상 이야기를 하는게 우리는 최선을 뽑는 것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나마 최악을 면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원래 정치라는 것은 그렇고 누군가 우리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볼 때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사람을 선택하기 전에는 우리가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선택한 다음에는 그 결정에 있어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뽑힌 사람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세상 권력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우리를 다스리는 이 정치라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러한 사람을 세우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민수기를 계속 보고 있는데 저번까지 이야기 했던 것은 민수기 11장 까지의 내용이었어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일한 불평을 하였지만 불평의 근거가 다르기 때문에 결국엔 다른 결과가 일어났다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 이후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탐꾼들을 보내 가나안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가나안땅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말.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버리고 다시 죄의 종노릇 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땅에 들이시고 모두 광야에서 죽는다고 말씀하시죠. 그리고 그들은 이제 광야를 떠돌아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7장에 고라당의 반역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이 가나안 땅. 그냥 죽 걸어갔다면 갔을 3개월만의 거리 가운데 아직 많이 가지도 못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거역하는 수많은 사건들로 인해 고통당하고 고난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지만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과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광야길은 우리들의 인생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걸어가며 만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어려움을 당하듯이, 우리들 역시 이 땅 가운데 인생을 살아가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고난 가운데 주실 하나님의 은혜는 장차 다가올 가나안 땅과 같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고 이 땅을 걸어가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징계차원에서의 고난을 당해도,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위대한 주권이자 섭리이며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배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 입니다. 또한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연약함과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신 은혜와 사랑이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실 것을 믿음으로 감사했으면 합니다.
16장을 따로 보지는 않았지만 고라당의 반역사건에 대해 나옵니다. 고라당은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와 아론의 지도권에 반기를 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모세는 인정하지만 특별히 아론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아론은 동생 때문에 낙하산으로 들어온거 아니냐라고 이야기 하며 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땅이 갈라져 고라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 속에 삼키움을 받아 죽었고, 그를 추종하던 250명의 지도자들도 하나님의 불심판으로 모두 즉임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지만 아론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고, 10가지 재앙을 일으키고, 홍해를 가르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율법을 받았던 사람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모세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있지만 아론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론은 자신들과 같이 애굽에서 나온 처지이고 시내산 앞에서 황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할 때도,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아론은 모세와 형제관계이기 때문에 제사장으로 지도자를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 앞에서 아론을 하나님이 택하셨고, 그를 민족의 지도자인 대제사장으로 세우셨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기로 작정하신 것이 바로 오늘 읽은 본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권위를 세워 주시고, 다시는 고라당과 같은 반역이 일어나지 않도록 오늘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12지파 각각 하나의 지팡이를 가지고 나오라고 하셔서 그 지팡이에 지휘관의 이름을 쓰게 하고,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게 합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들을 성막 안에 있는 지성소, 언약궤 앞에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 4, 5절에 기록하기를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에게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8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7:8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나무가 아니라 죽은 나무로 꺾어 만든 흔한 지팡이입니다. 그 지팡이에서 하루 사이에 싹이 나서 열매까지 맺은 것은 정말 놀라운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적을 통해 아론이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몇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의 관점과 시각으로 바라보는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아론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모세의 형이기에 모세를 도와 지도자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모세는 왕의 궁전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라도 있었지만 아론은 모세를 만나기 전까지 다른 백성들과 같이 노예로써 삶을 살았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출애굽할 때 우상숭배를 주도했던 사람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들의 지도자로 있다는 것은, 백성들의 납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사람을 택하는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 인간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출나고, 뛰어나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세상의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론 다르게 일하실 때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 1:27–28 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라고 말입니다. 능력이 많고 특출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자신이 능력 때문에 지도자가 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낙하산이나 누군가로 인해 지도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론이 모세의 형이라서 지도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에 대한 반기의 이유는 그들 마음 속에 있는 세상적인 관점. 즉, 지도자는 모름직이 능력이 있고 특출나야지. 내가 너보다 낫다. 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세상적인 관점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하나님의 방법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저 또한 그리고 여기 있는 순장님들 또한 특출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가 순장으로, 그리고 제가 학생으로 있던 안산에서 학생 총순장으로 섬길 때도 내가 잘나서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자리에 서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과 방법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과 가치관을 가지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고 우리를 구원코자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민수기 17:10 을 같이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고 기억하게 하십니다. 무엇을 기억하게 하시냐면 하반절에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으로 삼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그치게 하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망 듣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치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마지막에 언급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을 통해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민수기를 계속 읽다 보면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불신으로 인해 하나님께 반역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아론과 미리암이 반기를 들었다가 문둥병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이후 13장과 14장에 보면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 원망을 하다가 결국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의 시초가 된 16장에 고라의 반역을 통해 고라, 그리고 함께 한 250명이 죽고 더불어 전염병이 돌아 14700명이 죽게 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건들이 모두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표징으로 삼아 원망하지 않도록, 그리고 원망하지 않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협박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유치하신 분이 아닙니다. 어제도 저의 아들과 딸이 저에게 혼이 났는데, 혼이 나게 된 원인은 둘 다 불평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면 모를까 선을 넘어버리는 불평 불만은 제가 아이들을 사랑하더라도 이것은 아니기에 혼을 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너무 사랑하시고 우리를 아끼시지만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정이 있어서 선을 넘어도 죄를 지어도 한번 눈 감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아닌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닌 것은 아니고 혼날 것은 혼나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 사랑하시기에 너희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것을 보고 꼭 지켰으면 좋겠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바로 아론의 싹 난 지팡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아니지만 본문 말씀 바로 다음 구절인 민수기 17:12–13 을 같이 읽어봅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죽게 되었나이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다 망하게 되었나이다 가까이 나아가는 자 곧 여호와의 성막에 가까이 나아가는 자마다 다 죽사오니 우리가 다 망하여야 하리이까”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보고, 하나님의 권능을 느끼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합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존재이고, 또한 죄인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거나, 그분의 권능과 위엄과 영광을 경험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두려워 떠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에스겔,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자, 그들은 거룩하고 위대한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의 싹난 지팡이의 기적을 보여주신 이유는 결국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분도 하나님, 광야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분도 하나님, 그리고 지금 살아갈 수 있도록 책임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이 광야의 삶 가운데 매일 아침 내리는 만나를 통해, 그리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책임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쉬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은혜의 역사를 매일 매일 일으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 우리를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그러한 경험을 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예요.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일을 하실 분이 없으시다는 것을 말이예요. 제가 전도사로 살아가지만 원래 저의 본업은 CCC간사입니다. 간사는 생활비와 사역비 100%를 후원을 받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물론 전도사 사례비는 제외하구요. 그래서 저의 가정이 생활하는 비용과 제가 사역을 하는데 사용되는 재정 모두 사람들에게 후원을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더 밀접하게 느낄 수 밖에 없어요. 매달 매달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으로 사역하고, 가정 가운데 가장으로써의 역활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권위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의 지혜와 방법을 가지고 감당하려고 하면 실패하고 맙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소명을 오직 하나님의 시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놀라운 사건 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은 살아계셨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광야길에서 매일 매일 내리는 만나를 공급하셨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들의 매일 매일의 삶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들을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의 일부분으로 우리를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맞지 않아 보일지라도 부족한 우리를 들어서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깨닳아 알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기억하며 하루하루를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은혜숲교회 청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