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맘몬에서 예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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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2~10
여러분, 혹시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 말고 돈을 주제로 한 <돈기도문>이라고 아십니까?
내용이 이렇습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돈기도문
지갑 또는 계좌에 계신 ‘돈님’이시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돈이 판치는 세상이 임하였사오니
현금이 조폐공사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용돈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나에게 쓰고도 남는 현금을 주옵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돈 빌린 친구를 잊지 아니함같이
내가 진 빚은 잊게 하옵시고
우리를 쪼들리게 마옵시고 다만 잔액부족에서 구하옵소서.
자본주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돈님’께만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하마터면 ‘아멘’할 뻔했습니다. 주기도문을 패러디한 ‘돈기도문’이라고는 하지만, 돈을 단순한 화폐 정도가 아니라, 신으로 여기는 세상을 꼬집는 글 아닙니까? 읽으면서도 마음이 씁쓸한 이유는 오늘날 현실을 보면 결코 과장하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돈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심지어 생명을 해치는 일들도 많기 때문이죠. 이런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시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성공과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SNS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슈퍼카와 명품들로 치장해서 도배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부러움을 담아 댓글을 남기기도 하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야말로 돈을 신으로 의지하는 것이죠.
심지어 이런 모습은 꼭 어른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초등학생 중에는 친구들끼리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에 따라, 얼마나 넓은 곳에 사는지에 따라 편을 가르고 따돌리는 일들이 실제로 있다고 합니다. 십 대들 중에는 인터넷 불법도박에 빠지는 이들이 늘어난다고도 하고요. 심지어 “10억 원을 준다면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은가?”라는 설문에 고등학생 57%가 ‘그럴 수 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돈의 힘과 매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죄의 무서움이나 전과자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럴 거라 생각을 하면서도 이런 아이들이 성장해 이끌어가는 미래 사회는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돈, 재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목사가 돈이나 재정에 관한 말을 한다고 하면 아마 “목사님은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돈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더 자신 있게 설교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원리를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늘 설교는 여러분들이 듣고 싶은 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도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보다 돈에 관한 말씀을 더 많이 하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횟수로 따져보면 ‘믿음’이나 ‘기도’라는 용어보다 ‘재물’이나 ‘돈’이라는 단어가 두 배나 더 많다고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돈은 어떻게 다루는지가 신앙적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성경은 돈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라고 말하는지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성경에서는 돈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성경의 몇 구절을 보려고 하는데요. 돈과 나 사이를 먼저 정립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돈에 대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살펴봐야 하는데요. 먼저 긍정적인 면입니다. 마태복음 6:33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에서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의식주(衣食住)’를 말합니다. 옷 음식 집(아파트).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의식주를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가치 중에 하나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이 의식주와 같은 선상에 놓여져 있어요. 그만큼 입고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전도서 10:19에는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새번역 성경으로 보니까요. ‘돈은 만사를 해결한다’고 합니다. 성경은 돈이 만사를 해결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해 볼 수가 있는 것이죠.
또 그런가하면 이사야 45장에는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축복하시는 말씀이 나오는데요. 3절 말씀이 이렇습니다.
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보화와 숨은 재물을 주어 축복하시겠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가 뭔가 봤더니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보화와 재물로 축복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잘 아는 빌립보서 4:19
19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것을 채우시리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재정을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성경에서 말하는 재정에 대한 대전제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주심을 믿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돈의 부정적인 면은 무엇일까요? 잠언 30:8-9
8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이건 어쩌라는 말씀입니까? 그 다음에 답이 나오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이 잠언 말씀은 돈 즉, ’부‘에 대해 내가 교만해질 수 있음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교만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베이컨은 ’돈은 최상의 종이고 최악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내가 돈의 주인이 되면 좋지만, 내가 종이 되면 내가 돈에 끌려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잠언의 이 말씀은, 돈과 나의 위치를 정확히 하라는 것입니다. 돈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왜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가? 가끔 이런 질문을 하라는 것이죠.
돈의 부정적인 면에 대한 말씀으로 우리가 잘 아는 마태복음 19장에 있는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마19:23)라는 말씀을 잘 해석해야 하는데요. 여러분,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그리스도인들은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사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시에 매우 파격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부자가 천국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 사람들의 오해를 예수님께서 바로 잡아 주신 건데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부자냐, 가난하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 것에 달려 있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돈에는 중독성이 있는데요.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더 많이 가지면 더욱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하는 게 돈 아닙니까? 돈은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쟁 상대가 사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귀 사탄은 하나님께 대적한 아주 강력한 영적 존재이니까요.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의 경쟁 상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십자가에서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대적하고 물리치면 됩니다.
그런데 사탄보다 더 강력한 경쟁 상대가 있는데 바로 ’재물‘ 즉 ’맘몬‘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은 경쟁 상대로 생각하시지 않는데, 맘몬에 대해서는 그 위험성을 각성시켜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6:13 후반부를 보세요.
13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맘몬‘이라는 단어가 아랍어로 ’믿는다‘는 뜻인 걸 아셨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돈’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에는 중독성만큼이나 위험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10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고 하십니다. 언제나 이 뿌리가 문제죠. 화단을 심기 위해 작은 나무 하나를 뽑으려는데 그 뿌리가 넓게 펼쳐져 있고 심지어 옆에 큰 나무의 뿌리와 엉켜 있다면, 결국은 다 파헤쳐야 하는 형국 아닙니까? 돈이라는 존재는 스멀스멀 뿌리를 내려서 나를 비참하게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안 해보셨나요? ‘누구는 잘 벌고 잘 쓰는데, 왜 나는 못 벌고 이렇게 못 쓰는 걸까?’ 이 수입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신앙인들이 가질 수 있는 오해 중의 하나가 ‘내가 신앙생활을 잘하면 돈을 잘 벌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한창 부흥을 맛봤던 6, 70년대 우리 부모님 세대가 먹고살기 어려울 때는 이런 말이 통했던 것도 같습니다. 예수 믿으면 물질의 복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내가 돈을 잘 버는 게 신앙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지나가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재정의 어려움을 겪게 하실 때, 내가 어떤 신앙의 모습인가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재정의 어려움은 꼭 자연재해 같은 것입니다.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그런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반응하냐에 대한 것이죠.
누구나 인생의 Up & Down이 있기 때문에 돈을 많이 소유했을 때 신앙을 지키는 게 더 어렵기만 합니다. 잘될 때보다 안 될 때가 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게 쉬울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돈은 있고 없고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내가 돈이 있을 때 어떤 사람이고 내가 돈이 없을 때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억에 남는 집사님이 계시는데요. 제가 부목사로 있었던 교회 근처에서 작은 식당을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다들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코로나로 한창 어려울 때, 그분께 “집사님, 어려운 때인데 어떡해요? 잘 견디셔야 할텐데요.”라고 했거든요.
이분이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목사님, 신앙인이 잘나갈 때보다 어려울 때 신앙이 진짜 필요한 거죠” 그러시는 거예요. 저는 그냥 어려우실 것 같으니까 “어떡해요” 하면서 평범한 말을 건넨 건데, 그분이 오히려 목사님처럼 대답을 하셨습니다.
내가 잘 나갈 때 찾아오는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삶이 어려워질 때는 유혹보다 고난이 더 찾아오는 법이죠. 과연 성도로서 어떤 것이 더 이기기가 힘들까요? 유혹일까요? 고난일까요? 우리는 유혹을 더 이기기가 힘듭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기독교는 고난에 대해서는 더 강하기만 합니다. 바울을 보세요. “약할 때 강함이라” 고난을 넉넉히 이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아니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 바치려고 했지만, 결국 일부를 감추고 전부라고 속였습니다. 돈의 유혹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립니다만, 돈은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니고 돈이 악은 아닙니다. 다만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돈을 무조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점점 더 확장되어 가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순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부자이기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결국 예수님의 그 공개선언을 뒤엎고 하나님 나라를 살게 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누가복음 19:2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의 이름은 ‘삭개오’이며 사회적 직함은 ‘세리장’인데, 동시에 그를 수식하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부자’
이 삭개오라는 세리장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는 여러분들도 그 내용을 잘 아실 테니까 더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로마제국의 앞잡이로서 동족들을 못살게 굴었던 세리들 중에서도 세리장이었으니 얼마나 미움을 받았겠습니까?
여러분, ‘삭개오’의 이름의 뜻을 아십니까? 아이러니하게도요. ‘순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사람이 순수하다기보다는 삭개오가 율법적으로나 혈통적으로 ‘순수 유대인’이라는 의미로 ‘순수하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그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유대인의 가치와 율법을 지켜며 순수한 신앙을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가 살던 당대의 현실이 어땠나요? 유대인의 순수함이라는 이름의 뜻을 내놓기에는 시대가 너무 잔인하기만 했습니다.
아마 삭개오도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향한 여러 소망을 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마주한 삶은 몹시 보잘것없고 구차했던 것이죠. 그에 반해 로마제국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거예요. 아무리 율법적 순수함을 지키려고 한들,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죠. 맘몬, 돈을 주인으로 믿어야 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토록 원하던 부자가 되었지만, 큰돈을 벌려는 욕심에 인간성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삭개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뿐인데 동족들로부터 “매국노”라고 부르며 상종도 해주지 않았으니까요. 부자가 되면 복을 받은 걸로 생각했을 텐데, 정작 부자가 되었는데 행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삭개오’ 유대인의 순수 혈통이라는 뜻을 가진 이 남자는 이름 그대로 하나님과 율법을 모르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지금껏 무시하고 살았을 뿐이죠. 어쩌면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신앙의 양심 때문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 예수라는 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일 거라는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 그 예수님께서 자신이 살던 여리고에 들어오시던 날, 그는 앞뒤 안 가리고 그분을 보기 위해 뛰쳐나갔습니다. 키가 작아 볼 수 없게 되자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사회적 위신이나 명예 그런 것은 안중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삭개오는 지금 예수님이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죠. 그는 부자였지만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렇게 열망하던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누가복음 19:5
5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모두가 ‘매국노’ ‘나쁜 놈’이라고 부를 때, 예수님은 그를 ‘순수한 사람’ 삭개오라고 부르시면서 그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간다고 수군거리며 논란을 일으키려고 하지만, 삭개오에게는 이미 엄청나게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6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즐거워하며’를 새번역 성경에는 ‘기쁨’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불안과 근심, 고독이 전부였던 그였기에 언제 웃었는지조차도 기억조차 나질 않을 텐데 그의 내면이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삭개오는 모두가 들릴법한 큰 소리로 이렇게 선언합니다. 8절 합독
8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율법에 따르면,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그 손해액과 더불어 20%의 추가 변상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합니다. 충동적으로 그런 게 아닙니다. ‘네 배’는 율법에서 정한 보상에 대한 율법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배상률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율법이 말하는 최대치를 지키겠다고 스스로 선언한 것 아닙니까? 더 이상 돈에 지배받지 않고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이죠.
그리고 제가 삭개오의 말 중에 눈여겨 본 표현이 바로 이 표현입니다. “주여!” 새번역 성경에는 “주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가리켜 자신의 ‘주인’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주인이기 전에는 돈이 주인이고 로마가 주인이었던 사람 아닙니까? 그래도 삭개오는요. 자신의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을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도 순수한 유대인이었으니까요. 오늘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교회 생활도 잘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을 뿐인데, 이 한마디가 그를 전인격적으로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주님’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이 한 마디로 인해 그는 그동안 주인 삼은 돈과 부자라는 정체성을 내려놓고, 이제 하나님만 주인 삼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정체성이 전환되었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에 따른 행동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삭개오 이야기 앞에 즉, 누가복음 18장에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며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예수님께서요. 십계명에 있는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십계명 중 5~9계명까지를 다 열거하시거든요. 그리고 그 부자 청년에게 “네가 계명을 아나니”(눅18:20a)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청년은 “다 지켰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이 보실 때 그는 계명을 모두 아는 사람이었지 지키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결정적으로 어떻게 확인했는가? 누가복음 18:22
22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에 부자 청년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23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아! 이제야 그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긴 부자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을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맘몬은 그에게 있어서 신 그 자체였기 때문이죠.
반면에 삭개오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향을 향해 그가 순수한 유대인 혈통으로서 알고 있는 율법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 아닙니까? 그는 알고만 있는 방향이 아닌, 지키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돈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닌, 돈을 선한 도구로 삼는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돈에 대해 어떤 말도 언급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졌던 것입니다. 두 주인이 아닌, 오직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깨달은 게 있는데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런 설교를 들었다고 해서 돈을 멀리하거나 당장 자선사업가가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예수님을 나의 집 안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삭개오’ ‘순수한 자’라고 부르시며 찾으시는 그 주님 앞에 반응하며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돈과 예수님 중에 누가 주인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삭개오와 같이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자유해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돈에 관한 말씀을 정리하면서요. 세 가지의 적용을 함께 나누길 원하는데요.
그리스도인으로서 돈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 첫 번째로,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기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눅16:13b)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맘몬이 ‘믿는다’라는 뜻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즉 돈은 당시에도 화폐이자 믿음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돈의 주인이 결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 두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불필요하게 과소비를 하거나 큰 빚을 져서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은요. 우리에게 돈을 잘 모으는 법을 가르쳐 주질 않고 오히려 돈을 잘 쓰는 방법만 가르쳐 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래서 존 크리소스톰이라는 분은 “진정한 부자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주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을 정죄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라는 것이죠.
헌금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 교우들께서 헌금에 대해 세 가지를 마음에 두셨으면 좋겠는데요.
➀ 우리의 것을 기부하는 게 헌금이 아닙니다.
➁ 하나님께 복을 받기 위해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➂ 교회를 다니기 위한 회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헌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중에 일부를 떼어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이 바로 헌금입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수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십 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한 달간, 키즈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비록 아르바이트였지만 성인이 되어 처음 번 돈이니 제가 십일조를 하라고 했어요. 37만 원이었거든요. 3만 7천 원을 십일조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 아이가 가만히 있더니 그게 아깝다는 거예요.
제가 그때 아무리 목사 아들이더라도 나의 모든 소득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모르면 ‘돈 3만 7천 원이 아까워 십일조를 못 하는구나!’ 하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돈을 다루는 것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떤 변화가 있으십니까? 돈과 우리의 신앙에는 어떤 선순환 같은 게 필요합니다. 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한다면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또 채워주실 것이다. 이런 생각의 선순환이 필요합니다.
그런가하면 그리스도인으로 돈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 두 번째는, 돈을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용하기입니다.
누가복음 12:33에서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헌금을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 돈을 벌고,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돈을 벌고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로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사는 삶’을 피해야 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돈에는 중독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확천금을 노리거나 도박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액수의 돈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 돈을 벌고 사용하는 마음의 중심을 원하십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돈으로 누군가를 섬기기입니다.
김병삼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만나교회는 <한셈치고헌금>이라는 게 있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신셈 치고’ ‘점심 한 끼 사 먹은 셈 치고’ 얼마 되지 않지만, 그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금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25:40에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주위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헌금 중에 중요한 헌금이 바로 이 구제헌금인데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최대가 아닌, 최소의 헌금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본당 입구에 사랑의 모금함이 있지 않습니까? 최소의 헌금을 통해 연말에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에 사용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입니까? 부자가 되어 많이 기부하는 것도 좋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누군가를 섬기는 일이라는 것이죠.
나눔도 내가 가진 게 있어야 하고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눔을 하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을 주시는 게 축복이 아니라, 이 돈을 나눔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하신 것이 바로 진정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린 자녀들을 한 번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어린 손주들을 보세요. 자녀들은요. 돈이 없어도 행복합니다. 오히려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는 생각은 다 어른들이 심어주는 생각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한 삭개오처럼요. 돈에 좌지우지되지 않고도 진정으로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기도문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를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일용할 양식 때문에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당장 오늘 저녁에 먹을 것이 없어서 기도하시는 분 계십니까?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으면 시켜 먹으면 되잖아요?
예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1년 먹을 양식, 5년 먹을 양식, 내가 은퇴 후에 100세까지 먹을 양식을 걱정하는 게 우리들 아닙니까?
만약 정말 오늘 먹을 양식조차 없다면 하나님께 항의해도 될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 가르쳐 주셨잖아요? ‘하나님 이게 뭡니까? 약속이 틀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하나님께 항의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만나를 매일 내려주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1년 치를 미리 줘버리면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나를 의존하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매일 만나를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우리 집 냉장고에 먹을 양식이 있다면 우리는 풍성한 것입니다. 나에게 재물을 주시지 않는다고 한숨이 나오는 분들이 혹시 계십니까? 그래서 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될 테니까요.
삭개오처럼 돈이 주인이 아닌, 맘몬에서 예수께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재정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우리 교우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후찬양 :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합심기도
오늘 말씀 기억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주님, 저도 삭개오처럼 예수 믿는 자로서 순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고 성실하게 교회 봉사도 합니다. 헌금도 합니다. 그런데 제 인생에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두 주인이 있지는 않았는지요?’ 삭개오와 같이 예수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자유하게 하옵소서. 일용할 양식으로도 풍족한 인생임을 다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침기도
사랑의 하나님,
“잘 나갈 때보다 어려울 때 신앙이 필요한 거죠” 주님, 어려운 가운데서도 내가 돈을 잘 버는 게 신앙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지나가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재정의 어려움을 겪게 하실 때, 내가 어떤 신앙의 모습인가가 드러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냐 가난하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주인이 예수님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하셨사오니 재물을 겸하여 두 주인을 섬기는 일이 없도록 우리 성도들의 마음의 중심을 지켜 주시옵소서.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고” 돈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게 하시고 주신 물질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누군가를 섬기는 일에 아름답게 사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결단의 찬양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돈이 아닌 하나님만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섬기길 다짐하는 우리 성도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