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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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사랑한 바울의 본(本)
영혼을 사랑한 바울의 본(本)
본문말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 서 론
날이 많이 따스해지고 들꽃이 날을 대변하듯 길가에 하나둘 피워 눈에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삶 가운데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면서 살고 있습니다.
혹, 뉴스 보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IT 분야와 세계근황에 대한 뉴스를 종종 봅니다.
요 근래 가장 많이 보인 주제는 ‘AI’와 ‘전쟁’입니다.
AI(인공지능)에 대한 개발과 투자, 실생활 적용에 대한 기사들과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 하마스 전쟁과 그로 인한 주변 나라들에 대한 영향이 기사로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강연회에서 마지막 징조를 증거할 때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라는 말씀이 떠오르는 뉴스들 입니다.
이러한 뉴스들을 보며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잃어진 영혼들, 친척과 지인들을 위해 더욱 기도하고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한 바울에 대해 함께 말씀을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 고린도전서 개요
본문을 설명드리기 앞서 이 고린도전서와 고린도 지역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는 A.D 55년 봄 쯤 기록된 서신서로 기자는 1:1, 16:21 등 내용 속에서 기자가 스스로 자신을 바울이라고 밝히고 있음
그리고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 지역에서 1년 6개월 간 복음을 전하며 세운 교회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이 고린도 지역에서 바울과 함께 장막 만드는 업을 하며 동역하였습니다.
그런데요.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고 시간이 지난 후 다른지역을 방문하고 에베소에 머무는 시기에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이 소식은 안타깝게도 교회 내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 하였다는 소식 이였습니다.
그 여러 문제는 왜 발생하게 되었을 까요? 고린도 지역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현재도 있는 그리스의 코린토스가 바로 고인도 지역입니다.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지협과 두 육지를 지나가는 해협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있습니다.
즉 쉽게 말해 육로길과 바다길이 매우 잘 되어 있는 지역이였습니다.
그러니 무역이 발달하고 많은 상권이 집중되고 그로인해 경제와 상업이 함께 발전한 도시였습니다.
그러서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상인과 사업과는 물론이고 다양한 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이 섬겼던 우상도 함께 가지고 와서 우상숭배도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이런한 지역적인 특징으로 인해 교회에 분열과 분쟁, 성적 타락, 우상의 제물 등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고 바울에게 질의를 담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러한 문제와 질의를 전해들은 사도 바울은 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하여 보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크게 2개의 부분으로 나뉩니다. 총 16장 중 1~6장까지는 교회에 발생한 문제들에 대한 훈계의 말씀이,
7~16장 까지는 교회의 질문에 대한 답변 즉 질의응답의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도 교회에서 필요에 따라 담임목사님께서 질의응답을 해주시죠? 같은 겁니다.
○ 본문에 대한 배경
성도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중 8~10장은 우상의 제물과 관련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이다 보니 우상에게 드린 음식들도 많이 있었겠죠?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였습니다.
8장은 우상 제물의 취식 문제가 제기된 것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보다 지식이 약하여 이 문제에 대해서 거리낌을 갖고 있는
형제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고집하기 전에 절제와 양보를 통해 사랑의 덕을 세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묵상해 볼 본문은 바울 자신의 생활을 자유의 절제의 산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절제한 궁극적인 목표는 한명, 한명의 영혼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영혼들을 건지고,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하며 모든 성도들의 자발적 동참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 본 론
○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종이 된 것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본문 말씀은 책갈피로 잡아 놓겠습니다.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즉 복음 전파를 위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자유를 포기하고 섬기는 종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에 대해서 아니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을 안다면
그의 마음에 얼마나 복음 전파를 위한 간절한 마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였고 바리새인이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유대인중에서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였습니다.
사도행전 22:3 (KRV)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가말리엘 : 당대 최고의 랍비, 유명한 율법학자, 모든 백성의 존경
더 나아가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완전한 자유인이였습니다.
사도행전 16:37 (KRV)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지금 우리 시대로 하면 아주 유명한 선생님의 제자로 배움을 받았고 한국시민권 뿐 아니라 미국 시민권도 있는 2중 국적을 가진 어딜 가나 자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운 그가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기로 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다른 사람 구원 받게 하는 것이… 자신의 자유를 누리고 지키는 것보다 우선시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방인의 철학이나 당시의 문화적인 관습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였습니다.
마가복음 10:43–45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그리고 이 마음은 아래 20절~23절까지 어떠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처신함으로써 하였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바로 유대인, 이방인, 약한자 입니다.
○ 유대인에 대한 전략
고린도전서 9: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0절을 잘 읽어보면 유대인들과 율법 아래 있는 자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얻고자 해서 그들과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유대인,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대상입니다.
율법아래 있는 자라고 표현 한 것은 당시 유대인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율법은 구원받은 우리가 봤을 때,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는 거울이며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님데 당시 유대인들은 그 본질적인 목적을 모르고 율법 자체에 집착하며 그것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잣대와 같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떠한 사람이였을까요? 바울은 율법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였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1장에 보면 “동족 중 여러 연갑자 보다 유대교를 지나 치게 믿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바울이 율법에 대한 열심과 지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 중 최고의 율법 주의자 였습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신앙과 모든 가치관이 순식간에 정반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치 고삐풀린 망아지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날뛰다가 진정한 주인을 만나고 제대로 된 훈련을 통해 그 힘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명마가 되는 것 같이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에 대한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용되어 질 때 구약성경을 복음 안에서 해석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으며 복음의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바울은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말씀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4장 6절에 나와 있는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수준에서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행하였을까요?
바로 디모데의 할례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2–3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헬라인 아버지였기에 유대인의 할례 규례를 적용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디모데를 데리고 떠나려고 할 때 그 지역의 유대인을 인하여 할례를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 것은 할례 행위가 의롭다 함이나 신앙적인 행함이 아니라
유대인을 인하여 즉 유대인 전도를 하는데 있어 이 할례를 하지 않은 행위가 추후 비방 거리가 되고 이로 인해 복음을 전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에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과 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이라는 전략이였습니다.
○ 이방인에 대한 전략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는 유대인 보기에 이방인을 말합니다.
로마서 2:14–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이방인은 본성 즉 양심으로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울은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다고만 한다면 분명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였지만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라고 먼저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율법이 유대인들의 율법과 다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이 의롭게 함을 얻는 즉 최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죄에 사로잡혀 악용되고 남용되어 율법주의로 타락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율법의 구속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을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그리스도의 율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법 없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게 살아야 할 많은 지침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율법입니다.
야고보서 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우리는 자유의 율법대로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해야하는 것처럼 지켜야할 말씀들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본다면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로서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2:11–14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게바,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 할례자 유대인이 오매 두려워 떠나 물러 갔습니다. 이에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는 장면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겸상하는 것 즉 식사하는 것은 관습상 위법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다르게 무엇은 먹고 무엇은 먹지 않는 규례가 복잡하게 있었습니다.
지금 이슬람 사람들이 할랄음식을 먹는 율법과 같이 레위기(11장)에 나와 있는 정한것과 부정한 것을 나누어 율법대로 지키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하는 도중 다른 유대인들이 왔을 때 겸상하는 것을 안보이려 그들의 눈치를 보고 피한 상황입니다.
그것을 바울 사도가 보고 책망하는 장면입니다.
바울 사도는 비록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관습에 위배되는 것이지만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면서 복음도 전하고 교제도 하는 것이 더 유익 했기에 성도들을 세우는 길이 였기에 이와 같이 한것입니다.
율법없는 자들에게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어 그들을 얻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 약한자에 대한 전략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8장 9절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우상의 제물 취식에 대한 논의의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인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얻기위해 바울 사도는 13절과 같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한다 하였습니다.
바울은 믿음이 강한사람 중에 강한사람이였지만 약한 자들을 대할 때는 그들의 마음을 고려하며 행하는 진정한 겸손한 사람이였습니다. 이것은 아무쪼록(판토스), 완전히, 확실히, 의심없이, 전적으로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하는 소원 때문이었습니다.
23절을 보면 바울이 왜 그러 했는지 잘 알수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복음을 위하여, 복음에 참예하고자 모든 것을 행한 것은 한명 한명의 영혼을 더 건지고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 우리에게 주는 교훈
고전 9장 19절~23절 이 짧은 5개 절 가운데 우리는 바울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고 건지고자 했던 그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가장 많이 반복되는 말씀이 있었죠
얻고자 함이라, 얻고자 함이요, 얻고자 함이라
바울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영혼이였습니다. 영혼의 구원이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세상 가운데 많은 것들을 얻고자 합니다.
특히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며 친해지는 것은 결국 자신의 유익을 얻고자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만족감과 기쁨을 얻는 것이죠. 만약 그 관계 가운데 본인이 원하는 것이나 유익이 없다고 생각되면 언제든 관계를 끊어 버리는게 세상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요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우리는요?
이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 난게 우리 주님이 였습니다.
우리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 우리의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주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우리는 세상 사람과는 다릅니다. 사람을 사귀는 목적이 다른 겁니다. 나의 유익의 목적이 아닌 주님이 귀하게 여기신 영혼을 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건지는데 필요한 것들은 우리는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내 시간, 재능, 물질 등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 올바른 목적을 두고 사용해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간절함을 생각하면 한가지 떠 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어느덧 10년이 지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큰 이슈가 되었으며 우리 교회에도 영향을 준 사건입니다.
바로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입니다.
당시 저는 군인이였고 점심식사를 하려고 식당에서 줄서 있었습니다.
그 때 뉴스에 세월호에 대한 뉴스가 나왔고 사고가 났지만 전원 구출 되었다는 속보로 그냥 그렇게 끝날줄 알았습니다. 그런데요. 시간이 지나고 그 속보는 오보로 판명되고... 결국 안타까운 299명의 사망자를 발생하면서 바다로 가라앉게 되는 참사입니다.
그런데요 저는 그 사건도 너무 안타까웠지만 그 후 이야기를 들으며 영혼에 대한 간절함과 애절함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두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쓰러지고 침몰하는 가운데 탑승객들의 탈출을 신속하게 지휘해야하는 선장이...
구조대가 오고 있다고 다들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방송을 지시하고 본인만 탈출한 사람...
그리고 세월호가 가라앉고 그 안에 혹 모를 생존자를 위해 수색했던 잠수부들입니다.
가라 않고 있는 가운데 한명이라도 더 구출해야할 상황에서 본인만 팬티 바람으로 탈출한 선장을 보며 화도 나도 괘씸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요 나중에 시간을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 세상에서 지금 내 모습과 같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주변의 영혼들은 거듭나지 못하고 주님이 오시면 혹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어디 갈지를 뻔히 아는데 나는 혼자 구원 받았다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 자리에 그냥 있으라고 하는 선장과 같은 사람이구나.. 영혼에 대한 내 마음은 그 선장과 다를게 없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대로 우리는 그런 선장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와 같아야 할까요? 자신의 육체적 수명을 버리며 한명 한명의 시신을 인양 하기 위해 반복되는 잠수로.. 일부 잠수사는 목숨을 잃기도 하고 몇몇 잠수사는 잠수사로서의 육체적 수명이 다해 그 후 취업이 안된다는 이야기, 잠수병으로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잠수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웠습니다.
그 시신을 인양할 때 마음 한 구라도 더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고자 자신을 버리며 인양한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세상에서도 이렇게 육신을 가족에게 돌려주기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선장인가요. 아니면 잠수사 인가요?
내 주변에 있는 잃어진 영혼들을 보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사랑하고 간절한 마음을 두고 있나요?
사도 바울은 그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영혼을 그렇게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제 자신을 본받으라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우리가 품어야할 마음이입니다.
바울을 본 받아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받게 하기 위한 마음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와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