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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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복있는 자
본문 말씀 : 시편 1:1-3절
[도입] 기도 및 인사
안녕하세요!
저는 1996년 2월 3일에 구원받고 경기도 이천교회 부사역자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 박민환 형제입니다. 이천교회는 형제 자매님 200명 정도 모여서 교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교육관 건축을 하여서 열심 전도하며 교제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 영상집회로 전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영혼과 인도하는 형제 자매님을 위해서, 이천이 쌀과 도자기로 유명한데요! 쌀이 생각나거나 도자기가 생각이 나면 이천교회를 위해서 기도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건축 후 전국 교회 형제 자매님이 교회에 많이 찾아 주셔서 수련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영혼 건지는 일에 조금 더 힘을 내어서 달려갈려고 합니다.
이천에 연고가 있으신 형제 자매님이 계시다면 교회에 연락하셔서 같이 전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론]
1. 시편 1편 개요 설명
그럼 오늘은 시편 1편 1-3절말씀을 가지고 같이 생각해 볼려고 합니다. 본문 말씀이니깐요 찾으신 분은 줄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시편 1편입니다 찾아보겠습니다. 네 다 같이 읽겠습니다.
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감사합니다.
시편 1편은 구원을 받거나 구원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읽고 암송하는 말씀입니다.
이 시편 1편은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아주 중요한 핵심이 들어 있는 말씀이기에 같이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시편 1편을 나누어 보면 크게 두가지로 나눌수 있습니다.
1절~3절까지는 복 있는 사람의 특성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
4절~6절까지는 악인의 특징과 운명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결국 시편 1편은 복있는 사람과 악인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오늘은 시간이 허락이 되는 대로 복 있는 사람 이라는 주제로 같이 말씀 상고 해 보겠습니다.
1~3절을 자세히 나누어 보면
1절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기보면 아니하며 아니하며 아니하고 간단하게 말하면 복있는 사람의 특징은 첫 번째 죄에 대한 구별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절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은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 복을 받은 사람은 오직이라는 단어를 앞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이죠.
말씀을 즐거워 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즐거워하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밤 낮으로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묵상한다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앞 1절과 2절, 죄에 대한 구별과 말씀을 가까이 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가 3절로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구별되고 또 하나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묵상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반드시 결과가 나오는데 그 결과가 시냇가의 심은 나무 같다는 것입니다. 과실을 맺게 된다는 특징이 있는거죠.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은 열매를 맺게 되고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한다고 했으니 항상 힘이 있고 생동감이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 말씀은 고난과 어려움이 없다라는 말이 아니라.
고난과 어려움이 있지만 그 고난과 어려움에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복있는 사람의 반대는 무엇이죠. 복이 없는 사람이죠.
시편 1편에는 복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도 나와 있습니다.
복이 없는 사람들 즉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 복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죄인이고 악인이라고 시편에서는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절부터 악인은 결국 구원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3절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했는데 4절 악인은 특별히 바람에 나는 겨에다가 비교했습니다.
심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잘 자라는데.. 바람에 나는 겨 생각을 하면 어떤가요.. 바람이 불면 날라가 버리는 알멩이가 없는 겨인데요.. 환란과 고난이 찾아오게 되면 쭉정이, 겨는 날라가 버리고 뽑이는거 잖아요. 우리는 의인인지 악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언제 정확히 알수 있느냐? 환란과 고난이 찾아오면 더욱더 알 수 있습니다.
4절부터 6절까지 보게 되면 의인과 악인에 대해서 대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
이렇게 시편1편의 대용이 대략적으로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오늘 같이 생각해 볼 내용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먼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이 무엇이 있나요.
우리가 생각하는 복은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복은 육신적인 복입니다.
좋은 남편을 만난다, 좋은 아내를 얻었다, 좋은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 건강한 몸을 가졌다.
이거다 복이죠. 그리고 또 사업이 잘 된다, 자녀들이 잘 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서 좋은 직위를 얻고 건강하게 오래 산다.
요즈음 치복도 거기에 포함이 된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 복받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것을 원하죠!
그러나 그것은 참된 복이 되지 못합니다.
욥기 9장 25절을 보면은요
나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니 달려가므로 복을 볼 수 없구나
체부라는 뜻은 전령자를 말합니다. 왕의 조서 같은 것을 전할 때 발이 빠른 체부들이 달려서 전달했다고 합니다.
나의 날이 달리는 자보다 더 빠리 달려가니 좋을 것을 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사는 날이 이렇게 빨리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너무 바쁘게 살았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도 모르는체 그냥 살았습니다.
앞집 아주머니가 좋은거 있으니깐 한번 해봐 그러니깐 따라서 해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목적 없이 살았습니다.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에 스프링벅이라는 산양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작은 무리를 지어서 평화롭게 풀을 뜯어 먹고 삽니다. 그런데요 이 무리가 점점 커지면은요 이상한 습성이 있습니다.
앞에 있는 양들이 풀을 다 뜯어 먹어버리잖아요 그럼 뒤에 있는 양들은 먹을 풀이 없잖아요
그래서 뒤에 있는 양들은 풀을 먹기위해서 앞에 양들보다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것을 반복하면요 어떻게 됩니까?
앞에서 뛰니깐 뒤에 있는 양도 뛰게 되고 그러면 모두다 필사적으로 뛰게 됩니다. 방향을 잊어버린체 오로지 앞에 있는 양보다는 더 빨리 뛰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뛰게 됩니다. 그러다가 절벽을 만나면 어떻게 됩니까. 다 같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게 중요한 것이지니 어떤 것이 행복인지, 축복인지 모르는체 뛰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계신 형제 자매님은 예전에 바쁘게 살아가는데 어떤 것이 행복이고 어떤 것이 축복인지 모르고 살았잖아요!
우리도 스프링벅 산양처럼 살았잖아요?
그리고 살다보면 이것이 행복이겠구나 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그것이 행복이었습니까?
어느 동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이 동화에 나오는 아이는 비가 온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고 롤리팝이라는 사탕처럼 생각을 해서 먹을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먹기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무지개를 찾기 위해서 신나게 놀고 있는 친구들을 지나서 힘차게 지나가고요,
그리고 나무위에 올라가서 잡으려고 하다가 엉덩방아를 찢기도 하고요, 그리고 미끄럼틀을 보게되어서 신나게 놀다보니 무지개 찾고 있다는것을 잊어버리게 되기도 하고요,
도마뱀을 만나서 놀라기도 하고, 무시무시한 덩쿨 숲으로 들어가서 덩쿨에 넘어지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드디어 무지개를 만났는데 그것 무지개 롤리팝을 만지려고 잡으려고 했는데 사르르 녹아버리고 부서져 버리는것을 보고 터벅터벅 걸어온 아이의 이야기 인데요.
이렇게 끝나면 동화가 아니죠. 마지막은 엄마 품으로 돌아와서 무지개 케익을 먹고 좋아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정말 이 아이는 이 무지개를 잡을수 있다고 생각했을가요? 열심히 가면 그것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 했을까요?
이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를 읽어보고 느낀점은 정말 구원받기전에 나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무지개를 잡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우리는 행복을 얻기위해서, 축복을 얻기위해서, 인생의 즐거움을 얻기위해서, 무단히 노력하면 살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세상을 살면서 달콤한 행복, 축복을 받기위해서 열심히 달려갔잖아요!
그렇죠. 그런데요 열심히 달려 갔는데.. 그 행복과 축복이 오래 가는 것입니까? 그 무지개를 찾아서 잡았는데 사르르 녹아서 부서져 버린것처럼 없어지는 것입니다.
행복과 축복이 임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죽으면요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을 보면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생각하는 행복, 축복을 다 가진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복은 어떤 복입니까?
우리가 추구 해야 할 복은 바로 저 천국에서 받을 복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저 천국에 쌓을 복을 생각하면서 살아야합니다.
3. 성경의 복(예수님과, 다윗)
그럼 성경에 나오는 복들이 있는데요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복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3-1. 예수님의 팔복
성경 찾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입니다.
3~10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렇게 팔복이 나와 있는데요.
어때요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복과 완전히 다르죠..
예수님이 말하시는 복입니다.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
이렇게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받을 모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심령이 가난한자는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낮아 졌었죠.. 심령 마음이 상해 있었잖아요. 그렇게 해야지만 주님을 찾을수 있으니깐요. 심령이 가난하지 않고 부하게 되면 주님을 찾을까요. 찾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 구원받을때를 생각해보면 심령이 가난함을 느낄수 있을것입니다. 저도 돌아보면 심령이 많이 가난해져 있었던 같습니다. 그러니깐 주님이 내 밀어주셨던 손을 잡았지요.
그 다음은 애통하는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애통하는자 우리가 구원을 받고 애통하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애통이라는 뜻은 슬퍼하고 가슴이 아파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주변의 영혼을 보고 슬퍼하고 가슴이 아파한적이 있나요. 우리가 구원을 받고 지옥가는 영혼을 볼때 이러한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애통, 탄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애통하고 탄식하니깐 지옥가는 영혼을 볼때, 그리고 내가 죄에 대해서 끊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왜 나는 이 죄도 끊지 못하지 탄식할때까 있잖아요. 그러니깐 우리가 누굴 더욱더 찾아야 할까요. 주님을 더욱더 찾아야죠 그래야 그 죄에서 멀어지고, 지옥가는 영혼을 건질수 있는 힘을 얻을수 있죠.
그리고요, 그 다음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온유하다 이것은 주님의 뜻 앞에 묵묵히 순종하며 걷는 것 입니다. 주님의 멍애를 메고 주님을 뒤 따라가는 것이 온유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성령의 열매죠.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안에 더욱더 거하고 있을때. 주님과 동행하고 있을때 성령의 열매를 맺힐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유의 열매는 주님이 필요한것입니다.
그 다음은요 의에 주리고 목 마른자는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목마르면 무엇을 찾습니까?
우리가 목마르면 물을 찾습니다. 그렇죠. 의에 주리고 목 마르다. 목 마르다라는 것은 이때 팔레스탄인 지역에서 목마르다는 것은 그냥 아 목마르다 정도가 아니고 극심하게 목이 타들어갈 정도로 목이 마름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의에 주리고 목이 타들어간다. 이렇게 표현을 해도 되는데요. 이 말은 의를 추구하는 갈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복이 됩니까. 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주님을 닮아가는 생활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즐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니깐 주님을 닮아가는 생활을 하려면 누가 필요합니까. 주님이 필요한것입니다.
긍휼이 여기는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불쌍한 영혼을 바라보는 눈이 있는 복 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긍휼이라는 단어를 찾아 볼수 있습니다. 왜냐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한 긍휼한 마음이 있어기에 그 십자가 형틀에서 우리를 위해서 못박힐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가 긍휼할려면 누구옆에 있어야 합니까?
주님의 옆에서 주님의 마음을 옅 불수 있다면 우리는 긍휼이 여길수 있습니다. 불쌍한 영혼을 바라보는 눈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하다. 마음이 깨끗하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할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깨끗하게 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반듯이 주님이 함께 계심을 느끼면서 살아야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을 더욱더 느끼면서 살때 우리가 마음이 청결해 질수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 화평케 자가 되려면요. 우리의 마음이 넒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한 자세에서 희생적인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화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이 있고 주님의 성품을 닮아갈때 우리는 화평할수 있습니다. 왜냐 주님이 우리를 화평케 했으니깐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자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의를 위하여 주님을 살려고 했을때 핍박을 받죠.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지 않으면 핍박이 옮니까.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데 모두다 순수하게 받아 주나요. 아니잖아요. 핍박이 있죠.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 교회와 함께 있을대 의를 위해서 살수도 있고 핍박을 받을때 보호와 위로를 받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이 있는것입니다.
이 팔복은 신앙생활의 성장의 단계를 말씀하기도 합니다.
구원받고 애통하는 마음 생기죠. 전도하고 싶잖아요.
그리고 전도 하다보니깐 어때요 화가 나죠.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깐.
그래서 주님은 온유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유하게 살다 보니깐 주님의 성품이잖아요.
이제 주님을 위해서 더욱더 살고 싶고 갈망하는 마음이 들잖아요.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니깐 주님처럼 점점 닮아가죠.
그러면 생기는것이 정말 영혼을 위해서 긍휼하는 마음이 들어와서 미치는 것입니다.
어찌할고 저 지옥가는 영혼 어찌할고 이러한 마음이 듭니다.
지옥가는 영혼을 위해서 긍휼한 마음이 들어오니깐. 더욱 나를 깨끗하게 해야겠다.
소금이 되어야 겠다라는 마음이 들죠.
왜냐 건져야 하니깐요. 깨끗하게 살아야지 본이 되어야지 전도할 수 있으니깐요.
그러다 보니깐 화평케 되죠..
형제 자매님과 도 화평케되고, 세상사람들 과 화평케 되잖아요. 그렇게 함으로서 팔복의 마지막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박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 하니깐요.
주님을 위해서 더욱더 열심히 살려고 하니깐요.
누구의 방해가 있습니다. 마귀의 방해가 있으니깐 핍박이 거세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것이 신앙생활의 성장의 단계입니다.
우리가 팔 복을 받아야 하잖아요 복있는 사람은 팔복처럼 행할때. 진정한 복이 임할 것 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다윗에 말한 복이 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복입니다.
3-2. 아브라함과 다윗이 말한 복(진정한 복)
성경에서 말하는 복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복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의 복인데요.
그 복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입니다.
창세기 12장 1-3절 말씀에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이 말씀이 무엇이냐 아브라함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 우리의 죄,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 대신 내 대신 형벌을 받고 피를 쏟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없이 해 주셨습니다. 그 지옥의 형벌에서 건져 주셨다. 이 말씀이 얼마나 큰 복된 소식입니까?
로마서 4장 6-7절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다윗은 어떤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까?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
즉 구원을 받는 분, 죄사함을 받은 사람이 복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가 아는데로 우리아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간음죄를 짓고 우리아를 전쟁터 맨 앞으로 보내어서 고의적으로 죽게한 살인교사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그 죄 때문에 답답했고 그 죄 때문에 중심으로 통회를 했던 분입니다.
시편 51편에 내가 모친이 죄중에 잉태 했다고 말씀하고 있잖요. 51편을 보면 다윗이 중심으로 통회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시편에 보면 예수님의 초림과 어떻게 돌아가실 것 그리고 부활 그리고 재림까지 다 알고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또한 나의 죄를 예수님이 가져 가실 것 또한 알고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그것을 믿고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있는 말씀처럼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자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죄사함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의 피로서 죄사함을 받았습니까?
제가 상담을 하다보면 너무 안타까운것들을 보게 됩니다.
여러번 오랬동안 말씀을 듣는데요 구원함을 이루어지지 않아서 고생하신 분들을 보게 됩니다.
왜 구원을 받지 못할까? 다른 분은 너무 싶게 받는데.. 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구원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왜? 이러한 의문점이 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많은 답은 찾지 못했는데요. 그중에 하나는요
하나님보다 더 다른 것을 추구 하는데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복과 성경이 말하는 복이 완전히 다른것처럼.
다른 두 가지를 다 가질려고 하니깐 어떻게 됩니까 이것도 않되고 저것도 않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우리는 구원을 받을 때 선택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선택 할건지, 내가 더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선택할건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 결심했어 난 하나님을 선택해야 겠어 그러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함을 주실것입니다.
하지만 선택 못하겠어. 나 결정 장애가 있어서 선택을 못하겠어..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오랫동안 말씀을 들어도 구원함을 이루지 못합니다.
구원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정말 구원받으신 분은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실것입니다.
내 죄를 용서 받으신분 복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복이 있죠.
그래서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 입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 받은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까?
소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무슨 소망이냐면 복스러운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디도서 2장 13절입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말씀을 읽어보니 두가지를 기다린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 나와 있는 복스러운 소망이 무엇일까요?
이 복스러운 소망. 우리는 무엇을 기다립니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깐 소망이죠. 그런데 주님이 재림하시면 소망이 아니고 사실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주님이 재림할 때 우리의 몸을 부활시켜 주신다고 말씀 하셨잖아요! 그것이 지금은 소망이나 주님이 재림 하시면 소망이 아니라 실제 우리 앞에서 열리는 것이 되는 겁니다. 그렇죠.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성경을 믿으시잖아요? 주님의 재림도 믿고 계시잖아요!
그럼 구원받은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주님이 약속하신 그 복스러운 소망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복스러운 소망은 우리에게 썩지 않고 더립지 않고 쇠하지 않은 영광스러운 기업을 주시는 거잖아요. 저 천국 소망, 주님과 함께하는 소망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영생의 복을 얻은 사람, 참으로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은 사람이 복 받는 사람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4. 복있는 사람
4-1 죄에서 구별되어야합니다.
그리고 구약에 나오는 본문 말씀
시편 1편입니다.
처음 시작이 어떻게 시작합니까?
복있는 사람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
복있는 사람은.. 이 시편 1편 말씀은 구원받은 복 있는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 누구에게 주신것입니다. 여기에 앚아 있는 형제 자매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것입니다.
1절부터 차근 차근 알아보겠습니다.
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있는 사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고요.
복있는 사람은 세가지를 하지 않는 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1-1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한다
첫째로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악인의 꾀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악인의 상담, 조언, 권고 충고를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충고 조언 권고를 좇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아 걸어가고 있습니다. 난 무슨 가르침을 받고 누구를 스승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가 받아야 할 충고와 우리가 받아야 권고, 조언은 누구에게로부터 옮니까?
나의 생각, 나의 충고, 나의 권고는 다 무엇입니까? 나에게로 오는 것은 다 죄의 기질에서 오는 것입니다.
육신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옳지 못한 것 들이 나오는 것이죠.
전도서 7장 29절 말씀을 보게 되면요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의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아담 이래로 인간은 타락하여 많은 꾀를 내었습니다.
잠언 말씀에 보면 악한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장 31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자기의 행위의 열매를 먹고 자기 꾀에 배부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기질 있으니깐 불손한 생각들, 잘못된 생각들이 올라오게 됩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들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악인의 꾀들이 죄의 기질이 올라오게 되는데 그것을 이길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어서 5장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좇아 행할 때.. 무엇을 이루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은 올라올수 있는데. 그것을 이길수 있는 것은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이것을 이길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이 무엇인가요?
잠시 생각을 해볼까요? 우리가 언제 죄에서 멀어지게 되나요?
우리가 교회안에서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고 있을 때 죄를 짓던가요?
우리가 하계수양회에서 봉사하고 있을 때 죄를 짓던가요?
전도집회 기간에 한 영혼, 한 영혼 전도할려고 노력하고 있을 때 죄를 짓던가요?
죄의 생각은 올라오지만, 그것을 이겨가면서 하잖아요!
그렇죠. 우리는 이길수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악인의 꾀를 좇지 않은 방법은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악인의 꾀를 좇지 않을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맺히는 열매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이루도록 하십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사람고 사람사이의 관계이고,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개인적인 것으로 열매를 맺어 가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으면 죄의 기질이 없습니까? 아니잖아요! 죄의 기질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이겨가는 것이 바로 성령을 좇아서 행하는 삶일 때 우리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의 조언을 받으면서 지내야 할까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지혜를 보고 듣고 배운 노인들의 조언보다 자기와 함께 자라고 지낸던 소년들과 의논하여 잘못된 결정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보았을 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중요한 결정을 할때가 있습니다. 그 때 나름대로 여러 가지 조언을 구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올바른 결정을 할수 있을까요.
시편 32편 8절 말씀을 보면요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나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신다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나의 갈 길과 나를 주목하고 훈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에게 더욱더 여쭙고 주님의 권고와 주님의 생각을 물어 봐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악인의 꾀, 악인의 조언을 받지 않고 주님의 조언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4-1-2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한다
그리고 두 번째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은 죄인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구원받기 이전에 살았던 삶처럼 죄인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우리는 에베소서 2장 1~3절을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는 세상의 풍속을 좇아서 살아던 사람이었습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육체의 욕심도 따라서 살았습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았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우리가 걸었던 길은 죄인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디도서 3장 3절 말씀입니다 .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우리는 전에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죄인의 길을 걸어갔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은 어떠한 길인가요?
하나님이 우리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각 개인마다 허락하신 길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코스 속에 다양함이 있습니다. 의인이 되는 것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이며 의인의 길은 의인 되신 주님의 길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인도를 받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것이란 레위기 2장에 나와 있는 소제를 드리는 것을 보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1절에 보면
고운 가루와 기름이 나옵니다.
고운가루는 가루가 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알갱이들이 부서져야 합니다. 자기가 부서져야 합니다
자기의 고집, 자기의 아집들을 버려야합니다.
덜 깨지고 , 덜 부서지면요. 부딫힘이 많고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기도할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때요 아버지의 뜻 대로 하옵소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앞에서 굴복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씀앞에서 굴복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은 성령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봉사는 성령님이 공급해주시는 힘으로 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고, 성령으로 봉사하고, 성령으로 기뻐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즉 성령의 임재하심을 느끼면서 살아야합니다.
유황을 놓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황의 뜻은 계시록 5장 8절 말씀을 보면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황은 곧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기도를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기도에 대한 응답을 얼마나 받고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하는데 달라고 하고 그것을 응답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십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해주려고 하는데 내가 그것을 참지 못하고 기도를 끝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도를 하고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기위해서 기다릴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13절에 소금을 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금은 녹음으로서 맛을 냅니다.
우리의 삶 속에 그리스도인의 삶이 녹아 내려져 야합니다.
그리고 소금은 변치 않음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다짐했던 초심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운가루가 되어야하고, 우리는 기름 붓고 유황을 태우면서 살아가야합니다.
그리고 소금으로서 우리를 나타내면서 살아야합니다.
그렇게 해서 죄인의 길에서 벗어나서 의인의 길을 들어서면서 지속적으로 살수 있는 것입니다.
4-1-3 오만한 자리에 앉니 아니한다
그리고 세 번째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
구원받은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이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입니다.
빌립보서 2장 5-8절 말씀을 보면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 영광 보좌를 버리고 사람의 천한 육체를 입고 이 세상까지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분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 본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종의 형체. 즉 나와 같이 되었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극악 무도한 죄인이 달려야할 사형 형틀인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나를 위해서 그 사형 형틀에 매달리신것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겸손의 길을 걸어가야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만한 자. 경멸하다, 모욕하다, 조롱하다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멸하는 자리 모욕하는 자리, 조롱하는 자리에 예전에는 앉아 있었지만,
지금은 구원받고 나서는요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까?
겸손의 반대는 무엇인가요? 교만이죠!
겸손은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이 겸손이라면 교만은 자기 위치를 벗어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있어야 할곳에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 위치를 벗어나 있습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겸손한 자처럼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처럼 겸손의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과 교제속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있어야 할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구원받기 전에 아주 마음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즉 교만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부터는 어떻게 변했나요. 더욱더 낮아지고 겸손한 자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도들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고 그 다음에는 모든 성도들 보다 더 지극히 작은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요
디모데전서 1장 15절 말씀 찾아 보겠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라고 이렇게 낮아졌습니다.
13절을 보면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모든 것이 주의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난 구원받은 자격이 없었고, 사도될 자격도 없는데 자기가 구원받은 것도 주의 은혜고 그리고 자기가 일꾼된 것도 순전히 주님의 은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니깐 죄인중에 괴수 같은 자기를 구원해준게 너무 감사한 거잖아요.
어떻습니까? 우리는 그렇지 않았나요?
그래서 복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거기서 틀림없이 구별되게 되어있고, 겸손의 위치에 처 할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4-2 구별된 삶
그래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에서 잘못된 생각에서 자기를 구별하고, 그 다음에 죄인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자기를 구별하고, 교만의 자리에서 자기를 구별해서 겸손의 자리에게 자기가 스스로 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죄가운데 구별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여러 가지 목적중에 하나가 무엇일까요?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죄에서 구별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신것입니다.
성경 레위기 20장 26절입니다.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이유는 그 중 한가지는 하나님의 소유로 삼기 위해서 건져 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건져 냈고 또한 그들을 죄에서 구별시키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 내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과 동일합니다.
우리를 이세상에서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를 아들 삼으시고, 나만 섬기라고 그리고 죄에서 구별된 삶을 살으라고 구원하신것입니다.
우리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무엇을 싫어 하십니까?
죄를 싫어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70년 포로 잡혀갈 때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 왕이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함께 운반해 갔습니다. 그리고 고레스 칙령으로 나중에 거기서 돌아오게 될 때 기구들도 같이 돌아오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중 제사장과 레위족속은 특별히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사람이잖아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신것입니다.
이사야 52장 11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떠날찌어다 떠날찌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찌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찌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찌어다
너희는 떠날찌어다 떠날찌어다 거기서 나오고 바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 거기서 철저하게 구별하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구별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
고린도후서 7장 1절 말씀 보겠습니다 .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우리에게 약속을 가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온전히 이룰수 있고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것에서 깨끗하게 될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이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찾아 보겠습니다.
고린도 후서 6장에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6장 16절에 보면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이렇게 말씀 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서 우리를 두루 행하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즉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이렇게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얼마나 확실한 약속의 말씀입니까.
우리가 가운데 거하고 계신다. 임마누엘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될려면 항상 생각해야 할 것 있습니다. 내안에 성령님이 계신다. 내안에 주님이 계신다라고 생각하면서 살 때 우리는 깨끗하게 죄와 구별되게 살 수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어느 TV프로그램을 보면 나를 관찰하는 예능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만약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면 만약 내 주위로 CCTV가 있다면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보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산다면 나의 삶이 어떻게 변할까요? 지금 이렇게 살지는 않겠죠.
방금 읽은 말씀이 우리가 가운데 거하시면 우리를 두루 행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인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임재함을 느끼면서 살아가야합니다. 그래야지 우리가 거룩해져 갈수 있습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죄와 구별되어 살기를 원하십니다.
깨끗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것입니다.
4-3 죄는 점점 확장되어 간다
시편 1편 1절에 주님은 복있는 사람은 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은 복있는 사람은 죄와 구별되어 사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1절을 보면은 죄의 확장성을 볼수 있습니다.
죄가 점점 확장됨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악인의 꾀라고 했잖아요. 악인의 꾀 생각으로 지은 죄 잖아요.
요한복음 13장을 보면 마귀가 벌써 가롯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잖아요!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에 마귀가 들어올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 잘못된 생각을 넣을 수 는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기질이 잇기 때문에 이 죄의 기질을 가진 본성은 죄를 향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이러한 생각을 넣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생각으로 틈이 벌어지면 바로 죄가 투입되서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죄가 기회를 타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악인의 꾀.. 생각이 들어와서 죄인의 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대한 생각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길에 설수 있을까요? 서지 않을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들어오고 우리는 그 길에 서게 되고. 그때 멈추면 좋은데. 그렇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되는 그러한 상황까지 되는 것입니다.
길에 서고 앉아버리고 눌러 앉아 버리는 그 상황 시편 1편을 1절을 보니깐 죄의 확장되는 모습을 볼수 있잖아요.
그레서 성경은 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피를리기까지 대항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보여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전쟁을 하듯이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군대에는 전투준비태세가 있습니다.
1단계부터 5단계가 있는데요
5단계는 평화 상태입니다. 이때는 주님이 오실때가 죄로부터 평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4단계는 더블테이크라고 해서 대비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태입니다.
항상 죄에 대해서 대비하고 있어야합니다. 언제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면서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잠시 기회가 보인다 그러면 죄는 그 틈으로 들어옵니다.
그때 발령하는게
3단계 라운드 하우스입니다. 이때 군인들은 휴가가 통제 됩니다. 휴가 나가 있는 군인들은 다 들어와야 합니다.
왜냐 이제 전쟁을 대비하기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싸움니깐 죄와 싸우고 있습니다. 틈으로 들어올 때 죄인의 길에 서게 될 때.
우리는 집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가 거할 집이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로 들어와야합니다. 왜냐 혼자는 이길수 없으니깐요! 같이 싸워달라고 집으로 들어와야합니다.
그다음 단계는 2단계입니다. 페스트 페이스입니다. 이 뜻은 속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때 탄약이 지급이 됩니다. 이제 정말 싸우기 일보 직전인거죠.
우리는 집으로 교회로 와서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합니까? 마귀와 싸울려면 무엇이 있어야합니까.
예수님은 무엇으로 마귀를 이겼습니까?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먹어야합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무장해야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가 1단계입니다. 칵기드 피스톨입니다. 권총을 장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제 전쟁인것입니다. 마귀가 피흘리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2단계에 전신갑주를 입었기 때문에
이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날것입니다. 그러니깐 이제는 피흘리면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기전에 우리는 돌아와야합니다.
피흘리기 까지 싸우기 전에 우리는 죄인의 길.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4단계에서 내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기회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력 해야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1절을 보면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호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처음 생각부터 단호한 태도를 가져야합니다.
우리가 생각을 받아 드리면 그다음에는 길에 서있고 그 다음에 자리에 앉게 되거든요! 그러니깐 작은 것부터 용납하면 않됩니다.
4-3-1 다윗
작은 것을 용납해서 큰 죄를 지었던 인물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유명한 분입니다.
네 다윗입니다.
사무엘하 11장 2-5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다윗이 사자를 보내어 저를 자기에게로 데려 오게 하고 저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여인이 잉태하매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잉태하였나이다 하니라
이 말씀을 보면 죄의 확장성을 볼수 있죠!
2절에 보면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1절에 보면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인데 다윗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루살렘이 있는거 보세요!
그리고 원래 언제 일어나야 합니까? 아침에 일어나야 하죠! 그런데요 언제 일어 났어요! 저녁때에 일어났다는 것은 다위의 게으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은 게으름으로 시작 해서요 왕궁 지붕위에서 거닐고 있죠!
이것이 문제인것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은 전쟁중인데. 다윗은 한가하게 늦게 일어나서 왕궁 지붕위를 거닐고 있네요! 지금 이상태를 보니깐 문제로 보이나요. 아니면 그럴수도 있지 그렇게 보이시나요!
다윗은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게으름도 있고 자기가 해야할 일 임무도 바르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가하게 거닐다가 이제 보게 됩니다. 그리고 누굴 보게 됩니까. 목욕하고 있는 여인을 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보면 마을에서 보면 높은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왕궁 지붕위를 거닐면 아래 마을들이 한눈에 보인다고 합니다. 거닐다가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목욕하는 여인을 본거에요. 그리고 눈을 돌렸어야 하는데.. 내 마음속에 전투준비태세를 발동을 해야 하는데 이미 게으르고 마음이 무뎌져 버렸어요. 그래서 발동을 하지 못하고 보고 데려오게 하고 동침까지 가는 죄의 확장되었습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임심을 하게 된것입니다. 이제 왕이 되어서 큰일 났습니다. 왜냐하면 남의 여인과 동침하면 돌맞어서 죽거든요!
이제 큰일이 난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숨기기 위해서 열심히 전쟁 중이고 충성된 신하 우리아를 부른거에요.
불러서 그 아내와 동침하라고 집으로 돌려 보내요. 그런데요. 술을 먹어요 들어가지를 않아요..
왜냐 지금 전쟁중이니깐. 편희 쉬지 못하는거에요.. 말을 듣지 않자 다윗은 우리야를 어떻게 했습니까?
전쟁 하는 곳 주에서 가장 싸움이 맹렬한곳 전방에 보내서 죽게 만듭니다.
다윗이 처음에는 늦게 일어나서 왕궁을 거닐었어요! 뭐 거기까지는 그럴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목욕하는 여인을 보았어요. 그때 내 마음에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나머지 데리고 오고 그리고 동침하고 그리고 아이를 갖자 살인교사죄까지 짓게되는 죄를 확장해서 지어가잖아요!
마귀는 그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있는 사람은.. 죄에서 구별해 가는 것을 주님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 삼손입니다.
4-3-2 삼손
삼손은 들리라에게 자기의 힘의 비밀이 머리털에게 있다고 말하고 머리털이 깍이면 나실인은 그 하나님을 향한 서원을 져버리게 되는 거잖아요!
일종 믿음을 져버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블레셋 여인하고 결혼했다가 그것도 하나님이 금하신 것인 이방여인과 결혼을 한거잖아요 그 다음에는 기생의 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들리라를 가까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들리라가 소중한 존재가 아니었을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요 들리라가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서 하나님 옆자리를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계속 힘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알려주지 않으니깐 계속 조르게 되잖아요 처음에는 그냥저냥 넘겼는데. 나중에는 삼손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죽을지경이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죽을 지경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과 들릴라 둘 중 하나는 포기 해야하는데 포기를 못하겠다라는 말이잖아요!
믿음도 포기 못하고 들리라도 포기 못하고! 그런데 결국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보다 들리라를 선택을 했잖아요! 믿음을 져버렸잖아요. 삼손이 작은 것을 허락하니깐 나중에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4-3-3 솔로몬
솔로몬도 비슷합니다. 솔로몬이 많은 여인들과 결혼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많은 여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솔로몬은 여인은 열왕기상 11장을 보면 후비가 700명이고 빈장이 300명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즉 처와 첩을 합치면 1000명이 솔로몬의 여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솔로몬의 여인을 처음에는 사랑해서 들린게 아닙니다. 정략적 결혼을 한거에요.
그런데요. 11장을 보면요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 했다고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여인을 사랑하게 되니깐요 말년에 결국 그 이방여인이 섬기고 있는 우상을 받아드리고 우상의 신전을 세웠잖아요. 그렇게 점진적으로 죄가 확장해 나가잖아요! 처음부터 정략적 결이라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하는데.
많은 이방여인을 받아 드림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하나님을 버리는데 까지 나아가는 죄에 빠지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합니다. 그 생각이 들어오면 떨쳐 내야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르틴 루터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새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우리가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도록 나두지 않고 막을 수는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죄를 더 짓기 전에 그 전에 차단을 해야합니다 .
그렇지 않으면 주님은 더 큰 징계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호세아 8장 7절 말씀처럼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다.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죄는 처음부터 조그만 것부터 그것을 생각없이 받아 드립니다. 그런데요 계속 받아 드리다 보면 나중에 자기 멀리 광풍에 밀려 멀리 가 있는 것 조차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죄는 싸워야 합니다. 잠언 5장 22절 말씀처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처음에는 자기의 꾀에 자기의 죄에 하나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그런데요. 그것을 계속적으로 반복을 하고 습관적을 하게 되면요 그 죄의 줄에 매이게 됩니다. 그 죄가 나를 꽁꽁 옭아매게 됩니다.
습관적으로 하다보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전에 바람이 불기 전에 걸리기 전에 돌이켜야합니다. 테프콘 4를 발동해서 계속 관찰하고 죄가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지 들어오지 않은지 항상 깨어 있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우리가 죄에서 구별될 수 있습니다.
5.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는자-묵상
다시 본문 말씀 돌아가겠습니다
시편 1편 2절입니다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기서 여호와의 율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울법을 즐거워 하는데 앞에 오직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오직이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거워 하는 것이 다양하잖아요!
어떤 사람은 먹는 것으로 즐거움을 체우잖아요. 맛있는 것을 먹을려고 팔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쇼핑하고 돈을 쓰는 것을 즐거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만 나면 쇼핑하러가고..
뭘 사지는 않지만 윈도우 쇼핑이라고 하죠. 이천에는 롯데 아울렛과 여주 아울렛이 있는데요.
평일날 휴가 내서 가보면요 왜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지요! 정말 쇼핑하러 많이 오십니다.
그 쇼핑으로 즐거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운동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요즘 많죠.
여러 가지 본인이 즐기는 운동을 즐겁게 합니다. 프로선수들이 아닌데 클럽에 가입해서 먼곳 까지 가서 운동하고 오고 그렇게 자기의 시간을 운동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일에 미쳐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의 일에 생애를 다 바치는 사람들이 있잖요!
이 세상 사람들은 다양한 것을 좋아 하지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요. 무엇을 즐거워 합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이렇게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 보다 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이 가장 즐거워 하는 것 중 하나가 말씀 이잖아요! 말씀을 묵상하는 데 거기에 시간을 투자 하고 할애를 많이 하시잖아요! 그렇죠!
여기서 묵상을 한다고 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것또한 많이들 하더라고요. 그것은 명상이라는 것을 하는데요.
묵상과 명상은 개념자체가 다릅니다.
명상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비우려고 하는게 명상입니다.
그런데 묵상은요 하난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채우는 것이 묵상이지 않습니까? 묵상하고 명상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은 묵상하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잠언 7장 3절에 보면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담는 것입니다. 암송을 하고 그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그것을 내 삶의 적용도 해보고요 그렇게 해야지 마음판에 담는 것입니다. 그 마음판에 담는 것이 있어야지 나의 삶을 변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삭은 묵상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창세기 24장 63절입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이삭에 저물 때에 들에 나가서 묵상을 하다가 누굴을 봅니까 약대들을 보게 된것입니다.
이 장면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맞이하기 전입니다 .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삭의 아내를 찾기위해서 하란까지 보냈습니다. 거기서 합당한 여인 리브가를 데리고 오는 중에 이삭이 그 약대들을 보게 된것입니다.
성경에 이삭이 딱 한번 묵상해서 여기에다가 적어 두셨을까요? 아닙니다. 이삭은 평소에도 묵상을 많이 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니깐 습관적으로 묵상을 했기 때문에 이곳 창세기에 묵상 하다가 라는 단어를 써 놓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반복적인 것을 항상 습관적인 것을 기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1장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
주야로 낮과 밤으로 그 것을 묵상하고 묵상하는 사람은 그 말씀이 마음판에 새겨 지니깐 우리의 삶이 변하게 되어 있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성경 66권을 주셨습니다. 이 많은 것을 묵상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 97-100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사랑을 하니깐 어떻게 해요 종일 묵상하고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은지 알려면 지금 내손에 무엇이 잡혀 있는지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무슨일을 하기 전에 말씀을 읽었던가. 한 구절이라도 생각을 해봤었나?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은 젤 나중의 일인가? 시간이 있으면 읽고 시간이 없으면 넘기는 그런 액세서리이진 아닌가 우리 한번 생가해 봐야합니다.
나의 성경은 나의 액세서리입니까? 아니면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나에게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까?
이 말을 한번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주야로 묵상하는 자. 항상 묵상한다는 뜻도 되지만.
주 낮에는 빛도 찾아오고 우리에게 밤이라는것도 찾아 오잖아요
시편 119편 23절을 보면
방백들도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나이다
나를 훼방하여도 나는 묵상을 한다고 다윗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
다윗의 삶은 10년간 사울에게 쫓겨 다녔습니다. 나와 사망사이 한걸음 뿐이라고 말할정도로 사망과 가까이 지냈던 분이 었습니다. 얼마나 큰 고통, 환란, 역경이 있겠습니까. 그때에도 다윗은 주의 율례를 묵상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묵상을 하는데 묵상의 대상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서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묵상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묵상이 있습니다.
시편 145편 5절입니다.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주의 존귀와 영광스러운 위엄은 주님 자신에 대한 묵상입니다.
그리고 주의 기사는 주님이 하신일에 대한 묵상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묵상을 할 때 이 두가지를 생각하고 묵상을 하면 더 깊은 묵상이 될것입니다.
우리가 묵상이 무엇입니까?
묵상은 새김질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소가 새김질을 합니다. 먼저 풀을 먹으면 그것을 위에 저장을 하고 다시 입을 꺼내어서 다시 싶고 그것을 다시 씹는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도 성경 말씀을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우리가 주일 말씀과 수요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끝내버리면 그것이 묵상이 될까요? 않됩니다. 그냥 그 말씀들은 흘러 가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가 묵상할수 있는 훌륭한 재료를 얻는것입니다.
그 재료를 가지고 우리가 요리를 해야합니다. 내 상황에 적용도 해보고요 그렇게 했을 때 진정한 묵상이 되고 그 말씀이 나의 삶의 변화를 줄수 있는것입니다.
6. 열매를 맺게 된다
우리는 죄에서 구별이 되고 묵상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결과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 3절을 보겠습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서 저는 누굴 가리깁니까? 저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죄에서 1절에 구별된 사람 그리고 2절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 그 사람은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특징은 시절 계절을 좇아서 과실을 맺으며 계절에 따라서 열매를 맺고, 그리고 그 잎사귀는 마르지 않는 것처럼 청청한 상록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행사가 그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 구원받은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다가 비유하고 있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했으니깐 누군가가 그쪽에 심어 놓으신거잖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이세상에서 구별해서 구원하셔서 심판과 멸망 가운데서 건지셔서 우리를 옮겨 놓으신거잖아요
마태복음 15장 13절 말씀을 보면은요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심으신 것은 결단코 뽑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시냇가 물가에다가 심으신것입니다.
에레미야 17장 8절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라고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6절의 운명이었습니다
사막의 떨기나무였습니다. 그리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우리는 심기워져 있었습니다.
즉 심판과 멸망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메마른 땅에 있었습니다. 이 사막은 세상을 가리킵니다. 세상은 마음이 메말라 있습니다.
불안과 갈등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항상 불만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 마음이 메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마음은 한없이 메말라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만족을 느끼는 대신에 세상 거짓으로 죄 짓는 즐거움으로 이 세상 것으로 자기 영혼을 달래보려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세상의 갈등과 괴로움이 있는 사람 죽어서도 그 갈등과 괴로움 고통속에 들어갈 것입니다.
부자가 음부에 들어가서 무엇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이땅에 영혼의 즐거움이 없이 갈등과 괴로움 속에 살던 사람은 영원한 고통 속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7절에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주님 안에 거하고 있을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받았습니다. 이땅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모든 신령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땅에 사는 동안에도 육신의 필요한 것도 하나님이 적당히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십니까?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의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우리의 소망인 것입니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물가에 심기운 나무이기에 그 뿌리는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하지 않죠.
왜냐 뿌리가 강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엘림. 오아시스 주변에는 나무가 있는데요 그곳 나무는 무슨 색입니까? 네 다 푸르고 청청합니다. 그렇죠. 왜 그렇습니다. 그 비가 많이 오지 않은 더위가 오는 지역인데 왜 그렇습니까? 뿌리가 강변으로 뻗쳐 있거든요. 우리도 같습니다.
우리는 메마른 땅에 사는 것 같지만 우리 뿌리는 하나님의 생명수 강에 뻗히고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사랑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 은혜속에서 신앙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자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속에서 영양분을 먹고 사랑을 먹으면서 잘 자라듯이 우리는 이 교회에 거하면서 영양분과 사랑을 먹고 자라야합니다. 우리의 뿌리를 그래서 주님께 뻗어서 풍성한 은혜를 계속 받아야합니다.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은혜를 받으면서 하는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다. 나의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이 자라게 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교회안에 주님안에 거하고 있을 때 우리가 자라는 것입니다.
8절 말씀 처음 말씀이 정말 진리인것입니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우리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인 것입니다.
그러면 심기운 나무이니깐 그 나무는 주인이 있는 나무 입니까 그냥 혼자 자생하는 나무 입니까?
주인이 있는 나무 인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6장 19-20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영혼과 육체를 다 산바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인은 주님이신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누구 꺼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내꺼하자 그렇게 말씀하신 것 못들으셨어요.
방금 고린도 전서 말씀에 말씀하시잖아요. 내꺼하자라고요..
우리는 주님의 소유입니다.
심겨진 나무이기 때문에 다른 곳 저 사막에서 옮겨 심은 나무이기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우리는 뿌리를 내리는 일을 해야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몸된 교회안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무엇을 뿌리를 내릴수 있을까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교제만 왔다갔다 하면 뿌리를 내릴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골로새서 2장 6-7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참으로 주로 받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깁니까? 그 안에서 행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제일 먼저 해야 할것이 그 안에서 뿌리를 박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지 믿음에 굳게 설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지 감사함이 넘치게 생활할 수 있는것입니다
어떻게 해야지 그 안에서 뿌리를 박을수 있을까요.
무엇으로 박을수 있을까요? 성경에 뿌리를 박을수 있는 방법이 나와있는데요.!
삽으로 박을까요. 호미로 박을까요.
뿌리는 성경에 사랑으로 박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무엇을 뿌리를 받는 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랑으로 뿌리를 받는 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뿌리를 박으면서 살아야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크면 클스록 더욱더 커 갈수록 우리는 더 깊게 박힐수 있는것입니다.
뿌리가 깊게 박히고 그리고 그 뿌리는 강변으로 넓게 펼쳐져 있으면 어떤 것을 계속 공급을 받을까요.
주님이 주신 사랑과 은혜와 감사를 계속 공급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아무 때나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니잖아요 시절을 좇아서 과실을 맺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실을 맺힐 시기가 되어야지 열매를 맺는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주님이 물가에 심겨 놓아기 때문에 시냇가에 심기워 놓았기 때문에 과실을 맺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실을 맺지 않으면 그래서 다시 돌아보라고 말씀하신것입니다. 물가에 있는데 열매가 없다 그것은 내가 정말 물가에 있는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도 맺고요, 그리고 전도의 열매도 맺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 하신대로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 해야합니다.
섣부르게 왜 내가 열매가 없지하고 포기 하고 있으면 않됩니다. 난 왜 전도의 열매가 없지 왜 나는 사랑이 없지 그렇게 자신을 낙담하고 있으면 않됩니다. 물론 구원을 받은 형제 자매님의 조건에서 말씀을 드리는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치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말씀에도 때가 이르매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열매는 때가 있는것입니다. 영혼을 전도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 일 그일을 하다보면 얼른 얼른 빨리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않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피곤하지 아니하면을 다른 번역을 보면요 포기하지 아니하면 그 말이거든요.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포기 하지 않고 끈질기게 주님께 매달리면 때가 되면 주님께서 열매를 맺히게 한다는 겁니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록수입니다. 늘 푸르고 생기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40장 31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힘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힘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봉사할 때 보면 힘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주님이 주신 사랑의 힘으로 봉사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기드온 300용사들이 비록 비곤하나 따르며.. 이렇게 사사기에 쓰여져 있잖아요. 우린에게 힘이 있습니다. 육적으로 피곤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주신 사랑의 힘. 말씀의 힘으로 우리가 더욱 힘차게 주님을 위해서 나아갈수 있잖아요!
열왕기상 18장 19절을 보면 갈멜산에서 엘리야 하고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대결하는 내용이 나오잖아요! 어떻습니까?
엘리야의 힘이 느껴지잖아요. 확실한 증인의 말은 뭐가 있다고요 힘이 있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도의 응답으로 불이 내려와서 모든 재물을 태우고 450명 바알선지자가 다 죽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리고 그 승리 이후에 하나님은 비가 오게 하셨고 그리고 그 다음에 엘리야가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다고 성경에 나와 있잖아요. 그 대결이후에 갈멜산에서 이스르엘로 돌아가는 길이 약 25km 되는 거리였습니다. 그런데요 46절에 아합의 마차 앞을 달려 갔다고 성경에 쓰여져 있습니다. 뭐 슈퍼맨도 아니고요.. 그렇죠.
이것은 누구의 힘입니까. 자기의 힘입니까? 아니잖아요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잖아요.
구원받은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우리의 행사가 형통하다 이말씀을 오해 하시면 않됩니다.
다 형통한다고 하니깐, 고통과 고난과 역경이 없다 어려움이 없다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에레미야 17장 8절 찾았었던 말씀인데 다시 보겠습니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물가에 심기운 나무 즉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강변에 뻗치면서 살고 있지만은 더위가 올수 있고, 가무는 해가 올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무엇이냐면 이러한 어려움 고통, 고난이 나에게 찾아오지만 나에게는 주님이 함께 계시니깐. 그 고난을 이겨나갈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물가에 주님안에 있을 때 이러한 것들을 이겨낼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갈수 있는 힘이 있는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주신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것입니다. 주님안에 있을 때 그것을 받을수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간증을 듣습니다. 간증을 듣다보면 아 너무 힘들겠다 나같으면 어떻게 그 상황에서 살지 난 못살 것 같은데.. 그러한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몇일 지나고 승리의 간증들을 들을 때가 있잖아요. 얼마나 하나님이 그 형제 혹은 자매에게 주님이 주신 힘과 간섭이 있음을 느끼잖아요!
[결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반듯이 주님안에 거하고 시편 1편 1-2절처럼 행하면.
즉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면.. 죄에 대해서 구별하면서 살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을 잘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면서 살면 3절이 이루어지는것입니다. 과실을 맺으면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나에게 역경과 고난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주님이 함께하심을 느끼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 모든 것이 형통의 길이라는 것을 시편 1편 1-3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방금 같이 상고해본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가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집에 돌아 가셔서 이말씀을 가지고 곰곰이 묵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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