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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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예수를 만남은 인생의 해답을 준다.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스라는 명작을 만들기 전에, 간디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설리반 선생을 만나
세계 최초의 시각, 청각 장애인으로써 대학교육을 받은 작가이자, 사회복지 사업가 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 까지 유명한 역사적 인물들의 만남이 있어왔습니다. 좋은 스승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또 좋은 부모와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김길태, 유영철, 스탈린, 김정은과 같은 사람은 좋은 부모나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처럼 인간의 역사는 만남의 역사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것 같습니다. 좋은 만남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또 사람들을 이롭게도 하지만, 좋지 않은 만남은 누군가를 위험하게 하거나 죽게만들기도 합니다. 이 처럼 우리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느냐라는 것이 진짜 중요하고, 또 내 마음같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만큼 만남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오늘 어떤 한 우상을 조각하는 집안의 아들에게 어떤 만남이 있었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그의 인생의 상태를 발견하고, 또 완전히 뒤바뀌게 되는 만남 이었습니다.
그는 여느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그를 찾아 오셨습니다. 오셔서 12장 1절에서 하시는 말씀이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먼저 하나님을 찾으려고 한것이 아닌데, 여호와께서 대뜸 오셔서는 아브람을 만나러 오신거에요.
그런데 대뜸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뭐 잘지냈냐, 밥은 잘 챙겨먹냐, 건강하냐 이런 얘기가 아니고 가라는 거에요. 그런데 참 웃기죠 하나님이 1절 마지막에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말이 안맞잖아요? 보여준 땅으로 가라 이게 아니고, 앞으로 보여줄 땅으로 지금 떠나라 이말을 하시는 거에요.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 아브람은 지금의 상태와 상황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아브람의 지금의 상태는 뭐냐?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우상을 조각하는 집안이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아버지의 집 뿐만 아니라, 친척과 그 고향을 떠나 가라고 하셨어요. 즉, 지금의 상태와 상황은 현재 아브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와 가치관을 벗어 던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근데 이게 쉽겠습니까? 내가 속해있는 이 위촌리를 벗어나 산다는 것이, 젊은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12장에 그 때 아브람의 나이 75세였다고 하잖아요. 평생을 그곳에서 살면서 얼마나 그 문화와 일가 친척들과 그 주변 관계와 상황에 익숙해져 있고 또 나이가 그만큼 찼으니 더욱이 움직이고 싶었겠냐구요.
그런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지금 고착화된 우상 숭배 문화와 뭔가 믿고 비빌만한 언덕이 되는 친척과 아버지의 집. 즉 아는 사람들의 도움조차 받으려는 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 말씀입니까? 이게 지금 우리한테 고향을 떠나라 이런 말이 아니고, 우리의 영적 상태를 살펴 보라는 말씀이죠. 우리의 마음이 혹시 너무 주변이 익숙한 문화에 젖어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은 너무 익숙해져 버리면 마음이 풀어지죠. 부부 관계나 인간 관계도, 내가 사는 삶도 너무 익숙해지면, 감각이 무뎌지게 되어있는게 사람입니다. 그런 우리들의 영적인 무감각함이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뭔가 일이 있거나 혹은 타지에 사는 자녀들의 집에만 가게 되어도 주변에 환경이 바뀌기 때문에 예민해지기도 하고, 밥이 잘 안넘어 가거나 잠자리가 바뀌어 쉽사리 잠이 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익숙한 환경이 아니니까 몸이 예민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죠. 그럴 때는 온 몸의 감각이 평소보다 훨씬 긴장한 상태라서 조그만 변화나 자극에 굉장히 날카롭고 재빠르게 민감하게 반응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걸 요구하신 거였습니다. 현재 상황에 둔감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못하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아니라, 아버지도, 일가 친척도, 친한 친구와 기댈만한 아는 이웃도 없는 땅으로 가는 그 모든 여정이 불편하고 민감하고 잠자리도 불편하고 예민해지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그렇게 영적으로 예민하게 반응 할 줄 알고 때로는 몸이 좀 불편해야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청종하고 받아들이는 것 처럼, 아브람에게도 같은 상황을 주신겁니다. 그래서 이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야하는 말씀으로 적용되고, 하나님을 아는 우리에게는 혹시 우리도 뭔가 익숙함에 젖어 중요함을 잊고 무감각한 엘리 제사장과 같은 마음이 없나? 라는 것을 둘러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두번째로, 하나님이 보여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말이죠. 물론 약속의 땅입니다만,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명백한 방향을 바로 알 수는 없지만, 올바른 삶의 방향은 알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난 아브람은 정확히 동서남북 중에 어디로 가야할 지는 지도 잘 몰라요 사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고 일단 가라고 하니까 가는거에요. 이게 뭐냐면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가는지 알게된다는 것이죠. 그게 뭐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에요. 어디로 가야 정답이지? 인생이 어떻게 해야 잘 풀리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고 무엇을 하며 사는것이 가치 있는 것이지? 와같은 고민들과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면, 아! 어떻게 살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한걸음 한걸음 옳은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것이 쌓여 바른 인생의 해답이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한걸음을 내딛을 때 믿음으로 순종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때로는 방향이 틀린것 같아도 그게 틀린게 아니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인도하시기 때문에요.
그래서 아브람은 우상숭배를 하던 고착화 되고 불안하지만 익숙하던 문화에서 벗어나서, 생전 처음 알게된 하나님을 만난 상태가 된겁니다. 그 길은 처음가는 길이고 기댈 곳도 없고, 익숙한 환경도 아니지만, 마음이 너무나 평안하고 믿음이 가고 신이나는 상태가 되는 거에요. 그게 뭐냐 하나님과 함께하는 상태 즉 임마누엘을 누리는 삶이라는 것이죠.
이 임마누엘을 누리는 자들에게는 특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들은 바로 복을 받는 다는 것이죠. 이것은 명백한 기독교의 큰 특징 입니다. 예수와 함께하는자,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복이 어떤 복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복을 생각할 때,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게 되고, 의사되고 변호사되고 판사 검사 되는 것만이 복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복들이 분명 있습니다. 부수적인 복으로 주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 아브람에게 하시는 축복을 보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한거에요. 그러니까 이 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 자체가 복인데, 그 복을 가진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죠. 모든 족속이 복을 얻는다고 하잖아요. 한 사람을 통해 모든 이들이 그 복을 누리게 되는 것 나도 잘되고, 남도 잘되게 하는 것이 정말 가장 큰 복을 받은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들은 많은 사람을 이롭게하는 복을 가진자가 된다 라는 것이겠지요. 아브람이 그랬듯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람도 하나님을 찾던 사람이 아니었고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친히 만나주셨고, 만나러 오셨고, 또 먼저 복을 주셨어요. 오늘 여러분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설교를 듣게 될줄 몰랐고, 하나님이 실제로 여러분들을 만나주셨고, 복을 주셨잖아요. 그리고 나를 축복의 통로 복의 전달자로 쓰시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위로이자 힘이 되어야 할줄 믿습니다. 우리가 설령 그렇게 믿음으로 살지 못해도, 혹은 이걸 잊고 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셔서 자녀 삼으시고 구원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주시고 부활의 열매가되게 하실 뿐아니라, 나를 잘되게 하고 나의 가족과 만민을 잘 되게 하는, 만인에게 복을 흘려보내게 하는 축복의 전달자로 쓰시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힘들고 좀 지쳐도, 혹은 뭔가 열매가 없는 삶 같아도, 아니요! 내가 예수를 모르는 것 같아도 오늘 지금 제 입술을 통해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나시기 원하시고 만지시기 원하시고 자녀 삼으시기 원하시고 자녀 삼으신 분들에게는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으로 성취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아브람은 하나님을 만나 그의 인생 전체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역사속 인물들의 국가를 변하게 했던 놀라운 만남 처럼, 아브람이 하나님을 만난 것은 그의 노력이나 힘과 의지와는 달리 축복의 선물로 주어진 선물이었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던 집안의 사람이, 친히 찾아오시는 신 앞에 아멘을 한 것이죠.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전히 자신의 삶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불투명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방법을 알게 되었고, 이전처럼 불투명 하나 두렵지 않죠. 왜? 찾아오신 신이 그와 함께 계속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동행하시는 이유는 그를 통해 그만 복을 받는게 아니라, 그의 자녀들과 이웃들과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옳은 길로, 복된 길로 인도하게 하는 도구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죠. 하나님을 만나서 엄청나게 큰 축복을 받게 된 아브람이, 이제는 자신이 그런 축복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이제 아브람을 만나는 사람, 아브람 처럼 하나님과 자녀가 된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브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이 오늘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우리들에게 오늘 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친히 직접 찾아오셔서 만나 주셨고, 그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멘으로 영접하여 나의 죄를 사해주시고 부활하신 주님 이시라는 것을 아멘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그 임마누엘로 인하여, 아브람이 그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변하고 그 자녀들과 온 족속들이 복을 받은 것 처럼, 우리들도 그 하나님과의 만남, 그분의 함께하심으로 인해 축복의 덩어리,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참 위로이자 산 소망, 유일한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인생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내 영혼이 풀리고, 내 자녀들과 모든 이들에게 복을 주는 축복받은 사람이 이미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잘 안누려지고, 잘 모르겠다면, 오늘 그 사실이 믿어지는 은혜가 임하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임마누엘 하고 계시고, 그 사실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나이나, 학력, 죄, 부와 가난, 건강과 연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과 만났기 때문에 인생이 변하게 된 아주 큰 복을 받은 자들이며, 복의 전달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또한 모신 분들의 경우는 그분이 우리 인생의 해답이며, 유일한 복이며 나를 축복의 통로로써 귀하고 복되게 나와 나의 자녀들과 이웃들을 복되게 하는 존재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힘을 얻고,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에 주인되심에 감사하는 한주가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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