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조심하고, 삼가라! (막 1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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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의 끝날에 임하게 될 조짐들 앞에서 흔들리거나 신앙을 저버리지 말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9절은 종말에 있을 징조 중 세번째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를 말씀합니다. 이 박해는 다른 박해가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박해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박해를 당합니까? 공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매질을 당하고 예수님때문에 총독들과 왕들 앞에 서서 증언하게 됩니다. 여기서 공회는 예루살렘 공회일 수도 있지만, 지방에 있는 소 규모의 공회일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총독들과 왕들 앞에 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대표적으로 바울이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일생을 보면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당하고 순교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예수님을 믿는 삶이라는 것은 잘되고 형통하고 복받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 이런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우상을 섬기는 편이 낫습니다. 여러분! 우상을 사람들이 왜 섬깁니까?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다 해주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상을 누가 만듭니까? 사람이 만듭니다. 보살피는 것도 사람이고, 섬기는 것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상은 어떻게 보면 사람보다 아래이고, 사람의 창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야 하듯이 우상은 사람이 베푼 은혜를 갚아야 하기에 사람을 잘되게 하고 형통하게 하고 복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물론 잘 되게 해 주시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희생도 요구하시고 때로는 자기 때문에 고난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믿음생활하십니까? 잘되는것, 형통한것, 성공하는 것, 복 받는것 원하십니까? 네, 다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고난없는 형통함을 복이라고 가르치는 것에 속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는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들이 박해와 핍박을 좋아하겠습니까? 어느 누가 과연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우리가 고난을 당할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고난가운데 철저하게 혼자임을 깨닫고 낙심하지만, 우리는 고난가운데서도 함께 계신 주님을 통해 소망을 발견하고 일어설 용기를 가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고난을 당하지만 결코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함을 기뻐하고,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음을 믿으며 더욱 힘차게 살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를 바라보시고, 우리에게 하실 말씀을 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음을 생각하며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고난 받는 것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속에서 겪는 여러가지 두려움과 고통속에서 혼자라고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시험과 환난과 박해를 견딜 힘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이 사실을 믿으면서 박해와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에게 평안과 복이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도 담대하게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상황에서 우리는 그냥 당하고만 있어야 합니까? 아니요, 오늘 말씀은 고난중에도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특별히 고난 당하는 중에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실지 알려주실 것이기에, 고난의 현장에서도 우리를 통해 복음이 증거된다고 하십니다.실제로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순교하고 고난받는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증거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불에 타서 순교하고, 맹수들의 먹이가 되어 죽고, 끓는 기름 가마솥에 빠져죽고, 십자가에 달려 죽고, 수많은 고통을 겪는 것을 직접 보면서, 감동하고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로마 제국은 이렇게 공포스러운 방법으로 그들을 죽이고 겁을 주면, 당연히 예수님을 부인하고 믿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보는 이들도 잔뜩 겁을 집어먹고 예수 믿는 자들 근처에 가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정 반대로 순교하는 숫자가 많아지면 질수록, 고난받는 자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복음은 더욱 생명력있게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죽음과 고통의 순간에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기꺼이 고난의 길 순교의 길을 택하는 자들을 바라보며 예수 안에 생명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복음 때문에 환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할때에도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말로써 복음을 전하고 행동으로 복음을 나타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고통과 환란에도 굴하지 않는 믿음을 바라볼때,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복음이 과연 무엇이길래, 그 큰 어려움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과 환란 가운데서도 우리의 사명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음을 기억하면서, 끝가지 말씀을 붙들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함으로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적과 기사로 미혹하는 지도자들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거짓 예언자들도 능력이 있어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면 정말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세력들도 등장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 보면 성령운동 한다고 해서 방언 교육 시키는데도 있고, 예수님의 복음을 이야기하지만 자기들이 사도라고 주장하는 무리들도 있고, 예언을하고 이적을을 행하는 집단들도 있습니다. 오늘날은 다양한 매체가 발달되다가 보니까 이런 자들이 소위 유투브나 인터넷을 통해서 활발하게 포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눈 앞에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동떨어져 있다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넷플릭스에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를 방영해서 큰 화제를 모은적이 있습니다. 정명석, 이재록, 오대양 사건등을 다루는데, 거기 있다가 나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진짜 이적을 행하는 것을 눈앞에 봤다고 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성범죄에 돈문제에 잘못된 교리를 전파하는등 너무나 문제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적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소위 좀 신비로운 영성을 추구하거나 기적을 행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아닌 자기를 높이고, 이상한 말로 미혹하는 자들이 있다면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면에서 오늘날 이 시대야 말로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 필요하고요, 우리는 마땅히 그런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상 핍박과 박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속에서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고 우리는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에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속에서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이런 삶을 살아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악의 유혹에 미혹되지 않는 바른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