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9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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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것을 자랑하라
약한 것을 자랑하라
여러분! 오늘도 함께 이자리에서 만나 말씀을 나누게 되어 반갑습니다!! 다들 한주 즐겁게 잘 보내셨죠?
이제 날도 따듯해지고 해서 봄을 만끽하고 벚꽃이 지니까 뭐가 찾아왔죠? 중간고사가 찾아왔죠.
아마 여러분들 나름대로 시간도 없고 어려움들이 있을텐데도 이 자리에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만큼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크신 은혜로 함께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함께 고린도후서 말씀을 나누도록 할게요.
이번에 세번 연속으로 제 설교를 들었으니까 다들 잘 기억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주에는 고린도후서 십장의 말씀을 나누었구요, 오늘은 바로 이어지는 십일장의 말씀입니다.
혹시 지난주에 나눴던 말씀 어떤것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바울이 자신의 무엇을 두고 이야기를 했었죠? 바로 사도라는 자신의 이 사역에 대한 자격을 바울이 지속적으로 증명하고 주장하는 내용들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굴 자랑해야 한다고요?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세상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수단으로 삼아서라도 이루어야 하는 목적이 되어야 함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말씀도 지난 말씀과 같은 선상에서 이어지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바울이 본격적으로 자랑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주에 그랬었죠. 바울은 자랑을 하지 않았다고. 그러면 대체 오늘 말씀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자신의 자랑을 하게 된 것은 정말 특수한 상황에서 어쩔수 없이 나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왜냐, 당시 고린도교회에 존재했던 거짓 사도들의 자랑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너무 잘 넘어가서 그대로 믿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로 계속 가다가보면 거짓 사도들의 의도대로 교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기에, 바울은 자신의 말 그대로 부득불 자랑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말씀인 11장 1절부터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납하라고 말합니다. 왜냐, 자신이 이전까지 자랑하지 말 것을 이야기했음에도, 결과적으로 자신이 그 말씀을 어기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신이 어리석은 이야기를 할 것이나, 지금의 상황 때문에 그러한 것이니 이를 용납해달라고 말한 것이죠.
그러면 바울은 어떤 자랑을 하는가를 보아야겠죠.
그런데 6절부터 바울이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고린도교회의 경제적 헌신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인데요,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나오나 뜬금없이 느껴질 수 있으나, 사실 이 이야기는 당시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꼭 전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바울의 사역 방법은 우리가 잘 알듯이 자비량 선교였습니다. 어떤 지원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를 사역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천막을 만들어 팔기도 하였습니다.
그랬던 바울인데, 당시 고린도교회에서 바울의 대적자들이 이 틈을 파고든 것입니다. 바로 바울 자신 스스로가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돈을 받지 않는것이다! 라고 말이죠.
지난주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당시 스승이라고 여겨지는 학식이 높은 자들은 철저히 자신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자신이 다른 누군가보다 학식이 뛰어나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많은 돈을 받아야 함을 어필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학식이 뛰어난 선생들은 많은 돈을 받기도 하였죠.
마치 요즘으로 치면 일타강사와 같이 여겨졌던 것이죠. 하지만 바울은 어땠나요? 오히려 돈을 받지 않고 교회에서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돈이 곧 가치로 여겨졌던 바울의 대적자들에게 이것은 바울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7절과 같이 그러한 자신의 행동을 변호합니다. 오히려 돈을 받지 않은 것은 자신을 낮추고 교회를 높여 교회가 부담 없이 사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이죠.
사실 바울의 소위 무상사역은 오히려 자랑할 거리였던 것이죠.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다른 문제들도 발생하였습니다. 이어지는 8절에 등장하는데요,
바울이 스스로 재정을 마련하여 사역을 하는 와중에, 마게도냐 교회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이 들리자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섭섭함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에서는 도움을 전혀 받지 않다가 갑자기 다른 교회의 재정적 도움을 받으니 마치 고린도교회 성도들로서는 자신들이 무시받거나, 바울에게 그리 가치가 크지 않다고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8절과 9절에서 해명을 한 것이죠. 여러 교회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은 것은 오로지 이 일들로 인해 고린도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말이죠.
바울은 기본적으로 사역지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그러했던 것처럼 값없이 전달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의 생활비를 위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교회들로부터는 지원을 받았을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그 이유를 소개하지 않았기에 알기는 어렵지만, 다만 추측하건데, 마게도냐 형제들의 섬김이 본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닌, 다른 교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에, 허용한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마게도냐 성도들이 선교헌금으로 헌신하여 그것을 고린도교회 사역을 위한 일에 바울이 사용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그의 사역에서 최대한 재정적으로 교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대적자들은 어땠나요? 오히려 더 많은 폐를 끼치는 것을 자신의 자랑으로 삼았던 것이죠.
바울은 이어지는 10절부터 12절까지 이러한 자신의 ‘자랑’이 절대로 그냥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알고 계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러한 사역의 모습을 통해 바울의 대적자들, 거짓사도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인정받는 것을 끊고자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어지는 13절에서 그런 대적자들을 거짓 사도요 속이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14절에서는 그것이 특별하지 않은 상황이라 말합니다.
즉, 당시 성도들 앞에 쉽게 벌어질 수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죠. 사탄도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에, 그 일꾼들 역시 자신을 의로운 일꾼이라고 가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대로 합당한 벌을 받을 것이라고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대적자들에 대한 비판을 한 이후, 다시금 자신의 자랑을 이어갑니다.
16절에서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자신이 하지 말라고 했던 자랑을 하는 것이기에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지만, 이는 주의 일을 위해 불가피 하게 행하는 것이기에 이해를 구하는 것이죠.
또한 자신의 이 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자신의 인간적인 지식대로 행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이러한 말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바울은 그의 대적자들에게 미러링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바울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대로 교회를 지키기 위해 행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자랑하게 된 연유로 성도들의 분별없는 허용을 이야기합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성도들이 분별하지 않고 그저 좋은게 좋은거야라는 식으로 다 받아들이다보니 바울이 어리석은 행동을 할 정도의 상황이 만들어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보고자 합니다.
바로 우리는 시대를 잘 분별하고 받아들일 것과 그렇지 않아야할 것들을 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잘 알듯이 지금의 교회는 많은 위기 속에 직면하여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고, 사람들은 말씀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교회가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많죠.
그런데 변화한다고 해서 마구잡이로 변화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변화해야 한다면서 세상에 있는 좋다고 생각되는 문화들을 다 교회로 가져오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겠죠.
유명한 사람들이 와야 교회로 사람들이 오니까, 대충 연예인들 불러와서 아무이야기나 하게 하고,
말씀이 지루해서 사람들이 안온다는 이야기로, 설교 시간에 말씀 이야기가 아닌 스탠드업코미디나 한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과연 그것을 통해서 교회가 정말 변화할 수 있을까요? 물론 사람은 많이 올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때부터 교회는 교회가 아니게 될 것입니다.
변화가 아니라 변질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 속에서 무엇이 본질인지를 잘 생각하고 그것을 지켜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짓 사도들에게 교회가 넘어가버리는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22절부터 말그대로 ‘어리석은’ 자랑을 시작합니다.
자신은 히브리인이며, 이스라엘인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점에서는 그 대적자들보다 더욱 일꾼이라는 것을 말하며 자신이 경험한 수많은 어려움들을 나열합니다.
옥에도 갇히고, 매도 맞고, 파선도 당하고, 강도와 이방인들 등, 수많은 어려움들을 당했으며,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춥고 헐벗었다고 강조하는 것이죠.
그리고는 심지어 아직까지도 매일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바울의 이러한 ‘자랑’은 사실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들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의 대적자같은 이들은 자신들을 수없이 자랑했지만, 그 모든 자랑은 자신 스스로가 잘남을 자랑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자신이 교회를 위해 많은 학식을 쌓고, 이렇게 교회를 위해 말을 잘 하였으며 라는 식의 것들이었겠죠.
하지만 바울의 자랑은 조금 달랐습니다. 교회의 사역을 행하다 고난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한 일들의 나열이었습니다.
어쩌면 바울 스스로도, 그것을 듣는 고린도교회 성도들도 이 이야기를 말하고 들으면서 그리 좋은 마음상태로 있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말그대로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교회를 위해 자신이 행했던 모든 것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30절, 이전 설교때 언급했던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은 자신 스스로가 약함을 자랑할 것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 구절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일들을 한가지 더 이야기합니다.
아레다 왕의 고관이 잡으려했을 때,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도망했던 일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왜냐 성인 남성이 물건이나 싣는 광주리에 실려서 내려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일정시간 포기한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죠.
마치 다윗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미친척 행동한 것이나, 초한지의 한신이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지나갔던 것만큼의 수치가 바울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일들은 최대한 숨기고 이야기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바울의 대적자들도 마찬가지였겠죠.
하지만 바울은 이를 스스로 떳떳하게 이야기하며 자랑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그렇게 행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주님께서 먼저 이와 같이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모든 사역은 사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모두 수치스러운 일들뿐이었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말먹이통에서 태어나셨고, 몸을 쓰는 목수일을 하시다가 사역을 시작하셨고, 사역의 과정에서도 찾아간 이들은 대부분 죄인들, 세리들, 병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낮은 자리에만 찾아가 그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먼저 행하셨는데, 대체 누가 주님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 체면을 차리고 자신을 높이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바울도 그렇기에 이와 같이 행한 것입니다. 자신은 실제로 엘리트였고, 그에 맞는 사역을 충분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비천한 자의 모습으로 사역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로마시민권이라는 신분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그렇게 하지 않음을 통해 또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가 반대로 시민권을 사용하여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간 것 또한 로마라는 곳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바울에게 세상적 체면과 위치는 그 어떤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복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우리 모습으로 돌아와봅시다. 여러분들은 사역의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계신가요?
바울과 같이 오직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고 행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대적자들처럼 자신을 높이기 위해 복음의 자리를 사용하고 계신가요?
얼마전 학년모임을 하면서 재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는데요, 어떤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자신도 모르게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기가 부끄러운데, 그것을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도 이러한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설명하기가 어렵고, 귀찮고, 혹은 뭔가 제약이 생길 것 같은 순간들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감추고자 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신앙을 이야기하기는 부끄러워하면서, 맨날 자기 좋은 성적 받은 것들 자랑하고, 어디 여행간거 자랑하고, 맛난거 먹은 것 자랑하고 하는 이 모습. 진정한 신자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가진 학식, 로마 시민권과 같은 명예들 모두를 자랑거리가 아닌 주님을 전하는 도구들로 여기고 주님을 전할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것을 기꺼이 사용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주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허락하신 이 모든 것들은, 주님께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더 주님의 복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 허락하신 것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고, 그것들을 가지고서 나 자신을 드러내고 나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은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고 말았던 청지기처럼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이 약한 것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허락된 모든 것은 다 주님께서 주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을 다 주의 일에 내어놓고, 그 자리가 어떤 곳이든 주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비록 세상에서는 여러분들이 약해보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주님은 바울이 31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여러분들의 헌신을 아시고 여러분들을 통해 주님의 귀한 일들을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고,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서 신앙을 도구로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만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약한 자리로 나아가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우리 모든 하임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충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