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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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24–33 NKRV
24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지난 말씀에 이어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고넬료 사건이 이어집니다. 고넬료 사건은 10장과 11장에 연속하여 두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반복하여 기록된 것은 강조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듯 이 사건은 사도행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고넬료 사건에 대해서, 베드로는 15장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증거라고 말합니다. 즉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과 모든 민족을 구원하신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큰 주제는 이사야 49:6의 말씀인,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가장 동쪽 끝에 있는 우리민족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베드로가 고넬료 집으로 가다(24-29)] [(24-26)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의 청함을 받고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갈 때 혼자 가지 아니하고 욥바에서 온 형제들과 함께 갔다고 합니다. 형제들과 함께 갔음을 기록한 것은 이 사건이 증인이 있는 공적인 사건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이사랴로 온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났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인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서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1:14을 보면, 베드로를 ‘너와 네 온 집이 구원받을 말씀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고넬료는 기대와 떨림으로 베드로가 오기를 온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기다렸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도착해 집으로 들어갔을 때, 고넬료는 베드로를 맞이하고 발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고넬료가 어떤 심정으로 베드로를 맞이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곧바로 그를 일으켜 세웁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는 청지기의 임무에 충실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음’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러 간 베드로는 ‘복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신을 놓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인 베드로는 자신이 이곳으로 온 이유를 밝혔습니다. [(27-29)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유대인의 전통에 따를 때,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율법은 이방인과의 교제를 금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전통으로는 이방인과 교제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이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나누고 있는데, 그들의 전통은 그 부정한 것에 접촉되지 않기 위해 부정한 것에 접촉하는 이방인을 만나는 것 자체를 금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바리세인이나 서기관들뿐만 아니라, 베드로와 같은 일반 유대인들도 지키고 있는 일반적인 전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온 것은 순전히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아직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왜 이곳으로 보내셨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왜 자기를 불렀는지 물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전파와 구원이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맞이 하다(30-33)] [(30-31)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다고 합니다. 이방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 것의 의미는 당시 부분적으로 유대교로 전향한 개종자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완전히 개종하여 할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유일신을 예배하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유일신을 믿고, 율법의 윤리를 지켰지만, 의식적인 율법 즉 할례나 정결례나 제사와 같은 것은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이 율법의 의식적인 부분을 지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방인으로서 율법에서 정한 정결한 음식만 먹고 다른 이방인들과 교제를 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율법의 의식적인 부분은 지키지 않았지만, 율법의 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사가 고넬료에게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라는 말에서도 그것이 드러납니다. 또한 고넬료가 제구시에 기도를 했다는 것은 더욱이 그가 이스라엘의 유일신을 믿는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제구시는 성전에서 저녁 희생제사와 특별기도 예식이 있었던 시간으로, 고넬료가 성전의 기도 일정에 따라 기도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어떻게 보면 유대인보다 더 유대인 같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율법의 형식만 있고 내용이 없어 외식자라고 예수님께 책망을 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유대인다웠습니다. 고넬료는 할례와 의식적인 율법만 지키지 않았을 뿐,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율법을 지키는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이제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의 전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고넬료를 시작으로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의 물꼬가 성경에서 트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는 베드로의 태도와 고넬료의 반응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순종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베드로에게 나타난 태도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 복음이 드러나는 태도였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복음을 전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드러나던가, 복음이 드러나던가 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려 하지만 자신을 복음 앞에 둘 수 있습니다. 그순간 우리의 죄성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나의 드러남, 나의 의 이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전에 출발 비디오 여행이라고하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주 경건한 분들이라 잘 모르실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그 프로그램이 주일에 방영되는 방송이었거든요.
그런데 출발 비디오 여행에 개그맨 김경식씨라는 분이 영화를 소개해주는데, 아주 맛깔나게 영화를 잘 소개해주는 거에요.
아직 출시되지 않은 영화를 소개해주는데 이 영화는 안 보면 손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소개를 해줍니다.
그런데 이 김경식씨가 별명이 있어요. 영화 사기꾼이라는 별명입니다.
왜 이런 별명이 붙었냐면, 영화를 너무 잘 소개해줘서 영화를 보려고 마음을 먹고 영화관에 가서 막상 영화를 보면 생각보다 재미가 없는거에요.
오히려 김경식씨가 소개해주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 영화보다 더 재밌는겁니다.
그러니까 김경식씨는 그저 잘 소개해줬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영화사기꾼이 된거에요. 그분에게는 되게 듣기 좋은 별명이죠 영화 사기꾼이.
여러분 우리는 복음 사기꾼이 되면 안 되죠.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전하는 내가 드러나서 나의 좋은 모 습, 의로움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 아니죠.
우리는 정말 우리를 통해서 전해지는 복음이 앞서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우리를 가려야하고, 복음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습을 가려야 합니다.
또한 고넬료의 태도를 보겠습니다.
고넬료는 복음을 전해받기 전까지 유대교로 개종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복음을 듣지 못했고, 진정한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태도는 복음을 듣고 믿기 이전에 좋은 마음밭을 제공했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대하는 마음밭이 우리의 태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평소에 언제나 영적인 것에 관심도 없고, 겸손치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는 우리의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이 심겨도 죽어버리는 죽은 땅으로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언제나 영적인 것을 사모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마음밭을 가꾸어나가야 합니다.
물론 믿음은 성령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뺏어가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밭을 언제나 좋은 밭으로 만들어가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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