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님의 직업은 목수였을까? 2024 0424 막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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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오늘 수요영성집회. 이스라엘 문화 특강 느낌.
오늘 본문은 사실 문맥상으로 보자면 예수님이 본인의 고향에서 환대받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장면임. 이 본문에 대한 스토리를 먼저 설명.
고향 땅에서 설교하시는 예수님
고향 땅에서 설교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을 펼치셨다. 가르침과 치유의 사역들. 그러다가 고향 땅을 방문하게 됨. 그의 고향은 갈릴리 지역에서도 내륙에 위치한 작은 산골동네 나사렛. 이 나사렛에서 예수님은 전에 하시던 대로, 제자들을 데리고 회당을 방문하여 설교를 하시게 됨. 그런데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
마가복음 6:2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고향에서 배척당하시는 예수님
고향에서 배척당하시는 예수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셨음. 그런데 사람들은 듣고 놀랐음. 1차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져서 놀랐음. 그런데 그 놀라움의 원인이 다른 데 있었음.
마가복음 6:2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이러한 가르침과 깨달음이 나올 줄 상상을 못했던 것임.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왜냐하면, 고향 땅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었음. 30년을 내 옆집에서 가구나 만들던 목수의 아들이 갑자기 고향 땅을 떠나더니, 이제 돌아와서는 성경 교사가 되어 있는 모습에 사람들이 놀랐던 것임.
그런데 그 놀라움 가운데에는 그들의 불신앙이 함께 존재했음. 눈으로 보고도, 귀로 들어도 믿을 수 없었던 것임.
마가복음 6:3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님께 형제, 자매가 있었음이 밝혀지는 대목. “너 우리 동네 골목에서 뛰어 다니던, 코흘리개 예수” 네가 누군지 우리가 다 아는데, 하는 빈정거림. 특별히 “마리아의 아들 목수”라는 표현이 굉장히 모욕적임. 주석가들의 의견 중 하나, 당시 유대 관습에서는 아버지의 아들이 정상적인 표현. 그런데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사생아를 지칭하는 경멸적 표현이었음.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존경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라면서, 그를 용납하지 못한 것임.
예수를 배척한지라 = 그에게 걸려 넘어지다. 예수로 인해 그들이 걸려 넘어졌다는 뜻. 예수님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불신앙함으로,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아지고, 회복이 되고, 생명을 발견해야 하는데, 실족한 것임. 배척하게 됨.
말씀에 찔림으로 넘어질 것이냐, 회개할 것이냐
말씀에 찔림으로 넘어질 것이냐, 회개할 것이냐
히브리서 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말씀은 우리를 찌른다.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히브리서 4:13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모든 것이 말씀 앞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이 우리를 찌를 때, 회개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마음대로 안되는 것. 성령께서 도우셔야 가능함. 성령에 충만한 상태에 있지 않으면, 말씀이 우리를 찌를 때, 그것을 거부하고 싶다. 배척하고 싶다. 오히려 그 말씀에 넘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말씀으로 넘어진다는 것. 그래서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 내 영이 성령에 충만함으로 가득하지 않으면, 말씀을 들어도 들리지 않고, 오히려 걸려 넘어지게 되는 것. 담임목사님께서도 이제 한빛교회에서는 시험들었다는 말을 쓰지 말자고 하셨음. 신기하게도 세상에서 시험당했다고 표현 안함. 예수를 배척한 나사렛 사람들처럼, 그 주님의 설교에 말씀에 걸려 넘어지게 되면, 더 이상 말씀이 들리지 않음. 동일한 말씀인데, 누구는 회개하고 자복하여 주 앞에 두 손들고 돌아오고, 누구는 그 말씀에 이를 갈며, 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
그래서 우리의 삶이, 신앙이 주의 말씀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날 때, 주 앞에 두 손 들고 자복하여 나올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그런데 예수님은 왜 목수셨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왜 목수셨을까?
자,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직업이 목수로 소개되어 있음. 왜 목수셨을까? 어떤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을까?
이스라엘 나사렛에 가보면, 나사렛 빌리지가 있음. 우리나라 용인 한국민속촌 같은 곳. 예수님 시대 때의 나사렛의 생활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곳. 작년 연초에 CGN 티비 오십쇼 팀에서 이스라엘 촬영을 왔음. 조혜련 집사님이 진행하시는 성경 공부 유튜브.
(자료01) 그 때 예루살렘교회 담임이신 채완병 목사님과, 부목사인 제가 ㅋ 현지 코디로 안내. 그 때 나사렛 빌리지 방문한 화면이 있음. (자료02-영상)
요셉도 목수. 예수님의 가정의 가업.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이 단어는 “테크톤” 이라고 나옴. 이 단어는 신약에서 단 두 번, 예수님의 직업을 가리키는 장면에서 나옴. 오늘 본문 말고 마태복음 같은 장면에서 나옴.
마태복음 13:55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우리의 의문점의 출발은 “왜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 살면서, 또 그곳의 어부들을 부르시면서, 본인은 어부가 아니었을까?”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인물들의 직업들은 무엇이었나?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인물들의 직업들은 무엇이었나?
다윗 : 목자. 맹수들을 죽이고, 가축들을 보호하고, 기르고, 돌보며,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이끌었다. 왕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에 이보다 더한 메타포가 있을까? 한 나라의 왕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돌보고 이끄는 것. 목자라는 그의 직업은 왕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을 위한 예행연습과도 같음.
제자들 : 대체로 어부들이었음. 예수님이 그들을 부를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심. 수많은 물고기를 잡아 올린 이야기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사도들의 복음을 듣고 돌아오는 이야기와 평행을 이룸. 역시 제자들의 소명을 그들의 직업과 비교했을 때, 이해되는 부분이 있음.
이런 패턴으로 볼 때, 예수님이 목수셨다는 사실은 그의 사역의 어떤 부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
성경에서 나무는 인간 존재를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성경에서 나무는 인간 존재를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시편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또 나무가 우리의 인간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죄악된 인간은 자비의 하나님에 의해 불태워지는 나무 장작으로 이야기 된다.
스가랴 3:2–4 “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아모스 4:11 “11 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무인 우리를 깎고 다듬어 주시는 예수님
나무인 우리를 깎고 다듬어 주시는 예수님
우리 인간은 돌처럼 영원하지 않다. 나무처럼 썩거나 태워없어지는 존재들이다.
목수는 나무를 다루는 사람. 영상에서 봤던 것 처럼, 나무를 깎고 다듬고 설계도대로 조립하고 만들어서 그가 원하는 모양과 쓰임새로 만드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목수로서 나무를 가지고 유용한 도구와 장비, 가구등을 만들었을 것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다듬고 훈련시켜 아름다운 존재로 만드신다는 이야기가 된다.
재료와 상관없이, 목수의 의지대로
재료와 상관없이, 목수의 의지대로
기타를 침. 기타의 하드웨어, 악기의 하드웨어에도 관심을 갖게 됨.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있음. 어떤 것은 참나무, 어떤것은 로즈우드 등등 다양한 목재의 종류가 있음. 통기타를 보면 다 같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사실 부위별로 나무의 종류가 다르다. 즉 모든 나무가, 모든 목재가 다 같은 부위에 사용되는 것이 아님. 목재의 단단한 정도, 건조의 정도, 소리 배음을 울리는 정도에 따라 쓰이는 위치도 다르고, 또 기타가 아닌 다른 악기로 만들어지기도 함.
우리는 때로 나의 연약함 때문에 목재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제한하기도 함. 그러나 목재를 사용하는 사람은 우리 주님이시다. 주님이 친히 목수되셔서 나무인 우리를 당신의 필요대로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가시겠다고 함. 이것이 은혜.
감사하는 마음으로, 목수 예수님이 우리를 그의 완벽한 지혜에 따라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도구, 그릇으로 변하게 하실 것을 기대하라. 또한 그는 우리 안에서 살기로 선택했다. 우리 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신다.
고린도전서 3:16–17 (NKRV)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를 당신의 부르심대로 오늘도 사용하실 것을 기대하라.
우리를 당신의 부르심대로 오늘도 사용하실 것을 기대하라.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부르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내게 주신 달란트, 재능, 직업, 관심사, 취미, 특기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을 이해하고 확신한다면, 우리의 이 땅의 삶은 절대 무가치한 것이 될 수 없다.
출애굽기를 보면 언약궤가 있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나무로 된. 그러나 황금으로 뒤덮힌. 무슨 나무인가? 광야에 가보면 만날 수 있는 나무가 있는데, 종려나무, 로뎀나무, 에셀나무, 그리고 싯딤나무. (자료03) 조각목. 아카시아 나무. 좀 더 가까이에서 이 나무를 보면 (자료04) 가시가 있고,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몸을 비틀어 목재로 쓰기에 부족함이 있는 그 나무. 나무의 가시들은 우리의 죄많은 본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런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기를 원하신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 뒤틀린 나무들을 조각조각 패어, 그리고 하나로 모아 궤를 만들고, 황금으로 덮는다. 하나님의 은혜와 거룩함으로 덮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임재하신다.
때론 우리의 모습이 이 싯딤나무와 같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온몸이 비틀어지고 못생겨지고, 목재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광야와 같은 이 땅의 삶은 이런 모습이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성경공부반 성지순례반, 광야편에서, 광야=미드바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곳. 말씀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바로 그 곳이 광야. 그리고 그 광야에 외롭게 서있는 비틀어진 나무 싯딤나무.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의 모습이고, 목재로 사용될 수 없는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일지라도, 목수이신 우리 주님은 그러한 나를 당신의 임재가 가득한 곳으로 바꾸어주신다.
오직 우리의 삶을 "주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결단찬양 <나를 지으신 주님>, <우릴 사용하소서>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 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흘린 눈물을 그가 닦아 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우리 가슴에 새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 하네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 마음 희생과 포기와 가난과 고난
하물며 죽음조차 우릴 막을 수 없네 우리 교회는 이 땅의 희망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우릴 사용하소서
진정한 부흥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릴 사용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