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충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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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성경찿겠습니다.
시편 16편 11절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오늘 같이 말씀으로 나누어 볼 내용은 나의 신앙의 기쁨이 충만을 받을려면 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이 힘이 들고 낙담되고 어려울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신 힘으로 하지 않고 나의 힘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때..
기쁨과 즐거움이 없이 습관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금방 지치고 힘이 듭니다.
그러한 경험들을 해보셨느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형제로 있을 때.. 그러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의무감으로 봉사를 하고 의무감으로 교제에 참석하고.. 말씀을 듣고요.. 그러니깐 나에게 남는게 별로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이 말씀을 있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지 즐겁고 기쁨이 충만하면서 신앙생활을 할수 있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시편 16편은 부활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떤 주석을 보면 이 장을 다윗의 신앙의 비결이라고 나와 있는 주석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16편을 잘 묵상하면 다윗의 신앙이 왜 그렇게 견고한지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을 하면서 세가지 작은 주제로 말씀을 나누어 볼려고합니다.
첫째.. 나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둘째..나의 신앙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 있을까?
셋째..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렇게 세가지로 생각 해 보겠습니다.
첫째.. 나는 무능력한 사람입니다.\
내가 할수 있는것은 없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4장4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이 말씀에서 예수님과 왕의 신하가 나오는데요..
여기서 왕의 신하는 헤롯왕의 신하였습니다. 그때 당시의 헤롯왕은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왕이 었습니다.
그의 신하이니깐.. 많은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었겠죠..
그러한 그에게 아들이 있었는데요. 그 아들이 병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많은 재력과 돈이 있으면..많은 치료를 받을수 있잖아요.. 그때 당시에도 이 왕의 신하도 아들의 병이 낳기 위해서 치료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의 신하의 아들은 죽기를 기다릴 정도 손을 쓸 가 없었던것같습니다.
이것을 보면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있고 없는게 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49편 5-12절입니다. 찾겠습니다.
이세상에 돈이 이렇게 많아도 성경은 할 수 없는게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한다.. 돈이 많아도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혼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에베소서 1장7절 말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우리는 돈으로 재력을 권력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 주님의 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으로 죽음을 막지 못한다고 시편 기자는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 모두다 다 두고 하나님 만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세상 돈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잘 먹고 잘사는 육신의 문제만 해결하지만..
영혼 구원함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없는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부여할 수 없습니다.
지구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장을 멈추게 뛰게 할 수도 없습니다 .
그만큼 우리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더 알 수 있는게 우리가 율법을 통해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 입니까.
우리가 해서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천국에 갈수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16편 1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이러한 말이 저절로 나올수 밖에 없는것입니다.
이 시편 기자인 다윗은 예수님의 초림. 죽음. 부활을 예언했던 분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믿고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신앙의 비결은 이 시편 16편에 적어 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신앙의 비결을 알수 있습니다 .
우리가 할수 있는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때.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이러한 성경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이러한 길이 11절에 나오는 생명의 길입니다. 그 길로 행하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나의 신앙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 있나...
이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과연 나의 신앙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9장 24-26절 말씀 읽도록 하겠습니다.
26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면요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달리기를 할때 에 방향을 생각하지 않고 달리지는 않잖아요..
100미터 달리기..마라톤을 할 때를 보면 골 인점을 향해서 달리는거잖아요..
만약 달리기를 하는데.. 방향을 모르고 달린다.. 그거 만큼 힘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 생명의 길은 방향이 있는 길일까요.. 방향이 없는 길일까요.
즉 골인점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내 우리가 걷는, 우리가 달려가는 이 생명의 길에는 골인점이 있습니다. 그러니깐.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도.. 초대교회 사도들도 이 골인점을 보고 달려 갔던 것입니다.
방금 읽었던 말씀처럼 사도 바울은 향방 없는 것 같이 하지 않았다..
우리는 복음 이 하나를 위해서 그리고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읽었던 요한복음 4장에 헤롯왕의 신하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나기위해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가나까지 한숨에 갔습니다. 이거리는 24키로에서 30키로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어느정도 있지 가늠이 되지 않을것 같은데요.. 저희 교회에서 이천 롯데 프리미엄아울렛까지 도보로 갔을때 길이가 15키로정도
됩니다. 그거리를 왕복하면 되는데요.. 보통 시간이 4시간 정도 걸리니깐요.. 8시간정도 걸어가는 거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절때 가까운 거리가 아닐 것입니다 .옛날에는 길이 우리처럼 발달되지 않았으니깐 더욱더 멀었을 것입니다.
이 거리를 한숨에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에게로 가면 치료 해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한숨에 갔을 것입니다 .
우리는 이처럼 확실한 방향으로 가면 위로도 받고 구원함에 이를 수 있는데..
요즈음 자기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채 자동차의 엑셀을 밟는 것 처럼 정처 없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사람들은 레위기 1장절에 보면 여호와께 열납되도록 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하나님께 열납 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번 시간에 우리의 신앙생활의 방향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는 과정을 보면은요 점점 발전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사무엘하 11장을 보면은요
먼저 전쟁을 하고 있는데. 다윗은 왕궁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때에 내려다 보다가..
먼저 내려다 보았습니다. 우리가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꼭 그다음에 그 다음 것을 하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확인합니다.
보고 그 다음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불러냅니다. 그리고 결국은 간음 죄 를 짓고요..
그것을 가리기 위해 숨키기 위해 살인죄까지 짓게 됩니다.
이렇게 점점 죄가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죄는 점점 발전하기 전에 돌이켜야 합니다.
시편 1편 1절 말씀 찾겠습니다.
악인의 꾀를 쫒고 그다음은 죄인의 길에 서고요.. 그다음은 오만한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죄가 발전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야지 죄를 하루 빨리 돌이킬 수가 있습니다.
아시겠죠. 죄는 그냥 두면 끝까지 가게 됩니다. 악에서 악으로 달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에레미야 9장 3절말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이 활을 당김 같이 그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악으로 진행하며 또 나를 알지 아니하느니라
악에서 악으로 진행한다고 말씀하고 있죠.. 우리는 그래서 빨리 돌이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럼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은 어떠한 길이어야 할까요.
빛에서 더 밝은 빛으로 향해야합니다.
잠언 4장 18절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사람은 하나님께 돌아올 때.. 어두움에서 빛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명철로 더욱 밝아지게 됩니다 .
우리가 주님을 알고 주님을 깨닫게 되었을때.. 어두움에서 빛으로 들어오게 되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주님과 가까워질수록 주님이 주신 명철로 더욱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더 큰 소망으로 더 큰 풍성으로 더 큰 빛 가운데로 인도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6절으로 찾겠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은혜위의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구원받은 은혜도 우리에게는 아주 큰 은혜인데..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위한 삶을 살게 해주시고 주님의 보호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될 때 그것 또한 은혜인지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 위의 은혜라고 말씀드리는것입니다.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할 올바른 방향은 이러한 것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것입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탄생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입니다
위 엣 것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것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에 힘쓰는 것이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 됩니다 .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입니다 .
주님의 몸된 교회안에 거하는 것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입니다
불신자를 건지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세우는 일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푯대를 향하여 살아가는 인생의 길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입니다.
올바른 방향 하나님을 향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는 기쁨이 충만하게 되면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바른 방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링컨은 이러한 말은 했습니다.
나는 넘어질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올바른 방향으로 넘어지고 있음을 확신한다.
왜 이러한 말을 했을까요.. 링컨이 걷는 그 길이 하나님으로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말을 할수 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잘 알고 그 방향대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그 방향의 길이 직선의 길은 아닙니다. 우리는 나약합니다. 첫째의 내용이 무엇이었죠..
무능력하다고 했죠.. 우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할려고 하면 직선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 길로 가다보면 알게 됩니다.
아 내가 능력이 없구나.. 그러면 주님에게 다시 돌아오시면 다시 직선의 길로 향하게 됩니다. 결국 주님은 우리에게 최선의 길로 선물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주인이 누구인가...
시편 16편 2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주는 나의 주시오니.. 이 말이 결국 당신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라고 묻고 있는것입니다.
나의 1번을 물어 보고 있는것 입니다.
나의 1번이 누구인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 있습니다 .
주는 나의 주시오니...
여기서 주시오니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 라는 말을 쓰는데요..
주인을 뜻합니다. 즉 나는 당신의 종이라는 말이 되는데요..
나는 당신의 종이고 예수님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그 위치를 알때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고 생명의 길을 걸을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7-10절입니다.
10절에 보면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분인라 할지니라..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라고 하는대로 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또다시 일을 하라고 하면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이익을 바라지 않고 하는 종의 위치인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이 말은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계획은 모두다 주님에게 맟추어져 있고, 나의 욕심은 없고 오로지 주님을 잘 섬기겠다는 욕심만 있는 사람이고요
나의 고집은 없고 주님을 잘 섬기겠다.다른것은 보지 않겠다는 고집만 있는 사람인것입니다.
이것이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앉아 계신 형제 자매님 이렇게 주님을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시나요..
이렇게 될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시니 하나님을 생각할때.. 우리는 그렇게 살 수 밖에는 없습니다 .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 었습니까.
우리는 벌레인 사람 구더기 같은 존재 였습니다.
그런데 그 구더기를 위해서 주님은 피를 흘리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기에.. 육체로 오신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부하신 분께서 가난한 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러한게 다 은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느끼면서 살 때 우리는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 이러한 말이 자동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
나의 주인은 주님임을 느낄 때 우리는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 속에서 살수 있는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쁨이 충만한 삶을 위해서 다윗의 신앙의 원리에 대해서 알아 보았습니다.
첫째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속에서 신앙생활을 할려면 우리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대 이시고..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이시며 나를 구원하신 그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라는 것을
알고 지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둘째 나의 신앙의 방향은 올바른 방향인지. 죄악으로 더 끌려가는 방향인지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방향인지
나의 신앙의 방향을 알고 나의 방향을 주님으로 향할 때. 우리는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 속에서 살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나의 주인이 누구인지 주인이라는 뜻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나는 누구인지 나의 위치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을 위한 삶으로 방향을 돌렸을때.. 우리는 기쁨이 충만하고 영원한 즐거움 속에서 살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앙생활을 즐겁게 주님이 오실 그날까지 영원한 즐거움과 기쁨이 충만한가운데 신앙생활 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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