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막 13:1-8)

매일성경(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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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전의 멸망을 포함한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나타날 징조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의 멸망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말세에 나타날 징조들은 무엇일까요?
요세푸스라는 유대 역사가에 따르면 이당시 성전 외벽에는 금이 입혀져 있었서 해가 돋을때 그 “불타는 화려함”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성전을 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아름다운 건축물을 본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또 이 성전의 규모는 어마어마해서요, 돌 하나의 길이가 무려 이십 미터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성전은 기원전 20년에 건축되기 시작해서 서기 6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성된 어마어마한 규모와 거기에 걸맞은 화려함을 자랑했습니다. 오늘본문은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 건물을 보며 매우 감탄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전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린 일이 성전의 완전한 멸망을 상징하는 비유였다면, 여기서 예수님은 성전의 철저한 멸망을 선언하십니다. 실제로 주후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성전은 완전히 파괴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예수님이 성전에서 떠나실때에 이 말씀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왜 지금껏 가만히 계시다가 성전을 나오시면서 이 말씀을 하실까요? 그 이유는 참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이 곳을 떠나심으로 건물로서 성전의 몰락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큰 자랑거리이던 이 멋전 성전의 외관을 주목했지만 예수님은 거기에 전혀 감동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의 겉모습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곳은 이미 강도의 소굴로 변해 버렸고, 도둑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이미 죽어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겉으로 보이는 장엄함과는 달리 성전 예수님이 떠나서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그런 장소로 변해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예수님이 머물고 싶은 곳일까요? 아니면 떠나고 싶은 곳입니까? 더 나아가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머물고 싶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떠나고 싶으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겉모습이 중요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성전은 겉으로는 거룩하고 장엄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는 그곳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듯 그 멸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거룩한 모습을 계속해서 유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속사람이 계속해서 거룩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도 예루살렘 성전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심판을 선고받을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살아갈때에 거룩한 모습을 지켜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가지 우리를 오염시킬수 있는 사람들과, 장소들은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이 아니라 속을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거할만한 우리의 속사람이 되고,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의 겉과 속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감람 산에서 선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십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피고석에 성전을 앉히시고 재판하는듯한 그림이 연상이 됩니다. 이곳에서 제자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여기서 제자들의 질문은 두 가지 입니다. 첫째 질문은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입니다. 여기서 ‘이런 일들’이란 문맥상 성전 멸망을 가리킵니다. 두번째는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때에 무슨 징조가 잇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모든 일들’이란 성전 멸망을 넘어서 세상의 종말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제자들은 성전 멸망과 세상의 종말을 지금 연결시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왜 주의하라고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속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내 이름’,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보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이 메시아 행세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자들이 뭐라고 주장합니까? “내가 그라”고 합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내가 메시아”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미혹하는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미혹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 메시아, 즉 거짓 그리스도가 한두명이 아니라 많이 올 것이고 많이 미혹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이래로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한 사람들의 수는 셀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도 자기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수십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예수님을 이용해서 미혹하게 하는 이단들과 종교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교회와 지도자가 있다면, 그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미혹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이 땅의 삶을 더 사랑하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왔다고 해도 거짓 선지자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어느 교회에 가보면 우리가 결코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은 무조건 잘되게 해 주시는 분이라는 메세지가 매일 울려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라 정치적 이념으로 사람을 선동하고, 영적인 수준을 잘 포장하여, 예수님보다 자기가 더 우월한것처럼 과시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이런 설교자들, 이런 교회들에 미혹당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또 다른 징조를 말슴하시는데 그것은 전쟁과 지진과 기근입니다. 즉 마지막 날이 오면 천재지변과 전쟁의 소식이 많이 들려오게 됩니다. 그런데요, 사실 전쟁과 지진과 기근은 역사에서 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말세와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8절 하반부는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재난의 원래 의미는 ‘고통’입니다. 즉 보통 천재지변과 전쟁의 소식이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만 말세가 되면 이 고통이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심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을 가리켜 말세지말이라고 우리가 흔히들 말합니다. 정말 그 말처럼 우리는 온갖 천재지변을 겪고 있습니다. 전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기근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인간의 탐욕이 부른 환경오염은 앞으로 우리의 삶을 파멸적으로 몰아갈것이라고 학자들은 경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환경을 보호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마지막때가 왔다고 두문불출하지 말고 주님이 오시면 천국 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두려움이 없다면, 예수님이 오시는 그날 천국 간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에게 종말은 두려운 날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가장 기쁜날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적그리스도의 미혹에 넘어가지 마시고, 세상의 재난을 보면서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종말은 우리에게 있어 두려운 날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눈앞으로 직접 보는 영광스러운 날,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의 날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이런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오늘 하루를 주님 오심을 기대함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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