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신명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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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유명한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입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구절은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보다 훨씬더 민감해진 것 같습니다.
더 잘 살아졌지만 사회적 긴장은 오히려 더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일 같은데 다툼이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층간 소음으로 살인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아이 문제로 부모가 주먹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뒷차가 경적 한번 울렸다고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만성화된 초민감 사회라서 툭 건들면 곧바로 반응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상처받는게 너무 흔한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나도 상처를 많이 받다보니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주는 것 같습니다.
가히 초민감 사회, 초긴장 사회, 상처의 시대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상처가 많으면 인간 관계를 맺는데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상처 받기 쉬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두려움을 떨치고 다시 사랑하며 살아갈수 있을까요?
[본론]
오늘 말씀의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모세는 이제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후계자를 선정합니다.
바로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먼저 모세에게 여호수아와 함께 성막으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막은 마치 하나님을 만나는 왕실과 같은 곳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이 두 사람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특히 처음으로 하나님을 뵙는 여호수아에게 말입니다.
16절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조상과 함게 잠들 것이다. 그러나 이 백성은 들어가서 살게 될 그 땅의 이방 신들과 더불어 음란한 짓을 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버리고, 나와 세운 그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충격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우상숭배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모세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어차피 나는 곧 죽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했을까요?
아마 모세는 굉장히 가슴이 아팠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지도자이자 유모와 같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키우다시피 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런 암담한 말씀은 그를 슬프게 했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 함께 듣고 있던 여호수아는 어떨까요?
그렇지 않아도 위대한 지도자 모세 다음에 지도자가 되는 일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처음으로 자신을 만나서 하신다는 말씀이 이스라엘의 실패이야기입니다.
자기가 이끌어야할 백성들이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참 실망스럽고 걱정스러운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수아라면 이런 소리 들었을때 어떨까요?
“이런 백성들을 내가 제대로 이끌고 갈수 있을까?”
“나만 상처받고 끝나는 거 아냐?”
“실패할건데 왜 내가 이 일을 맡아야 하지?”
이런 저런 걱정들이 많이 들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왜 이런 실망스러운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지금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입니다.
하나님과 언약까지 맺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뭐든지 잘하리라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자신감이 뿜뿜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속지 않으십니다.
광야생활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수없이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없다, 마실 물이 없다, 고기가 없다 얼마나 불평했습니까?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얼마나 악하고 연약한 존재인지 아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수준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과연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고 해서 달라질까요?
20절입니다.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뒤에, 그들이 살이 찌도록 배불리 먹으면, 눈을 돌려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업신여기고, 나와 세운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
배고픈 광야 시절에는 먹을 것이 없다고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제 배가 부르니까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실력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민낯입니다.
배고플때는 이러다 죽을까봐 두려워서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런데 배부를때는 더 먹고 더 갖고 싶어서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배부르니까 교만해져서 하나님말고 다른 신에 눈을 돌립니다.
16절은 이것을 영적 간음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그들의 부끄러운 민낯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너무 궁핍하게 살면 하나님을 더 잘 믿을거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물질에 탐욕적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오히려 신앙생활조차 어려워질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내 신세를 한탄하며 믿음을 잃어버릴수 있습니다.
왜 나만 갖고 그러시냐며 분노하고 하나님을 떠날수 있습니다.
그럼 잘 살고 여유로워지면 더 잘 믿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한 눈을 팝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고 다른 것에 집중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생활이 여유로워지면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없어지니 더이상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민낯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마음이 심히 부패했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자신을 배신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버림받고 상처받을줄 뻔히 알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게 가능할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는 오히려 버림받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아닌가요?
우리는 상처받는게 두려워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처받을 것을 아시지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얼마나 자주 넘어지는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때가 자주 있다는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바뀌기 힘든 고집쟁이인지 다 아십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다 아시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고,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실망스러운 말씀을 하신 이유도 이것때문입니다.
23절입니다.
주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약속한 땅으로 들어갈 것이니, 마음을 강하게 먹고 용기를 내어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하나님은 상처받을거 아시지만 나도 포기하지 않으니 너희들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아니까 오히려 더 사랑해주라는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게 먹고 용기를 내라고 하신 것은 가나안 민족들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입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여호수아가 진짜 두려워할 존재는 가나안 민족들이 아닌 부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인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모세 옆에서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다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반항심이 많고 고집이 센지 알기에 지도자로서 두려울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용기를 내라고 하십니다.
상처받을 각오를 하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첫만남부터 여호수아에게 상처주려고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하신게 아니라 오히려 격려하시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중에 금쪽같은 내 새끼가 있습니다.
거기보니까 문제아중에 역대급 문제아가 등장했습니다.
엄마한테 모욕을 주고 수치심을 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찌나 말을 거치게 하던지 거의 어른이 조롱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그 아이를 포기하지 않더라구요.
아빠는 그렇게 못하는데 엄마는 참고 견디더라구요.
아이가 엄마한테 끊임없이 상처를 주는데 포기하지 않더라구요.
하나님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신 처음 그 순간부터 결국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 버리고 도망갈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자신이 십자가에서 모든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죽으실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도망가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자신에게 모든 모욕과 수치를 준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작정하신 사랑,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처받는게 두려워 얼마나 많은 방어막을 칩니까?
내 민낯을 이것으로 가리고, 저것으로 가립니다.
서로 교제를 해도 방어막끼리 교제할뿐 나를 다 드러내지 못합니다.
나를 받아주지 못할까봐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그런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여호수아를 격려하시듯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상처받을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하냐구요?
사랑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사랑할수 있습니다.
물론 계속 상처를 주는데 내버려두는게 사랑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만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가만 내버려두는 것은 방치이고 방임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에게 징계를 내리시고, 고통과 재앙을 주실 것입니다.
17-18절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겠다고 하시는 표현이 두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들을 보지 않으시고 얼굴을 돌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버리고 외면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더이상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해주시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게는 고통과 재앙이 내리게 됩니다.
복의 길과 저주의 길에서 이스라엘은 저주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작정하신 사랑입니다.
얼굴을 돌리시지만 그것은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올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얼굴을 숨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더 큰 외침입니다.
그 증거가 있습니다.
19-22절입니다.
모세의 노래를 주십니다.
그 내용은 다음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핵심 내용은 이스라엘의 배신에 대한 경고와 사랑이야기입니다.
그냥 이스라엘을 버리실 거라면 이런 노래를 주셨을리가 없습니다.
이 노래를 지금 듣고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쾌할지 모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께 엄청난 은혜를 입었는데 배불렀다고 어떻게 하나님을 배신하겠느냐고 따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중에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들이 고통과 재앙의 때를 맞이할 때가 되면 어떨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이 노래를 주신 목적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 하나님은 처음부터 알고 계셨구나.
우리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버릴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셨구나.
작정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셨구나.”
하나님의 작정하신 사랑의 또한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24-29절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여 레위 사람들에게 맡깁니다.
모세는 노래뿐만 아니라 율법책도 증거로 삼습니다.
율법을 들려주고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삼습니다.
노래가 구두계약이라면 율법책은 문서계약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율법책에 복과 저주의 길을 다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고통과 재앙을 겪더라도 변명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래도 율법책도 모두 하나님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기로 작정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율법책에는 복과 저주 뿐만 아니라 회복의 말씀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재앙의 날이 오면 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을 것입니다.
율법책을 찾아보고 자신들이 어떤 길을 간 것인지 복기해볼 것입니다.
그러면서 더 깊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전에 부모님들은 자녀를 혼낼때 매를 들고는 하셨습니다.
지금은 체벌도 자녀학대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그때 매에 적혀있는 글씨가 있습니다.
뭐라고 적혀 있을까요?
‘사랑의 매’
맞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노래와 율법으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시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유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기로 작정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다카포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우리는 넘어질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하고 의심할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십니다.
우리가 서있을때도 아시고, 우리가 넘어져있을때도 우리를 아십니다.
다 아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상처받을줄 아시지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초 민감사회, 초 긴장사회, 상처의 시대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상처받을 일이 많겠지만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사랑할 용기를 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수없이 많은 상처를 드렸지만 우리를 받아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통해 흘러갈때 상처투성이인 세상이 조금은 변화되지 않을까요?
상처를 덮는 사랑이 우리를 통해 흘러가지 않을까요?
그러니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하기를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한번도 상처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할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베드로전서 4장 8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세상의 상처받은 사람들을 사랑할줄 아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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