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만찬(막 14:12-21)

매일성경(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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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을 지키신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성내로 보내서 유월절을 준비하게 하고 저녁에 준비된 장소로 가셔서 제자들과 먹고 마십니다. 이 장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 중 하나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넘겨 줄 것을 예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무교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키는 3대 명절 절기가운데 하나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었던 데서 유래한 절기입니다. 그리고 그 무교절의 첫날이 유월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이 되면, 유유월절 저녁 만찬을 먹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가 저물 때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고 간주했기 때문에 무교절의 첫날 유월절은 만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두명의 제자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할아리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이 사람을 따라가면 유월절 식사를 할 집을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성 안에 물동이를 메고 가는 사람이 한 두명이었겠습니까? 매우 많았을 텐데 어떻게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이 당시 물 항아리를 드는 사람은 보통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13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물동이를 메고 가는 사람은 남성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자가 물항아리를 드는 것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수 있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면 그 주인이 직접 자리를 깔고 준비한 큰 다락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자 둘이 성에 들어가보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제자들이 왜 유월절 만찬을 할 장소를 예수님께 물었을까요? 여러분 제자들의 고향이 어디입니까? 갈릴리입니다. 그들은 지금 고향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에 와 있습니다. 우리도 설날이 되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는것처럼 유대인들도 그런 전통이 있었고요, 우리가 떡국을 먹는것처럼 유대인들은 양고기를 먹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자기들이 애굽으로부터 탈출한 것을 기념하였습니다. 그런데요, 함께 이 만찬을 나눈 장소가 없어서 제자들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해 주셔서 유월절 만찬을 즐기는데 아무 문제가 없도록 조치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만찬 장소가 준비되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릴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자신과 제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예비해 두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것이 필요한지 다 아시고 미리 준비하셔서 우리가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런데요,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 중 두 사람에게 이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이게 쉽습니까? 잘못하다가는 망신 당하기 쉽고, 때에 따라서는 본인이 직접 하시니 우리한테 왜 시키느냐라고 불만을 표출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제자가 믿음을 가지고 순종했을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 만찬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들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정말 말도 안되는 요구도 믿음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받을 수 있는 복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해 주시지 않는다고 볼멘 소리를 낼때가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을 쏟아 낼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에게 한 번 물어 보십시오? 나는 믿음으로 순종했는가? 나는 맨땅에 해딩하듯한 주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준비된 것을 취할 수 있는 믿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안주신다고 불만갖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을 들어 주지 않는다고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으로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한 우리를 바라보시며 제자들처럼 예비된 것을 우리를 위해 허락해 주시고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두번째로 식사도중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배반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게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예수님은 이미 유다가 자신을 팔기 위해 대제사장들을 찾아갔단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지만 유다가 배반할 것이라고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배반을 당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유다의 배반을 내버려 두신 것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유다를 지목하여 저자가 나를 배반했다고 하셨다면 다른 제자들이 유다를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고, 예수님을 따로 피신시키려고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예수님은 이 방법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을 배반할 사람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입니다. 여기서 그릇은 당시 생과일 식초를 담는 그릇으로 두 명에서 세명에 하나식 식탁에 배치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때 빵을 손으로 떼어 그릇안에 있는 이 식초에 빵을 찍어 먹었습니다. 그릇에 손을 넣는다는 말은 친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한다는 뜻이고, 바로 그 제자에게 배신을 당한다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배신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해하셨습니다. 이미 자신의 죽음은 구약에 예언된 것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기에 순종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예수님이 가룟유다에게 배신을 당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배신이긴 하지만 예수님이 아무것도 모르고 느닷없이 당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가 배신하여 팔아 넘길 것을 압니다. 즉 충분히 조치를 취할 시간적 여유도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잡혀 죽으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피할 수 있고, 살아날 수 있음에도, 심지어 가룟유다의 배신까지 알고 계심에도 예수님은 자기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 버리기를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는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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