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깨어 있으라(막 13: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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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될 것이라고 한바탕 난리를 친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다미 선교회입니다. 다미라는 말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는 이장림이라는 사람이 쓴 책의 제목에서 나온 말입니다. 저도 이 책을 중학교땐가 읽었는데요, 굉장한 두려움에 빠져서 혼란스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가출하고, 가족은 전재산을 팔아서 헌납하고, 휴거가 일어난다는 당일에는 생방송도 하고… 결국에는 그냥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휴거 이야기는 다미선교회가 최초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곳에서 휴거를 주장하다가 망신당했고 2011년에도 미국의 어느 사람이 휴거를 말했다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휴거 날자를 예보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거기에 마음을 빼앗길까요? 사람들이 종말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들도 보면 이런 종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흥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휴거를 주장하는 예보가 실패했다고 해도 예수님은 반드시 구름타고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다만 그 날과 시간은 말씀해 주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아무 예보 없이 그냥 오실까요? 오늘 본문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첫번째로 예수님은 징조를 보여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24-25절은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린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환난은 앞서 언급된 환난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환난이 지나가고 인자가 재림할때쯤 해와 달과 별은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을 넷째 날에 만들어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셨는데 그 광명체들이 빛을 잃고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첫째 창조가 끝이 나고 새 창조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해, 달, 별이 빛을 잃는다는 이 표현은 이사야서 13장 10절과 매우 유사한데요, 이사야서 말씀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환난이 지나간 후 해, 달, 별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며 또 종말론적으로는 악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듯합니다.
즉 예수님은 박해와 자연 재앙이후에 오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종말의 날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전에 분명한 징조를 보여주십니다. 여러분 징조가 무슨 말입니까? 징조란 어떤 것이 이뤄지기 전에 그 발생이나 출현을 미리 알려주는 현상들을 말합니다. 병에도 징조가 있습니다. 병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고, 어떤 징조를 보입니다. 징조가 나타났을때 빨리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치료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병의 징조가 나타났을때 병원에 가는 것도 늦은 감이 있습니다. 이미 병이 생겼고,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산폭발이나 쓰나미 같은 것도 그냥 불어닥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여기에도 징조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징조가 보일때 재빨리 피하거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요? 징조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 예고없이 어느날 갑자기 재난이 닥치면 대비할수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세상의 끝날이 이르기 전 징조가 나타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징조를 보여줍니까? 그 징조를 보고 혹시라도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고, 죄악의 길을 가고 있다면 회개하도록 하는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눈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여러 징조가 보여도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전문가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징조를 보기를 원한다면 영적인 전문가 즉 영안이 밝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그것이 종말의 징조임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회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종말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징조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조를 보고 회개할 수 있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 징조를 보지 못하면 우리는 예고 없이 다가오는 모든 재앙들을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징조를 잘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은혜를 간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영성을 증진시킬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기도할때에, 하나님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를 충만히 베풀어 주셔서, 이런 징조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될때, 우리도 세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주님의 날이 언제 임하게 될 지 볼 수 있는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35절에서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성도들은 시대를 분별하는 것을 넘어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오늘 재림하실 수 있다는 영적인 긴장속에서, 내가 예수님 앞에 신실한 모습으로 서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깨어 있는 삶을 살수 있을까요? 첫번째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4장 7절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끼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할때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깨어 있는 삶은 기도하는 삶입니다.
두번째로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34절에 따르면 주인이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각각 임무와 그에 따른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들은 깨어서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소망하는 신앙이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예수님이 언제 오시나 기다리기만 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소명을 위해 일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때 제자들은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때 흰 옷 입은두 사람이 그들에게 “어찌하여 서서 하른을 쳐다보느냐”라고 질책했습니다. 제자들은 그 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성령의 충만하심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신 후 생명을 다해 순교하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재림 신앙의 모습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에 보면 종말을 앞두고 노는자들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종말이 올텐데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종말이 온다고 일하는 손을 다 놓고 노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우리의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다미 선교회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의 전 재산을 이장림에게 바치고 10월 28일까지 쓸돈만 남겨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주님 오실 그날까지, 맡겨진 일에 충실하라고 말이지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말이 곧 올것처럼 호들갑 떠는 사람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신에 주님이 오시든 안오시든 여러분들의 일을 충실히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종말을 바라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