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강의6-작정의 실행(섭리와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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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11.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일이란 무엇인가요?
답11.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란 그분의 최고 거룩과 지혜와 능력으로, 보존하며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모든 창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
섭리(providence)- pro(~앞에) + videre(보다)
: 하나님의 섭리는 단순히 앞서 보다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만물을 보존하며 여전히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섭리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관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돌봄과도 관련한다.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려고 할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면서 여호와 이레 “여호와께서 준비하실 것이다”(창세기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고 말했다. 이삭은 희생 제단에 올려지기 전에 아버지에게 묻는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한다.
창세기 22:7–8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시고 수풀에 뿔일 걸린 숫양을 희생 제물로 준비하셨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흠 없는 양으로 우리에게 제공하신 대리인을 예상하게 한다. 그 대리인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바쳐졌다. 하나님은 자신의 섭리 가운데 특정한 순간에 양이 수풀에 걸리도록 준비하셨다. 그것은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성경 전체에서 우리는 우주를 통치하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섭리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은, 이것이 프로그래밍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포함하여 우리의 모든 행동을 정하시되,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섭리의 방식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섭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원리가 따로 있고, 그 원리에 의해 만물이 움직이고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ex) 인과응보, 권선징악, 사필귀정- 선과 악의 개념이 만물의 기준이 되어, 죄를 지으면 결국 벌을 받게 되고, 선한 일을 하면 언젠가 그 선한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신론(deism)은 창조주가 시계를 만들어 놓고, 태엽을 감아 그 자체의 내적인 동력으로 작동하게 한다고 한다. 즉, 세상은 기계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신론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 철학은 현대 우리 문화를 점령했다. 그러나 기독교적 견해와 히브리적 견해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세상은 계속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하나님께 의존한다.
‘선’이란 무엇인가?
벤담: 공리주의-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what is right thing to do?)
칸트가 정의 하는 ‘최고선’
-최고선이란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도덕과 행복의 일치다. 어느 한 사람이 최상의 도덕적인 삶을 살고, 여기에 행복까지 따라 올 때 그것이야말로 최고선이다.
; 인간이 살 수 있는 가장 선한 삶을 살면서 행복까지 느낄 때 그것이 선이다. 그러나 인간은 선한 삶을 살 수 없다.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최고선에 대한 국어 사전의 정의
“인간 행위의 최고의 목적과 이상이 되며 행위의 근본 기준이 되는 선”
인간 행위의 최고의 목적과 이상 / 2. 행위의 근본 기준이 되는 것
소요리문답 1번
문: 인간의 주된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행위의 최고 목적은 누구인가? 우리 행위의 근본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이다.
1. 보존
바울은 아테네에서 “우리가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을 힘입음으로써 그러하다고 선언했다.
Acts 17:28 NKRV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것은 하나님이 단지 우주를 움직이셨다거나, 최초의 생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현재의 모든 삶, 현재의 모든 움직임 그리고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 존재의 시작 뿐만 아니라 그 존재의 지속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존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지속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기원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힘에 의존하고 우리의 계속되는 존재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유지시키는 힘에 의존한다.
하나님과 피조물들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영원하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존하시고 자립적이시다. 우리는 시간적이고 의존적이고 연약하다.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는데 공기와 물과 음식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은 계속 존재하시는데 자신 외부의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우리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들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우리 인생 항로가 정해진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유지하시는 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2. 통치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것을 유지시키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소유를 통치하고, 지배하며 그리고 자신의 기쁘신 선한 뜻을 따라서 자기 소유를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영원하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지칭한다. 하나님은 섭리에 의해 만물을 유지하시고 지시하시고 처리하시고 통치하신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지배자들을 통치하신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권위와 통제 아래에 있다.
다니엘서 5장.
벨사살-그가 연회를 베풀어 흥청망청하고 있을 때, 손 하나가 나타나 벽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Daniel 5:25 NKRV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다니엘은 데겔을 “다니엘 5: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이 그를 제거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Daniel 5:30 NKRV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고대 역사가들은 페르시아인들이 그 벽 아래 도랑을 통해서 바벨론으로 물이 흐른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그 군대는 강을 둑으로 막고 강바닥을 마르게 한 후에 한밤중에 배수관을 통해 도시로 진군해 들어갔다. 페르시아인들은 바벨론 사람들을 손쉽게 정복했고, 페르시아 제국을 세웠다.
앗수르-바벨론-페르시아-로마
이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나라의 부귀영과도 영원하지 않다!
고통의 문제-신적인 섭리 교리보다 고통 받는 신자에게 더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만약 내가 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면, 그것은 몸 안에 미생물의 우연한 침투의 결과이거나 아니면, 미생물조차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섭리에 의해서 유지되고 지시되고 결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나의 부르심은 목회자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러나 나는 당장 내일 사고나 질병으로 매우 쇠약해질 수 있고, 육체적으로 이 소명을 더 이상 이행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나에게 더 이상 소명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다른 소명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 소명은 하나님이 나를 고통으로 부르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변함없이 신실한 것이 될 것이다.
만약 내가 나의 아픔, 고통, 외로움, 그리고 슬픔을 일종의 우주적인 재난으로 본다면 그러한 생의 공허함이 나의 고통을 더욱 악화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스러운 일을, 모든 것을 합력하여 나에게 선이 되게 하시는 선하고 거룩하고 자애로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로 말미암아 내게 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을 견딜 이유를 갖게 될 것이다. 섭리 교리는 나의 고통응ㄹ 지워 버리지는 않을지라도 쓰라린 비통 없이 고통을 견디도록 도와줄 것이다.
Genesis 50:20 NKRV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의 이야기 안에서 하나님의 의도와 사람들의 의도가 합류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순전한 거룩함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사람들의 계획은 전적인 사악함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요셉의 형들은 악한 의도로 요셉의 고통을 꾀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동기인 한 그들은 하나님 앞에 죄책을 갖는다. 하나님은 요셉의 형들의 행동을 구원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셨다. 그러나 그것이 형들에게 변명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 섭리의 위대한 신비로 말미암아 만물의 초월적 통치자는 악으로부터 선을 이끌어 내신다. 하나님은 요셉의 형제들의 사악한 욕망을 가로막는 대신에 그것을 초월하여 그의 능력으로 악으로부터 선을 이끌어 내셨다.
(이와 동일한 것을 가룟 유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그의 결정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일어난 가장 위대한 선이 발생했다. 그러나 유다 마음의 의도가 완전히 악하기 때문에 그는 그 선에 대해서 어떤 공로도 인정받을 수 없다).
하나님은 어떻게 악으로부터 선을 가져올 수 있을까?
Romans 8:28 NKRV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일어나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그리고 저절로 선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섭리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우리의 선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섭리에 대한 생각을 놓쳐 버린다면 하나님이 만물을 초월하고 만물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앎으로 말미암는 위로와 위안과 기쁨을 놓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멀리서 우리를 응원하는 외로운 구경꾼이 아니다.
타락과 우리 안에 내재하는 죄는 그 자체로는 악한 것이며 이로 인해 아담과 우리는 죄책을 갖고 있지만 신적인 목적과 섭리의 신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궁극적인 차원에서는 선이다.
‘악이 선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악이 존재하는 것이 선이다’라고 말하는 것 사이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악이 존재하는 것이 선한 것이 아니었다면, 악이 존재할 가능성을 허락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나님은 유죄일 것이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언제나 악을 막을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섭리와 무관하게 죄를 지을 수 없었다면, 그리고 그들이 섭리 아래에서 죄를 지었다면 어떤 의미로는 그들이 죄를 지은 것이 선한 것이라고 결론 내려야 한다. 물론 죄 자체는 선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죄를 허락하고 작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의 일부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선한 목적이 이바지하는 것만 원하신다.아담의 타락이 사실은 굉장히 멋진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끔찍한 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서 역사 속에 일어났다.
우리는 칭의 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하고, 성화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향상된다.
문12. 무슨 특별한 섭리를 하나님께서 하셨나요? 사람에 대해, 사람이 창조된 그 상태에 있을 때.
답12.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그 때, 그와 생명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을 금하심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사망의 형벌로.
특별한 섭리란?
하나님께서 인간과 생명의 언약을 맺으신 것.
조건: 우리가 그분께 완전히 순종하는 것.
방식: 그 완전한 순종을 알아보기 위한 수단이 바로 선악과 먹는 것을 금지하신 것.

타락

문13. 우리 첫 조상이 그대로 있었나요? 창조된 원래 상태에
답13. 그들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대로 있던 우리 첫 조상은 창조된 원래 상태로부터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대항하여 범죄함으로 인해.
‘순종’은 영원한 생명의 언약을 대가로, ‘대항’은 죽음을 대가로 받게 된다.
생명의 언약은’ 인간이 ‘도저히 실패할 수 없는 시험’이었는데도 그 시험에 실패한 것으로 말합니다. 소요리문답 본문은 이것을 ‘자의적으로’ ‘자유롭게’ ‘잘못 행하여’ 범죄하였다고 설명한다.
사탄은 도구적 요인이다. 사탄을 통해서 유혹받았지만, 내가 먹은 것.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자신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감사,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다는 감사도 다 잊어버리고, 피조물을 다스리고 관리할 책임을 주셨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그 고귀하신 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주시고, 나에게 순종하라, 나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자고 초대하시는 그 영광된 말씀을 하셨다는 것도,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그 놀라운 영원한 생명,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도 죄다 까먹어버린 것이다.
사망: 하나님과의 단절.
문14. 죄가 무엇인가요?
답14. 죄란,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위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있어.
문15. 그의 죄는 무엇이었나요? 우리 첫 조상이 타락하게 된, 창조의 원래 상태로부터.
답15. 우리 첫 조상이 타락하게 된 그 죄는, 창조의 원래 상태로부터, 그들이 그 금지된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
죄: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위반하는 것’
문16. 모든 인류가 아담의 첫 범죄로 타락하였나요?
답16. 아담과 이루어진 언약은,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손까지라서,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일반적인 출생으로 난, 그 안에서 죄지었고, 그와 함께 타락하였습니다. 아담의 첫 범죄로.
아담의 대표성: 하나님께서 아담 개인과 언약하신 것이 아니라 전 인류와 언약하신 것. 아담은 모든 인류의 머리이다. 바로 이러한 대표성의 원리에 의해 아담의 죄가 수많은 사람에게 전가 되었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한 분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담의 대표성을 부정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대표성도 부정하게 된다.
문17. 이 타락이 인류를 어떠한 상태에 이르게 하였나요?
답17. 이 타락은 인류를 죄의 상태와 비참함의 상태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1) 죄의 상태
문18. 사람이 타락한 상태에서의 죄악됨이란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요?
답18. 사람의 타락한 상태에서의 죄악됨이란 아담의 첫 범죄의 죄책과, 본래 가졌던 의의 결핍과, 본성의 전적인 부패인데, 일반적으로 원죄라고 불립니다. 그 원죄에서 모든 범죄 행위들이 비롯되어 뒤따릅니다.
원죄
1. 죄책(죄에 대한 책임)-죄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
2. 의의 결핍-처음 창조 시에 받은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의를 상실. 인간이 아무리 선한 것을 하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가 않다.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
3. 본성의 오염-실질적인 죄의 오염. 인간의 전적부패. 지정의 모두 오염.
자범죄-스스로 범죄하는 것. 자범죄는 원죄로부터 비롯된다.
타락 전 아담의 상태: 타락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태(able not to fall)
구원받은 우리의 상태: 타락하고 싶어도 타락할 수 없는 상태(not able to fall)
-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 ‘의지의 자유’ - 우리 인간들은 항상 바로 그때에 우리에게 있는 가장 강한 성향에 따라서 선택한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죄인의 때에 우리는 죄를 짓기 원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죄에 대한 불타는 열정. 죄에 대한 열망이 큰 이유는 죄의 쾌락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 주님 당신께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 나를 만드셨으매 우리의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할 때까지 쉴 수가 없나이다” - 어거스틴.
인간의 악함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 때, 왜 성경은 인간의 도덕적 상태에 대해서 어두운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대답: 타락한 인간은 수평적 차원에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수직적 차원에서 하나님께 대해서는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비참함의 상태
문19. 사람이 타락한 상태에서 비참함이란 무엇인가요?
답19. 그들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린 모든 인류는, 그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고, 살면서 모든 비참함을 면할 수 없고, 죽게 되며, 영원히 지옥의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비참함의 상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다.
사는 동안 비참함을 면할 수 없다.
죽는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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